느그가 프로가 (2)
사실, 내가 저 친구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게 풀백이라면 굉장히 제한됐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이기승 선배가 부상당한 상황이기에 중앙 미드필더로 나온 상황이었고. 그렇다는 건 내가 무언가를 하고자 들면 굉장히 많은 걸 할 수 있는 위치란 거였다.
‘물론 압박을 쫀득쫀득하게 해 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지금 저 녀석들은, 이길 마음이 없다. 그런데 압박같이 힘든 걸 하고 싶어 하겠는가. 그냥 대충대충 뛰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인데.
‘뭐, 그렇다면 후회하게 해 줘야지.’
그리고 지금 별로 열심히 뛸 마음이 없는 저 친구들을 정면으로 박살 낼 방법이라면, 역시 드리블이다.
[이준혁 선수, 패스-가 아니라, 이번엔 드리블입니다!]
[경찰청 선수, 옆에서 달려듭니다!]
그렇게 왼쪽 앞으로 공을 밀자, 당연하다는 듯이 상대방이 지그시 달려 내 앞을 가로막았다.
음, 왼쪽에서 다가오시네?
‘그래도 뛰기 싫어서 그런 거지 기본적인 판단력은 날카롭구먼?’
그래, 좋은 판단이다. 내가 왼발잡이니까.
‘자 그럼 어디 해 보자.’
원래 이건 내가 몸빵이 안 될 때는 자주 써먹진 못했지만, 지금은 되겠지.
[수비수, 붙습니다!]
그 순간, 나는 공을 순간적으로 터치하지 않고 달려 나가서, 오른쪽 어깨를 앞에 세워서 상대와 맞부딪쳤고.
‘후읍!’
공은 오른발로 잡아채고 왼팔로 상대방을 누르면서 한 바퀴 돌며 빠져나갔다.
[아! 이준혁 선수, 드리블 돌파! 드리블 돌파입니다!]
‘됐다! 턴 드리블 성공이다!’
물론, 별로 화려하진 않은 드리블이다. 이건 턴 드리블 중에서도 굉장히 간결한 드리블이니 말이다.
'턴 드리블 중에서 화려한 건 모드리치가 보여주는 크루이프 턴, 혹은 리베리나 지단이 자주 보여주던 마르세유 턴 같은 거지.’
그래서 그것들을 사용할까 했지만, 그만뒀다. 이것도 효과는 만만찮게 좋거든. 무려.
[저거, 이니에스타가 자주 보여주던 턴 드리블이네요!]
바르셀로나의 전설, 이니에스타가 자주 사용하던 드리블이니 말이다. 수수하긴 해도 성능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렇게 수수한 드리블을 하는 놈이 나중에 화려한 드리블을 하는 게 더 화가 날 테고.'
애초에 사람이란 게 불량배이던 놈이 쌈질하는 것보다 모범생이던 놈이 쌈질하는 게 더 충격적이고 자극적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단은 충실하게 나는 간결한 드리블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살짝 시간을 투자했고.
[아, 이준혁 선수, 평소와는 다르게 오늘따라 드리블을 자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성공률도 좋네요?]
[이야- 이거 감독 입장에선 함박웃음을 짓고 싶을 겁니다. 질질 끄는 드리블도 아니고 저렇게 간결한 드리블은 중앙 미드필더에게 있어서는 아주 좋은 기술이니까요.]
10분 정도 지나, 충분히 빌드업됐다고 생각할 무렵,
[아! 상주 상무, 역습입니다! 역습!]
[바로 길게 걷어내고! 중앙으로 연결합니다!]
기회가 찾아오자, 나는 이번엔 묘기를 하나 시전 해 봤다.
[경찰청 선수들, 달려듭니다!]
-툭
“흐억-?”
[어? 조건동! 조건동! 교체되자마자 1대 1 찬스! 골! 골! 골입니다!]
[이거 뭡니까, 이준혁 선수! 방금 뭘 한 거였죠?]
그리고 그 순간,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마치 ‘저 새끼 봐라?’ 하는 눈빛이었다.
‘흐흐, 너희들도 알긴 아는구나?’
[어, 저건 좀 특이하네요? 다시 봐도 꽤나 특이한 묘기입니다. 볼을 받아서 발바닥에 잡고 패스하는 게 아니라, 발로 더 크게 바운드 시켜서 수비수를 제치는 패스를 날리다니···?]
이거, 프리스타일 풋볼 기술이라는 거.
‘자, 일단 처음엔 핫 스테퍼(Hot stepper)지만, 계속 넋 놓고 있으면 다음엔 아치브리지 보여준다?’
그래도 영 달려들지 않자.
[아, 사포인가요? 이준혁 선수, 이번엔 사포를 선보입니다!]
결국 아치브릿지를 시전 해 줬고, 효과는 직빵이었다.
삐이익-!
[아, 조금 깊게 들어간 태클입니다. 경찰청에 반칙이 선언되네요.]
[아, 왠지 모르게 열 받은 모습입니다. 경찰청 선수들? 갑자기 거친 태클을 날리네요?]
흐, 꼴에 자존심은 있구만. 새끼들.
‘프리스타일 풋볼로 농락당하긴 싫다. 이거지?’
그래, 그 정도 자존심까지 없으면, 오히려 더 실망했을 거다.
‘좋아, 다음엔 다른 것도 보여주마. 이번엔 좀 정상적으로 마르세유 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경찰청 미드필더진에서 한 명이 나한테 말을 걸어왔다.
“···선배님, 이러실 필요까진 없지 않습니까. 대체 왜 이러시는 건데요.”
어쭈구리, 이 새끼 봐라.
“준협아. 마이 컸다?”
“······”
어디서 감히 대학교 후배 녀석이 선배님 말에 말대꾸란 말인가. 그것도 2년이나 나이 덜 먹은 녀석이. 역시 대학교를 중퇴해서 그런가. 인성이 덜 됐어. 짜식이.
“그딴 식으로 따질 힘 있으면 압박이나 좀 해라, 이게 뭐냐, 이게. 솔직히 저번에 충주랑 했을 때가 압박 더 세게 들어왔다.”
심지어 그때는 풀백이었고, 충주는 방어적으로 포메이션 짰다. 근데도 그때보다 지금이 더 편하다. 이게 뭔 소리겠는가.
“니들이 열심히 뛰면 자연스레 내가 이런 거 못 할 거 아니냐.”
“···선배님, 그럼 사포라도 좀-”
“아, 됐어 새꺄, 내가 해 줄 말은 딱 하나다.”
뭐, 솔직히 저기 미드진에 선배님이 한 분 계시긴 하지만 극상으로 예의 갖춰야 하는 대학교 선배님도 아니고, 이 정도는 말해주고 싶다.
“꼬우면, 열심히 뛰어.”
***
<2015 K리그 챌린지 44Round>
[후반 39분]
상주 상무 4 : 0 안산 경찰청
[골]
상주 상무 : 박동기 30, 김도협 50, 조건동 60, 황수일 84
안산 경찰청 : (없음)
***
-고오오오올! 골입니다! 황수일 선수의 멋진 골! 우리 상주 상무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 부탁 드립니다아-!
그 순간, 나는.
“아, 살짝 아쉽네, 더 털어줄 수 있었는데.”
벤치에 앉아 투덜거리고 있었다.
경기 거칠어진다고 70분 즈음에 감독님이 교체해버리신 거였다. 이미 승부도 났으니까.
‘아직 보여줄 드리블이 많이 남아 있었다고. 옛날이면 몰라도, 이제는 축구화도 편해지고 몸빵도 돼서 정말 고난도 드리블이 아니면 다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
그렇게 투덜거리는 데 집중하고 있는 사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준혁.”
“예, 코치님.”
수석 코치님이었다.
“굳이 왜 그런 거냐. 시즌 마지막 경기고, 이기고 있는데 굳이 왜 저 친구들을 도발한 거지?”
그분이 꽤나 진지한 목소리로 나에게 묻자, 나도 진지하게 대답해드렸다.
“저는, 저 새끼들을 전혀 존중해주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왜냐고? 당장 저번에, 우리가 FA컵 결승전 하기 전에 맞붙은 충주를 봐라.
그들은, 비록 우리에 비하면 아주 약한 전력이지만 우리가 정말 전력을 다해서야 간신히 승리를 가져갈 수 있었고. 대구랑 맞붙어서는 무승부를 거두었다.
심지어, 이미 꼴찌가 확정되어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들은, 프로였다.
“근데 저건 프로도 뭣도 아니니까요.”
마지막 경기랍시고, 어차피 군경팀이니까 열심히 뛰어봤자 얻는 것도 없으니 대충 뛰겠다.
이런 태도로 뛰는 새끼들이 프로냐? 이게 프로냐고.
“흠, 왜 그리 생각하는 거지? 저기나, 우리나 군경팀이니만큼, 원소속팀이 있으니 그 팀의 팬들을 위해서만 뛰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태반일 텐데.”
“······”
“그게 더 프로다운 거라는 생각은 안 드나?”
물론, 저 말도 맞는 말이긴 하다.
안산이나 우리 팀 팬이 아니라, 타 팀들의 팬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 군대 가는구나, 이왕 이렇게 된 거, 푹 쉬고! 팀에 돌아와서는 열심히 뛰어라! 거기에서 너무 많이 뛰다 다치지 말고!
은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쉬엄쉬엄 뛸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하고 적당히 저 때에 쉬엄쉬엄 뛰다가, 팀에 돌아와서만 다시 빡세게 하라고 할 수도 있을 거다. 그래도 별 불만이 없을 거다.
하지만.
“그건 저희들을 매번 찾아와주는 이 팀의 팬들에게 예의가 아니죠.”
-이야!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5분 남았다아! 5분! 화이팅! 이제 슬슬 노래 부릅시다!
-숨! 막! 히! 는! 고토옹도~ 뼈를 깎는 아픔도~
군경팀이 팬이 적다, 적다고는 해도, 우리가 경기할 때마다 최소 500씩은 경기 때마다 찾아왔었다.
그리고 마지막 라운드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여서 그런지 오늘은 개막전만큼은 못하지만, 그래도 한 3천 명은 찾아왔고.
그러니, 그건 이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경력 단절이 아니라, 경력을 이어가게 해 준 이 팀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요.”
우리는 꽤 많은 특혜를 받는다.
당장 우리는 일반 병사들과는 달리 2인 1실의 생활관을 배정받으며, 일반 병사들과 비교하면 훨씬 비싸고 좋은 급식을 배정받고, 훈련이라고는 사격 정도가 가장 큰 훈련이다.
그리고, 원정경기라던가, 이기고 나면 주는 외박이라던가, 이런 것까지 따지면 사실 지금은 폐지된 연예병사만큼이나 자유롭게 바깥 공기를 마시며 군 생활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팀에서 뛰는 것으로서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아니라. 사회인에 가깝게 군 생활을 할 수가 있다.
이런 혜택을 받고 있는데, 그냥 대충 뛰는 것도 직무 유기 아닌가.
“그러니, 여기에서 뛰는 동안엔, 전 할 수 있는 한 충실히 상주 상무의 선수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고. 수석 코치님은 웃음기를 띤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
“훌륭하다. 이준혁.”
그 말과 함께 코치님은 내 옆자리에 털썩 앉으셨다.
“그거 아느냐? 사실 난 감독님이 널 처음 뽑을 때, 반대했었다. 너 말고 인천의 최종환이를 뽑자고 했었지.”
“최종환 선수요?”
최종환 선수라면, 들어본 적 있다.
나 같이 중앙 미드필더 포지션을 맡다가. 2011년부터 풀백으로 전환한, 딱 나와 비슷한 길을 먼저 걸은 선수.
그리고 적응하면서 2013 시즌부터 주전의 자리를 확고하게 다지며, 올해 인천에서 부주장까지 맡기 시작한 선수.
그래서 풀백으로 전환하고 나서, 내 목표로 삼았던 선수 중 한 명.
“나는 네가 아무리 커도, 그 수준 이상으로는 올라오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거든.”
“······”
맞는 말이다. 솔직히 나도 전환하면서 자신 없었다. 포지션 전환한 2부리거 선수가 이렇게 빠르게 커올 거라고 누가 예상한단 말인가.
“하지만, 내 눈은 틀렸더구나. 너는 벌써 지금 그 선수 수준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 가는 실력을 보여주고 있어.”
“······”
“저기를 봐라.”
코치님이 손가락을 가르키는 곳을 따라가 보자, 경찰청 선수들이 눈에 보였다.
“시즌 전 저 친구들과 우리들 사이에, 사실상 실력 차이는 그렇게 크게 나진 않았다.”
“···그렇..죠?”
그래. 둘 다 똑같은 군경팀이니까.
우리 쪽이 조금 더 선수의 질이 좋다곤 해도. 큰 차이는 안 난다.
“그런데 지금 시즌의 마지막에, 순위는 1위와 10위로, 하늘과 땅 차이지.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실력이 비슷했던 사람들이 모여서 팀을 이루었는데 저렇게 차이 난다면, 답은 단 하나다.
“그저, 팀 전체가 얼마나 노력했느냐의 차이다.”
“······”
“그리고 이렇게 모두가 노력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낸 건, 솔직히 말해서, 너의 역할도 컸다고 생각한다.”
“네?”
그건 또 무슨 소리···
“매일같이 일어나서 아침 훈련하고, 팀 훈련 끝나면 또 따로 웨이트를 나가면서 가장 밑바닥에 있던 후배 녀석이, 2부리거 녀석이 이렇게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는데, 어찌 저 친구들이 가만히 있겠냐.”
“······”
다 알고 계셨구나.
“그리고 머리도 이렇게 항상 시원-하게 깎고 다니고 말이야. 이건 하라고 해도 얘들이 참 안 들어처먹어서 포기했는데. 클클.”
···음, 일병이기도 하고 그동안 여름이라서 안 길렀던 거였는데··· 이제 상병 돼서 좀 기르려고 했더니만, 그냥 깎고 다녀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코치님은 계속 말씀하셨다.
“이제 곧, 시즌이 끝난다. 앞으로 내년이 오기까지 다들 한달 정도는 다들 푹 쉬겠지.”
“···네, 아마도 그럴 겁니다.”
선임들이 막판에 휴가 못 쓴 걸 보고, 이번 겨울에 어떻게든 연가 다 쓰겠다며 다들 기를 쓰고 있었으니.
“그리고, 너는 분명히 쉴 생각은 없어 보이는데, 그렇지?”
“···예, 모교에 가서 다시 한번 박경운 감독님께 레슨을 받을 생각입니다.”
-삑! 삑! 삐이익-!
[2015 K리그 챌린지 우승팀은, 상주 상무입니다-!]
“그 한 달 이후, 나와 감독님을 다시 놀라게 해 주거라.”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