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167)

느그가 프로가 (1)

시즌 말, 마지막 라운드를 앞둔 팀들은 여러 가지 태도로 갈린다.

이미 시즌 순위가 정해졌으니 그냥 대충 하자는 팀들도 있고.

아직 시즌 순위에 변동의 여기가 있으니 열심히 뛰는 팀들도 있다.

그 중에서 우리는 명백히 후자였다. 당연한 게, 현재 우리가 1위이긴 하지만. 우리와 대구의 승점 차이는 2점 차.

우리가 이긴다면 생각할 것도 없지만. 우리가 비기기라도 한다면 조금 불안해질 수밖에 없고. 우리가 지면, 대구가 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러니 우승하고도,

-삐익-!

“좋아, 훈련 끝!”

끝이라고? 끝? 어휴, 그래, 생각보단 버틸 만 했-

“다음 훈련으로 간다!”

아아악!

우리는 땀을 흘려대고 있어야 했다.

시즌 말이라 거의 최소한도로만 감각 맞추고 회복훈련에 집중하던 훈련이 아니라, 그냥 시즌 중반까지 하던 훈련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다들 이해는 했다. 이해는. 마지막 경기에서 까딱하면 준우승인데 이해 못 할 리가.

“와아- 뒤지겠네. 진짜. 마지막이랍시고 너무 굴리는 거 아냐?”

그렇지만 뒤에서 투덜대기는 했다.

애초에 FA컵 우승의 여운에 좀 더 잠기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우리에게 훈련을 시키는 게 어디 잘 먹히겠는가.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는 이해하기가 좀 힘든 상황인 거다.

뭐, 나는 그래도 그나마 더 이해하긴 했다.

‘우리 마지막 상대가 경찰청이니···’

그래, 우리의 마지막 라운드 상대는 안산 경찰청. 우리랑 똑같은 군경팀이니 말이다. 솔직히 난 그래서 방심할 마음을 애당초에 버렸다.

‘난 아직도 2013시즌의 경찰청을 기억한다고.’

그때 시발, 수원 선수들이 아주 그냥 들이 부어져 있었지? 그게 무슨 경찰청이야, 수원 블루버드지.

물론, 나처럼 생각 안 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것 역시 이해는 갔다. 왜냐면.

“아니, 뭐 지면 1위 뺏길 수도 있으니까 이해는 간다··· 가. 근데 뭐 이렇게까지 걱정해야 돼? 지금 경찰청 10윈데?”

그렇다.

우리와 같은 군경팀이었기에. 우리와 같이 챌린지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상주 상무를 견제할 유력 후보로 뽑혔던 안산 경찰청의 순위는.

10위.

꼴찌에서 두 번째였으니까.

-*-*-*-

사실, 같은 군경팀이라곤 해도 안산보다는 우리가 올해의 우승 후보로 더 많이 꼽히긴 했다.

안산은 9월 말에 대부분 전역하는데, 우리는 10월 중순에 대부분 전역하기에 선임들이 3경기 정도는 더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는 것도 있고, 올해 입대자들의 면면이 우리가 훨씬 더 나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확실하게 안산이 우위인 점이 있었는데. 전체적인 선수들의 질만큼은 안산이 더 좋았다. 올해 9월 말, 경찰청에서 전역한 사람들은.

전태현, 이용래, 조재철, 이재권, 박희도, 박현범, 김병석, 유호준, 한덕희, 윤준하, 김신철, 서동현, 강종국.

뭐 평범하게 국대만 봐온 팬이라면 이용래 선수 정도를 제외하곤 모두들 모르겠지만, K리그를 꾸준히 봐 온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분명 본 듯한 이름들이다.

그래, 이 선수들은 대부분이 태준이 수준의 커리어를, 그러니까 K리그 50경기 이상의 경력을 가진 선수들이니까.

탁 튀는 엄청난 선수는 없지만, 견실하게 나름 괜찮은 선수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거다.

그리고 남아 있는 선수들도 나쁜 선수들이 아니다. 신광훈, 신형민, 정혁 등등, K리그의 상위 스플릿에 드는 강팀에서 여기 입대하기 직전까지 꾸준히 뛰던 선수들도 꽤 있다.

절대로, 이런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준의 선수들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경찰청은 이미 7월부터 7위,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권인 4위와는 승점 6점 차이로 불안불안하더니.

-아 경찰청··· 올해, 경찰청이 잔류가 확정됩니다.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놓친 이후로 완전히 무너져버리면서 결국 10위라는 처참한 곳까지 떨어져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이를 악물고 뛸 거라고 생각했다.

군경더비라는 점도 있고, K리그에서 주전으로 뛰던 선수들이 이렇게까지 밑바닥으로 떨어진 것은, 자존심에 대단한 굴욕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와, 날씨 좋네요. 하하. 좋은 경기 부탁드립니다.”

“···예, 그래요.”

마지막 라운드를 앞둔 지금, 저들의 모습은··· 글쎄.

‘웃고 있네?’

팀 상태가 메롱인데 웃고 있다니. 뭐지? 이건?

‘저렇게 성적이 안 좋은데, 어떻게 웃을 수 있는 거지?’

성적이 좋은 팀은, 팀 분위기가 좋다.

성적이 나쁜 팀은, 팀 분위기가 안 좋다.

이건, 솔직히 축구뿐만이 아니라 모든 스포츠팀에 통용되는 말이다.

물론 성적이 나빠도 허허 웃으면서 팀 분위기가 좋은 팀이 없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최소한 우승 후보로 뽑혔던 팀이 저렇게 바닥을 박박 기고도 팀 분위기가 좋은 팀은 한 번도 못 봤다.

그런데.

“이야, FA컵도 우승하고, 승격도 사실상 확정이고, 진짜 상무, 올해 잘 풀렸네요. 오늘 살살 좀 부탁합니다?”

오늘, 나는 내 머릿속에 예외 사례가 하나 생기는 것을 느꼈다.

“김 선배님.”

“왜?”

“김 선배님은 쟤네 왜 저러는지 아세요?”

주어를 빼먹은 질문이었지만, 다행히도 태열 선배님은 바로 알아먹은 눈치였다. 사실, 프로라면 누구라도 가질 수밖에 없는 의문이었으니까.

하지만. 누구라도 가질 수밖에 없는 의문이 대부분 그렇듯.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네, 저런 건 처음 본다.”

“······”

뭐지? 이길 자신이 있는 건가?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아! 박동기, 박동기! 골입니다아-! 박동기의 선제 득점!]

[이야! 기가 막힌 롱패스! 롱패스 한 방에 골이 들어갑니다!]

[수비 진형이 잘 자리잡혀 있었는데도 아주 잘 찔러줬어요!]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도 롱패스 단 한방에 뚫릴 정도로,

그들은 형편없는, 10위 그 자체였다.

***

<2015 K리그 챌린지 44Round>

[전반 종료]

상주 상무 1 : 0 안산 경찰청

[골]

상주 상무 : 박동기 30

안산 경찰청 : (없음)

***

“대구는 지금 어떠냐?”

“1대 1! 동점이야!”

“조오았어-! 우리가 간다! 우리가 간다고! K리그로!”

그리고 그 상황에서 나는.

“와, 잘 됐네?”

좋아하긴 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이상할 정도로 침착했다.

‘왜지? 왜 이러는 거지?’

FA컵 우승해서 K리그 챌린지 우승이라는 거에 감흥이 없어진 걸까?

아니, 그건 아닐 거다.

들어올 때부터 나의 목표는, K리그 진출이었다. K리그에서 단 한 경기라도 뛰는 것이 여기에 들어올 때 나의 목표였단 말이다.

그리고, 우승하면, K리그 진출이 확정이다. 지금 꿈만 그리던 K리그가 코앞이라는 거다.

그런데 왜 이러는 걸까. 뭐가 부족해서?

“가자! 진짜로, 이제 우리는 K리그로 간다!”

“···씨발 야, 이쯤 되면 너 맞고 싶은 거지?”

“아니 야! 이 말 한다고 우리 지거나 하지도 않았잖아! 우리한텐 오히려 행운의 대사라고!”

그렇게 모두가 기뻐하는 가운데 누군가가 긴장감을 팍 주는 대사를 치기도 했지만. 난 영 웃음이 안 나와서 그런지, 라커룸을 빠르게 나왔다.

“야, 이준혁, 너 어디 가냐?”

“화장실이요-!”

딴 생각이 많이 드는 만큼, 세수나 한바탕 하고 경기장으로 나갈 생각을 한 거였다.

그렇게 화장실의 문을 연 순간. 나는 못 볼 꼴을 봤다.

“······”

“아, 죄송합니다. 화장실 쓰려고 오신 건가요?”

“···네.”

“미안해요, 안 올 줄 알고, 복도로 나가서 필게요.”

애초에 안 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알기로 저 사람들은 나보다 선배인 만큼, 굳이 부딪힐 거리를 만들 필요는 없었기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이 나가면서 하는 대화는.

-야, 이 경기 끝나고 나면 어디로 놀러 갈래?

-전 클럽이요! 클럽!

-클럽? 클럽은 저번에도 갔잖아. 마사지샵은 어때? 내가 좋은 데 알아.

-오오, 그것도 좋죠!

-탁

“······”

귀를 씻어 버리고 싶었다.

물론, 크게 이상할 건 없는 대화다.

솔직히 말해서, 스포츠 쪽에서 깨끗하게 노는 사람이 오히려 드무니까. 당장 국가대표 선수들도 룸살롱 갔다가 기자들에게 포착되고 그러는 게 드물지 않고. EPL에서는 불륜 사건이 터지는 게 일상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박지성 선수가 있던 시절 맨유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근데도 그 선수들 경기에 잘만 나오고 그랬다. 감독님들은, 팬들은 적당히 경기에 지장 주지만 않으면 그래도 기용하고, 응원해주니까.

그러니까. 별로 이상할 건 없는 일이다.

쏴아아- 끼익.

“······”

하지만, 지고 있는데.

웃으면서 할 소리는 분명 아니다.

그것도, 담배를 펴 가면서 말이다.

-*-*-*-

후반전에도, 별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 경찰청 선수들··· 시즌 마지막이라 힘이 빠진 듯합니다. 몸이 무겁네요.]

[전역한 선수들의 공백을 잘 메꾸지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전히 경찰청의 수비는 손발이 안 맞아서 구멍 뚫린 치즈처럼 숭숭 뚫리고 있었고. 그 약점을 철저히 파고들면서 우리는.

[아! 상주 상무! 골입니다! 또 골! 골! 골!]

[이것으로 2대 0! 상주 상무! 강합니다! 우승을 거의 확정 짓는 쐐기 골입니다!]

두 번째 골을 넣는 데 성공했다.

“이야-호오! 감독님! 감독님! 대구 몇 대 몇이에요?”

-아직 1대 1!

“이야아아아! 우리 더블이다! 더블! 리그 우승도 우리 꺼다!”

“야! 노래 불러! 노래! 시간끌자! 위 아더 챔피언~ 위~ 아더 챔~피언~”

물론 그럼에도 안심하지 못하고 시간 끌다가 옐로카드 처먹을 뻔했지만.

“에이, 심판님, 그럴 필요 없어요.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저희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오히려, 경찰청 쪽에서 옐로카드를 만류했다.

“······”

그쯤 되자, 나는 슬슬 어이가 없었다.

‘아니, 왜 굳이 저렇게 해?’

물론 우리 입장에서야 좋다. 좋은 일이다. 근데, 그걸 왜 당신들이 챙겨주느냔 말이다.

-야이 씨-발! 그걸 왜 만류하는데 새끼들아! 빨리 진행해! 시간 가잖아!

저기 저 몇 안 되는 원정 팬까지 저러지 않는가.

그래서일까. 나는 평소라면 절대 안 할 짓을 했다. 평소라면 이기는 데 도움 되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갔겠지만,

스로인 아웃 상황을 틈타, 물어봤다.

“저기요.”

“네?”

“저희 입장에서야 고마운데, 아까 왜 그러신 거예요? 저희가 봐도 시간 끄는 거 맞았는데···”

너무 궁금해서 말이다.

“아아, 그거요? 어차피 저희는 이번 시즌 망했어요. 승격 가능성도 없잖아요?”

“···”

“그니깐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는 거죠.”

···뭐 그렇긴··· 하지? 우승 후보가 승강 플레이오프도 못 들었으니까.

“그래도 이거 이기면 경남은 이길 수 있지 않아요?”

그래도, 아직 순위 싸움은 남아 있지 않은가.

당장 이 경기 이기면 그래도 9위는 노려볼 수 있단 말이다.

그런 내 말에. 상대방은 매몰차게 대답했다.

“무슨 상관이에요 그게. 어차피 우리 팀도 아닌데요.”

“······”

“어차피 앞으로 1년만 지나면 또 팀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굳이 뭐하러 힘 빼면서 뛰어요? K리그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말을 듣자. 난 무엇 때문에 이런 미묘한 느낌이 들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친구들은, 지금 뛸 마음이 없다. 프로로서, 이기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 사실을 깨닫자. 나는 조금, 조금 화가 났다.

‘너희가, 그러고도 프로냐?’

-야! 제발 좀 뛰어-! 마지막 경기잖아, 좀 뛰라고-!

너희들을 보러 와 줬잖아. 비록 적긴 하지만 안산에서 여기 상주까지. 그 먼 원정길을 지나서 너희들을 보러 와 줬잖아.

그렇다면, 저 팬들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뛰면 안 되는 거 아냐?

‘하. 씨발.’

기분이, 살짝 더러워졌다.

-야! 뛰어! 뛰라고!

저 열성적인 팬들이, 보답받지 못할 거라는 사실 때문에.

‘그렇다고, 우리가 봐주거나 할 수는 없지···’

그거야말로, 프로라는 이름을 모독하는 일이다.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겁니다. 안산 팬 여러분.

“태준아, 나한테 스로인 줘라.”

“오케이.”

최소한, 집에 일찍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아! 이준혁! 돌파! 돌파 시도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짜증과 슬픔을 선사하는. 저 프로답지 않은 새끼들의 몸값이라도 형편없이 만들어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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