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전, 그 이후.
-툭툭툭.
으음, 뭐지.
-전 병력, 지금 바로 기상해주시기 바랍니다. 기상해주시기 바랍니다. 금일 점호는 실외 점호이오니 전 병력 6시 55분까지 연병장에 모두 집합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아, 하아아아···
“아, 젠장···”
그 개고생을 했는데, 며칠, 아니 이틀 지나더니 바로 일상이구나.
좀만 더 잘 수는 없는 걸까.
“야, 뭐하냐, 일어나라.”
“태준아··· 일어나기 싫다. 나 급체해서 화장실 갔다고 하고 점호 빠지면 안 돼냐? 풀타임 휴유증이라고 해줘.”
그 말을 뱉고 한 3초쯤 지났을까.
“야, 니만 풀타임 뛴 거 아니거든? 나도 풀 타임 뛰었었다?”
태준이가 개소리 하지 말라며 반박을 걸어왔다.
아 물론, 니도 풀타임 뛴 게 맞긴 한데.
“넌 시즌 말에야 주전 먹었잖아. 난 시즌 중반부터 돌았고, 당연히 내가 더 피곤하지 않겠냐?
으디서 감히 총합 20경기도 못 뛴 놈이 군인체육대회랑 FA컵까지 합치면 30경기는 넘게 뛴 나랑 비교를 한단 말이더냐.
“야, 시꺼, 여기 군대야 임마, 우리 군기 잡고 뜀걸음 시키겠다고 하는 것도 체육대회 우승 실적 들이밀면서 간신히 막아낸 곳이라고. 그런 말이 통할 것 같아?”
···뭐 그렇긴 하지만, 자고로 군대라면 아침점호 째는 것도 한번 해 봐야 하는 거 아닐까? 우리 이제 입대한지 1년쯤 돼서 진급누락하고도 상병 달았는데, 이 정도는 한 번쯤은 할 수 있잖아···
‘게다가 이제 우리 선임도 없···진 않구만.’
당장 저번에 골 넣은 한운상 선배님이 2월 전역이시지, 참. 이거 헷갈린다. 헷갈려, 남아있는 선임이 몇 명이더라, 하나, 둘, 셋, 넷, 다섯.
음, 5명이면··· 적진 않구나. 그래도 좀 누워 있으면 안 되냐···?
그래, 그래도.
그 고생을 했는데. 이런 소소한 일탈 정도는. 누릴 자격이 있지 않을까?
.
.
.
.
-삐이익-! 삐익! 삐이이이익—!
씨발, 씨발! 씨발!
[고오오오올-!! 들어갑니다! 들어갔어요! 이게 들어가는군요!]
[지금! 연장 종료 1분! 1분을 남겨두고! 승부의 균형추가 깨져버립니다!]
“우와아아아- 악-!”
들어갔다, 들어갔다고! 들어갔어!
***
<2015 KEB하나은행 FA컵 결승전>
[연장 119분]
FC 서울 2 : 3 상주 상무
[골]
FC 서울 : 아드리아노 - 70, 몰리나 - 90+1
상주 상무 : 한운상 -67, 임협상 - 81, 이준혁 - 119
***
“으아아아! 아아아! 아악!”
사람이 너무 기쁘면,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 생각도 못 하면서.
“으아아, 아···”
울게 된다는 게, 사실이었다.
그냥, 그냥.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그 무엇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주저앉은 상태로, 울기 시작했다.
첫 우승이다.
첫 우승.
이 얼마나, 얼마나 바래왔던 우승인가.
대학교 때, 영건이 덕분에 대회 우승했던 걸 포함하더라도 6년, 6년 만이라고.
-퍽!
“으아아아아-! 준혁아아!”
“으아아악! 악! 악! 존나 잘했다! 존나 잘했어!”
“야 씨발, 주저앉아서 울길래 못 넣은 줄 알았잖아 새꺄! 울긴 왜 울어?!?”
아, 아아, 아.
아픕니다, 선배님들. 아파요.
그렇게 다들 내 위로 엎드리면서, 온갖 욕을 쏟아냈다.
마침내, 이 경기가 끝이 났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야, 준혁아! 이거 끝나고 일어나서, 일어나서 세러머니 최대한 길게! 길게 해! 1분 다 없애버리게! 무조건이다! 저기 원정팬 분들한테 가서 세레모니 하라고!”
한 선배님이 말씀하셨고, 그 말이 번뜩 머리를 스치면서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래, 아직 끝난 게 아니다.’
1분 남았고, 여기는 상암이다. 서울의 홈.
그걸 감안하면, 심판이 마지막 호각을 일부러 좀 넉넉히 부를 수도 있다. 그러니, 그걸 애초에 방지하는 것이 상책.
“네, 그럴게요, 좀 비켜주세요 형님들!”
그렇게 천천히 일어나서, 조금, 슬렁 슬렁.
뛰긴 하는데 그렇게 빠르진 않게 뛰기 시작했다.
그냥 걸으면 심판한테 제지당할 것 같고, 그렇다고 최고속으로 뛰자니 그게 더 이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뭔 세레모니를 해야하지? 뭔 세레모니를 해야 시간이 가장 잘 끌리지?’
그냥 표효하는 거? 그건 너무 시간이 안 끌린다. 그나마 호우 세레머니가 시간이 끌리는 편이긴 하지만, 그건 좀 약해.
그럼 춤? 춤은 별로 잘 추지 못하는데, 로봇춤? 삼바 댄스? 아니면 좀 이상한 세레모니라도 해 볼까?
그렇게, 머릿속으로 그렇게 온갖 세레모니를 생각하면서 달려갔지만
-이야아아!
-잘했다 잘했어!
막상 약 천여 명 남짓되는 우리의 원정 팬 여러분들에게 다가가자.
모든 생각은 사라지고, 난 내가 할 세레모니를 저절로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이준혁 선수, 관중석에 다가가서 절을 하는군요? 무슨 뜻일까요?]
고맙습니다.
문경에서 서울까지, 먼 길을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이 경기를 떠나지 않고 지켜봐 주셔서.
그리고 또, 고맙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저희를 응원해 주셔서.
[글쎄요, 그만큼 감사하다는 의미가 크겠죠? 세 번이나 절을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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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익! 삑! 삐이익-!
[예! 경기 끝났습니다! 2015년 KEB 하나은행 FA컵의 최종 승자는! 상주 상무입니다!]
[예, 지금까지 2015 FA컵 결승전이었습니다. 함께 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SBS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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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the champions~ My friends-
우승팀이 나오면 전통적으로 나오는 노래가 홈 팀이 아니여서 그런지, 크게 들리진 않았지만, 그 모든 건 내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빨리, 빨리, 빨리.’
앞에 이미 충분히 많은 시상식을 기다렸다.
주심 시상, 부심 시상, MVP 시상, 페어플레이 시상, 준우승팀 시상 모두 다 봤다고.
-마지막으로, 올해, 2015년도 KEB 하나은행 FA컵 최고의 무대에 오른 우승팀에 대한 시상식이 있겠습니다.
드디어, 드디어.
-시상은 대한축구협회 회장인···
빨리, 빨리···
-수상팀인 상주 상무의 선수들은 시상대에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이 나오자, 우리는 시상대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달 수여식이 진행되었다.
“이런, MVP 2위가 여기 있구만, 못 줘서 미안하네, 자네가 4강에 빠진 게 너무 컸어.”
“아닙니다. 아닙니다.”
솔직히,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회장님께서 영광의 트로피와, 우승상금 2억 원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오로지 저 반짝이는 은색 컵을 들어올리고 싶을 뿐이었다.
“야, 준혁아, 이리 와라! 협상이도 이리 오고! FA컵은 너희 둘이 가장 고생했으니까! 셋이 같이 들자고!”
““예!””
-2015년 KEB하나은행 FA컵 우승팀은···
하나, 둘···
-상주 상무입니다!
셋!
“으야아아아-! 아-!”
.
.
.
.
“아아- 아-”
“구령조정 3회 실시!”
-열중 쉬어, 부대 차려, 뒤로 돌아!
에휴.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참, 내 일상이 뭔가 순식간에 달라지거나 하진 않았구나.’
결국, 나왔다. 나왔어. 안 나오고 싶었는데, 결국 잡혀나왔다. 젠장, 확 비라도 오지 그랬냐. 실내점호 하게.
‘하긴, 그렇지 뭐.’
뭐 월드컵이나 UEFA 챔피언스 리그도 아니고.
그냥 대한민국 FA컵이다. FA컵.
4강전이 예능프로에 밀리고, 결승전이 되어서야 지상파 중계가 되고. 우승 상금 2억이라는, 상금을 나누면 1인당 천이 안 되고, 5백이나 올까 말까하는 그런.
어찌 보면, 우승한다고 했어도 일반인들은 관심도 없을 그런 작은 대회.
그래서 우승을 했지만.
막 주변에서 대단하다고 치우켜세워주거나, 갑자기 방송사가 찾아와서 인터뷰를 따온다거나, 아니면 그렇게 이 사람은 완벽하게 행복해졌습니다-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우리의 우승은,
-오늘 열린, FA컵의 최종 우승자는 상주 상무였습니다. 굉장히 뜻밖의 소식인데요, 지금 바로 알아보시죠.
그냥 그날 뉴스 좀 팔리고,
-야 씨발! 마셔! 마시자고!
-안 돼요! 알콜은 부상을 악화시킵니다. 음식은 몰라도 알콜은 안-!
-아니 우승했는데 못 마시는 게 말이나 돼요? 말해 봐요, 말 됩니까? 감독님?
-···좋아, 대신 이왕 마시는 거, 국산 맥주가 아니라 내가 즐기는 외국 맥주로 마시지. 클라우스 탈러라는 외국 맥주라네.
-우워워어어! 감독님! 싸랑합니다!
하룻밤 정도, 무제한으로 술-알고 보니 무알콜이었지만- 과 음식을 꼬라박고.
그렇게, 끝났다.
그 하루를 제외하고, 우리가 일상이 뭔가 달라지거나 한 건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금일 뜀걸음은 생략하오니, 점호 끝나고 각 중대 사관들이 식사 인솔해주시기 바랍니다···
“오우, 다행이다. 뜀걸음 안하네.”
“그러게, 다행이다.”
뜀걸음 생략같은 작은 것에 기뻐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직사령이 전파합니다. 요즘 11월이라 날씨가 쌀쌀해졌는데 얇게 입고 다니거나 춥다고 주머니에 손꼽고 다니는 경우가 자주 보이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들 여러분은 군인이라는 자각의식을 가지고···
“야, 우리가 선배식이지? 오늘 아침은 뭐냐?”
“음- 아마 닭? 나오는걸로 기억하는데. 맞는진 모르겠다.”
“오케이, 오늘 닭 다 뒤졌다.”
급식 메뉴가 맛있게 나왔다는 점에 기뻐하는 일상으로.
우리는, 단 하루만에 다시 돌아왔다.
“······”
그렇지만, 달라진 것도 있었다. 단 하루이기는 하지만.
-상주 상무, 2부리그의 새로운 신화를 다시 쓰다.
-FA컵 MVP, 임협상, 2014 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의 품격을 보여주다.
-FC 서울, 비상··· 잘못하다간 ACL 진출도 못 할 수 있어.
우리의 경기를 평소에 쳐다보지도 않던 기자들이, 어젯밤 우리의 경기에 대해서 신나게 써댔으며.
[2015 FA컵 우승팀] : 상주 상무
대한민국 축구계의 역사에, 우리의 이름을 남겼다.
그렇기에, 드디어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 길을 선택한 것에, 이제 단 한점의 후회도 없노라고.
나는, 이 길을 선택해서 정말 행복했노라고.
우승컵이 나에게 걸어 준 마법이었다.
‘···뭐, 한 5년쯤 지나면 이 생각이 또 바뀔 수도 있겠지만···’
사람 앞일이란 모르는 거니까 말이다. 당장 내일 내가 큰 사고를 당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올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버티다 보면,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다음으로 나아갈 동력이 되어 줄 만한 추억을, 기억을 얻었으니 된 거다.
그리고, 아직 충분히 기뻐하기엔.
“야, 우리 아직 리그 출전명단은 안 나왔냐?”
“음- 글쎄, 아직은 아닐껄, 내일 발표되지 않을까?”
우리의 시즌은,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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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또 한 번의 Intensifier군.’
-톡톡톡.
[헤이, 페랏, 이 경기를 보세요. 어쩌면, 이 친구가 우리 팀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BrrR-
[하지만 그는 자네가 말을 걸자 도망쳤다고 하지 않았나? 게다가 나이도 있고. 대체자가 나이가 5살이나 더 많으면 사람들은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을 걸세.]
[물론 그렇죠, 하지만, 그래도 이 친구는 여기 친구들 중에선 그나마 그 녀석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미약하게나마 보여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친구는 범죄를 저지르진 않을 것 같네요.]
[좋아, 그럼, 이 친구를 리스트에 넣어두지. 다음엔 일본으로 가 보게.]
[예, 그렇게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