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62/167)

FA컵 (5)

꿀꺽-

“차두리, 괜찮은 거냐?”

“예, 괜찮습니다.”

그 순간, 최 감독은 살짝 울컥했다.

'괜찮긴 뭐가 괜찮으냐. 너, 주사 맞고, 지금 진통제까지 먹는 거면서'

그렇기에, 일반적인 경우라면 미친 짓이라며 제지했겠지만.

차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몸을 아낄 필요가 전혀 없는 마지막 경기, 그것도 결승전이다.

그 무슨 수를 써서든 이기고 싶지 않겠는가.

자신이 선수였더라도, 저걸 선택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 안타까움을 밖에 드러내진 않았다.

“좋다. 하지만 네가 있어서 팀에 해를 끼친다고 판단한다면, 바로 교체할 것이다. 알아두도록.”

···감독이라면, 이런 상황에서조차 걱정보다는. 승부를 생각해야 하는 법이니까.

‘휴- 젠장할. 이 짓도 참 못할 짓이야.’

하지만 지금은 결승전,

“윤일록! 교체다. 전반전, 수고 많았다. 김현성! 후반전엔 네가 나간다.”

“···알겠습니다.”

그 모든 감정을 잠시 접어두고, 오로지 승리만 바라봐야 했다.

결승전이란 무대는 지금까지 쌓아온 네임밸류, 평소에 쌓아왔던 믿음, 그런 게 다 필요없고. 오로지, 결과만으로 증명하는 잔인한 시험장이니.

이 무대가 그렇다는 것을. 다름아닌.

“다들, 작년을 기억할 것이다.”

바로, 작년에 겪지 않았던가.

“······”

그리고 그 순간, 작년의 기억을 떠올린 약 2/3의 선수들은, 모두 표정에 독기를 품었고, 감독도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자 가슴속이 답답해지면서 넥타이를 만지작거렸다.

“우리는 작년에도, 이 무대에 오르는 데까진 성공했다.”

그랬다. FC 서울은 작년에도 FA컵 결승에 오르는 데까진 성공했다.

결승 상대는 성남 FC.

2014 시즌 내내 임금 미지급으로 인해 소송이 걸리고, 예산 배정도 잘 되지 않은 탓에 시즌 중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한 시즌에 감독이 3번이나 바뀌는 헤프닝을 겪었던.

00년대 K리그를 지배했던 과거의 영광을 다 잃어버리고 생존만을 걱정해야 했던 구단.

당연히, 작년에 만난 FA컵에서 그들은 승리를 자신했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에 우리는 우리 집 안방에서 남들이 잔치를 벌이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지.”

그러나,성남의 처절하고, 처절한 수비가 통하면서 결국 0대 0, 무승부.

그 이후 벌어진 승부차기 승부에서 패배하면서.

서울은, 결국 그 모든 고난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승한 소년만화의 주인공. 아니면, 다시 화려하게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한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성남 FC 우승의 조연으로 남아야 했다.

“더 화나는 건, 이런 일이 벌써 두 번 연속으로 계속됐다는 거다.”

게다가, 이렇게 우승을 놓치는 일이 작년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재작년, 2013 시즌.

서울은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하며 5년 연속 K리그 팀 결승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이어가는 데 성공, 그리고 2년 연속의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1차전 서울에서 2:2, 2차전 중국에서 1:1.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하여.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광저우 헝다에게 우승컵을 내주어야 했다.

준우승을, 2시즌 연속으로 경험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만일 진다면, 3연속 준우승이지.”

“······”

모두가 죽은 듯이 침묵하는 가운데. 최 감독은 크게 외쳤다.

“우리가 누구지?”

“···FC 서울입니다.”

그 순간 최 감독은 꽁꽁 싸매고 있던 넥타이를 풀면서 소리쳤다.

“그래, 우리는 FC 서울이다! 수많은 선배들이 키워오면서 K리그의 선구자 역할을 해 온, 현재 K리그 최고의 인기팀인 구단이지.”

“······”

“그런데 우리가 세 번 연속으로 고개를 들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거다!”

그 말 이후, 넥타이를 던져버리며,

“다시 한 번 묻겠다. 우리가 누구라고?”

최 감독은 다시 한 번 질문했다.

“FC 서울입니다!”

“그래, 우리는 FC 서울이다!”

꽝-!

“더 이상의 조연은 지겹다! 이제는 우승할 때다! 너희들이 달고 있는 그 엠블렘의 무게를, 너희들을 응원하는 2만 5천 명의 팬들을 함성을 의식하고, 이 경기에 목숨을 걸어라!”

“예!”

-*-*-*-

[아, FC서울, 후반전 들어 선수 교체가 있었습니다. 윤일록 선수가 김현성 선수로 교체되는군요.]

[아, 김현성 선수가 들어왔군요! 시청자분들은 런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로 더 잘 기억하실 선수죠.]

···물론, 브라질전에서 선발 출전한 게 다였고, 그마저도 후반 25분에 박주영 선수와 교체되긴 했지만! 어쨌든 K리그를 처음 보는 지상파 시청자들에겐 그렇게 말하는 편이 훨씬 더 대단하고, 친숙해 보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전술적인 측면에서도 이야기할 거리가 꽤 있고 말이다.

[예, 이제 상주 상무 입장에서는 측면을 비울 수가 없겠네요.]

[그렇죠, 측면을 이제 내주면, 차두리 선수의 크로스에 이어서 190cm에 가까운 헤더가 상주 상무를 덮칠 테니까요! 이건 상주 상무에겐 엄청 치명적일 겁니다.]

그 말대로였다, 상주 상무의 두 센터백은 김온규-강수민. 두 선수의 키는 183-186cm으로 오히려 공격수보다 키가 더 작았고, 게다가 저 186cm도 체중이 70kg 후반에 불과했다.

그것을 보고 FC 서울은, 후반전에는 차두리의 크로스를 톡톡히 이용해볼 생각이었다. 전반전에 이미 저 상주 상무의 좌측 풀백 친구가 잘 크로스는 잘 막지 못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상주 상무가 그걸 예상하고 후반전에 저 친구를 박포진 선수로 교체할 가능성도 생각했지만···

-저 쪽의 이형 움직임도 영 좋은 상태가 아니다. 부상에서 나은 뒤 첫 경기라 그런지 영 몸이 굼뜨다. 그걸 생각하면 바로 교체하기보단 후반전 초반에 상황을 좀 지켜보면서 교체할 거야.

다행히,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예, 반면에 상주 상무는 교체가 없습니다!]

[전반전의 전략을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거죠! 과연 상주 상무, 변화한 서울의 전술을 버틸 수 있을 것인가! 후반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FC 서울은 차두리를 통한 공격을 전개해나갔다.

[아, 차두리, 후반전에도 지치지 않습니다. 역시 차미네이터!]

[빠릅니다! 빠른 측면 돌파!]

그런데. 필드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10분,

[아, 왜 이러죠? 차두리 선수? 후반전에 들어서면서 시원한 크로스가 영 안 나오고 있습니다.]

20분이 지나도.

[아, 차두리 선수, 이번에도 크로스가 막혀 버립니다!]

[이준혁 선수? 전반전과는 완전 딴판인데요. 무슨 요술을 부린 걸까요?]

전반에 허용했던 수많은 크로스 숫자에 비해서, 확연히 크로스 숫자가 줄어든 거였다.

‘크윽, 젠장’

또, 막혀버렸다.

‘이 녀석, 후반전 들어서 완전히 날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인데.’

-잘 해봐라, 후반전은 좀 다를거다.

-그 쪽이야말로요.

전반전 끝난 직후 한 그 말이, 허세가 아니었다는 건가?

‘젠장, 이렇게 바싹 붙어 있는데도 계속 돌파를 못 할 정도라니. 드리블 패턴이 너무 단조로웠나?’

하긴, 파워는 조금 부족하다곤 하지만, 지금까지 지켜보니 순수 스피드만큼은 나보다 더 나은 놈이다. 그런 녀석 상대로 너무 직선적인 움직임만 고집한 탓이겠지.

‘좋아. 그러면 이번엔 좀 다른 유형으로 보여주마. 내가 그래도 갈고 닦은 개인기 중, 써먹을 만한 것을 보여주지.’

간다. 영표 형님의, 헛다리 짚기-

그 순간.

-지끈.

후반전의 약효가, 살짝 부족했는지 통증이 다시 돌아와버렸고. 그 통증이 만든 잠깐 사이에.

[아, 아! 이준혁 선수, 볼을 빼앗습니다. 바로 롱 패스!]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나와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박태준, 박태준, 땅볼 크로스! 한운상, 한운상 골! 골! 골입니다! 골! 상주 상무, FC 서울을 상대로 선취골을 가져갑니다!]

잔혹한 현실이었다.

***

<2015 KEB하나은행 FA컵 결승전>

[후반전]

FC 서울 0 : 1 상주 상무

[골]

FC 서울 : (없음)

상주 상무 : 한운상 - 67

***

···망할, 망할!

‘하, 빌어먹을, 내 실수다.’

이렇게 역습을 당하다니. 바보같은.

스텝 오버를 하기엔 내 무릎이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이런 실수를 하다니.

‘젠장, 통증까지 다시 올라오네. 이러면 ···’

잠깐만, 이 녀석 설마?

‘···확인해야 할 필요는 있다.’

[아, 차두리, 망설이지 않고 드리블을 칩니다!]

[그렇죠! 한 골 실점의 발단이 되었다고 해서 위축되면 안 돼요! 아직 한 골 차이일 뿐입니다!]

그리고 드리블을 하면서, 이번엔 저 녀석이 어떤 자세로 수비하는지를 다시 한 번 꼼꼼하게 봐 본 결과, 확신할 수가 있었다.

‘하, 이 녀석, 눈치 챘구나.’

오른쪽 무릎이, 지금 좋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자연히 드리블 방향을 전환하는 속도가 느리다는 걸.

‘그걸 눈치채고, 후반전에는 집요하게 붙어서 크로스를 막은 거였어.’

하지만.

-지끈.

‘크으윽!’

통증이 올 거라는 걸 각오하고. 행동한다면, 그렇다면!

[아, 차두리 선수, 완벽한 헛다리 짚기! 수비수가 쓰러집니다! 아드리아노! 아드리아노!]

[골! 골! 골! 골입니다! 5분도 안 돼서 다시 원상복귀를 해내는 FC 서울! 경기는, 다시 원점입니다!]

-*-*-*-

하아, 망할. 이건 예상 못 했다. 통증이 좀 돌아온 게 훤히 보였는데, 저걸 참고 방향전환을 해?

‘젠장, 다시 원점이네.’

그렇게 옷을 털고 일어나려는 순간, 차두리 선수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너, 눈치 꽤 좋구나? 알아차릴 줄은 몰랐는데.”

모든 걸 눈치챘다는 말씀을 꺼내셨다.

“······”

그 말에, 무어라고 말해도 손해가 될 것 같아서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하하, 입 다물고 있어봐야 소용 없어. 암만 봐도 알고 있잖아. 표정에 다 드러나네.”

···역시 난 표정 연기엔 소질이 그리 없는 건지, 이미 눈치채신 듯했다.

“저기요, 차 선배님. 은퇴 이후에 코치도 하실 거잖아요, 몸 좀 아끼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 순간, 차두리 선수는 쓰게 웃더니, 나에게 한 마디를 던졌는데.

“반대로 물어볼게. 너라면 그렇게 할 거냐?”

“······”

그말에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 나 같은, 미래를 항상 걱정하는 소시민조차 FA컵 우승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지금 몸을 갈아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내 앞에 선 사람은, 확실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2년 연속 준우승이야."

두 번이나 숙인 고개를, 이번엔 당당하게 들기 위하여.

“그리고, 나는 이번 경기가 마지막이지.”

인생 마지막 경기를 그래도 후회 없이 마치기 위하여.

“나는, 지금 그 누구보다 간절하다고. 우승컵은 우리 꺼다.”

대한민국 최고의 풀백 중 한 명은, 우승컵을 가져가겠노라 선언했다.

그 말에, 나는

“글쎄요, 그건 선배님 생각이겠죠.”

잠깐의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저 위치에까지 올라가보질 않아서, 솔직히 완벽하게 비교해보지는 못하겠다.

우승할 기회를 가진 적이 없다가, 간신히 기회를 잡은 선수와

우승을 코앞에서 여러 번 놓쳐 본 선수, 누가 더 간절할지는 말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저희도 간절합니다.”

둘 다 간절하다는 거다.

비록, 우승을 코앞에서 여러 번 놓쳐본 선수의 한(恨)이 깊다지만.

우승이라는 빛을 생애 단 한 번이라도 품고 싶어하는 나방들의 날개짓을, 간절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저도, 그 누구보다 간절합니다.”

그러니, 온 힘을 다해서. 겨룰 뿐이다.

“남은 시간 각오하십쇼, 아픈 데 있다고 봐드릴 생각 없습니다.”

“바라지도 않았다. 이 녀석아.”

-삐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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