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컵 (4)
[인버티드 풀백? 그게 뭔가요?]
사실, 이 전술은 아직까진 많은 사람이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고 있는 전술이다. 당장 펩 과르디올라가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지만, 그 과르디올라도 뮌헨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전술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설프게나마 정의를 해본다면.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풀백이 측면 돌파가 아니라, 중앙으로 들어오는 플레이를 하면 인버티드 풀백이라고 합니다.]
현대 축구에서, 보통 윙어는 측면에서 안쪽으로 들어가고. 그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풀백은 측면에서 직선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다들 그렇게 해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애초에 그런 직선적인 움직임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풀백도 귀하니 그 이상을 바라지도 않았고.
그러나, 자타가 공인하는 전술 변태이자 전술 천재인 펩 과르디올라는 또 괴상한 생각을 해냈다.
-우리 팀 풀백들은, 놀라운 기술적 숙련도를 가지고 있다. 단순한 풀백만으로 쓰기엔 아까워. 조금 더 잘 써먹을 방법이 있을까?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측면 수비수가 중앙에 침투하는 전술이었다. 풀백을 중앙으로 들어오게 하고 그를 중앙의 플레이에 참여시키면서 중앙 미드필더 지역에서 압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프리맨’ 을 하나 만드는 전술.
그게 바로 인버티드 풀백-윙백이다.
[음, 설명을 듣다 보니 꽤나 좋아 보이는데요. 그런데 왜 아직 사람들이 그걸 잘 안 쓰는 거죠?]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걸 할 줄 아는 선수면 보통 풀백을 안 하기 때문이죠.]
그렇다. 듣기만 하면 매우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 해보려고 하면 저걸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극히 드물다.
애초에 필드 위에서 저렇게 움직임을 가져갔다간, 동선이 쉽게 꼬이기 십상이다. 중앙 미드필더 입장에서 생각해봐라, 그럭저럭 뛰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도와주겠답시고 껍신거리면서 자기 움직임 동선을 방해한다면?
그냥 안 도와주는 게 도와주는 거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기 마련이다.
당연한 게, 선수들의 움직임은 어느 정도 정해진 호흡이란 게 있는데 그 사이로 끼어든다면 좋은 소리 듣기 힘들다.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펩 과르디올라가 바이에른 뮌헨에서 그런 전술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양쪽의 풀백이 필립 람, 다비드 알리바라는 풀백에서만 잘하는 게 아니라, 그냥 중앙 및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어도 될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갖춘 선수였기에 가능했다는 소리가 지배적일 정도로 말이다.
인버티드 풀백은 그런 전술이었다. 미드필더에서 볼배급을 맡겨도 될 만큼, 기존 미드필더의 움직임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미드필더 이해도가 높은 풀백만이 할 수 있는 전술.
[그런데 저 선수는, 원래 중앙 미드필더였고, 올해도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한 경기가 FA컵까지 합치면 총 10경기 남짓 되는 선수니, 저렇게 뛰는 게 가능한 것 같네요.]
[아, 그럼 저게 처음부터 의도된 걸까요?]
그 말에 해설위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건 아닐 겁니다. 당장 저걸 보여줄 거라면 시즌 중에 보여줬어야죠.]
결승전까지 와서 지금까지 써오던 전술이 아니라, 아예 새롭고 참신한 전술을 쓰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좀 머리가 돌아있는 전술 변태가 아니고서는 그런 짓 안 한다.
[저건 저 선수의 돌발적인 행동일 겁니다. 그런데도 별로 꼬이지 않는 건 저 선수의 능력이라고 봐야 할 거고요.]
그 말대로, 현재 준혁이 예정되지 않은 변화를 했음에도 아주 부드러운 전개가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중앙 미드필더에서의 경험이었다.
게다가 이기승 선수의 백업으로서 저 선수가 어떤 움직임을 가져가는지를 계속해서 봐 왔던 것도 도움이 되었고 말이다.
[게다가, 보세요.]
그 순간. 준혁이 이번엔 측면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측면을 돌파하고 있잖아요. 저 친구도 아예 측면을 버리고 중앙 위주로 진행하는 건 아닙니다.]
적당히 이용할 수 있을 때 중앙으로 가서 이용하고, 차두리가 그 중앙에 신경을 쓰면서 중앙으로 좁혀오면 측면을 노리는 플레이를 하면서 이지선다를 건다··· 이게 준혁의 작전이었다.
완벽한 인버티드 풀백의 플레이는 아니지만,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활로를 찾는 플레이라고 보면 딱 알맞았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얼마 안 되는 상주 원정 팬들도,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 물음에,
[글쎄요, 축구 전술에 무조건 장점만 있는 전술은 없는 법이라서 말이죠.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겁니다.]
해설자는 대답을 유보했다.
[다만 확실한 건, 어떤 식으로든 뻔한 전개에서는 벗어날 것 같네요.]
-*-*-*-
‘휴우- 젠장, 살얼음판 걷는 기분이네.’
사실, 내가 저지른 이 작전은 정말 도박적인 전술이다.
애초에 전술이란 게 한 명의 역할 변경으로 딱 끝나는 게 아니고, 일정의 약속된 움직임을 다 바꾸어야 하는 건데 이런 짓을 저지른 거니까.
거기에다. 이건.
[차두리! 또 다시 시원한 측면 돌파!]
측면을 반쯤 포기하는 거니까.
[아, 역시, 저 전술을 하면 측면이 훨씬 더 빈약해질 수밖에 없죠.]
그래, 사람은 몸이 두 개가 아니라서, 이렇게 중앙에 지원할 경우, 측면 수비에서 포기하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중앙으로의 돌파는 막을 수 있다. 아니, 그건 오히려 더 쉽다. 내가 조금 더 안쪽으로 포지션을 잡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으니까.
하지만, 측면 돌파 이후 날리는 크로스는, 사실상 거의 저지 못 한다고 봐야 한다.
[차두리- 크로스-!]
저렇게 측면에서 차두리 선배님이 엄청나게 자유롭게 크로스를 날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측면을 위주로 풀어나가자는 감독님이 말씀하신 전술과는 대치되는 전술이라는 거다.
그럼에도, 나는 굳이 이 방법을 선택했다.
‘그래도, 그게 지금 나에게 있어서는 큰 마이너스가 아니야.’
어차피, 내 수비는 국가대표의 크로스를 잘 저지할 수 있을 정도로 잘나지 않았다. 애초에 원래도 내 수비는 크로스는 그냥 내주고 돌파 막는 데에만 집중한 유형이란 말이다.
게다가, 이런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근거도 있었다.
[차두리, 크로스-! 아, 그렇지만 또 막힙니다!]
[아, 윤일록 선수도, 아드리아누 선수도 저런 몸싸움에 강한 유형이 아니라는 게, 참 아쉬울 것 같습니다.]
‘그래. 늬들, 뚝배기가 없잖아. 그렇지?’
현재 서울에서 선발로 나온 두 공격수 아드리아노, 윤일록의 공식적인 키는 각각 171, 178.
둘 다, 역습에서의 스피디함, 볼을 다루는 기술적 능력, 라인 브레이킹 같은 게 강점인 선수였지. 절대 크로스에 이은 헤더로 뭔가를 만들 수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그래서, 크로스를 날린다고 해도 안심할 수가 있었다. 크게 위협이 되질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 덕분에.
-삑-삑-삐이익-!
[전반전 종료됩니다! 현재 스코어 0대 0! 서울이 압도할 거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상주가 생각보다 팽팽한 경기를 펼쳐나갑니다!]
나는, 결국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성공했다.
***
<2015 KEB하나은행 FA컵 결승전>
[전반 종료]
FC 서울 0 : 0 상주 상무
[골]
FC 서울 :(없음)
상주 상무 : (없음)
***
‘휴우우- 살았다.’
서울이 중앙에서의 전개가 생각처럼 잘 풀리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왼쪽 측면에서도 골로 연결되거나 하는 치명타는 안 당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여러 불리한 점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반전을 버텨낸 거였다.
‘진짜 아등바등 수를 써가면서, 막긴 막았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고 있던 때.
“너, 영리하더라?”
내 등 뒤에서 처음 듣는 목소리가, 그렇지만 묘하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처음 듣는데 익숙하다니? 이럴 수가 있나?’
그리고 등을 돌린 순간, 절로 난 허리를 굽혔다.
“어, 어, 안녕하세요. 선배님.”
차두리, 그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었다.
“나랑 맞대결은 힘들다고 판단하고 중앙 이용한 거야?”
“······”
“하하, 맞나보네. 그런 움직임은 독일에서도 아직 많이 안 쓰이는데, 너 연구 많이 했나보다?”
그 칭찬에 나는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냥 언제나 그렇듯 발버둥친 건데···’
그렇지만, 나는 입을 다물고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전직 국가대표의 인정이라니, 이 얼마나 달콤한가.
다만, 그는.
“근데 그거, 너희 전술을 생각하면 결국 임시방편이라는 건 알지? ”
끝에 한 마디를 덧붙였고. 그 말에 나는.
“······”
살짝 얼굴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 여전히 문제는 있었다.
인버티드 풀백을 쓰는 뮌헨의 주 전술은 4-3-3이다.
중앙에서 싸우는 선수들의 숫자를 3명에서 4명으로 늘리며, 중앙 숫자 싸움에서 완벽하게 우위를 가져가는 거다.
하지만, 우리 팀은 4-4-2.
내가 참여한다고 해서 중앙에서 완전히 압도한다거나, 하는 게 아니고. 내가 슬쩍슬쩍 도울 때마다 아주 살짝, 아주 살짝 우위를 가져가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후반전에 공격수로 윤일록이 아니라 다른 선수가 투입된다면 내가 쓰는 방식은 절대 못 쓸 테고.’
지금, 나의 수비는, 공중 크로스를 올려도 받아먹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움직임이었으니 말이다.
만일 저 쪽이 후반전에 런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자, 공식 체격조건 186cm, 그리고 실제로 보니 오히려 그보다 한 3cm는 더 커 보이는 초대형 스트라이커 김현성.
그 친구가 투입되면, 더 이상 이 전술은 못 쓸거다.
“잘 해봐라, 후반전은, 좀 다를거다.”
그리고 그 말에-
“그 쪽이야말로요.”
나는, 이번엔 당당히 대답했다.
지금, 차두리 선수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확신할 수 있는 게,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
사실, 이 전술을 쓸 때,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이거였다.
-나랑 똑같이 차두리 선수가 중앙까지 적극적으로 가담하면 어떡하지?
-혹은, 아예 윙어처럼 안쪽으로 파고드는 우거지 드리블까지 내가 못 막으면 어떻게 하지?
그런데, 차두리 선수는 중앙으로 적극적인 가담을 하지 않았고.
윙어처럼 안쪽으로 파고드는 플레이를 하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오시지도 않았다.
가끔 온다고 해도, 막을 수 있는 수준이였고.
그건, 뭔 소릴까?
‘뭐가 이유인지는 몰라도, 지금 빠른 방향전환을 잘 하질 못하신다는 소리지.’
그러지 않고서야, 전반전 내내 크로스가 막히고 있는데도 크로스만 올리신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아마도 저건 발, 발목, 혹은 무릎 상태가 안 좋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당연한 거다. 지금 나도 크게 문제되는 곳은 없지만, 시즌 말쯤 되니까 몸 이곳저곳에 통증이 오면서 진통제 먹고 있다. 그런데, 저 나이엔 오죽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정도로 뛰시는 거 보면, 진통제 좀 강한 거 먹어가면서 버티시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부상은 부상이다.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니 그 통증의 영향을 최대한 덜 받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직선적인 움직임을 가져가시는 거겠지.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일은 명백하다.
“야, 이준혁, 너 나 버렸냐? 패스 너무 적다?”
“미안미안, 이제부턴 제대로 할께.”
측면에서 중앙으로 가는 움직임을 가져가는 태준이와 볼을 최대한 연계하고.
“그리고, 태준아, 진통제 좀 강한 거 있냐?”
누구의 발바닥, 발목, 무릎이 더 갈려도 버티느냐의 싸움으로 끌고 나가는 것.
깔끔한 실력 대결은 끝났다.
이젠, 누가 더 시즌 동안 혹사시킨 몸이 버텨주냐의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