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8/167)

FA컵 (1)

2015년 11월 14일.

-삑! 삑! 삐이익-!

와아아-!

[경기 끝났습니다! 경기 끝났어요!]

[아, 이거 대구 입장에서는 너무 아쉬운 결과인데요?]

[꼴찌가 확정되었음에도 경기장을 찾아온 팬 분들 덕분일까요? 충주가 엄청난 짓을 저질렀습니다!]

***

<2015 K리그 챌린지 44Round>

충주 FC 1 : 1 대구 FC

[골]

충주 FC : 김병오 29

대구 FC : 조나탄 28

***

[충주가 자신들의 홈에서 갈 길 바쁜 대구에게 엄청난 고춧가루를 뿌려 버립니다!]

그 순간, 서울, 호텔 회의실에 모여 있던 우리들은.

“이예에-쓰!”

하나같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으하하, 만세! 만세! 만세!”

“야, 이러면 우리 2점 차야, 2점 차라고!”

그리고, 그 소리는.

[이로서 K리그 챌린지 우승의 향뱡은 아주 명확해졌습니다! 대구가 최종전에서 부천을 이기고, 상주가 안산에게 지는 경우의 수를 빼 놓고는 거의 무조건 상주 상무의 우승입니다!]

우리의 우승이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는 소리였다.

“야, 됐어! 이러면 이제 무승부만 해도 우승 가능- 켁”

“이 새끼야, 저번에 위 고 노리치도 그렇고 너 사실 스파이지?”

“야, 쟤 입 좀 막아, 자칫하다 부정탈까 봐 두렵다.”

···물론 아직 확정은 아니라서 저런 클리셰적 발언하면 얻어맞을 정도긴 하지만.

“아 씨 왜! 부천이 3실점이나 할 리가 있냐! 그 새끼들 수비 2위인가 3위인가 그런데!”

저 말대로, 나름 한시름 놓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 리그 순위표가 이렇기 때문이었다.

요약하자면, 대구와 우리의 승점은 2점 차이. 그리고 득실점도 2점 차이.

우리가 승리하면 대구의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의 우승.

우리가 패배하고 대구가 이기면 대구의 우승.

우리가 무승부를 하면, 대구가 3점 이상의 점수차를 내면서 승리해야 대구의 우승이다.

‘K리그는 득실점 동률일 경우 다득점 우선 원칙이 적용되니까 말이지.’

그리고 우리의 득점은 76점. 압도적 1위다. 결국 대구는 무조건 승리하고, 또 혹시 모르니 3점차 이상의 승리를 노려야만 한다는 거다.

‘진짜로 우리가 많이 유리하긴 하지.’

그러니. 우리는 내일 하루만큼은 리그를 잊어야 할 때다.

-탕탕!

“자, 자 조용! 조용! 이제 대구 경기도 끝났으니, 다들 FC 서울과의 경기 분석을 마지막으로 다시 점검하고, 다들 일찍 취침한다. 알겠나!”

“예!”

우리는 내일, FC 서울이라는 거함을 잡아야 하니까.

-*-*-*-

아, 젠장.

‘잠이 안 온다.’

몸이 분명히 피곤한 편이긴 했지만, 영 잠이 오질 않았다.

‘뭐라도 먹을까?’

야식으로 무언가를 먹는다는 건 솔직히 죄악인 짓이었지만, 여기에 오기 전 체지방이 8%대로 나왔으니 그래도 뭐 하나쯤은 먹어도-

‘아냐, 아냐, 지금 이상한거 먹었다가 배탈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렇게 생각하며 그냥 하염없이 호텔의 바깥으로 나와 거리를 걷던 도중. 굉장히 익숙한 한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어, 감독님?”

“아··· 준혁 군? 이준혁 자네로군.”

내가 전혀 상상도 못했던 모습으로 말이다.

“감독님, 한 잔 하신 겁니까? 이거 다 맥주고요?”

내일 경기인데? 물론 내일 경기가 점심 먹고 나서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일이 경기인데 이렇게 많은 맥주를 마시시다니 이건-

“눈빛이 무섭군 그래? 진짜 맥주는 한 캔 정도니 봐주게나. 나머지는 전부 무알콜일세.”

그 순간, 나는 다시 음료수를 바라봤고, 자세히 보니 내가 일반적으로 보던 맥주와는 살짝 다른 캔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어,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충분히 그럴 만하지. 여기가 밝은 곳도 아니니 오해할 만하지.”

그래도 오해해서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것이었기에, 사과를 하고 빠르게 돌아가려는 참에.

“그런데 자네는 뭐 하는 건가? 이 시간까지 안 자고, 지금 11시가 훨씬 넘었는데?”

그렇게 감독님이 물어보자,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잠이 안 온다고.

“그럼 여기 와서 앉게. 선수의 고충을 들어주는 것도 감독의 일이니 말이야. 무알콜이지만 맥주라도 한 잔 하면서 이야기 하지.”

“······”

솔직한 감정으로는 상사와 함께 있는 자리가 편할 리도 없고, 무알콜 음료를 굳이 왜 마시냐는 생각을 하는 나였지만.

그래도 잠도 안 오고 갈 데도 없던 나는 털썩 앉아 무알콜 맥주를 손에 들었다.

“먼저, 이것부터 시작하지. 잠이 안 오는 건, 내일 경기가 긴장되어서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러자, 감독님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흐음- 무슨 이유에서지?”

그 말에, 간단하게 나는 대답했다.

“제 어릴 적 꿈이었으니까요.”

“음? FC 서울 입단이 꿈이었었나?”

“아, 아뇨, 그건 아닙니다.”

나는 수원 블루버드 팬이다. FC 서울과는 완전히 적군인 팀이란 말이다.

내가 지금 긴장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상암에서 경기하는 거잖습니까.”

그래, 상암월드컵경기장.

솔직히 FC 서울의 홈구장이긴 하지만. 사실 나에게는, 그리고 일반적인 사람들한테는 이 의미가 더 클 거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구장이라는 의미가 말이다.

물론 여기에서만 경기를 치르는 건 아니고, 수원이나 대전에서도 경기를 치르긴 하지만, 그래도 국가대표 경기를 치룬다고 하면 여기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어릴 적, 나 역시 가끔씩 경기장에 찾아가서 경기를 보다가. 그런 꿈을 꾸곤 했었다.

상암에서 모든 선수들에게 박수를 받으며 뛰는 나 자신을 꿈꾸며 말이다.

비록, 이제는 너무 멀어진 꿈이지만.

그리고, 조금 다른 모습으로 오는 거긴 했지만.

“거기에서 뛴다는 사실에, 조금 떨립니다.”

그런 내 반응을 보고, 감독님은 조금 웃는 얼굴로 날 바라보셨다.

“다행이군, 나는 또 자네가 내일 포지션 맞상대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중인 줄 알았는데 말이지.”

···아, 생각해 보니 그렇구나. 내일 내가 포지션상, 맞상대할 선수를 생각하면 감독님이 저런 생각을 할 만도 하지.

“어떤가, 그건 별로 긴장 안 되나?”

-정말로, 거기에 대해서는 긴장 안 한 거 맞나?

이런 뜻이 담긴 감독님의 질문에 나는 싱긋 웃었다.

“감독님, 이미 저는 K리그에서 팬 대비 안티가 제일 많은 선수일 겁니다. 내일 안티 좀 더 생긴다고 해서 티도 안 날걸요?”

그래, 나는 이미 팬보다는 안티가 가장 많은 사람이다.

청년 FC를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깔아뭉개는 데 한 몫하고, 기름을 활활 부어버려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접속 안 한지 오래 되었는데도 아직도 가끔 트위터로, 페이스북으로 나에게 욕을 바가지로 쏟아내는 사람들이 꽤나 찾아올 정도로 안티가 많은 선수란 말이다.

“그러니 내일 먹을 욕을 걱정하고 있진 않습니다.”

게다가.

“그랑블루로서 북패 놈들을 조질 기회를 왜 마다하겠습니까.”

수원의 팬이라면 서울은 조져야 하는 것이 제 맛 아닌가- 하는 나의 말을 듣고. 감독님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크크크, 이런, 이런, 내 예상과는 조금 다르군 그래.”

조금, 씁쓸하게 웃으셨다.

“긴장이긴 한데, 떨려서 잠이 안 왔다는 건가? 그럼 기대감이라는 건데, 나보다 낫구만.”

그 말을 하고, 감독님은 맥주캔을 내려놓고,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시더니.

“사실, 이번이 첫 번째라네.”

“첫 번째라는 게 어떤 말씀이십니까?”

“결승, 결승에 말일세. 결승에 올라온 게 첫 번째야.”

아.

그 순간. 나는 왜 감독님이 심란한지를 알 수 있었다.

“2002년 월드컵 때, 수석코치를 맡고 나서 4강에 진출한 이후, 나는 내 앞길이 승승장구할 거라고 생각했네.”

“······”

“하지만, 그 때도 그랬고, 아직도 나는 단 한 번도 결승이라는 무대에 서보질 못했네.”

그랬다.

박흥서 감독은, 히딩크 감독님이 물러난 이후로 열린 부산 아시안 게임의 대표팀 감독을 맡았지만, 그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내면서 엄청난 비난을 들었고, 그 이후로도 항상 조금 아쉬운 성적을 냈다.

“경남에서도 4위, 전남에서도 4위, 그리고 FA컵도 4강에 들고 끝이었지. 특히 전남에 있을 때는 동언이를 데리고도 4강에 그친 게, 너무 아쉬웠고.”

그리고 그 이후로, 박 감독이 상주의 감독을 맡았으나, 이 팀을 맡는 도중 K리그 타 팀에서 오퍼가 온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첫 시즌 강등, 두 번째 시즌 승격, 세 번째 시즌 다시 강등, 그리고 네 번째 시즌인 지금, 승격 유력이라는 성적이 내가 보기엔 아주 나쁜 성적은 아니여 보이지만.

“상무라는 이 좋은 선수단을 이끌고 항상 강등을 당하고 있으니, 그게 내 한계라더군.”

잘 한다고 보기엔 또 어려운 성적이니 말이다.

“그래서, 잠이 오질 않는구만. 내일 저 FA컵에, 참 많은 게 달려 있으니 말이야. 내가 국내에서 계속 프로 팀 감독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말일세.”

“······”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한테 언제나 높게만 보이던 저 감독님도,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저런 걱정을 하다니.

뭔가- 뭔가 조금 어렵게만 보이던 감독님이 조금이나마 이해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중얼거리던 감독님은 무알콜 맥주를 다시 한 캔 집어들고 벌컥벌컥- 마시더니, 한 마디를 툭 던졌다.

“그걸 보면, 자네는 참 신기한 사람이야?”

“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서 조금 머뭇거리는 사이, 답장을 원한 것이 아니었는지 감독님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 바닥에 있다 보면,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수많은 걱정을 하게 되네. 내일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내일도 잘 할 수 있을지 같이 말이지. 자네도 그런 류에 속하고.”

이번 감독님의 말은 듣고 나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나는 당연히 그런 류니까 말이다.

“그런데, 자네는 그런 사람들이 보이는 특유의 느낌 중 하나가 없어. 뭔지 아나?”

“네? 네··· 어··· 그러니까···”

갑작스런 질문에 말을 더듬으면서 급하게 생각을 해 본 결과, 간신히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이것저것, 생소한 전략 많이 쓴다는 것 말씀이십니까?”

그 대답에, 감독님은 싱긋 웃었다.

“정답일세, 정확히는 해도 될까? 라고 하면, 일단, 하고 본다는 거겠지.”

“···...?”

어··· 그게 좋은 건가? 군대에서도 그렇고, 우리가 사회에서 듣는 말 중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이거 아니던가.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면, 하지 않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옳다.

나도 솔직히, 이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입장이었다. 나서서 좋은 꼴 보기가 힘든 게 세상 아니던가.

그러나, 감독님은 지금 그걸 부정하고 계셨다.

“물론 일상 생활에서는 그게 편할 때도 있지, 그러나 나는 축구에서만큼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살아가는 선수와, 최고를 노리는 선수의 차이라고 생각했네, 내가 지금까지 지켜온 바로는 항상 그랬거든.”

그런데-

“그런데, 지금 예외의 범주가 내 눈앞에 있더군.”

“······”

“하루하루 살아남기를 걱정하는 사람이면서, 자신의 플레이에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하는 선수가 말이야.”

아니, 하면서 조금 망설이긴 하는데··· 요.

그러나 굳이 이걸 내뱉어서 초를 칠 필요는 없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입으로만 삼키자, 감독님은 캔을 비우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 부디, 내일 보여주게. 자네가 둘 중 어떤 선수인지 말이야.”

“······”

“그러니 이만 가서 잠이나 자게. 아니면 누워 있기라도 하던가. 그래야 내일 자네의 모습을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신기하게도, 그 순간, 나를 사로잡았던 긴장감이 더 쌓이는 것을 느꼈지만.

“알겠습니다.”

오히려, 오히려 잠은 더 푹 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일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내일의 경기에, 무언가를 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가득찼다는 것 뿐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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