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57/167)

선택의 순간 (3)

[아, 충주가 갈 길이 바쁜 상주에게 일격을 먹이는군요!]

[이야- 충주가 정말 은근히 상무에게 강하네요. 이번 시즌 상주에게 1승 1무 1패로 동률을 기록했는데, 이젠 아예 우위를 가져가려고 합니다.]

꼴찌 팀이 2위 팀 상대로 승패가 동률이라니, 참 재미있는 기록이었다.

[정말 신기한 일이네요, 상무가 왜 이러는 걸까요? 역시 충주가 약세를 인정하고 수비적으로 나와서 이런 역전이 가능했던 걸까요?]

잠시 고민하던 해설위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론을 내렸다.

[아뇨,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스코어만 봐도, 상주와 충주의 경기는 항상 다득점이었으니까요.]

세 경기의 스코어가 3 : 3, 4 : 0, 4 : 1로, 평균 5골씩 나왔다는 걸 생각하면 절대로 수비적인 경기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캐스터의 그 질문에, 해설위원은 난색을 표했다.

[글쎄요··· 팀 상성이란 게 있다고 보기도 뭐 한 게, 대구도 충주 상대로 고전하는 경기가 많았어가지고···]

1위인 대구도 충주 상대로 1승 2무로, 상주보다 1점을 더 벌어가긴 했지만 솔직히 썩 좋은 성적이라고 보긴 어려웠던 것이었다.

[거기에다 대구와 충주의 경기는 또 완전 수비적인 경기였거든요. 다득점을 한 경기가 없었어요.]

그랬다. 그 둘의 경기는 스코어가 전부 2 : 1, 1: 1, 1: 1이라는 그야말로 짠물 경기들로. 상주와 충주와의 경기와는 완전 다른 양상이었다.

경향이라도 있으면 뭔가 분석을 해 볼 수라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다 보니 해설위원은 머리가 아파왔고.

그래서, 고민 끝에.

[그냥, 이건 저의 어리석은 머리로는 답변을 할 수가 없을 것 같군요. 충주가 매년 등장하는 도깨비 팀이 되었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냥 백기를 내던졌다.

[하하하, 해설님이 이렇게 말문이 막힌 건 처음 보는군요. 시즌 말까지 한 번도 막힘없이 설명을 해주셨는데, 그런 해설위원님이 봐도 참 알기 힘든가 봅니다. 하긴 축구공은 둥글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축구공은 둥글다.

공이란 게 어디로 튈 수 없으니 경기의 승패는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도 나름 프로끼리의 싸움이니까요. 게다가 오늘 날씨까지 생각하면 이 경기가 더욱 더 어디로 튈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죠, 결과는 휘슬이 불리기 전까진 모르는 거죠!]

-삐이익!

[자, 말씀드리는 순간, 후반전이 시작됩니다. 과연 상주 상무가 반격을 해낼 수 있을지! 아니면 충주가 버텨낼지! 후반전 경기 시작합니다!]

-*-*-*-

에에-취!

‘쓰으으, 가을 비, 겁나게 춥네.’

여름에는 그래도 수중전 해도 엄청 춥지까진 않았는데, 가을에 수중전이라니, 기침이 절로 나오는구나.

그러나,

[아, 상주 상무, 전원 강력하게 압박합니다!]

[무조건 승리를 따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거죠! 지금!]

솔직히 말하자면 그딴 거에 불평할 시간도 아까웠다.

-지금 대구는? 대구는 스코어 몇이에요?

-2대 1! 이기고 있어! 이러면 우리 다시 역전당한다!

지금 강원과 대구의 경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는데, 하프타임이 끝나고 대구가 이기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다들 있는 힘 없는 힘을 쥐어짜내며 경기를 뛰고 있었지만.

[아! 여기에서 패스 미스가 터져버립니다! 상주 상무, 아깝게 찬스를 놓칩니다!]

망할 놈의 비가, 우리를 자꾸 방해했다.

[아, 그라운드가 미끄러워져서 그런가, 패스 미스가 잦아지고 있습니다. 상주 상무 입장에서는 날씨가 야속하겠네요.]

‘젠장, 이브랜드하고 경기하던 것보다 배는 많이 온다. 폭우 수준이네.’

비. 이놈의 비.

이놈의 비는 정말이지, 축구 선수들 입장에서 정말 싫어할 수밖에 없는 녀석이다.

당연한 게 열심히 연습해서 평소의 그라운드 상태에 익숙해져 있는데, 비가 와서 그 익숙해진 실력을 못 내고 실수가 잦아진다고 생각해 봐라. 정말 짜증난다.

‘물론 실수가 늘어나는 건 상대팀이나 우리나 똑같지만···’

우리가 강팀이다 보니, 더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브랜드랑 할 때는 그래도 그 쪽도 공격을 전개할 때 패스가 꽤 있었지만.

[아, 충주, 그냥 뻥뻥 걷어냅니다!]

[영리합니다. 충주. 지금 굳이 패스를 여러 번 해서 실수를 늘릴 필요가 없죠!]

충주는 전혀 그런 생각 안 하고, 급할 거 없다는 식으로 뻥뻥 걷어올리기만 했다.

그렇게 우리가 라인을 올렸음에도 영 성과를 내지 못하자.

[아아아! 지금 열렸어요! 열렸어요!]

[패스 한 방에 뚫립니다! 충주! 엄청난 기회!]

오히려, 우리에게 먼저 위기가 찾아왔다.

‘썅! 패스 한 방에 뚫려버렸다.’

비록 저 쪽이 역습하자마자 우리 쪽으로 달려가고는 있었지만, 공은 사람보다 빠른 법. 심지어, 비까지 와서 더 빨라진 상황이라 그런가. 따라잡기가 너무 힘들어 보였다.

‘아, 망할, 이대로 망해버리는 건가?’

세 경기, 세 경기를 남기고 이대로 다이렉트 승격을 빼앗겨 버리는 건-

[아! 골키퍼, 정확히 앞으로 나옵니다! 막나요? 막나요?]

‘어? 잠깐, 저거 완벽하게 막았다! 선배님 나이스! 이러면 최소한 다이렉트 슈팅은 막았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막을 수도 있다! 달려! 달려! 달려!

[그대로 슈팅-! 양원동, 막아내지만!! 볼은 천천히 계속 흘러갑니다!]

[아, 이거 들어가나요? 들어가나요?]

그리고 1초 후.

[으아아아! 막아냅니다! 몸을 아끼지 않는 슬라이딩!]

[막았습니다! 막았어요! 막았습니다! 이준혁 선수의, 슈퍼 세이브!]

“으아아아! 준혁아! 잘했다! 잘했어!”

“막았다! 막았다고!”

[저 선수 방금 전까지 하프라인에 있었는데, 언제 저렇게 골대 앞까지 간 거죠? 놀라운 체력입니다!]

“···으어어, 형님들, 저 숨 막혀요. 놔주세요.”

뒤, 뒤, 뒤질 것 같다아아··· 그래도 간신히 막았네. 다행이다.

그러나, 다행일 뿐이었다.

[아, 충주,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벌써 정규시간이 15분밖에 안 남은 걸 생각하면, 무승부는 충분할 거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그렇겠네요. 상주 선수들 입장에서도 저런 역습을 먹고 적극적으로 나서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요.]

해설위원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실수가 잦아질 수밖에 없는 시즌 후반.

실수가 잦아질 수밖에 없는 굵은 비.

실수가 잦아질 수밖에 없는 경기 후반.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실수를 하더라도 괜찮으니 용감하게 공격을 나가려고 하는 선수가 있을 리가- 있군요? 이준혁, 드리블을 시도합니다?]

-*-*-*-

솔직히, 드리블을 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원래 이렇게 살짝살짝 웅덩이가 생길 정도로 비 오면 공중으로 뻥뻥 차대면서 경기를 하는 게 맞단 말이다.

그래서, 우리 쪽도 솔직히 짧은 패스보다는 뻥뻥 질러주는 뻥축을 하라고 했지만.

‘근데, 그러기에는 좀 급해.’

지금 남은 시간은 15분. 이 상태에서 필드 공중볼로만 득점을 노린다면 한 골은 몰라도 두 골은 넣는 건 사실상 포기한다고 봐야 한다.

‘축구가 발로 하는 거라서 말이지···’

손도 아니라 발로 원하는 위치에만 쏙쏙 주는 건, 베컴이여도 힘들다. 때문에 필드에서의 공중볼 싸움은 성인과 중학생 수준이 경기를 하는 게 아닌 이상, 어느 정도는 운에 기대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선택했다.

[아 이준혁! 골대 시작점에서부터 계속 달립니다! 달려요!]

[비 오는데 드리블이라니, 이거 맞나요?]

비가 오기 때문에 공이 빠르다는 점을 이용한, 스피드를 통한 치달을 말이다.

[아, 이거 맞나요? 상주 상무, 비 오는데 드리블을 시도하다뇨, 이건 조금 잘못 판단한 것 같습니다. 비 올때 드리블은 금기거든요.]

‘저 놈도 어이없이 쳐다보네. 흐흐. 하긴 이게 통할 확률은 높지 않지.’

그렇지만, 내가 설마 바보같이 한 가지 수만 생각했겠냐.

‘자, 자, 드리블 하고 있지? 뻥 차고 싶지! 뻥 차서 라인 아웃 시켜! 제발!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잖아!’

그리고, 다행히도.

[아, 충주 가볍게 걷어냅니다! 역시 드리블은 비 내릴 땐 안 돼요.]

마음이 통했는지, 저 쪽에서 다가오더니 볼 라인 아웃을 시켜줬다!

‘됐다! 이 위치 정도면 딱 좋아.’

그래, 사실 이게 본론이다.

여기가 왼쪽 측면, 그리고 이 종합운동장이라는 점을 이용하면, 설령 드리블이 막히더라도 아주 재미있는 후속타가 가능하다.

‘비가 내리니 시야도 좀 가려지니 잘 모르는 사람들한텐 위장도 될 테고, 완벽하구만.’

그렇게 생각한 나는, 내 옆에서 볼을 받으려고 하던 태준이에게 조용히 손가락 10개를 쫙 펼쳐보였다. 골대로 올라가 있으라는 신호였다.

그리고, 그 신호를 본 태준이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조용히 말했다.

“야, 가능하겠어? 지금 이렇게 공이 미끌거리는데?”

가능하냐고?

“가능해야지. 조건이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야.”

물론 축구공이 비 잔뜩 내려서 미끌거리고 있다는 게 마이너스긴 하지만, 마침 육상 트랙도 있고, 종합운동장이기도 하니까. 도움닫기 할 공간도 많아서 충분하다 이거야.

“그러니까 빨리 올라갈 준비해.”

“아, 알겠어.”

후우, 자, 자 여기 트랙에서부터 시작하면 충분하겠지?

[어, 잠깐 이준혁 선수, 지금 육상 트랙까지 나갔네요? 설마?]

자, 받아라. 태준아!

“으랏차차찻-!”

[스로인! 롱 스로인입니다! 헌영민 선수가 자주 보여줬던 롱 스로인!]

[충주, 예상치 못했는지 수비수 당황! 골! 골! 골! 입니다! 상무! 한 골 따라잡습니다!]

됐다! 으하하! 발로 공중볼을 주는 게 부정확하면, 손으로 주면 되는 거지!

“자, 자 다들 빨리! 빨리! 아직 역전한 거 아니니까 세레모니 하지 말고 바로! 바로 갑시다!

-*-*-*-

<2015 K리그 챌린지 42Round>

[경기 종료]

상주 상무 2 : 1 충주 FC

[골]

상주 상무 : 박태준 77, 조건동 80,

충주 FC : 박지민 26

***

이, 이 이

“이겼다아아- 아아아···”

와 씨발, 힘들어 뒤지겠네. 진짜로 지는 줄 알았어.

“저기 코치님, 신문지 남는 거 없어요?”

“여기 있다. 근데 그 신발 망가진 거 같은데 그냥 버리지 그래?”

“···아끼고 살아야죠. 연습용으론 쓸만할 걸요.”

그렇게 다운된 상태로 흐느적흐느적- 라커룸 안으로 들어가니. 꿉꿉한 냄새가 우리를 반겨줬고,

그제서야 비로소 다들 온 몸이 노곤노곤해지며, 한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와, 진짜 다행이다···”

“하, 진짜, 진짜로 지는 줄 알았어···”

그리고 그런 감정은 그 ‘다들’ 에 속하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수원이고 나발이고, 선택하기 전에 나가리 될 뻔했네.’

하아- 역시, 미래는 한 치 앞도 모르겠다. 수원이 고비라고 생각했는데, 충주와의 경기에서 이렇게 힘겹게 이길 줄이야.

‘그래도 이겨서 다행이다. 대구가 이겼는데 우리가 무승부, 혹은 지기라도 했으면 정말 끔찍했겠네.’

그래도, 이 꼬라지를 보니 아무래도 이제는 진짜 라면 먹으면서 선택하긴 해야 할 듯-

-꽝!

“얘들아! 얘들아! 빅 뉴스다! 빅 뉴스!”

“빅 뉴스요? 뭔데요?”

뭔 소식이길래 빅 뉴스라는 거야, 지금 빅 뉴스는 라면 불기 전에 얼른 먹으러 가야겠다는 거-

“강원이 대구 이겼다! 역전했어! 대구가 졌다고!”

“······?”

순간적으로, 지쳐 있고, 옷 갈아입고 라면 먹으러 갈 생각 하느라 정신없기도 했던 우리들은. 그 말이 끝나고.

1초

2초.

3초.

“으와아아아-!”

“이야아아아아-!”

“우아아아아아-아!”

3초 후에야 마음껏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들의 의견도 하나로 모였다.

“야, 그럼 이거, 이렇게 된 이상 FA컵. FA컵도 노리자! 시발, 어차피 이렇게 되면 수원한텐 지더라도 안산만 이기면 되는 거잖아!”

“그래! 가자! 가자! 가자! 더블 가자! 우리는 상암으로 간-! 커헉!”

“야 임마! 그 말은 하면 안 되지! 부정 탄다고! 이 새끼 조져!”

그 말을 듣고, 나는 조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와 시발, 고민하던 게 이렇게 한 방에 풀려버리네?’

진짜로 잔혹한 선택의 순간이 온 줄 알았는데. 그냥 어쩌다보니 예상하지도 못한 행운이 찾아와서 선택이 되어버렸다.

뭐, 그래도

“이야야야야-!”

금방 나도 저 대열에 합류했지만 말이다.

이 행운은.

우리가 오늘 지거나 비겼다면, 이것은 큰 행운까진 아니였겠지만.

우리가 오늘 승리함으로서 한 경기정도는 져도 되는 큰 행운이 된.

그런 행운이었으니까.

-*-*-*-

<주말 FA컵 결승전, TV 중계 확정! 차두리의 마지막 경기, TV로 중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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