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56/167)

선택의 순간 (2)

FA컵이냐, 리그냐.

솔직히 시즌 중반, 전남과의 FA컵 때는 그리 길게 망설이지 않았다.

부상인원이 많지도 않고. 로스터도 두터웠으며. 무엇보다 시즌 중반이었기에 다들 아직은 할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지금 시즌의 마지막이 다가오자. 이번엔 정말로 선택을 해야 했다.

-삐익!

“가만히 있지 마라! 걸어! 최소한 걷기라도 해!”

선수들이, 가벼운 러닝에서도 체력 저하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모조리 뻗어있었으니까. 로테이션을 안 돌린 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상주 상무가 아무리 선수들에게 좋은 기회라고는 해도, 소속팀 입장에서는 선수 한 명이 빠지는 거기에 만일 그 선수가 소속팀에서 미친듯이 잘 하고 있으면 웬만하면 군대를 안 보내거나, 최대한 늦게 보내려고 한다.

그렇기에 여기에 온 많은 선수들이. 경쟁에서 살짝 밀려나 태준이같이 K리그에서 풀시즌을 제대로 소화해보지 못하다가 들어온 체력 배분이 익숙하지 않은 선수들이기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래서 대부분이

-야, 그냥 좀 쉬엄쉬엄 둘 중 하나만 하자.

이런 분위기였다. 물론, 이러는 사람도 있긴 있었다.

-야, 시즌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걍 둘 다 뛰자. 뛰자고!

솔직히, 시즌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확실했으니까. 고작 4경기. 4경기가 남았고, 날짜로 따지면 한 달도 아니고 단 3주정도밖에 안 남았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참고 다들 뛰자는 말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렇게 지쳐있는 상황에서 뛰자는 건, 잘못하다간.

“이형 선배님, 괜찮으세요?”

“오, 가져왔냐?”

“예, 형이 사회에서 부상당하면 썼다고 하던 신발 가져왔습니다.”

부상, 부상을 의미하니까 말이다.

운동선수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것이 바로 부상이다.

선수들 대부분이 본인의 실력이 못해서 밀려나는 건, 기분이 더럽지만 이해는 한다. 매일 같이 훈련하고, 연습하다 보면 자신들이 직접적으로 훨씬 더 잘 느끼니까.

그런데 이런 경우는 어떨까?

본인의 실력이 100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부상을 당했던 사이에 80~90인 선수가 나의 자리를 차지하고, 감독이 이미 맞춰진 선수들 합을 변경하느니 그냥 이대로 가겠다고 나온다면?

그 때는 이해는 하더라도, 훨씬 더 기분이 더러워진다.

거기에 플러스로. 부상당하면 기본적으로 연봉이 훨씬 깎인다. 주전이다가 부상으로 1년 날려먹기라도 하면? 심하게는 연봉이 절반 가까이 날아가는 경우도 생긴다.

게다가, 여기는 군대다. 부상당할 정도로 열심히 뛴다고 해서 보상이 주어지지는 않는··· 그런 곳.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몸을 조금 뺐다.

아무리, 아무리 K리그를 원한다고 해도. 우승을 원한다고 해도.··· 진통제가 한계범위지. 큰 부상을 감수하면서까지 뛰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 군대 전역하고 나면 K리그로 가는 건··· 가능해 보이니까.’

휴가 때 아이폰 사고 카톡이랑 트위터, 페이스북을 파고 나서, 어떻게 안 건지.

-이준혁 선수, 잠깐 저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하는 K리그 챌린지 상위권 팀이나, K리그 하위권 팀들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엔 적극적으로 의견 표시를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있었다.

부상당해서 저 팀들에 가지 못하는 건, 너무 억울할 것 같았으니까.

“이야- 고맙다. 준혁아. 그래, 이게 필요했어 고맙다.”

그래서일까.

지금, 난 이형 선배를 보면서 조금, 조금 이해가 안 됐다.

첫 원정 때.

-야, 얼른 커라, 얼른 커서 감독님이 나도 한번 빼게 만들어줘.

라고 하셔서 나나 포진 선배를 무시하고 설렁설렁 뛰시는 건가- 싶었는데. 시즌의 끝에서 돌아보니.

이 형님은 리그 경기만 이미 30경기 출전이라는, 우리 팀 최다 출전기록을 남겼고.

군인체육대회도 풀타임으로 뛰었으며.

그러고 나서 FA컵 4강전에서도 미친 듯이 뛰다가 피로골절까지 터지셨다.

보통, 그 때 부상당하면 시즌 아웃이다. 그런데.

“후- 고맙다, 준혁아, 자, 그럼 또 물속에서 걷기나 해 볼까?”

지금 저 형은 어떻게든, FA컵 결승전에 뛰겠다고 몸을 만들고 계셨다.

“형, 질문 하나 있는데. 해도 되나요?”

“응? 그래, 말해 봐.”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요?”

그 말에, 이형 선배가 잠시 멈칫거렸지만,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말해서, 형 정도면 뛸 만큼 뛰었는데, 푹 쉬고 다음 시즌 준비하는 게 몸에도 더 좋잖아요. 왜 이렇게까지 뛰길 원하세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선배는, 잠시 할 말을 고르더니. 짧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우승.”

“네?”

“우승하고 싶으니까.”

-*-*-*-

“있잖아. 나도 처음에는 주전만 먹고, 어떻게든 프로에서 생존하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그냥 온 몸으로 물음표를 표시했다, 그게 말이 되는가? 국가대표가 그런 소리를 할 줄이야.

“믿지 못하겠지만, 나 대학에 들어갈 때 좀 안 좋게 풀려서 1년 꿇어야 했거든.”

“···네?”

조금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실제로 자신은 그 때문에 86년생임에도 06학번이었고, 2010 K리그 드래프트에야 참가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울산에 들어가고 나서도, 정말 힘들었어. 그 때 K리그는 고졸 드래프티들이랑 어린 선수들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시기였거든.”

그 말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절의 K리그는 그야말로 유망주들의 시대였다.

이청룡, 기성룡, 구지철로 대표되는, 지금 국가대표에서 잔뼈가 굵은 족적을 남기고 있는 선수들이 20세도 안 되는 나이에 K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구단의 높으신 분들이 어린 선수들이 K리그에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FC 서울, 2010년 평균 관중 30,849명! 역대 최다!

그런 어린 선수들이 인기몰이를 하면서 평관 3만을 찍던 시기였다.

그래서, 구단들이 점점 어린 선수에 눈을 돌리고 있던 시기에, 대졸자, 그것도 1년 꿇은 신인이 들어온 거다. 부담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경쟁자라도 약했으면 모르겠지만.

“그 때 내 포지션 경쟁자가, 오범석 선수였다? 그 다음 해에는 송종국 선수였고.”

“···와우.”

그 두 이름을 듣자, 그냥 입이 벌려졌다.

오범석 선수는 비록··· 비록 남아공 월드컵 때 아르헨티나전에서 가루가 되도록 까인 선수이지만, 어쨌든 그 당시 K리그에서 첫 번째로 꼽을 만한 선수이자 결국 A매치 43회 출전이라는 기록을 남긴 선수이며.

송종국 선수는, 말해 뭣하겠는가. 02 월드컵에서 그 루이스 피구를 막았던 선수인데.

물론 그 때는 이미 국대에서 내려온 상황이긴 했지만··· 솔직히 울산의 구단주거나 팬이라면 대학교도 늦게 졸업해서 유망주라고 하기에도 뭐한 선수와 나이 서른 셋 먹은 전직 피구 막았던 선수 중 누굴 쓰는 걸 바라겠는가. 당연히 후자다.

“그래서 정말,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치열하게 살면서 주전경쟁 하고 있을 때, 송 선배님이 갑자기 여름에 자유계약으로 풀리고, 내가 주전 먹으니까 세상 다 가진 것 같았어.”

그리고 그 이후부턴, 모두가 아는 이야기였다. 다음 해부턴 주전 먹고, 우승도 하고, 국대도 나가보고··· 승승장구의 역사였다.

“그런데, 그렇게 몇 년 동안 뛰어보니까. 느껴지는 게 있더라.”

“뭔데요?”

“우승이란 게, 너무나 어렵다는 걸.”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프로 초기까지는, 자신은 우승이 그렇게 어려운 건지는 몰랐다고 했다.

항상 주전에 드는 것이 어려웠지, 주전에 들면 우승이었기 때문이었다. 프로에 와서도 첫 풀타임 주전 먹은 해에,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무패우승까지 했으니.

“그런데, 13년에 그 지랄을 겪으면서 준우승하니까, 느껴지는 게 있더라.”

리그 2위와의 최종전이라, 비기기만 해도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상황에서. 후반 94분까지 0대 0으로 버티다가 마지막의 마지막에 결국 라이벌 팀에게 골을 내 주고 져 버린 그 때, 느꼈다고 했다.

우승이란 놈, 정말 어려운 거구나.

“그리고 그 다음 해에 우승은커녕,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지나, 안 떨어지나를 걱정해야 하는 걸 봤을 때, 그제서야 알게 됐다.”

“뭐를요?”

내 질문에, 선배는 잠시 숨을 삼키더니 굉장히, 굉장히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승이란 놈은 절대로 쉬운 게 아니고, 눈앞에 아른거린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 한다는 걸.”

“······”

“설령, 몸이 조금 부숴진다고 해도.”

그 단호한 목소리에, 살짝 질릴 뻔했다.

“난 아직 3연전 할 때 네 말을 기억하고 있다.”

“······”

“꼭, 꼭 같이 우승컵 들자.”

“···네.”

.

.

.

.

.

.

“하아- 고민이네.”

저번 3연전 때처럼 이번 시즌이 끝나고 은퇴할 것을 걱정했다면, 다음이 없으니까 당연히 그냥 다 몸이 부숴져라 뛰었겠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였다.

다음, 이라는 선택지가 내 눈앞에 보이니까, 오히려··· 더 약해졌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어떤 것을 선택해도, 이건 조금 후회가 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리그를 선택한다면,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거기도 하고, 좀 더 위 리그에서 검증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거겠지만.

그 순간, 평생, 평생 다시는 없을 우승기회를 놓칠 수도 있는 거다.

‘우승을 여러번 도전해볼만한 팀에서 오퍼라도 들어왔으면 좀 나아- 지지는 않았겠구나.’

울산이라는 좋은 팀에서 뛴 이형 선배도 저렇게 우승에 목말라 계시니.

“진짜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지잉- 지잉-

어라, 전화- 는 아니군. 야구 불법베팅 스팸이네.

“도대체 어떻게 내 전화번호 알아서 하는 건지 참, 게다가 축구선수한테 야구 토토를 추천하는 건 또 뭐-”

그 순간,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망할. 이걸 왜 까먹고 있었지?

나보다 더 현명하고, 세상 경험이 많고, 비슷한 경험을 분명히 해 보셨을 분을 알고 있는데 왜 지금까지 안 물어봤단 말인가.

“평소보다 빨리 전화하는 건데, 지금 받으실 수 있으려나?”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찰칵.

‘오 받았다.’

신호 세 번 갔는데 받다니, 바로 받으셨네.

“여보세요, 준혁이냐? 무슨 일 있냐?”

순간, 나는 고민도 잊고 풋 웃었다.

“아부지, 그 무슨 일 있냐는 빼도 되지 않을까요. 이제 매일 전화하는데.”

“아, 아, 미안하구나. 아직도 영 매일 통화한다는 게 익숙치가 않아서 말이다. 뭔 일 있는지부터 묻게 되는구나.”

그 말에, 살짝 가슴이 찔려왔다.

‘아니, 미안할 것까지 없죠. 근 1년간 전화 안 했던 제 잘못인데.’

그리고 뭔 일이 있어서 전화한 거기도 하고요···

“음, 사실 일이 있어서 전화드린 거긴 해요, 이게 뭐냐면요···”

그렇게 내가 어떤 상황인지 설명을 드리자. 아버지는

“간단하군. 다음 경기나 준비하거라.”

아주 간단하게 말씀하셨다.

“네?”

“들어보니, 그 수원하고의 경기랑 서울하고의 경기, 두 경기만 남은 것도 아니지 않느냐.”

“예? 예, 그렇죠. 더 있죠.”

11일 수원하고 경기하기 전에, 7일에 충주와의 경기도 있고.

아직 마지막, 안산과의 경기도 남아 있다.

“그럼 일단 충주부터 이기고 고민하거라.”

“어··· 근데 걔네들은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충주 FC.

걔넨, 꼴찌다. 리그 꼴찌 팀.

FA컵 때도 솔직히 우리가 조직력이 다 갖춰지지 않은, 후보 선수들만으로도 박살냈었고. 현재 37전 8승 10무 19패로 꼴찌를 달리고 있는 친구들이란 말이다.

“당연히 이길 수 있-”

그 순간.

“준혁아. 너 방심하고 있구나.”

아버지는, 엄한 목소리로 말하셨다.

“그 친구들도 프로다. 너희가 ‘당연히’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

“너희들이 아무리 강팀이라고 해도 무승부, 혹은 패할 수도 있어.”

아버지의 그 말씀에, 나는 부끄러움에 할 말을 잃었다. 너무나도, 너무나도 통렬한 지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그런 소리를 할 정도로 건방져진 거지?’

그렇게 내가 말이 없어지자. 아버지는 언제나 그렇듯 단호한.

“네가 성장했다고 해서, 그 친구들을 무시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야.”

그러면서도, 어릴 때는 느끼지 못했던.

“···음, 그래도, 누구나 그럴 수 있는 법이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으니.”

자상한 느낌을 받으며.

“···예.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래, 그럼 몸 조심하고, 충주 경기가 끝나고 난 후에 전화하거라.”

-뚝.

전화를 끊고 나니. 나는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후, 준혁아. 취했구나.”

작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튼튼해진 피지컬. 그리고, 계속되는 승리에 조금 들떠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역시, 아버지구나. 정말 좋은 조언을 해 주셨어.”

그런 나를 위해 때로는 엄격하게, 때로는 온화하게 앞길을 가르쳐주시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좋아, 힘내자. 힘내서 다음 경기부터 이기고 나서 생각하자고.”

그 경기부터 이겨야, 둘 중에 뭔가를 버리든, 말든 확실하게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

***

<2015 K리그 챌린지 42Round>

[전반 종료]

상주 상무 0 : 1 충주 FC

[골]

상주 상무 : (없음)

충주 FC : 박지민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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