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화 (54/167)

프로는, 프로다. (2)

청년 FC의 수비수, 이바른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9대 0? 잘못 말한 거 아냐?”

“아니, 진짜 그렇게 말했단다. 9대 0이라고.”

축구에서, 보통 3대 0이면 완승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9대 0이라니. 그건 그냥 가지고 놀겠다는 소리잖아.

“하, 우리를 아주 단단히 얕봤나 보네?”

아무리 챌린저 팀에서 나름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을 뽑아왔다곤 하지만, 이건 좀 너무 우리를 무시하는 거다.

우리도 나름 지난 연습경기 동안 성남 FC에 이기기도 해 보고, 특히 이 경기를 하기 직전, 최근에는 FC 서울의 주전급이 섞인 경기에서 1대 1로 무승부를 거두기도 했단 말이다.

그래서일까. 주변의 후배들도 그 말을 듣자 불만을 터트렸다.

“하, 걔 개싸가지네. 걔 이름 뭐냐? 이름 못 들어본 거 보면 2부리거인 거 같은데.”

“잠깐만··· 아, 나왔다. 이준혁이라네. 고양에 있다가 상주 상무로 가서 지금 리그 3골 5도움인데? 그냥 평범해.”

그 정보를 들은 청년 FC의 사람들은, 모두가 어이없어했다.

“아니 지가 뭔 공격포인트 순위권에 있는 선수도 아니면서 뭔 배짱으로 저러는 거야?”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조금 더 나아가서.

“야, 그 새끼 몇 살이냐? 기강 좀 잡아야겠네.”

운동부 전통의 나이빨로 누르기라는 치트키를 쓰고자 했지만.

“잠깐만, 아, 찾았···는데 89년생이네. 썅. 선배야.”

“······”

그 말에, 다들 침묵했다.

일단 나이빨로 누르기에도, 대부분이 90년대생인 청년 FC로서는 힘들기도 했고.

“잠깐, 이준혁이라고?”

“예, 형, 혹시 들어본 이름이에요? 그럼 형이 우리 팀 주장이기도 하고 그 사람보다 연장자니까 좀-”

“···그 새끼, 내가 아는 걔가 맞으면 해 봤자 말 안 들을걸. 걔 내가 내셔널리그에서 뛰었을 때 돈 주면 승부조작만 빼고 뭐든지 할 거라고, 성깔 있다고 꽤 소문난 놈이었어.”

“······”

그 사람이 원래부터 그런 싸움닭형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된 것도 있었다. 자고로 싸움닭인 사람과 엮이면 피곤하니.

그래도. 다들 공통으로 든 생각이 있다면.

“하여튼, 걔 3년 전만 해도 나랑 똑같던 놈이었으면서, 좀 건방지긴 하네.”

“어, 그러게요, 3년 전엔 내셔널리그 선수였다는 거잖아.”

“게다가 고양이면, 구름이한테 관심 있다고 말한 구단 아니야?”

“그러네? 그럼 구름이랑 동료 될 수도 있을 텐데, 저래도 되는 거야?”

짜증 난다는 거였다.

국대도 아니고, K리그 선수도 아닌, 챌린지 구단에서 평범하게 뛰는 선수면서 뭐 저리 우리를 싸그리 무시하는 발언을 한단 말인가.

“야, 본때를 보여주자.”

“그래, 그러자고. 딴 건 몰라도 저 새끼한테는 절대 안 진다.”

그렇게 단단히 마음먹고 시작된 게임은.

[초반에 거세게 챌린지 팀을 압박하는 청년 FC!]

[아, 청년 FC, 전혀 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무난하게 흘러갔다.

‘뭐지? 뭔 일 있나?’

그렇게 거칠게 말한 것 치고는, 너무나도 무난하게 흘러가는 모양새에 다들 의문을 가지고 긴장했지만.

[남구름 슈팅-! 아, 아깝습니다.]

[아, 김영광 골키퍼, 역시 국가대표네요, 좋은 선방입니다.]

전반 15분이 되기까지, 저쪽에서 유효슈팅을 한 번도 쏘지 못하고, 우리 쪽에서 첫 유효슈팅을 가져가자. 점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뭐야? 별것도 아니잖아?’

그래, K리그 챌린지가 뭐 별거냐? 우리도 그동안 많이 성장했잖아.

‘좋아, 이대로 한번 이겨보자! 이겨서 좋은 기분으로, 챌린지 팀 테스트에도 도전해 보자고!’

[팀 챌린지, 오랜만에 공 전개합니다. 중앙선을 넘어갑니다.]

오, 그리고 지금 공 잡은 게, 그 이준혁이란 놈인 거 같은데. 흥, 절대로 뚫을 수 없을 거다. 우리가 오늘 딴 건 몰라도, 너만큼은- 어?

[어? 어? 골! 골입니다! 이준혁 선수의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이었네요.]

[···아, K리그 챌린지 쪽, 행운이 따라줬는데요? 청년 FC. 방심하면 안 됩니다.]

‘뭐, 뭐야?’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어? 중앙선 넘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타이밍에, 바로 장거리 슈팅 날려서 골 넣었다고?

“정신 차려!”

그, 그래, 이런, 실수했다.

“천천히! 천천히 해! 아직 한 골 차에 불과해!”

그래, 아직 한 골 차이일 뿐이다. 천천히 우리 팀이 앞서가는, 조직적인 플레이를 앞세우면-

[채, 챌린지 팀, 바로 볼을 빼앗습니다.]

어?

-*-*-*-

조직력? 그래 조직력은 약할지도 모르겠지.

우리는 고작 어제 만나서 하루만 발 맞췄고, 너희는 적어도 한 4개월간은 발을 맞췄으니 말이야.

근데 해설위원들도, 팬들도, 심지어 너희조차도, 개인 기량 이야기는 입도 뻥긋 안 했지? 그게 왜 그럴까?

너희도 아는 거다. 너희는 그래도 연봉을 받고 뛰는 실업 선수인 내셔널리그 선수도 아니었고, 그냥 선수로서 몸 관리도 안 하고 있던 사람들 절반에, 그나마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전부 K3, 아마추어 선수들이라는 걸.

이게 뭔 소리냐고?

[청년 FC 이번에는 제대로 달라붙었습니다! 볼을 빼앗··· 또 뚫렸습니다.]

너희와 우리는, 잘 쳐줘도 두 수, 세 수 이상 차이 난다는 거다.

조직력으로 승부?

그건, 반 수, 한 수는 차이 나는 선수들 상대로나 통하는 거다. 너희와 우리의 실력 차는, 국가대표팀과 우리보다도 배는 넘게 차이 난다고.

너희들도 그걸 알았으니, 방송에서도 핸드폰을 만져대며 SNS 관리하고 인기 끄는 데에 더 집중했던 거겠지. 이거 끝나고 축구 교실 차리고, 지도자 코스 밟으려고.

뭐, 그걸 욕할 생각은 없다. 나도 작년에 여기에 오지 못했다면 그랬을 테니까.

[최태원, 슬라이딩 태클! 하지만 이준혁 선수, 쉽게 벗어납니다.]

[아··· 너무 농락당하고 있는데요? 청년 FC, 힘을 내야 합니다.]

근데, 선수로 뛰고 싶어서 이런 기회를 잡았다면, 최소한 엄청나게 노력하기라도 해야 했던 거 아니냐?

살도 쪄 있는 놈들이 가벼운 사이클 같은 운동으로 지방 빨리 태울 생각도 안 하고, 외박 못 나가게 되니깐 울상짓고, 쉬는 시간에 핸드폰질 하고 그냥 남들 하는 것처럼 놀 거 다 놀면서. 우리가 서는 무대에 서겠다고?

우리보다 더 밑바닥에 있던 놈들이.

우리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우리와 같은 무대에 서겠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내뱉는다고?

[고, 골입니다. 이준혁 선수, 이번엔 김규남 선수에게 멋진 어시스트를 선보입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우리가 뛰는 이 프로라는 무대가, 만만해 보였냐?

그렇게 순식간에 2대 0이 되자. 나를 마크하던 청년 FC 선수가 중얼거렸다.

“씨발. 뭐야,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거야?”

뭐, 수두룩하지. 역동작이 걸리면 순식간에 중심이 무너지고. 중심이 무너진 상태에서 볼을 받아낼 줄도 모르고, 순간적인 무게 중심 이동도 느려터지고, 체력은 U-20 수준이잖아.

이걸 한마디로 요약하면, 뭐라고 할 것 같냐?

“여러분들이 노력이 부족했다는 거죠.”

노력, 노력을 안 했다는 거지.

“···노력? 웃기지 마. 우리도 노력했어!”

“그럼 재능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래! 느네들이 운 좋게 좋은 재능 가져서 프로 가 놓고 웃기지 말라고!”

하, 웃기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재능만 따진다면, 여러분들 중에서 저보다 훨씬 더 좋았던 사람들도 있는데요?”

솔직히 말하자면, 재능은 청소년기, 정확히는 고등학생 때 가장 잘 나타난다.

그때부터가 비로소 축구를 장난처럼 하는 친구들은 사라지고, 진짜로 다들 어느 정도 진지하게 해서 피지컬이든, 볼 차는 놈이든, 쭉쭉 실력이 빠르게 느는 친구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거든.

그런 면에서 보면, 저기 청년 FC는 나보다 좋은 재능을 가진 선수도 있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연령별 대표팀을 나간 선수도 있고.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의 역대 1위 축구선수 자리에 오를 것이 분명해 보이는, 손흥빈 선수와 같이 축구협회에서 돈을 들여가며 유럽축구 유학을 보낸 선수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더 잘 나갔던 재능 넘치던 사람들이.

지금 나보다 못 한다는 건, 뭘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냥 노력이다.

너희들의 피, 땀, 눈물은.

우리들의 피, 땀, 눈물보다 더 적었다.

[아··· 이번엔 황순민 선수가 골을 넣는군요. 3대 0입니다. 청년 FC 선수들, 좀 더 힘을 내줬으면 하는데요.]

전반전에 3대 0.

슬슬 청년 FC 쪽에서 센터서클에 공을 천천히 놓으려고 할 것 같아서.

[어··· 이준혁 선수, 지금 볼을 들고 센터서클에 바로 가져가네요? 저래도 되나요?]

내가 직접 공을 들고 센터서클에 놔줬다.

그러자, 청년 FC 쪽 선수가 한 명 오더니 나한테 조용히 말했다.

“저기,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같은 미생끼리.”

그 말을 듣고, 나는

“하하하.”

웃었다. 표정은 웃지 않고 말로만.

“같은 미생이라고요?”

미생, 바둑에서 완전한 두 개의 집을 만들지 못한 돌. 즉, 아직 살아있지 못한 돌.

그래, 사전적 정의로만 따지면. 우리는 똑같은 미생이긴 하다.

K리그 선수도 아니고 K리그 챌린지 선수는, 보통 2천만짜리 단년계약이 대부분이고, 그래서 군대든 실력이든 부상이든, 뭐 하나만 일이 생겨도 바로 은퇴를 생각해야 하는 인생이니까.

그런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

너희는 돌 한두 개 달랑 놓고 미생이라면서 포기했지만, 우리는 집을 짓는 데까지는 성공했고, 완생으로 나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방송국 등에 업고 승승장구, 기세등등하다가. 이제 와서 같다면서 동질감 부여할 생각하지 마라.

“전개하실 준비나 하세요.”

짜증 나니까.

***

[경기 종료]

팀 챌린지 6 : 0 청년 FC

[골]

팀 챌린지 : 이준혁 - 16, 김규남 - 20, 황순민 - 33, 진수창 - 40, 59, 주현재 - 48

***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끝나고, 형식적으로 악수를 청했으나. 다들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했고, 주변을 둘러보니 팬들도 반의반 정도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반의 반들은 우리를, 그리고 그중에서도 나를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저 새끼들, 꼭 저랬어야 했나?

-마지막 경긴데, 저렇게 무자비하게 해야 했냐? 사람 앞길 막는 것도 아니고.

“준혁아.”

“네, 형님.”

“너 괜찮겠냐?”

괜찮냐고?

“괜찮을 리는 없죠. 저 이제부터 욕 더럽게 많이 먹을걸요. 당장 감독님한테 전반전 끝나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쿠사리(잔소리) 먹은 다음에 바로 교체당했잖아요.”

이제, 나는 더럽게 욕을 많이 먹을 거다. K리그 전체 팬덤보다 거대한, 청년 FC라는 팬덤의 자존심을 깔아뭉갰으니까.

“그걸 아는 놈이 왜 이런 멘션까지 썼냐···”

[Junhyuk_Lee(@Junhyuk_Lee)]

ㄴ[6대 0, 안타깝네요. 시청자분들에게 9대 0이라는 약속.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고양에 있을 때는 스마트폰도 안 쓰던 네가 뭔 아이폰을 만지작거리나 싶더니만··· 왜 이런 글을 남기는 건데. 이러면 너 엄청나게 욕먹을 게 뻔한데.”

그 말에, 나는 싱긋 웃었다.

“말해주고 싶었어요.”

사실, 원래 이건 서로 조금만 배려했어도 됐을 문제였다. 청년 FC가 11월, 12월 시즌이 끝나고, 한 판 뛰자고 말하거나 후보 선수 위주로 뽑아서 한 판 뛰자고 말하면 해결될 문제였단 말이다.

그런데, 저쪽에서 먼저 우리를 배려해줄 마음을 하나도 안 가지고, 억지를 부리면서 선빵을 갈겼잖아.

그럼, 말해줘야지.

“우리는 당신들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체스 말이 아니란 걸.”

“······”

그래야 다음엔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전 후회하지 않아요.”

“어휴, 그래, 생각해보면 넌 고양에서도 싸움닭이었지. 널 누가 말리겠냐.”

지잉, 지잉!

“그럼 전 인천으로 가야 해서, 바로 출발할게요.”

“아, 맞다. 너희 오늘 인천에서 저녁에 FA컵 4강 하지? 너 바로 합류할 수 있겠냐?”

“경기 뛰진 못하죠. 그래도 라커룸에서 응원이라도 하게요.”

“···그래, 잘 가라-!”

그렇게, 모두가 주목하던 청년 FC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망치고, 나는 바로 택시를 탔다.

-지잉, 지잉.

트위터에 멘션이 달리는 알림을 기분 좋게 들으면서 말이다.

'분명 사람들이, 나에 대해 저주를 퍼붓겠지?'

그렇지만 상관없다.

비록 그 사람들이. 내가 망하기를 바라더라도. 내가 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내 반대편을 꾸준히 응원하고, 꾸준히 경기를 본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나는 조금 더 행복해하며 경기를 뛸 수 있을 테니까.

-*-*-*-

<높았던 프로의 벽...프로는, 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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