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화 (53/167)

프로는, 프로다. (1)

2015년 10월 12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인 열흘 남짓한 군인체육대회도 어제부로 끝났다.

“야, 이것도 금메달 맞냐?”

“깨물면 자국 남나?”

비록 작긴 하지만, 금메달이라는 영광을 안기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보상은 뭐··· 나름 나쁘지 않았다. 일단 대대장부터가.

-어어, 그래그래, 그럴 수 있지, 남은 이틀이라도 푹- 쉬다가 가게나! 마지막 날 전역 신고만 찍고 가!

저렇게 입가에 함박웃음을 지은 채로 저런 말을 하고 다니기도 했고, 금메달 따서 금전적으로도 나름 이득이 됐기 때문이었다.

‘뭐,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메달이 아니어서 연금이 나온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것도 꼴에 세계대회라고 특별장려금으로 450만 원이 지급되고, 또 이 경기들도 승리 수당을 따로 챙겨준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합하면 나름 이번 달에 벌써 9백만을 땡긴 거다. 열흘 만에 9백만.

그 금액에 다들 미친 일정에 신음하던 우리도 나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다만, 사소하고 흔한 부작용이 하나 생겼을 뿐이었다.

-똑똑똑.

“들어오세- 하아, 이준혁, 씨. 당신도 오신 겁니까?”

“하하··· 저 말고도 이미 다 왔나 보네요? 얼마나 왔어요?”

그 말을 들은 군의관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자포자기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부 다. 빠짐없이 왔습니다.”

오, 그 말은 좀 놀랍네.

“그냥 안 먹고 아프다면서 경기 쉬겠다고 하는 분은 없었어요?”

사회라면 몰라도 여기는 군대라서 애써서 출전해봤자 승리 수당이 짜디짠데 그렇게까지 한다고?

그런 내 의문에, 군의관은 간단히 대답했다.

“다들 FA컵 4강에 정신이 팔려 있더군요. 어떻게든 이기고 다음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아, 그렇군.

“에휴- 뭐, 됐습니다. 어디가 아프신 거죠? 어떤 진통제로 드려요? 소염진통제? 소염주사?”

그래, 프로 선수의 흔하고, 흔한 풍경. 모두가 진통제를 먹기 시작한 거다.

뭐 사실 우리에게, 정확히는 프로 운동 선수들에게 진통제란 상당히 익숙한 일이긴 하다.

어느 정도냐면, 직장인들의 절반 이상이 직장생활하며 일상적으로 커피와 담배를 마셔대는 것처럼, 우리는 절반 이상이 매일 소염진통제를 먹고 다닌다.

거기에서 좀 더 나가면 소염주사, 좀 더 과하면 관절주사, 대포주사로 넘어가는 거고. 그렇게 점점 몸을 깎아내면서 뛴다. 프로 선수들이 괜히 입대할 때 웬만하면 공익판정 받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휴우, 여기 이부프로펜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적당히 드세요.”

“감사합니다.”

내가 이렇게 진통제를 처방받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란 거다.

물론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아니 몸 관리가 최우선인 프로 선수들이 왜 진통제 먹어가면서 뛰냐? 몸 아끼면서 오래오래 뛰어야지.

그러나 우리로서는 이럴 수밖에 없는 게.

매년 10골씩, 10년 동안 꾸준하게 100골을 넣어준 선수.

3년 동안 총 90골을 넣고, 7년간 10골만 넣은 선수.

똑같이 10년간 100골을 넣은 이 둘 중 어떤 선수가 더 많은 돈을 벌었을까?

축구를 본 사람이면 알 테지만. 계약이 지독하게 꼬이지 않은 이상 뒤쪽의 선수가 거의 무조건, 무조건 훨씬 더 많은 돈을 번다.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임팩트지, 꾸준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전성기일 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고점을 보여줘야만 한다.

그래도.

“올해는 좀 안 먹고 싶었는데. 참.”

씁쓸하네.

그러나, 더 씁쓸한 일은 따로 있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자네가, 우리 팀 대표로 청년 FC와의 경기에 나가기로 했네.”

-*-*-*-

청년 FC.

축구 미생들의 완생 도전기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걸고.

한때 유망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축구를 포기했던 선수들이, 다시 프로에 도전하는 모습을 그린 TV 프로그램.

사실, 나는 원래 이 프로그램에 대해 굉장히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일단 나 자신부터가, 내셔널리그에서부터 아득바득 올라온 사람이고. 내 대학 시절 친구들이 대부분 K3, 내셔널리그에서 뛰던 친구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히 저쪽의 도전자들에게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안정훈 선수님이 진지하게 한다는 말을 듣고, 정말이지 환영했다. 진심으로, 저 친구들이 성공해서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올라오길 바랐기에.

그러나.

-체지방이 20% 넘는 선수들이 수두룩해요.

그 소리를 듣고, 나는 그냥 예능 프로그램이구나- 하는 생각에, 그냥 기대를 접었다. 몸 좋은 일반인 수준도 안 되는 신체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무슨 프로는 프로인가.

그래도, 나쁘게 보지 않았다.

나름 그런 식으로라도 이 축구계에, K리그에 관심을 주는 것이 나쁠 리가 없으니까.

그러나.

“···그래서 결국 우리 쪽에서도 청년 FC 쪽에 선수들을 지원하기로 했다.”

“···농담하시는 거죠? 감독님?”

오늘, 나는 생각을 달리해야 했다.

“왜 저희가 걔네들 마지막을 장식해줘야 하는데요?”

청년 FC 쪽에서, 마지막은 미생들과의 경기를 통해 아름답게 장식하고 싶다면서, 방송의 마지막 경기를 챌린지 선발팀과의 경기로 잡고, 연맹이 그걸 통과시킨 것이었다.

뭐, 그것까지는 그래, 그럴 수 있다.

사실 방송 나가는 게, 나쁠 리는 없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근데. 왜 그걸 지금 하는 건데.

“저희 지금 2등이라서 지금 리그 승격에 발등에 불 떨어졌고. 뭣보다 그날 저희 FA컵 4강전 있는데? 그런 예능 경기에나 나가라고요?”

그 물음에, 감독님은 음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연맹 쪽에서 순위 싸움 중인 팀들이 모두 보내는데, 상주만 안 보내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한 명이라도 보내라고 연락이 왔다.”

“······”

“그리고 그쪽에서 후보 선수가 아니라, 꼭꼭 주전 선수를 내보내라고 하는 바람에, 우리로선 너밖에 없었구나.”

···아, 그래, 지금, 굳이 누군가를 보내야 한다면. 날 보내는 게 맞기야 하지. 저번 FA컵에서도 김두현 선수 막다가 옐로카드 한 장 받아버렸으니까. 어차피 이번 4강전은 못 뛰니까.

그래서.

“···알겠습니다.”

동의는 했지만, 여전히 기분은 좋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같은 미생끼리의 경기를 보고 싶습니다.

같은 미생이라면서. 왜 우리 쪽을 배려하는 마음은 하나도 없던 걸까.

최소한, 시즌이 끝난 후로 경기를 잡거나. 후보 선수 위주로 요청했다면 서로 만족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저쪽은 그런 생각 따윈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부탁해야 할 그들의 일정에 우리가 맞춰서 경기를 준비해야 했다. 우리는 진통제 먹어가면서 시즌 경쟁을 하고 있는, 이 시기에 말이다.

그리고, 저걸 덜컥 받아들인 축구연맹도, 솔직히··· 좀 이해가 안 됐다.

리그 경기의 순위싸움보다.

한국 최고 국내 토너먼트 대회인 FA컵보다.

저런 예능 한번 타는 게 더 중요한가?

우리는, 고작 예능 하나보다도 못한 존재였던 걸까?

그리고, 인터넷까지.

-디게 쫀쫀하게 구네, 거 경기 그 한 번 해주는 게 뭐 어떠냐?

-어쨌든 K리그 챌린지와 선수들을 알릴 기회 아니냐?

우리의 아픔을, 대부분이 공감해주지 않는다는 잔인한 현실은.

“···씨이발. 엿같네.”

너무나, 너무나도 가슴이 착잡했다.

-*-*-*-

2015년 10월 14일.

“이거 생중계되는 거에요?”

“예, 지상파로 생중계됩니다.”

하, 씨발.

‘FA컵 4강은 생중계 안 하면서, 이런 건 하네. 저게 시청률의 힘이구나.’

···뭐, 사실, 방송사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K리그 최고의 흥행 매치인, 서울과 수원과의 경기도 올해 박주영 선수가 복귀했음에도 고작 시청률 3%도 못 찍었는데, 청년 FC는 평균 4%를 넘겼으니. 당연한 거다.

그리고.

-와아아! 남구름! 파이팅!

-파이팅! 청년 FC 파이팅!

‘저 관중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뚜렷해지네···’

주말 경기도 아니고, 평일 낮 경기인데. 그것도 유료 경기인데. 4천 명 정도가 왔다고 한다. K리그에서도 저 정도 관중은 인기 팀들이나 채울 수 있는 건데.

그래, 당연한 거다.

그렇게 씁쓸한 표정을 감추며 챌린지 대표선수들과 인사를 나누자.

“어, 준혁아, 왔냐. 오랜만이다.”

“···오랜만입니다. 주장님.”

조금, 조금 반가운 얼굴들이 나왔다.

“야, 지금 고양 주장은 기제야, 내가 아니라.”

“그래도 제가 있던 때에는 형이 주장이었잖아요. 그리고 오랜만입니다. 수창이 형.”

“그래, 너도 간만이다.”

나랑 같이 뛰던, 고양의 선수들이 온 거였다.

“너 말이야, 나 주장으로 부를 거면 말이지, 좀 경기에서 만날 때 봐주기라도 해라. 맨날 나 털어먹고, 엉?”

“하하, 프로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잖아요.”

“와- 이 새끼. 진짜 피도 눈물도 없다니까. 친정팀이랑 경기할 때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 임마?”

그 덕분일까. 다행히 우울함에 오래 빠져있지 않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밖에도 뭐.

“저기, 사인 좀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그래? 이거 기분 좋네, 하하. 내 국대 유니폼 가지고 있는 친구가 싸인을 부탁해 오다니. 뭐 더 원하는 건 있어?”

“아, 가능하다면 뭔가 노하우 한 두 개라도 좀 가르쳐주실 수 있을가요?”

전직 국대 선수와 정보 교환을 하는 등, 그런 식으로 일부러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여전히, 뭔가, 뭔가 조금··· 짜증났다.

“자, 자, 다들 집중! 저기, 라이브 카메라 온다고 하니까 다들 집중해라!”

그리고, 그건 라이브 카메라가 왔을 때 조금 더 심해졌다.

“네, 우리 청년 FC 라커룸을 가봤으니까 K리그 챌린지 선발팀의 라커룸도 당연히 가봐야겠죠. 먼저 우리 감독님과 선수들에게 궁금한 것들, 물어보려고 제가 직접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예, 하하, 안녕하세요.”

우리가 경기할 때는 하이라이트 영상도 편집 안 하더니. 이런 데에는 인력 쏟는구나.

‘그래, 당연한 거다.’

인기가 없으니까. 이런 취급이 당연하다.

“그러면 이어서 선수도 한 번 만나볼까요? 우리 또 미드필더 중원을 담당하고 있는 김재성 선수. 잠깐만 앞으로 나와주실까요. 오늘 경기 어떻게 예상하시나요. 자신 있으세요?”

“네, 뭐 자신 있고···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좋은 경기가 만들어진 만큼, 최선을 다해서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하는 치열했던 1, 2위 리그 경기에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고작 예능용 경기 하나에 더욱더 관심 가지고, 열광하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지상파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게.

당연한 거다. 인기가 없으니까.

“예, 그러면 여기 옆에 있는 선수는 몇 대 몇 예상하시나요?”

그러니까.

“옛날에 한국전쟁 끝나고 얼마 안 지났던 시절에 우리나라가 헝가리랑 붙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정도 점수 차가 나면 좋겠네요.”

우리가 아마추어들 상대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어··· 저기 얼마나 큰 점수 차였는지, 숫자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원망하진 말아라.

“9대 0. 예상합니다. 물론 저희가 9.”

프로와 아마추어의 실력 차가 무엇인지. 오늘 이 자리에서 똑똑히 보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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