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3)
“이 미친 자식! 이 미친 놈!”
“거기에서 땅볼 프리킥이라니, 너 제정신인 거냐! 하하.”
하아.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다.
‘도박수가 통했어.’
피온에서나 하던 짓이었는데. 진짜로 될 줄이야.
“미친 새끼, 심장 떨리는 줄 알았잖아!”
“아, 아파 임마! 넌 그만 때려!”
그렇게 서로 웃고, 웃으며 쏟아지는 난타 속에서 슬슬 내 등짝이 아려올 무렵.
-짝짝
다행히 감독님이 박수를 치며 우리를 제지했다.
“자, 자, 그만 때리고, 다들 주목!, 복명복창한다. 주목!”
““주목!””
“다들 알겠지만 이제 연장전이다. 모든 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지. 앞으로 추가시간까지 생각하면 약 35분.”
그 말을 하고, 잠시 감독님이 우리를 둘러보면서 말씀하셨다.
“고작 정규시간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이 짧은 시간 동안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나갈 때 지금처럼 웃는 게 아니라. 울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거다.”
그 말을 듣자, 나는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쓸쓸하게, 울상을 지으며 여기 홈 팀의 작별 인사를 받으며 가는 모습을 말이다.
‘으, 생각만 해도 별론데.’
모두 같은 생각을 떠올렸는지, 살짝 찡그린 표정을 지었고, 감독님은 우리들의 표정을 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여기 상무에서는 항상 강조하는 말이 있다. 수사불패의 군인 정신으로 승리를 쟁취하라는 말이지.”
수사불패(雖死不敗), 풀이하자면.
비록 죽을지언정 질 수는 없다는 뜻의 사자성어.
“비록 너희가 군대의 이런 소리를 싫어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지금만큼 이 말이 어울리는 때는 없는 것 같군. 너희들에게 묻고 싶다. 나갈 때, 어떤 모습으로 나가고 싶나!”
당연히,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웃는 얼굴로 나가고 싶습니다!””
그에 감독님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연장전에서, 죽을 각오로 뛸 준비는 되어 있나!”
““되어 있습니다아!!””
“좋아! 나가라! 나가서 승리를 쟁취하러 가자!”
-*-*-*-
[어, 상주 상무가 연장전 들어서 엄청 공격적으로 나오네요? 반면에 성남은 꽤나 수비적으로 나옵니다. 왜 이럴까요?]
캐스터가 질문을 던지자.
[그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성남은 지금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없어요.]
해설위원이 언제나 그렇듯 답변했다.
[지금, 성남은 아주 치열한 리그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금 K리그 클래식은 3위부터 9위까지의 승점 차이가 고작 5점이죠. 이 경기에 올인했다가 리그를 지기라도 하면? 단박에 하위권으로 추락해 버립니다.]
그리고, 하위스플릿으로 떨어질 경우, 강등 걱정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게 너무나도 큰 압박이었다.
그러나, 상주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반면, 상주는 뒷감당을 걱정할 필요가 별로 없습니다. 설령 이 경기를 이기고 리그 경기에서 패배한다고 해도 1위에요. 여기에서 체력을 아낄 필요가 없다는 거죠.]
내일을 보고 사는 놈들은, 오늘만 보고 사는 놈들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앞으로! 앞으로! 쭉쭉 나가자!”
“공격해! 계속 공격! 저 놈들”
그리고, 오늘만 살 각오로 뛰기 시작한 우리의 공격은, 얼마 안 가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이정현! 이정혀어언! 역전! 상주 상무의 역전 골입니다!]
[연장전 시작 10분만에! 골이 터집니다!]
2 : 1.
승리가 눈 앞에 아른거리고.
[아! 추가 골! 골입니다!]
[상주 상무의 8강 진출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3 : 1
이 스코어까지 오자, 우리는 서서히 승리를 확신했다.
그러나, 성남의 친구들도 만만치 않았다.
[아! 김두현 선수, 그림같은 슛! 골! 골입니다!]
[스코어 2대 3!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는 듯한 골입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기어이 저 선배가 내 수비를 벗겨내버리고 골을 넣은 거였다.
“끄, 죄송합니다. 선배님.”
“아냐, 지금까지 막아준 걸로도 충분하지. 수고 많았어. 이젠 내려와서 협력 수비 위주로 플레이하자.”
“예.”
[아, 이젠 상주 상무가 완전히 내려앉았네요?]
[저 리드를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긴 진형이네요.]
그렇게 땀이 주룩주룩 쏟아지는 순간이 몇 번이나 찾아왔을까.
“다들 집중! 마지막이다!”
“마크 잘 해!”
어느덧 성남의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었다.
‘젠장, 온 몸이 비명을 지른다.’
분명히 측정한 바에 의하면, 나의 체력은 프리미어 리그 수준이라고 하지만, 지금 들어서는 프리미어고 나발이고, 그냥 몸이 축축 쳐졌다.
‘버텨라, 다리야. 얼마 안 남았다.’
[아! 김두현, 크로스-!]
[곽선광이 헤딩으로 걷어냅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 루즈볼에서.
[아! 홍의조 선수! 공을 잡습니다!]
홍의조에게 볼이 가는 것을 본 순간 나는 온 힘의 몸을 쥐어짜냈다.
‘발로는, 못 막는다.’
지금 저 슈팅을 잘못 건드렸다간 오히려 잘못 휘면서 자살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홍의조, 슈팅!]
[아! 상무, 23번! 23번 이준혁 선수가 몸을 던져서! 막아냅니다! 그러면 휘슬, 휘슬은!]
삑! 삑! 삐이익-!
[경기 끝났습니다! 상주 상주가 4강에 진출합니다!]
***
<2015 하나은행 FA컵 8강>
성남 FC 2 : 3 상주 상무
[골]
성남 FC : 홍의조 - 66, 김두현 - 연장 후반 10
상주 상무 : 이준혁 - 90+1, 이정현 - 연장 전반 10, 임협상 -연장 전반 15
***
“으아악! 간다! 갔다고! 우리가 4강으로 간다!”
“으와아아아! 으와아! 으왁!”
모두들 제 정신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물병을 휘날렸고, 누군가는 재킷을 벗어던졌으며,
“이야아아아-!”
나는 고함을 질렀다.
누군가는 이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결승에 올라간 것도 아니고, 고작 4강 진출에 왜 이리 기뻐하냐고.
근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FA컵 4강부터는 정말로 소속팀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꽤 많단 말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모든 것을 잊고 감독님, 그리고 코칭스태프들과 얼싸안으며, 이 기쁨을 즐기기 시작했다.
“잘했다! 수고 많았어!”
물론.
“그만! 그만 뛰세요! 잘못하다간 부상당하겠습니다! 다들 모여서 기본적인 검사부터 받으세요!”
이렇게 초를 치는 인간도 있었지만 말이다.
“에이, 군의관님, 이럴 땐 기뻐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 행복해야 잘 낫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자! 얘들아! 모여라!”
“예!”
“어어, 어, 하지 마세요!”
하지만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인 법.
“자, 하나, 둘, 셋!”
““만세!””
“으아악!”
그렇게 실컷 초를 치던 군의관도 해치우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무렵.
“저기요, 이준혁 선수!”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날 부르는거지?’
팬이 난입했나? 싶어서 관중석 쪽을 둘러보던 도중.
“이준혁 선수!”
아무리 봐도 팬은 아닌 것 같은 사람이 나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응? 저는 왜 찾으시는 거죠?”
“이준혁 선수가 이번 FA컵 6라운드 MOR(Man of Round)최우수 선수로 뽑혔습니다. 이쪽으로 와 주실 수 있을까요?”
“···?”
네? 제가요?
.
.
.
.
.
“어, 어어, 이거 TV에 나가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첫 TV 인터뷰다 보니까, 어안이 벙벙해서 그런지 계속 말을 더듬더듬거리면서 카메라맨한테 끌려가고 있었는데.
-와, 준혁이 저 놈 봐라. 챌린지 촌놈 티 팍팍 내네.
-그러게요, 크크.
“······”
선배들의 비웃는 목소리 덕분에, 아~주 감사하게도 좀 제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덕분에 카메라 앞에 다가설 때는 조금 진정할 수 있었다.
“자, 이번 FA컵 6라운드 MOR로 뽑힌, 상주 상무의 이준혁 선수를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준혁 선수”
“네, 안녕하세요.”
그래도 역시 조금 떨리는 건 사실이었기에, 첫 질문으로 뭐가 나올지 걱정하던 도중.
“먼저, 이 질문을 안 할수 없겠죠. 오늘 경기의 MVP로 뽑혔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다행히, 무난한 질문이 나왔다.
“어, 일단 난생 첫 인터뷰 받게 되서 기분이 좋긴 한데. 저 말고 선배님들도 좋은 기량을 펼쳤어가지고 제가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하하, 너무 겸손하신 것 아닌가요? 동점골을 넣고, 성남의 핵심 키포인트인 김두현 선수를 잘 막았는데요.”
그 말에, 나는 잠시, 아주 잠시 말을 멈췄다.
그래, 분명히 오늘 난 누가 보더라도 잘 했다. 김두현 선수를 거의 꽁꽁 틀어막았고, 동점골을 뽑아낸, 공 수 양면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니까. 아마 인생 경기로 꼽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아뇨, 저 뿐만 아니라. 모든 팀원들이 잘 해줬기에 저는 이 승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축구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내가 고양에서라면, 이런 퍼포먼스를 낼 수 있었을까? 아니다.
내가 일단 의견을 내 놓아도 감독이 자신의 전술을 밀어붙였다가, 결국 내가 뚫리고 나면 왜 집중하지 못했다고 하던지 하면서 비난하고, 흐름을 기껏 만들어도 그렇게 큰 반향 없이 패배의 흐름에 몸을 맡겨버렸을 게 뻔하다.
그러나, 여기는 달랐다.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주는 감독님이 있었고, 승리의 흐름을 함께 타 줄 팀원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었던 거다.
“저는, 여기에 온 덕분에 이런 활약을 펼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고 생각하기에, 저의 모든 공을 함께 뛰어 준 다른 선수들에게 돌리고 싶습니다."
그러자, 기자는 김샜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내가 잘나서라는 자극적인 대답을 원했나 보다.
“이야- 아주 멋진 말이네요. 인터뷰 처음 해 보시는 거 맞아요? 아주 매끄러우신데요.”
그렇게 한 발짝 물러나며 나에게 금칠을 해 준 기자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오늘 경기에서 이기면서 상주 상무는 FA컵에 유일하게 남은 하부리그 팀이 되었습니다.”
“어, 울산 미포조선이 떨어졌나요?”
“예, 인천이 1대 0으로 신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서울과 울산이 올라왔죠.”
아, 그렇군, 그럼 다음 대진이 우리, 인천, 서울, 울산. 이렇게 되니까. 진짜 하부리그 팀이 우리밖에 안 남았네.
“유일한 하부리그 팀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나 만나봤으면 하는 팀이 있나요?”
“뭐, 글쎄요, 모든 팀들이 이왕이면 저희를 만나하고 싶지 않을까요?”
그리고 하고 싶은 말? 그거야 하나밖에 없지.
“다만, 상대가 누구든, 이겨서 2부리그 팀의 첫 FA컵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싶습니다.”
그래, 4강이다.
이제 전력상의 차이고 뭐고 다 떠나서, 그냥 운이 조금만 따르거나 운이 조금만 따라주지 않느냐의 차이가 더 큰 영역까지 온 거다.
“예, 아주 멋진 포부로군요, 그럼, 어느새 시간이 다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이걸 좀 묻고 싶네요. 첫 인터뷰라고 하셨죠?”
“예.”
“혹시 선수로서 앞으로의 포부, 그런 거 있을까요?”
포부? 포부라···
잠시 생각한 후, 나는 고개를 끄덕었다.
“있습니다.”
“오, 신인의 패기답군요! 뭔가요?”
음, 나 신인은 아닌데··· 역시 2부리그 선수라 나에 대해서 잘 모르나 보네?
뭐 어쨌든, 나에게 꿈이 있다면, 바로 이거다.
“저의 이름을.”
그래. 나의 이름을.
“이준혁이란 저의 이름을, 시간이 지나더라도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알아봐주는 그런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준혁, FA컵 6라운드 M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