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49/167)

나의 이름은 (2)

[아, 상주 상무가 4-3-3을 꺼내들었군요, 이거 참 색다른데요?]

[어떤 면에서 색다르다는 말씀이시죠?]

[상주 상무를 2부리그에서 봐 오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상주는 보통 4-4-2를 써왔습니다. 그리고, 그건 전남을 상대할 때도 그랬죠.]

그랬다. 지금까지 상주 상무는 상대팀이 어떤 전술을 쓰든, 거의 항상 4-4-2만을 써왔다. 상대팀이 자신들보다 강팀이든, 약팀이든 말이다.

[그런데, 지금 보시면 알겠지만, FA컵이랑 리그에서 아주 가끔씩만 보여준 4-3-3을 쓰고 있죠.]

[오, 그렇군요,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뭐, 당연히 김두현 선수를 막기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김두현.

비록 월드컵 본선에는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해서, 월드컵 경기만 챙겨보는 아주 라이트한 축구팬들에게 이름이 강하게 각인되진 못했지만.

K리그에서 제라드, 램파드급 활약을 펼치며 제라두현, 램파두현 등의 별명이 붙은, K리그 MVP출신.

그리고 그 외에도 프리미어리그 구단인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 소위 WBA로 이적해서 프리미어리그 출전 기록을 가지고 있고, 월드컵 예선전과 아시안컵 등에서는 꾸준히 기용되어 A매치 총 62경기 12득점의 기록을 올렸던 국가대표이자.

현재 34살의 나이를 먹고도 전반기에만 7골 5도움이라는, 개인 최다 공격포인트 경신에 팀 내 공격포인트 1위라는 노익장의 파워를 자랑하는 선수.

이 선수를 막기 위해서라는 게 해설위원의 생각이었다.

[그게 아니고선 상주가 굳이 익숙한 전술을 포기하면서까지 4-3-3을 사용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실제로 그랬다. 이틀 전, 박흥서 감독이 김두현을 제어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실험해본 결과, 이준혁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리고 4-3-3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생각한 거였다.

물론,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성남엔 홍의조 선수도 있지 않습니까?]

차세대 국가대표로 불리는, 그 스트라이커를 언급하는 캐스터의 그 말에, 해설위원은 고개를 저었다.

[홍의조 선수는 분명 좋은 선수지만, 올해 들어서야 잠재력이 터진 선수입니다, 아직 몸싸움 경합 같은 건 아직 연습이 더 필요하기도 하고, 기록만 봐도 홍의조 선수는 8골에 1도움으로 김두현 선수보단 훨씬 영향력이 낮습니다.]

그렇게 말한 해설위원은, 잠깐 숨을 삼킨 후에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렸다.

[결국, 오늘의 승패는 저기가 핵심입니다. 저 23번 선수가 김두현 선수를 잘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에 달려있어요. 만일 저기만 잘 막으면, 상주에 승산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

움찔거리는 오른발, 바라본 시선 왼쪽. 공 위치는 오른발 인사이드. 이 모든 걸 종합해 봤을 때- 내 오른쪽으로 드리블하려고 하신다.

‘스텝을 미리 밟으면서- 지금!’

[수비가 제대로 붙었습니다. 아주 정확한 예측 수비!]

좋아, 일단 1단계 통과했다.

‘하지만, 방심하면 아직 안 돼. 겨우 따라붙었을 뿐이니까.’

좋은 공격수라면. 드리블을 하면서도 수비수를 제치기 위해 끝없이 머리를 굴리고, 테크닉을 연습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저 선배는 국대,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도 쓸 만한 선택지가 있겠지.’

그래도 다행인 건, 공격수들이 이럴 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자체는 많지만, 경향은 어느정도 대부분 일치한다는 거다. 보통 공격수들이 수비수가 따라붙었을 때. 수비수들을 제치기 위해 하는 행위는-

‘오른발, 아웃프런트! 지금!’

그걸 보는 순간, 나는 왼발을 앞, 오른발을 뒤에 두고 스텝을 밟다가, 왼발을 뒤로 빼면서 자세를 반대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보았다. 김두현 선수가 표정을 찡그리는 것을.

[아! 김두현 선수, 수비수 등 쪽을 노리지만, 또 막힙니다!]

‘안 되죠, 안 됩니다. 선배님. 등 뒤만큼은 절대 안 내줄 겁니다.’

그래, 공격수가 드리블 할 때 가장 노리는 곳은, 바로 수비수의 등 뒤다. 사람인 이상, 등 뒤로 공이 지나가면, 눈에 보이질 않기 때문에 반응이 느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뭐, 나도 패스 줄 때 골대를 등지고 있는 친구한테는 웬만하면 패스 안 주려고 하니까 말이지.’

그래서, 수비수 입장에서는 그 무엇보다 등 뒤를 내주지 않는 스텝을 잘 밟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지금 난.

[아, 김두현 선수, 등 뒤를 노린 회심의 패스-!]

[아, 수비수 발 뒤를 뻗으면서 볼을 공중으로 튀어버립니다! 김배근 골키퍼, 가볍게 잡아냅니다!]

아직까진 등 뒤만큼은 어떻게든 안 내주면서 버티고 있었다.

“아흐···”

물론 갑자기 다리찢기를 하니 좀 다리가 아파오긴 했지만··· 어쨌든 막았다.

‘젠장, 국대 선수는 진짜 클래스가 다르구나. 지금까지 내가 상대한 상대 중에서, 그 누구와도 비교를 불허하네.’

물론 이렇게 막기 힘들다. 라는 느낌을 준 선수는 이전에도 있기야 있었다. 2부리그에서도 미친 컨디션의 외국인 선수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전남전에서 만난 광양 루니인가? 하는 그 친구도 아주 매서웠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조금 단조롭고 투박한 플레이도 몇 번 나오는, 소위 ‘가벼운 휴식’ 을 주는 타이밍이 몇 번 나왔는데.

저 선배는 그게 아니었다. 단순해 보이는 플레이 하나하나가 정말 예리했고,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팍 뚫렸다.

‘그래도 아직은, 아직은 괜찮다. 아직은 플레이가 단조로워서 잘 막아내고 있어. 저 쪽이 골문을 두드리지 못한다면 승리의 여신은 우리에게 손을 들어줄 거야.’

그만큼, 우리 쪽의 공격진은 강력했고, 난 우리 팀이 먼저 득점하리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우리에게 미소를 지어주지 않는 것이었을까.

우리 수비 쪽에서 먼저 사고가 터져버렸다.

삑! 삑! 삐이익-!

[아, 정선호 선수의 패스를 홍의조 선수가 잘 받아먹었습니다!]

[조금 우당탕탕, 어거지식으로 집어넣은 골이긴 했지만, 어떻게든 들어가면 된 거겠죠!]

***

<2015 하나은행 FA컵 8강전>

성남 FC 1 : 0 상주 상무

[골]

성남 FC : 홍의조 - 66

***

골이 들어가자, 경기장이 한참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랄랄랄랄라~ 랄라 랄랄랄랄라~ 랄랄랄랄라~ 랄라 랄랄랄랄라~ 오 홍의조 랄랄랄랄 랄랄라~ 폭~ 풍 간지~

그리고 우리 쪽의 몇 안 되는 원정 서포터들과 팀원들은 눈에 띄게 침울해졌다.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직감한 거였다.

‘빌어먹을. 이대로 포기할 순 없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FA컵 8강이다. 8강.

앞으로 닥치고 어떻게든 세 번만 더 이기면 우승이라는 거다.

그리고, 만일 이 경기를 이긴다면 다음에 우리의 상대가 될 팀은 울산 현태미포조선 아니면 인천 FC인데 울산 현태미포조선은 내셔널리그 팀이고, 인천은 K리그 팀이긴 한데 임금체불 논란 터져 있어서 솔직히 팀 분위기가 좋은 편이 아니다.

이 소리는. 성남전만 어떻게든 넘기면, 진짜로 결승까지 다이렉트로 통과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일까. 골대에 공이 들어가자마자. 나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감독님에게 다가갔다.

“감독님. 저희, 이렇게 된 이상 공세적으로 나가게 해 주시면 안 됩니까?”

그 말에 감독님은 조금 놀란 눈치로 날 쳐다봤다.

“너무 급한 거 아닌가? 아직 시간 좀 남아 있고, 한 골 차이에 불과하네. 자네가 지금처럼 김두현을 잘 막으면 역전은 얼마든지 가능하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감독님, 지금까지 제가 잘 막은 건, 솔직히 김두현 선수가 자신이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었던 걸 이용한 것 덕분입니다.”

부끄럽지만, 사실이었다. 내가 수비력이 좋아진 것도 사실이고, 지금까지 잘 수행해 오긴 했지만. 그런 약점이 없었다면 나 혼자만으론 잘 막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이미 한 골을 먹힌 이상, 김두현 선수는 훨씬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고, 그러면 제 수비력만으론 역부족입니다.”

이렇게 한 골을 먹힌 이상 김두현 선수의 선택지는 훨씬 넓어진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서 여유롭게 볼 전개에 참가할 수 있고, 만일 내가 거기까지 나가면?

몇 번은 버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슬슬 이제 경기가 후반 25분이다. 물론 아직 뛸 체력이 없는 건 아니어도 어쩔 수 없이 체력이 슬슬 떨어지는 타이밍이란 말이다.

그리고, 체력이 떨어지는 순간, 집중력은 떨어지기 마련이고 자연스레 수비력은 감소하게 된다. 그걸 감안하면··· 솔직히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긴 힘들었다.

“어차피 1대 0으로 지나, 2대 0으로 지나, 똑같이 지는 토너먼트입니다. 감독님, 여기에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그러자, 감독님은 잠시 고민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정현! 교체다.”

“예!”

“그리고, 이준혁, 전달해라. 지금부터 모든 선수들에게 라인을 올리라고.”

-*-*-*-

-터엉-!

[아, 성남, 또 걷어냅니다! 지독하게 골문을 열질 않고 있군요!]

[박 감독의 승부수가 이대로 별 효력 없이 끝나버리는 걸까요? 추가시간 3분이 주어졌지만, 아직도 성남의 골문은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젠장, 젠장, 젠장.

‘이렇게 끝날 수는 없어. 이렇게 끝날 수는 없다고.’

프로의 인생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는 기회는 정말, 정말 흔치 않다. 우승이란 건, 정말로 선택받은 시기에, 선택받은 강팀조차 약간의 행운이 따라주어야만 따라오는 놈이란 말이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내가 만날 수 있는 최고의 강팀과 대진운이 까지 따라준 대회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 버린다고?

‘안 돼, 안 된다고.’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

[아, 상주 상무, 뒤에 있던 선수들이 다시 볼 소유권을 가져옵니다!]

‘제발, 받아 주세요, 임 선배!’

[미드필더에서, 대지를 가르는 패스!]

[아, 그러나 장학영 선수, 파울로 끓습니다!

‘아, 망할.’

[직접 프리킥이 주어집니다. 남은 시간 2분! 사실상 이번 프리킥이, 상주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들은 하나같이 외쳤다.

“다 올라와! 다 올라와!”

“야! 골키퍼 빼고 다 올라와! 올라오라고!”

어차피 거의 마지막 공격이 될 확률이 높았던 만큼, 전원이 올라온 것이었다.

그렇게 다들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다 얘들아, 지금 난 못 찰것 같다.”

프리키커인 이형 선배가 머뭇거렸다.

“네?”

“나 지금 오른발 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야.”

그 말에, 모든 선수들의 표정이 싸해졌다. 마지막 공격이 허무하게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아- 어쩔 수 없지. 그러면 누가 오른쪽 프리킥 차냐? 기승이도 없고 다음 선수 누구야?”

“기승 선배 없고, 이형 선배 못 차고, 그럼 임 선배님?”

"아냐, 오른쪽 프리킥은 내가 순번 좀 뒤야."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준혁아, 나와라.”

내 발에 4강 진출이 달렸다는 것을 말이다.

.

.

.

.

.

[아? 이거 놀라운데요? 이형 선수가 아니라, 23번 이준혁 선수가 프리킥을 준비하는 눈치입니다.]

[아, 아무래도 부상 같네요. 아까 경합에서 살짝 무리가 간 모양입니다.]

‘지금, 이 한 방에 모든 게 걸려 있는 거라는 거지?’

내가 잘 넣으면, 진출.

내가 못 넣으면, 탈락

이 잔인한 러시안룰렛에.

[아, 마지막 기회에서 경험이 부족한 선수가 프리킥을 차다니, 상주 상무, 많이 아쉬울 것 같습니다.]

[긴장감이 엄청나겠는데요, 저 선수?]

그냥, 웃음이 나왔다. 방금 전에는 간절한 마음이었는데, 그냥 침착해졌다.

‘참, 단순하네. 씨이-발. 큭큭.’

그래, 차라리 이게 낫다. 어떻게 결과가 나오든, 내가 성공과 실패를 모두 책임지는 상황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자,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해질 수 있었다.

‘자, 그럼, 여기에서 가장 확률이 높은 건 뭘까.’

정현이 위로 주는 거? 정석이지만, 너무 뻔하다.

그렇다고 다이렉트 슈팅 노리는 거? 글쎄. 빗나갈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프리킥이란 건, 확률이 생각보다 매우 낮은 세트피스라서 말이지.

‘뭘 선택하든 실패의 확률이 높아 보이는데···’

그렇게 고민되는 가운데. 정말, 정말 문득 미친 생각이 하나 들었다.

성공의 확률이 낮은 건 아니지만. 일반적인 프리킥은 아니라서 실패한다면, 그냥 오만가지 욕을 다 들어쳐먹을 수 있고, 공격권도 완전 빼앗겨버릴 확률이 거의 100%인 프리킥. 그런 프리킥이 떠오른 거였다.

‘이거, 해도 괜찮은 걸까?’

그렇게 고민하는 순간. 내가 방금 감독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차피 1대 0으로 지나, 2대 0으로 지나, 똑같이 지는 토너먼트입니다. 감독님, 여기에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하, 젠장, 그래, 욕 먹는게 두려우면, 애초에 그런 소리를 하지 말았어야겠지?’

그런 생각과 함께.

[이준혁, 슛-!]

-뻐엉-!

나는, 망설임없이 주사위를 던졌다.

.

.

.

.

.

삑-! 삑! 삐이익-!

[들어갔어요! 들어갔습니다! 이준혁 선수, 엄청난 도박에 성공합니다!]

[땅볼 프리킥이라뇨! 올해 처음 프리킥을 차는 선수가 이런 배짱을 부리다니, 기가 막히는군요!]

[이 경기는, 연장전으로 흘러갑니다!]

***

<2015 하나은행 FA컵 8강전>

[후반 종료]

성남 FC 1 : 1 상주 상무

[골]

성남 FC : 홍의조 66

상주 상무 : 이준혁 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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