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 (48/167)

나의 이름은 (1)

가끔씩 느끼는 건데. 세상은 참 좁다.

-딱!

“진수야, 여기다.”

내 대학 1년 후배가 성남 2군에 있을 줄이야.

“이야- 형님, 오랜만입니다. 이게 몇년만이죠?

“글쎄, 전화는 가끔 했지만, 실제로 보는 건 니가 대학교 졸업하고 처음 보는 거니까. 한 2년만 아니냐? 아주머니, 여기 고기 10인분 주세요!”

그렇게 고기를 먹기 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너 전역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성남으로 가 있었구나.”

“하하, 그 때 안 와주셔서 좀 섭섭했습니다. 형님.”

“미안미안, 그 때 내가 좀 정신이 없었다. 성적 꼴아박고 있을 때라. 사과의 의미로, 고기 내가 구어줄 테니, 먹자.”

그러자, 이 녀석이 숫제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다가왔다.

“음, 형님, 이거 전력 알아오라는 지시죠? 먹어도 되는 거 맞아요?”

그 순간, 나는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야, 2군인 너한테서 뭔 귀중한 정보가 나오겠냐?”

애초에 이번엔 전력 빼먹으려고 오기보단 선배로서 2군에 니가 있다는 소문 듣고 한번 고기도 사줄 겸 연락해서 나온 거란 말이다.

“그냥 편하게, 먹어, 편하게.”

“알겠습니다. 선배님. 잘 먹겠습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후배의 걱정을 달래주고, 일단 5인분을 작살내고 나서야. 슬슬 먹는 속도가 처음에 비해서는 여유가 생기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래, K3팀에 있다가 성남 2군으로 오니까. 지낼 만하냐?”

“옙, 솔직히 들어올 땐 작년에 말 많아서 걱정했는데, 다행이에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걱정할 만하기도 했겠다.’

성남은 리그 우승 휫수가 단독 1위인, K리그의 전통적인 명문이다.

그러나, 후원하는 곳에서 구단을 버려버려서 작년에 시민구단으로 전환된 후엔, 임금 미지급되서 선수가 고소하고 그러는 팀으로 바뀌면서 완전히 추락해버렸던 팀이었는데.

“나름 연봉도 꼬박꼬박 안 미루고 잘 지급되고 있고, 팀 분위기도 최소한 지금은 좋거든요.”

올해는 시에서 지원을 그래도 어느 정도 해 주면서. 성남의 전성기 시절을 함께한 김악범 감독과 김두현 선수의 복귀, 그리고 올해 포텐이 터지면서 차세대 국가대표 스트라이커로 주목받기 시작한 홍의조까지.

이런 선수들의 분전으로 인해, 현재 성남은 시즌 전 하위권을 전전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달리 아시안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충분히 노려볼 만한 위치에 올라온, 조금 부족하긴 해도 ‘정상적인’ 팀으로 성공했다.

“축하할 일이네, 잘 해서 꼭 주전 먹어라.”

“하하, 감사합니다 형님, 사실 성남이 워낙에 작년에 말이 많았어가지고 그 청년 FC라는 데에 참가할까 생각도 했는데···”

그 말을 듣고, 나는 조금 놀랐다.

“어, 청년 FC? 그 저저번주부터 시작한 그 예능?”

“예, 그거요. 형님도 그거 보셨군요?”

“아, 당연하지, 솔직히 그거 관심 없을 축구 관계자가 더 적을걸.”

청년 FC.

안정훈, 이을영, 이운제 선수를 비롯한. 2002년 월드컵의 전설들이 모여서, ‘축구판 미생’ 들을 키워낸다고 말하는, 그 예능.

개인적으로, 그런 식의 예능 프로는 솔직히 나 자체가 미생의 위기를 계속 겪었기에 굉장히 반갑게 생각했는데. 내 후배가 거기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니. 여러모로 재미있게 느껴졌었다.

“이야, 너 좀 아까울 수도 있겠다? 하늘같은 대선배님들한테 배울 기회를 놓치다니.”

내가 그렇게 말하자, 후배 녀석이 조금 쓰게 웃었다.

“아뇨, 지금 생각해 보면 잘 된 거였어요. 형 저번 주 못 봤어요?”

“응? 저번 주에 뭐 있었어? 나 대충 봐서 잘 몰라.”

내가 그렇게 묻자, 후배 녀석이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는데.

“저번 화 보셨어요? 저번 화에 걔네들 신체 테스트 했는데, 체지방 20% 넘는 놈들이 꽤 된다고 하잖아요. 그런 놈들이 모인 곳에서 뭘 배우겠어요.”

그 말을 듣을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20%? 아니, 농담하는 거지?”

“아뇨, 거기에서 팀 닥터가 지나가듯이 말했어요. 20% 넘는 얘들이 수두룩하다고.”

“···하, 하··· 하하하.”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축구 선수’로서 ‘정상적’ 인 체지방 수준은 8~11% 수준이다. 그리고, 일반인 중에서 몸 괜찮다. 싶으면 15% 언저리가 나온다.

그런데 체지방률이 20%라면, 진짜 평균적인 일반 남성의 체지방 수준이다. 이게 뭔 소리냐고? 식단 관리 하나도 안 하고, 운동을 쉬엄쉬엄 해도, 그냥 알아서 맞춰지는 수준이라는 거다.

“하, 미친, 뭐냐? 걔네, 진짜 간절한 거 맞아? 그 뭐냐, 공개 테스트 하기 전에 한 달 정도 몸 만들 시간도 있었고, 공개 테스트 이후에도 시간 좀 줬을 꺼 아냐.”

“몰라요, 지들 딴에는 그 정도면 간절하다고 생각하는 거겠죠.”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축구를 포기했다고 해도, 정말로 간절하다면, 그들이 진심으로 간절했다면 최소한 몸 상태만큼은 일반인 중에서 좋은 수준인 10퍼 중반대까진 끌어올렸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 예능은, 예능이라는 거구나.’

젠장, 뭔가 기분이 더러워졌다.

“그래, 너 행운이었네. 성남 2군 들어간 거 뒤늦게나마 축하한다. 고기는? 더 먹을래?”

“쏴 주시면야 감사하죠.”

“아주머니-! 여기 2인분 추가요!”

“어익후, 감사합니다 행님, 그럼 흠흠, 고깃값 조금이라도 하게, 그나마 알고 있는 정보라도 풀어드리겠습니다.”

-*-*-*-

“그러니까, 여러 가지 방면으로 모은 정보를 종합해 보면, 성남이 그냥 풀 전력으로 4-2-3-1 때리겠다는 게 정설이다, 이건가?”

“예, 종합해보면 그렇습니다.”

“에잉, 작년에 FA컵 우승했으니 올해는 그냥 리그에나 집중해줄 것이지. 귀찮아졌군.”

3위랑 승점이 고작 1점 차이로 5위라서 리그에 집중하지 않을까- 했는데, 아무래도 FA컵에 진심으로 달려들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투덜거린 감독은, 변수가 될 수 있는 사항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 예보는 날씨가 어떻다고 하지?”

“신선한 날씨라고 합니다.”

“쯥, 날씨도 우릴 안 들어주는구만. 이왕이면 날씨가 후덥지근해야 좋은데 말이지.”

보통은 후덥지근한 날씨를 좋아하지 않는 감독이었지만, 감독이 이러는 이유가 있었다.

“그렇죠. 선수들이 쉽게 지칠수록 우리한테 유리할 테니까요.”

바로, 성남이라는 팀은, 현재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는 팀인 만큼, 스쿼드가 그리 두텁지 않았고, 그만큼 주전 선수들이 지쳐 있다는 점이었다.

뭐, 잠깐 휴식기를 가지기는 했지만, 애초에 시즌의 피로는 잠깐 쉰다고 해서 다 풀리는 게 아니다. 게다가 성남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홍의조와 김두현이 올스타전에 나가느라 제대로 쉬지 못했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무조건, 무조건 날씨가 후덥지근할수록 좋았던 것이었다.

물론.

“정현이는 어떤가?”

“많이 지쳐있는 상황입니다. 솔직히, 휴식이 필요합니다.”

여기 상무에도 마찬가지로 혹사당하는 선수가 있긴 했다. 그래도.

“쯥, 어쩔 수 없나. 정현이는 선발 명단에선 빼야겠군. 나머지는?”

“모두 괜찮습니다.”

“그나마 그건 다행이군.”

상주는 선수층 자체가 워낙 두터운 편이라서 아직은 그 국가대표 친구를 제외하고는 완벽하게 혹사당하는 선수는 없다는 것이 달랐다.

“하여튼, 이러면 요행은 바랄 수 없겠군, 모두 베스트로 붙는 셈이니. 그럼 회의를 시작하지, 지금 우리가 파고들어야 하는 성남의 약점은 무어라고 생각하나?”

그 말에, 바로 대답이 나왔다.

“역시 공격 아니겠습니까? 성남의 공격은, 수비에 비하면 약한 편이니까요.”

“그래, 성남의 공격은, 김두현, 이 친구의 발끝과, 홍의조. 이 둘이 사실상 먹여살리다시피 하고 있지. 그건 나도 알고 있네.”

그러나.

“문제는, 이 둘을 어떻게 막느냐는 걸세. 알다시피, 우리의 수비는 K리그 챌린지에서도 엄청나게 좋은 수준은 아니지 않나.”

그걸 안다고 막을 수 있느냐는, 조금 다른 문제였다.

막말로 메시가 잘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고, 다들 메시를 막기 위해 노력하지만 다들 메시에게 털리지 않던가.

“게다가 우리의 포메이션은 4-4-2가 주 포메이션인데, 주 포메이션끼리 붙게 되면 김두현, 그 친구를 집중마크할 친구가 없어.”

4-2-3-1과 4-4-2가 싸우게 되면, 결국 이 공격형 미드필더를 잘 제어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싸움인데. 솔직히 감독은 매치업하는 미드필더를 두지 않고서 그를 잘 막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4-3-3을 쓴다? 그렇게 되면 그나마 나아지긴 하겠지만, 문제는 수비형 미드필더에 넣어줄만한 녀석이 없었다. 물론 활동량 괜찮고 수비 그럭저럭 하는 미드필더야 있었지만.

‘김두현 그 친구를 막을 정도로 수비 잘 하는 친구는 없기도 하고, 4-3-3의 수비형 미드필더는, 수비도 수비지만, 볼 전개를 할 줄 모르면 안 된단 말이지.’

수비도 어느정도 하고, 미드필더이기도 하며, 볼 전개를 어느 정도 해 줄수 있는 그런 미드필더만 있으면 참 좋을 텐···

‘가만?’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김 코치?”

“예!”

“내일 선수들, 가능한 한 일찍 모아주게. 한번 실험해보고 싶은 게 있네.”

***

2015년 7월 22일 수요일 19:30, 탄천종합운동장.

<2015 하나은행 FA컵 8강>

<경기 시작 전>

성남 FC 0 : 0 상주 상무

***

~랄라라라 랄랄랄랄라~ 나~의 성남

~랄라라라 랄랄랄랄라~ 나~의 성남

“와, 엄청나네.”

슬슬 8강전이라고, 엄청 사람들 많이 모였다.

‘이 정도면, 내가 지금까지 뛴 경기 중에선 거의 역대급으로 많이 모인 거 같은데.’

한 5천명은 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이 정도면 내가 작년에 대전 원정 갔을 때보다 더 많이 모였다.

‘게다가 여긴 경기장 자체가 큰 편이 아니라서 그런가, 분위기가 그 때보다 훨씬 좋다.’

-짝! 짝! 짝! 짝! 성! 남!

-짝! 짝! 짝! 짝! 성! 남!

한 4만인가 5만인가 되는 경기장에 5천 명 채워진 것과, 한 2만도 안 되어보이는 경기장에 5천 명이 채워진 건, 당연히 차원이 다르기야 하지만, 실제로 경험해 보니 확실히 새로운 맛이다.

그렇게 내가 몰려든 사람들 보고 이리저리 고개를 까닥거리다 보니. 태준이가 옆에서 탁 쳐왔다.

“야, 정신 차려 챌린지 촌놈, 이 정도 가지고 깜짝 놀라면 안 된다.”

“응, 응.”

“···너 혹시, 겁 먹은 거 아니지?”

그 말을 듣고는, 나는 대충 대답하던 자세를 고치고, 좀 진지하게 대답해줬다.

“겁 먹기는 누가 겁 먹었다고 그래? 임마.”

진짜로 겁 안 먹었다. 오히려.

“좋아서 미쳐버릴 것 같은데.”

비록 우리 적 팀의 팬으로 가득찼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보아라.

- 알레 성남- 승리를 향해 달리고↘- 승리를 향해 달리고↘ 승리를 행해 달리고↗ 오↗ 오↗~

-사랑한다↗ 상↗주↘ 사랑한다 상↗주↘ 내 가슴속에 - 영원히남을- 사랑이되어↗라~

이만큼이나 많은 분들이 우리의 경기를 보러 와 줬다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좋은 일인가.

“오늘, 멋진 경기 보여주자고.”

그렇게 말하자, 태준이 녀석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 난 또 니가 올해 처음 잡아보는 포지션이라서 얼어붙은 줄 알았더니, 아니었구만?”

“그렇다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그니까 니 할일이나 잘 하셔.”

“오케이, 잘 막고, 패스 잘 뿌려라- 오늘은 진짜 니 역할이 중요하니까.”

그래, 오늘, 나는.

삐이익-!

[경기 시작됐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섰다.

무려, A매치 62회 출전에 빛나는, 김두현 선수를 막는 포지션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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