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렇게 화해하고 돌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예상 외의 문제가 하나 생겼다.
“아버지.”
“왜.”
“제발 먹을 때 식탁 매트 좀 써 주시면 안 될까요?”
“싫다.”
“······”
하, 미치겠네.
“아니, 이거 쓰는 게 식탁 닦기에도 좋고, 정리하기도 더 편하다니까요?”
“행주로 닦으면 된다.”
그 말에, 나는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했던 말을 또 해야 했다.
“아니, 행주 관리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아시잖아요.”
행주가 얼마나 관리하기 귀찮은 녀석인지 자취하는 사람들은 안다. 솔직히 이틀에서 사흘에 한 번씩은 뜨거운 물로 삶아서 쓰지 않는 이상, 행주는 전혀 위생적이지 않다. 관리 잘못하면 걸레냄새 나거든.
그래서 그냥 설거지할 때 같이 닦아도 되는 실리콘 식탁 매트를 추천한 건데.
“지금까지 이렇게 잘 살아왔는데 왜 굳이 바꿔야 하느냐?”
하는 소리가 들어온 거였다.
아니, 왜 굳이 일을 늘리는 건데요. 좀 줄입시다. 좀!
그 외에도 뭐 사소하게 방 청소같은 거에서부터 사사건건 약간의 차이가 생기면서, 살짝살짝 말다툼이 생길 때도 있었다.
‘에휴, 뭐, 그래, 이게 사람이지.’
모든 게 좋을 수는 없고,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 법이다.
그래도.
“준혁아, 일어나라, 계란찜 끓였다.”
“예, 아버지.”
누군가가 나를 위해 밥을 차려주고.
“오늘 들어가지?”
“예.”
“내가 태워다 주마.”
“예, 감사합니다 아버지.”
누군가가 나를 위해 신경써준다는 감정을 오롯이 느끼는 것에 비하면. 참 사소한 일이었다.
-까똑!
“아, 잠깐만요.”
-(사진)
-차두리 선배님이랑 찍은 사진입니다 형님, ㅋㅋ. 부럽죠?
‘와 씨. 겁나 부럽네.’
그걸 본 내가 갑자기 멍 때리자, 아버지가 날 의아한 얼굴로 바라봤다.
“무슨 일이냐?”
“아니, 제가 아는 놈이 차두리 선수랑 오늘 경기 같이 뛴다고 자랑해서요.”
그렇게 말하자, 아버지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오늘은 경기 없지 않느냐? 경기 있는데 휴가 나온 거야?”
아. 아버지는 잘 모르시는군.
“아니, 그게 아니라, 오늘 올스타전 하거든요.”
“올스타전?, 아. 그러고 보니까 K리그에서도 야구 따라해서 올스타전 하지?”
“······”
그 말에 나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프로야구 올스타전은 리그 창단과 동시에 열렸지만, K리그 올스타전은 90년대에 들어서야 만들어졌으니.
“그런데 네가 아는 친구 중에서 이번 올스타전에 뽑힐 정도로 잘 하는 친구가 있었느냐? 아니, 한 명 있긴 하지만, 그 친구는 내가 알기론 중국에서 뛰고 있을 텐데.”
···뭐 그건 그렇다. 내가 아는 친구들 중에서 올스타에 뽑힐만한 실력 가진 놈은 영건이밖에 없긴 한데. 걘 지금 중국에서 뛰고 있으니까.
“대부분이 K리그 선수이긴 한데, 이번에 챌린지에서도 세 명은 올스타전 출전하거든요.”
우리나라 K리그의 올스타전 자체가 KBO에서 본 따온 만큼, 우리나라 K리그의 올스타전 선수 선발은 , KBO와 거의 비슷하다.
첫 번째는, 인기투표에서 순위권 안에 드는 거.
두 번째는, 감독 추천 받는 거.
그리고, 두 번째 방식 덕분에 이번에 챌린지에서 세 명이 뽑혔다.
“아, 맞다. 슈틸리케가 이번에 올스타 감독하지? 그럼 상무 팀에 있는 이정현이가 뽑혔겠구나. 그 친구가 너한테 카톡 보낸 거냐?”
“···아뇨, 두명 더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보낸 겁니다. 아버지도 직접 보신 친구입니다. 그 친구.”
그 말에 아버지는 살짝 놀란 눈치였다.
“응? 내가 아는 네 친구 중에서 저기에 나갈만한 녀석은 없을 텐데? 어디에서 만났을 거란 소리냐?”
그 말에 나는 살짝 망설이다가. 답했다.
“전 직장 동료 중 한 명입니다. 지나가다가 보셨을 거에요.”
···상 당했을 때, 팀 선수들이 모두 찾아왔었으니, 당연히 보실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현재 19경기 16득점 2도움으로 K리그 챌린지 공격포인트 및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어서, 슬슬 K리그 팬들한테까지 유명해진.
슬슬 거물 대우를 받기 시작한 내 전(前) 백업 미드필더, 주민구가 이번 2015 K리그 올스타전에 뽑혔다.
-*-*-*-
[슛-! 골~ 들어갑니다. 주민구! 팀 최강희, 바로 동점골을 뽑아냅니다!]
[아, 슈틸리케 감독이 박스 안에서의 움직임이 상당히 날카롭다는 평을 내린 선수답게 단 한번의 찬스를 여지없이 골로 만들어 버립니다! 골 결정력만큼은 이 선수, 정말 인정해줘야 될 것 같습니다.]
“그 친구가 골 넣은 거냐?”
“예, 그렇네요.”
“참, 대단한 친구구나. 고작 반년만에 저렇게 달라졌다고 했지?”
“예···”
참 대단한 놈이다.
‘마치 소설 속 주인공같단 말이지.’
2부리거 약팀 백업 미드필더에 불과했던 내가 알고 보니 한국 최강 공격수? 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쓸 생각이 있다면 이 녀석 모티브로 삼으면 딱 좋을 것 같은 녀석이다.
[아, 2대 2 동점골을 만들어낸 주민구가 차두리를 부릅니다!]
[뭘 하려는 걸까요···? 아, 차두리 선수를 헹가레 치는 팀 최강희 선수들입니다!]
[하하, 보기 좋은 장면이네요. 마지막 올스타전을 잘~ 좀 보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저렇게 한국축구의 레전드를 대우하고 배려해주는 모습까지, 보면. 참. 준비된 스타같다.
‘나와는 다르게, 말이지.’
그렇게 내가 조수석에 앉아서 하염없이 DMB를 쳐다보자. 아버지가 운전하시다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준혁아. 부럽더냐?”
“네?”
“부럽냐고 물었다.”
그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네··· 부럽긴 부럽네요.”
솔직히, 왜 안 부럽겠는가. 물론 나도 발전한 게 맞고, 느끼고 있긴 하지만, 사람인 이상 안 부러울 수가 없다.
그런 내 말에, 아버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부러울 거 없다. 너도 할 수 있어. 너도 성장하고 있지 않느냐.”
그래, 내가 좀 늘어난 건 맞다. 하지만···
“하지만. 저는 이제 20대 중반, 아니 후반이잖아요. 솔직히. 저기까지, 혹은 그 이상까지 간다고 상상하긴 좀 힘드네요.”
성장을 해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 내 말에, 아버지는 웃으면서 말했다.
“준혁아, 네 나이는, 아직 어린 나이다. 음··· 너 야구 아직 조금 알지?”
“예, 알죠. 유치원 시절에 아버지 경기하는 모습 보겠다고 야구장에 몇 번 갔었으니까.”
뭐, 아버지가 은퇴한 이후론 거의 안 갔고. 그래서 요즘 선수들은 거의 모르지만 그래도 나름 룰이나 그런 건 안다는 거다. 룰로는 보크가 뭔지, 낫아웃이 뭔지 알 정도는 되고, 어느 정도 성적이면 괜찮은 선수인지도 안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구나. 여기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 주마. 우리나라 야구에 말이지. 어떤 한 선수가 있었다. 이 선수는 프로 4년차까지, 타율 2할, 출루율 2할 5푼, 장타율 3할 언저리의 타자였어.”
그 말에 나는 대충 다음 내용을 예상했다.
‘뭐 2군 선수가 대충 기회 못 받다가 주전 먹었나 보네.’
미안하지만. 그 정도라면 내가 별로 공감하진 못할 것 같다. 그런 일이라면 꽤 흔하기도 하고, 나도 하위권 팀에서 주전 먹는 정도는 가시권에 있는 듯하니.
그러나, 다음 말을 듣을 땐, 나도 좀 놀랐다.
“기회를 못 받은 것도 아니야. 700타석이 넘는 기회를 받았거든.”
그 말을 들은 나는 입을 쩍 벌렸다.
‘미친, 그거 뭐 하는 친구야?’
저건 좀 충격적이다. 솔직히 700타석이면 표본이 적은 것도 아니고, 저건 축구로 따지면 스트라이커가 1군 경기를 50에서 60경기를 뛰었는데 3~4골 박은 거에 가깝다.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던, 긁어본 복권이란 말이다.
“그리고 그 친구, 지금 어떻게 됐는지 아느냐?”
“···뭐, FA 대박 터뜨렸나 보죠?”
그 정도는 되니까 아버지가 말했겠지.
그러나, 아버지의 말은 이번에도 내 예상을 빗나갔다.
“2년 연속 홈런왕에 리그 MVP 찍고 메이저리그 진출 이야기로 기사가 도배됐지.”
“······”
이 쯤 되자, 헛웃음이 나왔다.
“그거, 옛날 이야기죠? 제가 태어나기 이전? 아니면 제가 유치원 다니던 시절?”
아버지가 활동하시던 시절, 과거라면 그럴 수 있다. 아직 우리나라 스포츠가 프로들이라고 하기에 미숙했던 시기니까 말이다.
“아니, 최근 이야기다. 현재진행형이야. 야구 기사 보면 알 수 있을 거다.”
그 말을 듣고, 믿기지가 않아서 한 10년만에 야구 기사를 들어가봤더니, 딱 눈에 들어오는 선수가 있었다.
“···그 선수 이름, 박병호, 맞죠?”
“그래. 86년생에, 12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선수로서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지.”
“······”
그 말까지 하고 나서 아버지는 다시 운전에 집중하셨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올해가 15년이고, 나는 89년생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하. 하하.’
진짜, 나이가 변명거리가 안 되는구나. 나는 그래도 프로에서 나쁜 성적은 아니었으니.
-끼이익.
“자, 도착했구나. 빠뜨린 건 없지?”
“···예, 없습니다.”
“그럼, 헤어지기 전에, 우리 아들 한 번 안아보자.”
-툭툭.
“준혁아, 사람 앞일이란 모르는 거다. 네가 성장하기 시작한 이상. 성장의 끝은 남이 정하는 게 아니야.”
“······”
“너의 마음가짐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법이란다. 난 우리 아들을 믿는다.”
그 말에, 잠시 눈에 뭔가가 맺힐 뻔 했지만, 간신히 삼켜내고, 답변했다.
“···예,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낼께요.”
“그래. 힘내거라.”
-*-*-*-
-벌컥.
-골 들어갔어요! 말씀드리는 순간, 홍의조 선수. 마지막 골을 넣으면서 팀 슈틸리케가 승리를 가져갑니다!
“아, 준혁이 왔냐.”
“어, 지금 막 경기 끝났냐?”
“응, 팀 슈틸리케가 이겼다. 하아, 개 부럽다. 개 부러워. 나도 저기에서 뛰고 싶다아-”
그런 태준이를 바라보다가,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뭐, 한번 내년에, 내년에 노려 보자.”
그렇게 내가 말하자. 태준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 왜?”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냐. 태준아.
“내가 아는 준혁이는 이런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놈이 아닌데? 뭐 잘못 먹었냐?”
태준이의 그 말에, 평소라면 꽤심죄를 부여했겠지만. 이번엔 가만히 참아줬다.
‘뭐, 내가 좀 부정적인 마인드 가지는 건 사실이니.’
그렇게 가만히 웃으면서 짐을 풀자.
“악! ”
태준이 녀석이 등을 찰싹- 쳐 왔다.
“야, 이 새꺄, 너 뒤질래?”
“음, 이런 건 정상인 걸 보면 분명 뭘 잘못 먹은 건 아닌 것 같은데.”
“······”
아무래도 참교육을 시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손을 들어올리려는 찰나.
“헤어질 땐 죽상이라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일이 잘 풀렸나 보구나?”
힘이 빠져버렸다.
“그거 기억하고 있었냐?”
“당연하지, 난 센치한 남자라고.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그 말을 하고 난 후, 태준이는 내 손을 쳐다봤다.
“설마, 걱정해준 친구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그런 친구는 아니겠지, 이준혁?”
“······”
···슬그머니 손을 내린 나를 보고, 태준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 속 쉬원- 하다. 이걸로 4드론의 원한은 갚았다. 이 녀석아.”
“···미친,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냐?”
“원래 프로는 기억력이 좋고, 쪼잔해야 하는 법이니라.”
그 말을 하면서 낄낄거리던 태준이는, 나한테 한 마디 던졌다.
“뭐, 어쨋든 표정 좋아졌으니 다행이네, 그럼, 목요일 경기 준비는 됐어?”
그 말에, 나는 픽 웃으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래. 준비 됐다.”
목요일 경기라면, FA컵 8강전, 성남과의 경기.
방금 올스타전에 뽑혀서 골을 넣은, K리그 득점순위 3위의 홍의조 선수가 있는 팀이다.
평소라면, 조금 걱정했겠지만.
‘지금의 나에게, 한계를 두지 말라고 하셨지.’
그러니 밖으로 이렇게 말을 꺼내서라도, 조금씩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자.
“자신 있어.”
내가, 더 성장하리라 믿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