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있었던 일. (1)
2015년 7월 13일.
-삑, 삑, 삐이익-!
[오늘 밤 부천이 강원을 잡으면서, 22라운드 마지막 매치는 부천이 가져갔고, 부천이 6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이 소리는.
[이로서 K리그에 이어, K리그 챌린지까지 22라운드를 진행하면서 모든 팀들이 리그 총 경기의 절반을 소화했습니다.]
K리그가 반환점을 돌았다는 소리였다.
[그럼, 지금까지 K리그 챌린지 팀들이 걸어온 여정을 한번 지켜보도록 하죠!]
먼저, 가장 눈에 들어오는 순위는 당연히 1위였다.
[확실히 시즌 전 예상대로 상주 상무의 독주입니다.]
[그렇습니다. 압도적이에요. 이대로라면 우승을 통한 승격 직행이 아주 가시권입니다.]
해설진이 괜히 이러는 게 아니었던 게, 승점 7점 차이면 꽤나 큰 차이였다. 상주가 3연패를 하고 대구가 3연승을 해야만 해야만 순위가 바뀔 여지가 있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그 다음으로는 대구와 서울 이브랜드가 플레이오프 안정권이고, 남은 한 자리를 두고 나머지 팀들이 싸우고 있네요.]
[예, 3강 3중 4약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3강 중에서 상주가 유독 더 강한 느낌은 있지만 말이죠. K리그 챌린지의 유일한 신계라고 해야 할까요?]
[예, 레알 상무, 상무셀로나라고 해야겠죠.]
이 말까지 하고, 캐스터는 자연스레 주제를 바꾸었다.
[지금까지의 전반기 성적을 생각하면, 반등의 여지가 가장 큰 팀은 어디일까요?]
가장 어렵지만, 또 가장 재미있는 분석인 순위 예측으로 넘어간 것이었다.
[당연히, 강원이라고 봅니다.]
[해설위원님은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보시면 알겠지만, 득실점 지표가 너무 좋습니다.]
실제로, 강원은 승점은 꼴찌와 1점차이로 바닥을 기고 있었지만, 득실점만을 따지면 무려 4위였다.
[물론 순위는 승점으로 정해지는 거기 때문에 득실점은 큰 의미가 없다는 분들도 많고, 실제로 그렇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득실점 지표가 좋다는 건 팀의 전력 자체는 나쁘지 않다는 증거라고 생각하기에 저는 후반기에 가장 반등할 팀을 꼽으라면, 강원을 꼽겠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반대로 가장 하락할 팀은 고양이라고 봐야 할까요?]
[예, 그렇습니다. 물론 팀 컬러가 수비적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한 두 계단 정도는 더 떨어지리라 봅니다. 그 외에도 순위가 바뀔 여지가 큰 팀이라면 안양 정도겠네요.]
[하하, 그렇긴 하네요. 20전 12무승부니까요.]
여기에서 끝났더라면, 그저 흔하디 흔한 예측이었겠지만. 오늘의 예측은 조금 더 길어졌다.
[하지만 사실 이런 예측은 보름만 지나면 아무 것에도 쓸모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여름 이적시장이 열렸으니까 말이죠.]
바로, 이번 7월에 들어서 K리그의 여름 이적시장이 개방되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렇군요! 당장 지금 막 경기가 끝난 부천만 해도, 갓 영입한 임경현 선수가 멀티골을 터트리면서 강원에게 승리를 거두었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경남은 송주한 선수를 임대해오면서 이브랜드와의 경기에서 훨씬 좋은 수비력을 보여주면서 이브랜드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챙겨갔죠.]
그랬다. 그 외에도 수많은 영입, 임대, 그리고 외국인 선수 교체 등 팀의 전력이 급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여름 이적시장이었다.
[그걸 생각하면···]
그 순간, 그 뉴스를 가만히 보고 있던 나는 여기에서 바로 영상을 꺼버렸다.
“야, 왜 꺼? 궁금한데.”
“야, 어차피 우리가 저기까지 봐서 뭐하냐? 우리는 군경팀이라 해당사항 없잖아.”
그렇다. 군경팀은 여름 이적시장이 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다. 애초에 여기는 선수들이 영입되는 곳이 아니라 전입 및 전역하는 곳이란 말이다.
‘오히려 상대적으로든, 절대적으로든 전력이 약해지기만 하지.’
당장 상태 팀들은 바쁘게 영입하고 있는데 우리는 영입을 못한다면 상대적으로 뒤쳐질 수밖에 없고, 올해 말에 전역하는 선수들까지 생각하면 절대적으로도 약해진다.
‘심지어, 여기에서 전역한 선수들 중 일부는 상대팀으로 갈 껄 생각하면 더더욱.’
당장 우리 팀의 NO 1. 골키퍼인 김배근 선배님이 강원 소속이니, 만일 우리가 강원과의 경기가 10월 말에 있기라도 하면? 전역하자마자 적이 될 수도 있었다는 거다.
군경팀이 전통적으로 후반기에 성적을 꼬라박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적은 강해지고 나는 약해지는데다. 전역하기 전 병장들은 몸관리 하면서 슬슬 사리니까.
그걸 생각하면···
‘에휴, 이브랜드랑 대구가 강해지기라도 하면··· 우리도 좀 위험하겠네.’
7점 차. 차이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막 안심하기엔 또 부족한 차이. 영 안심이 안 됐다.
특히 이브랜드는 내가 보기엔 외국인 선수 하나만 갈아치워도 솔직히 2등은 무난하게 차지할 것 같은 느낌이니.
‘만약에 그 선수 교체라도 하면··· 어휴, 끔찍해지겠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왠지 동영상 더 봤자 불안해지기만 할 것 같아서.
“에이 모르겠다. 난 잔다.”
나는 컴퓨터를 꺼 버렸다.
“야, 야, 벌써 자게? 잠도 안 오고 하니 리그 분석하는 동영상 보게 연등한다며? 아직 11시도 안 됐어 임마.”
“······”
그래. 솔직히 오늘따라 잠이 오질 않았다. 솔직히 아직도 두 눈이 말똥말똥할 정도로. 그래서 연등을 신청한 거였고.
하지만.
“그래도, 내일 생각하면 자야지.”
“뭐 처음도 아닌데··· 아, 맞다. 넌 처음이지?”
“응, 리그 초반부터 명단에 들었어가지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태준이 녀석은 날 좀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그래, 그럼 잘 자라. 난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만 더 보다 갈게.”
별 말 없이 나를 보내줬다.
‘다들 오늘따라 날 저렇게 보네.’
하긴, 그럴 만도 한가. 내일은 내가 입대한 지 8개월만에 3박 4일짜리 휴가를 쓰는.
옛날식으론 100일 휴가, 요즘 말로는 신병위로휴가라고 불릴 만한 휴가를 쓰는 날이었으니 말이다.
-*-*-*-
사실, 상주 상무 선수들은 반 사회인이라고 봐야 하긴 한다.
일단 경기를 이기면, 포상으로 외박을 준다.
그리고 외출도 엄청 자유롭다. 사후보고하면 좀 혼나긴 하지만, 그래도 엄청 혼나는 수준에서 그치고. 미리 말해두고 기록하기만 하면 거의 통과된다.
그리고, 당연히 ‘정식으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때도 엄청 많다.
일단 원정 경기 가면, 그 다음날 하루 정도까진 그 호텔에서 묵는 게 대부분이라 이 때는 지더라도 놀려면 얼마든지 신나게 놀 수 있다.
이런 걸 보면, 우리가 반 사회인이라고 말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반 사회인이라는 건, 반은 군인이라는 거다. 당연히 통제받는 것도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는 개인 외박, 개인 휴가는 절대 금지다. 무조건 전원이 나가거나 전원이 들어와야 한다.
왜냐고? 당연한 거 아닌가. 리그 경기 일정에 맞춰야 하는데! 일주일 이상씩 쉬는 날이 있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휴가 못 나간다.
물론 일주일 넘게 경기가 없는 때라면, 단체로 2박 3일 정도로 휴가를 짧게짧게 주기도 하지만, 3박 이상의 휴가는 잘 안 준다.
-니들이 나가서 뭐 할 줄 알고? 술이나 퍼먹을 꺼잖아! 니들이 마셔도 경기에 큰 영향 없을 수 있도록 하려면 그 이상은 안돼!
이렇게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실이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차라리 잘 했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모든 휴가를 나가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고 선임분들은 조금 신기하게 보긴 했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가면, 내가 얼마나 헤이해질지 걱정되니까.’
지금 나는. 모든 몸과 마음을 축구에 쏟아붓고 있었다.
쉬는 날엔 축구를 하기 위해 몸을 만들고 있었고.
뛰는 날엔 최후의 한 방울까지 모든 기량을 쏟아내기 위해 노력했으며.
뛰고 난 다음엔 경기 영상을 다시 돌려보며 내가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그야말로, 축구에 미쳐있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이 생활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는 거지.’
내가 심지가 약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사람이 영원히 이렇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당장 모든 사람들이 맹렬하게 노력하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거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솔직히 그 누구도 평생을 고3처럼, 시험을 앞둔 고시생처럼 살아갈 수는 없다. 언젠가는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축구에 미쳐있는 기간이 조금이라도 길었으면 하는 마음에, 휴가는 하루도 나가지 않았고, 외박, 외출조차 선배들이 먼저 제안해오지 않으면 그냥 안 나갔다.
뭐, 애초에 3박 4일짜리 휴가 나갈 수 있는 타이밍도 별로 없었으니, 생각보다 지키기도 쉬웠다. 딱 한 번만 유혹을 견디면 두 달은 쭉 기회가 아예 주어지질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나갈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 17일에 K리그 올스타전 있는 거 알지? 그것 때문에 리그도 당분간 쉬니까. 3박 4일짜리로 단체 휴가 줄 테니까. 잘 쉬다 와라. 질문 있나?
-저기, 감독님, 올스타전 나가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잠만 자고 아침 훈련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해라. 빡빡하긴 해도 22일날 탄천 원정 있으니 어쩔 수 없다.
7월 14일부터 17일까지의 휴가라니.
휴가가 나온 타이밍이 어쩌면 하늘이 점지해줬다고 느낄 정도로, 딱 맞아떨어졌기에, 나는 이번 휴가만큼은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음- 맛있네. 쩝쩝.”
“······”
“음, 맛있다. 여기 중국집이 진짜 맛난다니까. 확실히 어디 나갈 때 여기에서 끼니 해결하는 게 최고야. 점촌터미널이랑 가깝기도 하고.”
“···.그렇네.”
내가 그렇게 말한 순간.
“야, 인상 풀어”
태준이가 먹던 걸 멈추고, 나한테 말을 걸어왔다.
“너 이번 휴가는 무조건 나가고 싶어하더니,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그냥, 오늘따라 입맛이 없네. 입맛도 돋을 겸 한 잔 하면서 먹을래?”
그런 내 반응에 태준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뭐야, 몸 관리 하라고 난리치던 우리 준혁이는 어디갔어?”
“첫 휴간데, 이런 날은 좀 마셔줘야 하지 않겠어?”
“······”
“아무 말 없으면 시킨다?”
별 말이 없길래, 간단하게 맥주를 시키려던 순간.
“야, 뭔 일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먹지 마라.”
태준이가 나를 말렸다.
“왜?”
“딱 봐도 니가 기뻐서 먹는 술이 아니잖아. 뭔가 일 있구만.”
그 말에, 나는 속으로 헛웃음지었다.
‘젠장. 나 지금 표정 관리 하나도 안 되고 있구나. 1년이 지났는데도.’
그렇게 내가 아무 말도 못 하자. 태준이는 말을 계속 이이갔다.
“뭔진 모르겠지만. 술은 기쁠 때 마셔야 하는 거야. 슬플 때 마시는 게 아니라. 이건 넣어두고, 나중에 우리 승격 확정짓거나, FA컵 우승했을 때나 한 잔 사.”
“···응. 알겠어.”
“그래, 그럼, 일단 음식 그렇게 깨작깨작 먹지 말고 잘 먹어. 뭘 하든 먹어야 힘 쓰지.”
“그래. 고맙다.”
.
.
.
.
.
-삐이잉-!
-이번 버스 정류장은 용인정신병원 정류장 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그 안내문에 따라, 나는 버스에서 내려서 천천히 추모원으로 걸어갔다.
‘집은··· 들릴 필요 없겠지.’
들어가더라도, 조금 나중에. 아니면, 아예 안 들어가고 싶다.
아버지는, 아직, 아직 나는 만날 준비가 안 됐다.
그렇게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그래, 여기구나.”
49재 때도 못 찾아뵙고 처음 오네. 참···
‘프리미엄 실 쪽으로 했으니까··· 이 쪽이겠지.’
뚜벅, 뚜벅. 또 얼마나 걸었을까.
한 걸음 한 걸음을 무겁게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내가 종이에 써놓았던 호실에 도착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행 열은··· 여기 근처가 맞는 것 같은데.’
8층, 7층, 6층, 5층. 찾았···다.
나는, 처음으로 보는 그 항아리에 애써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엄마, 저 왔어요. 1년 만이네요.”
-故 김미영(金美英) 1966.01.24~2014.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