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4/167)

3연전, 마무리 (2)

<2015 K리그 챌린지 18Round>

전반 26분

수원 FC 0 : 0 상주 상무

***

[이관표, 슈팅-!]

[아! 김배근이 막아냅니다. 좋은 선방!]

[아, 상주 상무 선수들, 오늘따라, 꽤나 몸이 무겁습니다.]

[확실히, 꽤나 힘겨운 일정을 보내고 있느라 그런지, 조금 지친 모습이죠?]

그랬다. 상주는 6/20 이브랜드, 6/24 전남과의 경기를 연달아 치르고 이 경기를 뛰고 있었지만, 수원은 지난 20일 경기를 하고 푹 쉰 상태로 경기를 뛰는 상태.

당연히, 수원의 컨디션이 훨씬 더 좋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상주는 악재가 추가적으로 겹쳤는데.

[게다가 지금 리그 2위의 공격포인트를 찍은 국가대표 이정현 선수, 그리고 한운상 선수가 둘 다 가벼운 부상을 호소해서, 이번 경기엔 빠져버렸죠.]

원래 상주의 주전 라인업은 이정현-박동기의 뚝배기 투 톱 조합, 혹은 이정현-한운상의 빅 & 스몰 조합 형식으로 주전 공격진이 확정되어가고 있었는데.

주전 스트라이커 2명이 빠져버리니, 오늘 경기에서는 어쩔 수 없이 박동기, 그리고 원래 중앙 미드필더로 뛰던 이기승 투 톱 조합을 쓸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주전에 비하면 살짝 떨어지는 공격진에다가, 선수들의 체력이 빠지면서 골 결정력도 다운된 상태여서 꽤나 악재인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그런 악재임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틈은 보이지 않고 있죠?]

[예, 역시 상무라고 봐야겠네요.]

그래도, 우리는 상주 상무였다. 챌린지 리그의 1강, 아니 1갓.

그야말로 절대적인 우승후보.

아무리 약해졌다고 해도, 약점이 크게 드러나지 않고, 상대팀의 약점을 파고들 수는 있는 팀이었다는 거다. 당연히 희망적인 부분이 없진 않았는데.

[수비진들이 아주 탄탄하네요. 백업인데도 아주 훌륭합니다.]

일단 우리는 아직은 10월이 되기 전이라, 총 36명의 되는 선수단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 소리는 백업 선수들을 사용해도 어느 정도의 퀄리티가 보장된다는 거였다.

그리고, 수원 자체에도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게다가, 수원의 공격 진행이 매끄럽지 못해서 그럴까요? 공격적으로 나가는 것 치고는, 영 실속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바로 수원의 공격 전개가 영 매끄럽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블루버드에서 임대해온 김종우 선수를 제외하고는 볼을 제대로 돌려줄 만한 선수가 없다는 게 문제에요, 수원은 여름 이적시장에 이걸 어떻게 하지 않으면, 결국 플레이오프 정도가 한계일 것 같습니다. 승격을 노리기는 힘들 것 같네요.]

그래서, 지금 내가 선택한 것은.

[아, 김종우 선수가 볼을 잡자마자. 바로 달려드는 이준혁 선수!]

[아, 김종우 선수, 돌파하지 못하고 뒤로 볼을 돌립니다!]

바로, 중앙 미드필더로서, 한 선수를 집중 마크.

소위 ‘지우개’ 역할을 해 주는 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풀백이 아니라. 중앙 미드필더였으니까.

-*-*-*-

사실, 이번 경기에서 기승 선배가 공격수로 나온다고 할 때부터, 나의 미드필더 출전이 사실상 확정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내가 처음에 명단에 들었던 이유도, 중앙 미드필더도 볼 수 있어서 이기승 선배의 역할을 어느 정도는 대체가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추측은 역시나였고, 감독님은 주전 미드필더의 혹사를 줄일 겸 나를 전반전 동안 기용하신 후에 하프 타임 때 교체하실 생각으로 나를 출전시키셨다.

그렇게 근 한 달? 두 달? 만에 올라온 미드필더에서, 나는 꽤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아, 이준혁 선수, 또 끓어냅니다!]

[철벽같은 수비! 김종우 선수는 지금 이준혁 선수를 때려주고 싶을 거에요!]

수비적인 측면에서, 정말 많은 성장을 이루어냈던 것이었다.

‘옛날에는 이런 수비적인 미드필더는 솔직히 전혀 소화 못 했는데. 신기하네.’

물론 포지션상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려간 적이 있긴 했지만, 그 때 나는 레지스타로 쓰이기 위하여, 그러니까 빌드업 부분만 보고 내려갔던 거였지. 사실상 수비적인 측면에선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선수였다.

물론 많은 활동량으로 간신히 폐급은 면하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약점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달랐다.

‘오랜만에 중앙에서 피지컬 싸움 하는 건데도 전혀 안 밀린다. 오히려 내가 압도하는 수준이야.’

물론 저 녀석의 피지컬이 좋은 수준이 아니라는 걸 감안해야 하긴 했다. 180 언저리의 키에, 60초반대로 보이는 몸무게. 솔직히 이 녀석 조금만 살 더 빼면 몸무게로 4급 판정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 매섭던 수원의 공격이 뚝뚝 끊기고 있습니다.]

[중원에서 볼이 연결되지 않다 보니, 확실히 공격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네요.]

지금 주도권을 잠시나마 우리가 되찾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내가 몇 번 막기 시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녀석이 꽤 흥분한 모습을 보여줬다. 계속 활동량을 늘리고, 돌파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흠, 확실히 어리구나.’

몇 번 막힌다고 이렇게 흥분하다니. 확실히 잘 하긴 하지만 아직 프로 경험은 그리 많지 않는 티가 나는 친구다.

‘하긴 살이 저렇게까지 안 찐 거 보면, 프로 전환한지 얼마 안 되긴 한 모양이네.’

프로 생활 오래했다면 감독님이 당장 어떻게든 60후반 내지 70까진 찌우라고 한 소리 했을 테니까. 아마 계속 축구하다보면 분명 뼈랑 관련된 별명이 붙을 것처럼 보였다.

‘뭐, 그건 그거고, 하여튼 흥분했다 이거지?’

그 순간, 나는 왼손을 들어올려 뒤 쪽에 신호를 보내둔 후, 미드필더에서 수비하는 것 치곤 조금 의외인 수비를 보여줬다.

공을 잡은 상대방에게 어느 정도 달라붙은 후, 왼쪽을 훤히 열어버린 것이었다. 당연히, 저 친구가 빈틈을 파고들어 왼쪽으로 갔지만.

[아, 박포진 선수, 공을 깔끔하게 빼앗습니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냥 열어줬을 리가 있나.

그리고, 자, 중앙 미드필더에 구멍이 뚫렸고. 상대방 수비수들이 훤히 라인이 올라간 상황이다. 그럼 뭐,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지?

[이준혁, 바로 달려나갑니다!]

[박포진, 빠른 패스!]

공이 내 앞으로 굴러오는 동안, 나는 페널티 박스 근처를 쳐다봤고, 페널티 박스 근처에 있는 셋을 쳐다봤다.

먼저, 중앙의 동기 형, 이미 페널티박스 안에 들어가서 경합할 준비 완료.

그리고, 가까운 사이드의 황수일 선배, 전남전은 태준이에게 말려서 못 나왔지만, 사실 왼쪽 윙어 주전이라고 한다면, 이 선배인, 현재 가장 체력 상황 좋은 선배. 그리고 날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오른쪽 사이드는··· 지금 임협상 선배님이 달리기 시작하셨네

‘이렇게 되면 누구한테 줘야 할지가 너무 뻔한데.’

그렇게 빠르게 주변을 파악한 후, 나는 발에 공이 도착한 것을 느끼자마자.

[이준혁, 공 받습니다. 바로 크로스-!]

이번엔 망설임 없이, 바로 선택했다.

.

.

.

.

.

수원 FC~ 수원 FC~ 수원 FC~ 최강! 수원 FC~

쩝, 조금 아쉽군 그래.

‘결국, 이기진 못 했네.’

***

<2015 K리그 챌린지 18Round >

경기 종료

수원 FC 1 : 1 상주 상무

[골]

수원 FC : 이관표 - 90

상주 상무 : 임협상 -31

***

이왕이면 깔끔하게 3승으로 이 지옥같은 일정을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세상은 역시 쉽지 않나보다. 결국 마지막에 무승부가 하나 생겨버렸다.

‘에휴, 아깝다. 아까워.’

내가 나간 이후로, 수비는 훨씬 업그레이드됐지만, 미드필더에서 한 방은 사라져 버리면서 상대편이 조금 더 마음 놓고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에 무승부로 끝나버렸다.

‘에휴, 조금만 더 잘했으면 3승 갔을 텐데. 아니면 전반전 끝나고 바로 교체가 아니라, 한 60분 교체만 됐었어도···’

그런 생각으로 전반전 끝나고 교체 안 하면 안되냐고 슬그머니 감독님한테 말하려고 했지만,

-이준혁 선수? 혹시 짬밥 먹다가 사회 밥 먹으니깐 정신이 이상해지신 건가요? 풀백으로 풀타임 두 경기 연속으로 뛰고 또 미드필더로 풀타임 뛰겠다고요? 정신 이상해지신 거 맞죠? 그렇죠?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부상당하기 딱 좋은 짓을 자처할 리가 없죠. 아니면 그러고도 체력이 남아돌 수 있는 뭔가를 맞으셨다는 걸까요? 도핑 검사 한 번 더 할래요?

군의관이 그렇게 나와버려서. 어쩔 수 없었다. 팀 닥터의 말은 잘 들어야지. 절대로 다시 그 바지 까는 게 수치스러워서 그런 건 아니다.

그래도 뭐, 이 지옥같은 일정에서 2승 1무면 나쁜 성적은 아니었기에 수비진을 제외하고는 그리 나쁜 표정은 아닌 상태로 라커룸에서 적당히 떠들다 보니.

“야, 준혁아.”

오늘의 MVP. 임협상 선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 임 선배님, 골 축하드립니다. 어시스트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냐, 그 때 내 쪽으로 패스 기가 막히게 줘서 가능했던 거지.”

오오, 훌륭하신 선배님이다. 보통 공격수는 패스에 고마워 할 줄 모르는데.

“그,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말해줄 수 있어?”

“네? 뭐가 궁금하신 건데요?”

“그 때 있잖아. 왜 나한테 패스 줬던 거냐? 그냥 동기한테 주는 게 더 낫지 않았냐?”

그 말에, 나는 별로 크게 생각하지도 않고 답했다.

“역습 상황에서는, 멈춰 있는 선수에게 공을 주는 것보단, 골대를 향해 달리고 있는 선수에게 공을 줘야 안 빼앗기고 슈팅으로 가니까요.”

그래, 역습 때는. 그게 답이다.

가까운 선수에게 주는 거? 키 큰 선수한테 주는 거? 다 필요 없다.

역습할 때는, 그냥, 앞이 좀 텅 비어있고. 골대를 향해 팍팍 달려가고 있는 선수한테 찔러주는 게 가장 최고다. 그게 가장 베스트다.

“아니, 그건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본 거냐고. 솔직히 거의 달리자마자 주던데.”

“음- 그야 받기 전에 봤으니까요?”

미드필더란, 받기 전에 선수들이 어디 있는지를 파악해야 하는 자리니까. 몸싸움도 편한 상황인데, 그 정도는 보는 게 당연한 거다.

“······”

“선배님, 왜요?”

“아니, 아니다. 그게 당연한 거였구나, 응, 당연한 거였어···”

그렇게 중얼거린 선배님한테 뭐가 이상한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순간 바로 감독님이 들어왔다.

“오셨습니까. 감독님!”

인사에 살짝 손을 휙휙 내저으며 답한 감독님은,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에 말했다.

“뭐, 살짝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다들 수고했다. 어찌 되었든, 이 지옥같은 일정을 2승 1무라는 좋은 성적으로 마쳤으니 말이다.”

그 말에 막판에 골 먹혀서 살짝 불안해하던 수비진들도, 비로소 살짝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우리의 일정이 끝난 것은 아니다. 당장 다음 달 1일과 5일에 경기가 있는 것은 잊지 않았겠지?”

“······”

“뭐, 그래도 가장 힘들었던 일정을 넘겼으니, 남은 두 경기는 그래도 위험하지 않게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들 수고 많았고, 짐 싸라.”

“예!”

그렇게 오늘의 경기가 끝나고, 캐리어에다 짐을 싸다가.

-툭.

저번에 받은, 전남 감독님의 경기 명함이 떨어졌다.

“······”

나는 그걸 꽤 오랫동안 쳐다보다.

다시 가방에 넣지 않고, 찢어서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어차피, 전화번호는 저장해 놨으니 됐어.’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경기로 깨달았다.

'나, 정말 엄청나게 늘었구나.'

나이도 나이라서, 더 이상의 성장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여기에 옴으로서, 나는 분명히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런 스카우트에 휘둘릴 때가 아니다.

그들이 무엇을 하든, 어떤 생각을 하든.

그냥, 나는,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서 실력을 더 키우다 보면.

“준혁아, 짐 다 챙겼냐?”

결국, 그들이 날 알아서 찾아오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예,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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