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3/167)

3연전, 마무리 (1)

2015. 06.25

[FA컵 16강전, 이변의 연속··· ‘언더독’ 들의 반란]

어젯 밤, ‘언더독’의 반란은 유효했다. 오늘 열린 FA컵 16강전에서 2번의 이변이 일어났다.

첫 번째 이변의 주인공은 내셔널리그(실업축구)의 울산 현대미포조선이다. 이 팀은 후반 39분에 터진 박한수의 결승골에 힘입어 K리그 챌린지(2부리그)의 강원 FC를 1-0으로 이기면서, 이번 FA컵에서 유일하게 비프로축구팀으로 8강 진출 티켓을 따는 데 성공했다.

두 번째 이변의 주인공은 K리그 챌린지(2부리그)의 상주 상무였다. 상주 상무는 2부리그 팀임에도 전반 40분에 터진 이준혁의 결승골을 지켜내면서 K리그 클래식(1부리그)에서 올해 상위 스플릿 진출이 유력해보이는 전남을 상대로 1- 0 으로 승리. 8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 밖에도 특기할 점이라면 트레블(3관왕)의 꿈을 꾸던 전북이 시즌 전적에서 1승 1무로 앞서던 포항에게 꺾인 것을 꼽을 수 있겠으며, 영남대와 대전 시티즌은 각각 성남과 울산을 상대로 연장까지는 끌고 나갔으나 아쉽게도 이변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2015 하나은행 FA컵 8강 대진

제주 유나이티드 - 울산 현대

FC 서울 - 포항 스틸러스

성남 FC - 상주 상무

울산 현대미포조선 -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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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기사 봐라. 내 이름 딱 박혔네. 하하.”

어제 우리가 이긴 건, 꽤 이슈가 될 만한 일이긴 했는지, 이번엔 기사에 따로 언급이 되긴 했다.

그리고, 득점자인 내 이름도 들어가 있었다. 하하.

‘이래서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쓰는 건가?’

기사 보는 맛이 아주 철철 넘쳐나네.

“야, 이제 그만 내 폰 내놔.”

“···쫌만 더 보면 안 돼?”

“벌써 30분째 기사들만 보고 있잖아. 이제 충분하지 않냐?”

쩝. 하긴, 빌려쓰는 주제에 이 이상 쓰는 건 민폐다.

“폰 잘 썼다. 땡큐.”

“오냐.”

그렇게 폰을 태준이에게 돌려준 후, 그냥 침대에 털썩 드러누운 나는, 주머니 속의 명함을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하다가. 결국 태준이를 또 불렀다.

“태준아.”

“왜, 또. 나 바빠. 세나 다이아 등급 찍어야 돼.”

“나, 너희 구단 감독님한테서 명함 받았다.”

-우뚝.

그런 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지만, 그런 소리가 들렸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그 말을 하자마자 태준이가 모든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진짜로?”

“응. 너 이 감독님에 대해서 뭐 아는 거 있어?”

“하- 뭐, 두말하면 섭하지, 그 감독님, 전남 레전드거든.”

노성래.

선수 말년에는 대구로, 코치로는 강원으로 가서 코치를 한 적이 있기에 성골이라고 부르진 못 하지만.

전남의 창단 멤버이자, 통산 최다 득점자이자. 통산 최다 도움자로 남아 있고. 전남에서 코치와 수석코치까지 역임하고 올해 감독까지 역임하고 있는. 전남의 레전드라고 했다.

“뭐, 나한텐 별로 좋은 감독은 아니지만 말이지.”

“왜?”

“지금 저 감독님이 왼쪽엔 종호, 오른쪽엔 용우 있으니 내 자리 없다고 생각하고 상무 보내신 거거든. 종호야 워낙 잘하고, 용우는 작년 군면제까지 받았고.”

뭐? 잠깐.

“야, 걔가 군면제 받은 놈이었다고?”

“엉, 올해 들어서는 드럽게 못하긴 한데. 작년엔 신인인데도 좋은 모습 보여줘서 아시안게임 명단에 들어갔었어.”

“······”

하, 말이 안 나온다. 젠장.

‘아, 개부럽네. 젠장. 91년생이 군면제 받았으면, 진짜 탄탄대로란 건데.’

그러면 아무리 망해도 나이 서른 정도까진 2부리그에서는 버틸 거 아닌가.

‘게다가··· 젠장. 아냐. 신경쓰지 말자.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상무라서 행복합니다···’

그렇게 부러움을 애써 이겨내고 자기세뇌를 하던 도중. 의문이 들었다.

“근데 내가 걔 어떻게 막은 거래?”

“야, 내 드리블 막는 연습 해 온 놈이, 걔 드리블에 지면 쓰겠냐? 나 박태준이다. 박태준. 신갈고에서 드리블 하나는 최강이었고, K리그 통산 80경기가 넘어가는 인간이라고. 고작 2년차 녀석하고 비교하지 마라.”

그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일 뻔했지만, 누워 있었기에 다행히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있었다. 칭찬은 원래 아껴야 하는 법이니까.

“하여튼, 나쁜 소리는 아니네. 생각해보니 전남이 니 오면 주전 먹기 딱 좋긴 하니까.”

“응? 왜?”

“헌영민 선배님이 나이가 있으시거든, 79년생이시라.”

아.

‘맞다. 헌영민 대선배님이··· 생각해 보니, 나이가 꽤 있을 수밖에 없구나.’

02년도 멤버라는 생각만 했기에 그냥 잘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 분의 나이가 벌써 세는 나이긴 해도 서른일곱이시다. 나랑 10년 차이 난다는 거다.

그러니,

“···그렇다는 건.”

“그래, 니가 세대 교체할 멤버로 딱 괜찮아 보이셨을거다.”

그 말에 나는 흥분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K리그 팀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보인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가슴을 떨리게 했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동기 선배님도 전남이잖아. 전역 이후 적응도 쉬울 거고··· 드, 드디어 나한테도 장밋빛 미래가 오는 건가?’

하지만.

“하여튼, 준혁아. 뭐 좋은 일이긴 한데, 너무 또 좋아하진 마라. 뭔 말인지 알고 있지?”

그 태준이의 말에, 나는 조금 입을 다물다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래, 알고 있어.”

그래. 사실, 이 명함이란 건, 생각처럼 만사가 앞으로 다 잘 풀릴 거야. 라는 신호는 아니었다. 나쁜 신호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명함을 받았다는 건, 1차 통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취업으로 따지면 서류가 정상적으로 접수되었습니다. 정도일까.

물론 명함을 스카우트가 아니라. 저렇게 구단 내 뼈가 굵은 감독이 주는 건 나름 의미가 있긴 했지만-

‘나는 아직 전역까지 1년이 넘게 남았으니. 큰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는 말이지.’

지금 당장은 저 감독이 훌륭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팬들에게 영원히 이 팀에 남아달라’ 라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내가 전역하고 난 후에 저 전남이라는 구단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 지는 모르는 일이다. 1년 후에는 타 팀 팬들에게 ‘영원히 그 팀에 남아줘요.’ 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거다.

당장 우리나라 국대에 2012년도 런던 올림픽에서 메달 따면서 명장으로 칭송받았지만, 2014년 월드컵 때는 그야말로 온갖 욕을 다 먹으면서 쓸쓸히 감독에서 경질당한 분이 있지 않은가.

이처럼, 축구는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똑같이. 내가 다음 1년 안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갑자기 막 상무의 감독이 바뀌거나, 갑자기 막 국가대표급 풀백이 입대하거나 해서 내가 주전 자리 잃고 감 잃고 그러면 전남에서 극렬하게 날 거절할 수도 있는 거다.

그런 생각이 들자 슬슬 머리가 식어가며, 냉정하게 판단을 할 수 있었다.

‘하- 그래. 뭐, 벌써부터 1년 뒤의 일을 생각하고 있어?’

세상엔 스물여섯까지 5부리그에 있다가 스물 일곱살에 EPL 에서 뛰기 시작한 선수도 있고. 당장 우리가 뛰는 K리그 챌린지에서도 내 백업이었던 민구는 득점왕 경쟁을 하고 있는 것처럼.

결국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그런데, 무슨 1년 뒤의 일을 생각하고 자빠져 있나.

결국,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다.

“야, 핸드폰 그만하고 잠이나 자자.”

“야? 미친, 아직 저녁 10시밖에 안 됐다. 뭐 이렇게 일찍-“

“불 끈다.”

그냥, 할 수 있는 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다음 경기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다.

“세나 그만하고 잠이나 자라. 그런 모바일 게임이 뭐가 좋다고.”

“야, 니가 이 세나를 한 번도 안 해봐서 그런 거야! 어! 이만한 게임 어디 없어!”

“시끄럽고. 난 잔다. 너도 자. 임마.”

-딸깍

“와, 내가 어쩌다가 이놈이랑 같은 방에···”

“급하게 잡아서 방이 없었대잖냐. 좀 참아.”

“그럼 나 좀 배려해서 11시에만 자주면 안 되겠냐? 나 5% 안엔 들어야···”

“빨리 자야 다음 경기에서도 힘내서 뛰지. 또 ”

아직 우리의 3연전 일정은 끝난 게 아니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침대에 누운 순간.

‘그러고 보니, 이거 참 기막힌 우연이네.’

나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웃었다. 내일 겨룰 팀이 생각해 보니, 나한테 처음으로 스카우트를 했던 구단이었으니 말이다.

-*-*-*-

내가 스카우트를 받은 것은, 2012년에 내셔널리그 용인시청에서 뛰고 있을 때였다.

-저기, 이준혁? 맞나?

-네, 맞습니다. 무슨 일이죠?

-나는 수원 쪽 코치인데,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나?

사실 수원이라고 하면, 축구팬들은 백이면 백 K리그에 있는 수원 블루버드를 생각했겠지만. 나는 바로 수원시청을 떠올렸다. 그도 그럴 것이 K리그에서 연봉 1위 팀이 굳이 날 왜 찾아왔겠는가.

어쨌든, 그 쪽에서 말하는 바는 뻔했다.

-내년 승강제가 실시된다는 소식은 들었지?

-예, 듣긴 했습니다.

그 때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승강제가 필수라길래 부랴부랴 2부 리그에 참가하려는 팀들이 준비 한다는 소문이 돌던 때였으니까. 당연히, 내셔널리그에 있던 팀들 중 일부는 그 리그에 참가하길 원했고.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 우리는 K리그 2부에 참가하려고 한다네. 우리와 함께하지 않겠나?

그 팀들이 바로 안산, 충주, 수원이었다. 그 중, 수원은 나에게 처음으로 오퍼를 넣은 팀이었다. 그 다음이 안산이었고, 충주는 마지막에 찾아왔었다.

나는 그 세 팀에서 모두 오퍼를 받고 나서 안산, 이제는 고양으로 연고지를 바꾼 그 구단에 들어갔다.

그렇게 지나간 인연이었는데. 오늘따라, 나도 모르게 그 때의 말을 살짝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창단하고 3년 안에 K리그로 승격할 걸세.

왜냐하면. 지금 쓰는 전술이 그 때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말을 보여주는 듯해서였다.

[아! 수원 FC! 무려 상주를 상대로 전혀 물러서지 않고 있습니다!]

[이거, 괜찮나요? 괜찮은 거 맞나요?]

“야, 쟤네 뭐냐? 우리 챌린지 구단이랑 상대하는 거 맞아? 뭔 라인을 저렇게 내리질 않아? 미친놈들이네?”

여해성 선배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로 말이지. 하하. 우승 경쟁팀이라 볼 수 있는 이브랜드, 대구도 우리 상대로 선제골을 넣으면 수비적으로 구는데··· 정말로, 그 때도 느꼈지만 깡이 대단한 감독님이셨다.

‘그 때, 저 감독님은 나를 중심으로 공격 축구를 펼치시겠다고 했었는데. 그 말이 정말이었을려나?’

물론 그 때의 상황을 생각하면,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하겠지만.

‘내가 정말로 필요했으면 계약금을 줬겠지.’

그 때 막상 계약금에 대해서 말하니

-계약금? 허어··· 미안하지만 그건 좀···

이런 소리를 하면서 거절하지 않았던가. 그런 걸 보면, 확실히 명함만 주는 건 수없이 많이 하는, 흔한 제안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왠지 모르게 말해주고 싶었다.

나도, 이제는 당신들에게만 오퍼를 받는 게 아니라. K리그 팀에게도 오퍼를 받았고. 계약금을 당당하게 요구할 만한, 그런 선수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지쳐있던 몸을 조금이나마 활발하게 움직일 의지가 생겨났다.

“선배님. 오늘 저한테 공 좀 몰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응? 너 체력 괜찮아?”

“괜찮습니다. 어차피 감독님이 오늘은 전반전만 뛰라고 하셨어요.”

지난 2경기를 풀타임으로 뛰었으니, 웬만하면 교체해 줄 거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공 몰아주세요. 라인 저렇게 열려 있으니, 뻥뻥 뚫어주게요.”

무엇보다 3연전의 마지막에, 나는 단 하나의 후회도 남기고픈 마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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