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42/167)

3연전, 난적 (3)

-삐이익-!

아 이런. 실수했다.

[아, 이준혁 선수, 조금 무리했네요. 옐로 카드를 받습니다.]

[아, 결국 옐로 카드가 쏟아지기 시작하네요. 상주 상무. 지금까지 총 4명이나 되는 선수가 옐로 카드를 받았습니다.]

‘하, 슬슬 2단계 작전 빨리 쓴 부작용이 나타나네.’

그래, 괜히 2단계 쓰기 전에 태준이가 걱정했던 게 아니다. 이 작전에 문제가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옐로 카드가 남발될 수 있다는 것.

안 그래도 우리는 원정팀인 만큼, 파울 콜이 저 쪽에 비하면 빡빡한 편인데도 거칠게 플레이하면서 파울을 남발했고, 결국 슬슬 옐로 카드가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후반 35분까지 이 정도로 버텼으면 나쁘지 않게 버틴 거긴 한데···’

문제는, 감독님 입장에서 나를 교체시킬 수는 없다는 거였다. 이미 중앙 미드필더에서 두 명이 체력 부족으로 인해 위험한 파울을 저지르다 옐로카드를 받으며 교체한 상황.

이제 단 한 명만이 교체가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마지막 한 장은, 중앙수비수 쪽인 선광이 형을 교체할 가능성이 높-

-삐이익-!

[아, 선수 교체가 있습니다. 곽선광 선수가 들어가고, 여해성 선수가 투입되는군요.]

[예, 이렇게 되면, 상주는 교체카드를 다 쓴 상태가 됩니다.]

후, 역시나다. 퇴장 안 당하길 바라면서 어떻게든 후반전에서 끝내겠다는 의지시네.

‘하긴, 계속 가면 불리한 건 우리지.’

기본적으로, 전력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하여튼, 결국 교체카드를 다 썼다. 앞으로 남은 시간 10분, 추가시간 생각하면 약 15분. 이 15분을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해성 선배님, 감독님이 무슨 지시사항 내린 거 있습니까?”

“이제 마지막 단계 실시하시란다.”

오케이. 때가 됐구만.

그리고 잠시 후.

[아, 상주 상무. 이거, 완전히 내려앉았네요?]

[예, 버스를 세웠네요.]

우리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전원이 센터라인을 넘지 않는 수비 축구.

소위 텐 백 축구, 버스를 시전했다.

-*-*-*-

사실, 한 골 넣고 걸어 잠그기는, 유서와 전통이 깊은 전술이다.

유럽에서는 당장 저번 14-15 시즌 첼시의 우승을 이끈 조제 무리뉴의 성명절기, 그러니까 필살기 중 하나가 바로 텐 백이며.

가깝게 한국에서는 12년 아시안 챔피언스리그 에서 ‘무패 우승’이라는 희대의 업적을 남긴 울산 현태의 전술이 수비하다가 역습 한 방을 노리는 일명 ‘철퇴 축구’ 전술이다.

그 밖에 라리가에서 우승을 차지한 시메오네, 하위권 팀의 구원투수 샘 알라다이스,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 등등.

-선제골 넣으면 닥치고 골대 앞에 모여서 수비.

라는 전술은 아주아주 메이저하고 유명한 전술이다.

[아! 전남, 또 볼을 뒤로 돌립니다. 시간이 점점 가고 있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기습적인 돌파-! 하지만 막힙니다.]

축구에서 공은, 골대 안으로 들어가지 않기만 하면 어쨌든 실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전남에겐 이게 극 카운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전남은, 공격진의 화려한 개인기를 통해 득점하는 쪽이다.

그런데, 드리블 공격법은 가장 비효율적인 텐백 파훼법이다.

애초에 두세명씩 달라붙는 상황에서 드리블 성공하는 것부터가 힘들고, 성공한다고 해도 간격이 좁아 그 수비수가 뚫린 공간이 바로 커버가 되기 때문에 결정적인 슈팅을 날릴 기회가 잘 오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드리블을 좀 거칠게 한다 싶으면 잔디 위에서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조금 더 업그레이드를 시키는 전술까지 추가할 경우 더욱 더 금상첨화지만···

[헌데 선수들이 일부러 누워있거나 하지는 않는군요? 왜 그런 걸까요?]

[옐로 카드를 받은 선수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미 심판한테 찍혀버렸는데 그거 썼다가 또 카드 쳐먹으면 그게 더 손해라서, 거기까지는 자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은 하더라도 최소한 나는 지금 그거 못 한다. 옐로 카드 먹은 사람이 그 짓 했다간 자칫하면 퇴장이니까.

그렇게 위태위태하게 막는 사이, 점점 전남 쪽의 공세가 거세졌다.

[아, 공을 잡지 못하는 상주 상무! 계속해서 전남의 공격이 이어집니다!]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게, 수비에 모든 걸 몰빵했으니, 당연히 볼의 소유권은 그 쪽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러면 저쪽은 우리를 어떻게 후드려팰지 선택지가 많다는 거다.

[그래도 상주 상무,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습니다. 이제 곧 추가시간도 끝나갑니다. 사실상 전남의 마지막 공격!]

[오르샤, 공을 잡습니다!]

‘휴, 그래도 얼마 안 남았다.’

마지막으로 오르샤인가 뭔가 하는 놈이 공격해 오긴 하지만, 이형 선배가 잘 따라붙···

[아, 오르샤, 돌파합니다. 상주 상무, 엄청난 위기!]

그 순간, 나는 내 쪽을 버려버리고, 바로 중앙으로 달려들어갔다. 내 마크맨을 놔버리는 건 분명 정석적인 선택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게 맞다고 판단했다.

‘경기 막판이면, 에이스 세 명 중 한 명에게 공을 맡기겠지.’

사람이란 게 그렇다, 최후의 순간이면 순간일수록, 가장 믿음직스러운, 이 친구라면 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한테 공을 주게 된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달려가면서 전남의 최다 득점자들인 오르샤, 이종호, 스테보. 이 셋을 빠르게 훑어보며 생각했다.

‘일단, 오르샤의 돌파. 저건 거른다.’

물론 가장 위험한 건 저거였지만. 이형 선배가 아직 달라붙고는 있었고, 저건 중앙에 있는 해성 선배님이 막아야 하는 거지. 사실 위치상 내가 막을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뚫리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냥 박수쳐야지.

그러니, 나는 오르샤가 패스한다는 전제하에 수비를 해야 한다. 중앙공격수 스테보와 공격형 미드필더 이종호. 둘중 누구에게 오르샤가 패스를 줄 것인가.

‘몸빵이 되는 스테보에게? 아니면 순간 스피드가 있는 종호에게?’

50 대 50, 완벽한 반반의 상황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시발. 시발, 씨발!’

마지막의 마지막에 온 선택의 순간에, 나는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지금은 입으로 내뱉을 시간도 아까운 상황. 망설일 시간은 없었고.

[오르샤- 패스-!]

나는 선택했다.

.

.

.

.

.

삑- 삑- 삐이익-!

-*-*-*-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우리는 중앙선에서 인사한 후, 각자 찾아온 팬들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그리고 우리는.

- 사-랑한다 상~ 주. 사-랑한다 상~주. 내 가슴속에- 영원히남을- 사랑이 되어~라

몇 안 되는 팬분들이 작게나마 부르는 그 노래를 들으며. 환한 표정으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

<2015 하나은행 FA컵 16강>

전남 메탈즈 0 : 1 상주 상무

[골]

상주 상무 : 이준혁 - 40

***

그래, 이겼다.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 전광판에 적힌 득점자의 이름을 보면서 나는 계속 웃었다.

‘물론, 운이 좋긴 했지···’

상대하는 녀석들이 그래도 아직 덜 익은 녀석들이었다는 것

파울 작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레드 카드까지 간 인원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

그리고, 최후의 순간에.

[오르샤- 패스-! 이종호?]

[아! 이준혁 선수가 예상했다는 듯이, 슬라이딩 태클로 패스를 끓어 버립니다!]

마지막 이종호에게 패스가 갈 거라고 예상하고 몸을 던져버린 것이, 정답이었던 것.

정말, 하나하나가 행운이었다.

물론-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래도 이겼어. 이겼다고.’

결국, 이긴 것은 우리였다. 비록 많은 조건이 붙기도 했고. 솔직히 깨끗하게 이겼다··· 고까진 말 못하겠지만. 그래도 난생 처음으로 K리그 팀을 상대해서, 이겼다.

그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으하하하! 야, 준혁아, 수고했다! 수고했··· 너 우냐?”

“···울긴 왜 울어요. 눈에 먼지 들어간 겁니다.”

아 망할, 이게 뭐라고 눈물이 나오는 거지.

“야, 야, 이 정도 가지고 울지 마라. 짜샤. 이제 당장 8강이면 또 K리그 팀 만날 꺼고, 내년이면 K리그 갈 텐데. 익숙해져야지. 울지 마. 뚝.”

“···울긴 누가 운다고요. 저 화장실 좀 갑니다.”

“하, 그래, 다녀와라. 녀석.”

그렇게 잽싸게 화장실로 달려간 나는, 달려가면서

-꼬집.

괜히 한 번 볼을 꼬집었다.

“하하. 안 아프네.”

얼얼한 느낌이 있으니 꿈은 아닌 것 같긴 한데, 아프지가 않다.

진짜로. 정말로. 하나도 안 아프다.

‘사람이 진짜 기쁘면, 이런 기분이구나.’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그리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 이런, 웃으면서 눈물이라니, 얼굴 우스워지겠네. 빨리 세수하러 가자.’

그렇게 생각하며 화장실로 달려간 나는, 화장실에서 의외의 인물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자네는···?”

“어··· 아, 안녕하십니까. 노성래 감독님.”

젠장, 이기고 나서 상대팀 감독을 화장실에서 마주하다니, 뭐 이런 우연이 다 있냐.

‘빨리 얼굴 씻고 나가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빠르게 얼굴을 씻고, 나가려던 찰나.

“잠깐, 경기도 끝났고. 자네한테 궁금한 점이 있는데. 하나 물어봐도 되나?”

“어? 예, 예. 괜찮습니다.”

“마지막에, 종호에게 가는 패스를 미리 차단했었지. 예상했던 거였나?”

어··· 여기에서 뭔 말을 하는 게 좋으려나? 예상했다고 말하는 게 좋으려나?

그렇게 잠깐 고민한 결과, 나는.

“아닙니다. 그냥 찍었던 겁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여긴 축구장 밖이니까. 굳이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내 말에 감독님은 살짝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정말로 아무런 근거도 없이 찍었다고? 최소한의 근거도 없이?”

어, 음. 뭐. 굳이 따지자면 근거가 하나 있긴 있었는데···

‘이건 내가 생각하기엔 근거라고 하기엔 너무 부족하단 말이지.’

그래도, 뭐. 자그마한 근거라도 대길 원하시는 것 같으니 대답해 드려야겠네.

“오르샤가 패스를 뿌리기 직전, 디딤발 바깥쪽 방향이 살짝 종호 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보통 드리블하다 패스를 할 때, 바깥쪽 디딤발이 패스하고 싶은 쪽 사람 방향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그게 패스 할 때 가장 편하니까.

하지만 솔직히 조금 멀기도 했고, 아웃프런트 패스를 할 경우 그런 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법이기에 솔직히 찍기랑 크게 다를 바도 없-

“잠깐, 그걸 봤다고? 그렇다면, 자네는 종호가 가는 방향은 또 언제 본 거지?”

“그건 예측했죠. 살짝이라도 빈 공간으로 달릴 게 뻔했으니까요. 골 넣으려면 그게 답이니까. 1더하기 1은 2인 것만큼이나 간단한 답이잖아요?”

그렇게 내가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고 말하자, 감독님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날 쳐다보더니.

“크, 크하핫, 크하하하. 크하하-! 그래. 정말 쉬운 답이군.”

정말로 크게 웃으셨다. 여기에서 개그 포인트가 뭔지 모르겠네.

“···하아, 하. 자네가 몇 살이지?”

“..89년생, 27살입니다.”

“흠, 고양하고 계약은 몇 년 남았나?”

아니, 이건 또 뭔 소리야.

“···저 FA 상태입니다. 저번 시즌 끝나고 계약 끝났어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감독님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응? 정말로? 내가 알기론 고양으로 적혀 있었는데 말이지.”

“···예? 아닙니다. 저 FA입니다. 왜 그렇게 알려져 있는지··· 아. 상무 테스트 최종 합격 때까진 소속 맞았으니까 그렇게 나왔나 보네요.”

하여튼, 진짜로 나 FA다.

그 말을 듣더니, 감독님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무언가를 주머니에서 꺼내셨다.

“비록, 오늘 경기는 졌지만 성과가 없진 않았군. 여기 내 명함일세.”

“······!”

“내년 여름, 전역하고 나면 광양으로 한번 와 보는 게 어떻겠나?”

아무리 내가 바보라고 해도 이 말뜻을 모를 리는 없었다.

지금, 전남의 감독님이, 나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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