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연전, 난적 (1)
[이브랜드, 추가시간 생각하면 마지막 공격입니다!]
[김재성 선수, 좋은 패스! 주민구, 1대 1 찬스입니다! 천금같은 기회]
씹, 뚫렸다.
[주민구 선수, 왼발 슛-!]
제발. 제발-
[아! 골대 옆을 지나가 버립니다!]
-삑-! 삑-! 삐이익-!
[경기 끝납니다! 최종 스코어 3대 2! 상주 상무가 승점 3점을 챙겨갑니다!]
와.
씨발. 진짜 간신히 이겼다.
‘하아- 진짜 힘들었네. 진짜 막는다고 막았는데, 조금만 운 안 따라줬으면 조질 뻔했다.’
후반전에 연속으로 두 골 넣을 때까지만 해도 다 이긴 줄 알았는데. 저 미친놈이 또 골 넣어버리면서 진짜 마지막까지 쫄깃했다.
‘저 놈, 이제 그럼 14득점 2도움인가?’
시발, 저 놈 4라운드 시작 전에 짜장면 같이 먹었을 땐 1경기 0골이었는데. 어느새 저렇게 커진 거냐. 우리가 후반전에 두 골 넣은 게 진짜 컸다. 그 때 못 넣었으면··· 어휴, 상상도 하기 싫네.
뭐, 그래도
‘이기긴 했네.’
그거면 됐다. 팀이 이기는 게 가장 중요하지. 나도 팀의 승리에 도움 안 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한 나는 마지막에 찬스를 놓치고 그대로 땅에 엎드린 민구에게 다가갔다.
“야, 주민구, 일어나 임마.”
“···선배님?”
“너 그렇게 엎드려 있을 필요는 없어. 저기 팬들 봐봐.”
-···괜찮아! 괜찮아!
“저 사람들이 널 보고 괜찮다고 말하잖아.”
그 응원소리를 들은 민구는, 멍한 표정으로 관중들을 바라봤다.
“솔직히 넌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두 골이나 넣었잖아. 너 말고 그 존슨인가 뭔가 하는 얘 스트라이커로 썼다가는 진작에 우리가 너희 개발랐을껄?”
“······”
“그러니까. 당당히 가슴 펴고, 너희 쪽으로 돌아가서 관중 분들한테 인사하고, 집에 들어가. 알겠지?”
“···예, 형님.”
그 말과 함께 민구는 이랜드 진형으로 가기 시작했고, 그걸 꽤나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나는, 곧 그 말을 한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왜냐고?
“이야, 우리 꼬맹이 준혁이가, 생각보다 멋진 말도 할 줄 알았네?”
“그러게, 우리가 보기엔 꼬꼬마인데 말이지. 당당히 가슴 펴! 너 잘못한 거 없어! 같은 말도 하고, 크. 멋지다잉?”
이 나보다 하나같이 나이 많으신 선배님들이 놀려먹기 시작했기 때문이지. 젠장.
“아. 선배님, 그만 좀 놀리십쇼.”
“어쭈? 으디서 감히 선임께서 말하는데 요자를 쓰냐. 다나까 안 쓰냐?”
“아니 그 머리 해놓고 무슨 군인입니까, 저처럼 좀 빡빡 밀어야- 아, 탭, 탭!”
그래도, 다들 웃을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이겼으니까.
***
<2015 K리그 챌린지 17Round>
서울 이브랜드 2 :3 상주 상무
[골]
서울 이브랜드 - 주민구 - 13, 71
상주 상무 - 이기승 -45, 이정현 - 53, 임협상 -57
***
“지금, 선수들 상태가 어떤가?”
감독의 질문에, 군의관은 머리를 긁적였다.
“경기가 워낙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보니, 체력 소모가 꽤 많은 편이긴 합니다.”
그 대답에 코칭스태프들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하게. 짧게, 결론만.”
“···3경기중 한 경기 정도는, 로테이션을 돌리지 않으면 제 실력을 발휘하기 힘들수도 있습니다.”
그 대답에, 코칭스태프들은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골치아픈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지금 군의관의 말을 해석하자면 리그 경기와 FA컵 둘 중 하나는 전력을 다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였는데. 전남 메탈즈와 수원 FC는 모두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이기기 힘든 상대였다.
“FA컵을 포기하느냐, 리그 한 경기를 버리느냐의 차이겠군.”
“······”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의견은 거의 정확히 반반으로 갈렸다.
“저는 FA컵을 전력으로 치루자는 입장입니다. 솔직히, 16강까지 왔는데, 리그 경기보단 FA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이브랜드 이긴 덕분에, 저희 지금 2위랑 승점 차이 10점이나 나는 1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FA컵을 포기하긴 너무 아깝습니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찮았다.
“전 리그 경기에 집중하자는 생각입니다. 지금이야 저희가 단독 질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솔직히 저희 일정을 생각하면 후반기에 꼴아박을 게 뻔하지 않습니까. 방심하지 말고 더 벌려놔야 합니다.”
“맞습니다. 게다가 저희가 전남에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이기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지금 그 친구들 4위에요. 4위. 얘네들 서울보다 더 순위 높습니다.”
둘 다 일리가 있었기에, 회의는 길어졌는데 영 결론이 나지 않았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주전 선수들을 둘 다 뛰게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건 선수들이 먼저 반대하겠지.’
군대에 끌려와서, 혹사까지 당하다니. 그건 너무하지 않은가.
감독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지.”
한 가지 제안을 꺼냈다.
-*-*-*-
하아- 품.
“야, 태준아. 하품하지 마라. 나도 하아- 으, 하품 나오잖아.”
“미안, 근데 참기가 너무 힘들다. 어제 너무 잠을 설쳤거든.”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왜?”
그도 그럴 게, 여기 5성급 호텔이다. 침대도 당연히 최고급이란 말이다.
“익숙하지가 않더라고···”
“아···”
불쌍한 녀석. 군대 입대한지 반년 지났다고 몸이 적응해버렸구나. 하하. 천생 군인이로군. 이 기회에 말뚝 박는 건 어떠-
“야, 야, 갑자기 왜 나 째려보냐? 나 아무 말도 안 했다?”
“뭔가 굉장히 기분 나쁜 상상을 하고 있는 것 같았거든.”
아니, 이 녀석, 어떻게 알았지? 저 4드론 심리전도 예상 못 하던 놈이 이런 눈치는 왜 이리 좋은거야.
그렇게 내가 태준이의 눈치에 대하여 전면적이고도 쓸데없는 고찰을 하려던 찰나.
“어, 다 왔나?”
감독님이 들어왔고
“예, 어제 뛴 인원 전부 집합했습니다.”
이어지는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의문이 들었다.
‘아직 다 안 왔는데?’
아직 14명밖에 안 모였는데 왜 저런 말이 들리나 의아했던 나는, 곧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자, 어제 고생한 자네들을 이렇게 일요일 이른 시간에 모아서 미안하네. 하지만 우리가 안내할 사항이 좀 몇 가지 있어서 말이지.”
지금 감독님이 모은 선수들은, 어제 뛴 선수들이었다.
“자네들, 다음 수요일에 우리가 어떤 경기가 있는지는 알지?”
그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고, 나 역시 그랬다. FA컵 16강전이라는 꽤 높은 무대에, 처음으로 K리그 팀을 만나볼 기회인데 까먹었을리가 있나.
“그래, 그리고 또 그 경기를 하고, 다음 일요일에 경기가 있지. 사실상 1주일에 3경기를 뛰는 거지. 굉장히 빡빡해.”
“······”
“그래서, 우리는 어제 경기를 뛴 자네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네.”
그 말과 함께, 감독님은 작은 나무상자를 보여줬다.
“앞으로 남은 두 경기 중 자네들이 뛰고 싶은 경기, 뛰고 싶지 않은 경기를 이름을 써서 넣어주게. 전남전에 참가하고 싶다면 노란 색종이를, 수원전에 참가하고 싶으면 빨간 색종이를 골라 넣어주게. 둘다 뛰기 싫다! 그러면 흰색을 넣고.”
“······”
조용해진 가운데, 나는 질문을 던졌다.
“언제까지입니까?”
“이왕이면 여기에서 바로 결정해줬으면 좋겠군.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훈련표도 바뀔 테니까.”
순간, 나는 감독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를 알 수가 있었다. 우리 주전 선수들이 하나의 의견을 내길 원한 것이었다.
-뛸 것인가. 말 것인가. 뛴다면 어떤 경기에 뛰고 싶은가.
“그럼, 1시간 후에 올 테니, 자네들의 의견이 종합되어 있길 기대하겠네.”
.
.
.
.
.
그렇게 감독님이 떠나고 난 뒤.
“······”
우리는 여전히 집합을 풀지 않고 긴 침묵에 잠겨 있었다. 쉽게 결정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침묵 속에서, 선배 중 한 명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야, 그냥 두 경기 다 안 뛰겠다고 흰색 넣을까?”
어찌 보면 프로 정신이 결여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솔직히, 여기에서 우리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돈 많이 받거나 하는 게 아니잖아.”
현재 우리가 상무에서 받는 돈은, 명단에 들었을 시 주는 승리, 무승부 수당. 그리고 군인 수당이 다였으니까. 우리가 승격을 할 정도로 잘 한다고 해도 아마··· 총합 2천 5백? 그 정도도 못 받을 거다.
분명 적은 돈은 아니다. 2천 5백이 뉘 집 이름인가. 그러나. 우리가 사회에서 똑같은 성적을 내면 아무리 적어도 배는 번다는 걸 생각하면, 결코 충분한 돈은 아니다.
무엇보다.
“솔직히 말해서, 난 여기에서까지 혹사당하고 싶지 않아. 구단에서 혹사당하면 돈이라도 많이 주지. 여기에서 혹사당한다고 해서 좋을 게 뭐가 있어? 고과에 반영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선수 생명만 짧아지지.”
여기에서 많이 뛴다고, 구단의 고과에 반영되지도 않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그러니.
“최소한 중간에 FA컵은 좀 쉬는 게 맞는 거 같은데.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저게 합리적이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야, 준혁아, 너 뭐하냐?”
난 노란 색종이와, 빨간 색종이를 동시에 집어들고. 앞에서 당당히 말했다.
“선배님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솔직히 전, 둘 다 뛰고 싶습니다.”
“······”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선배들이 기겁했다.
“야, 너 왜 이래?”
“야, 그러다가 너 죽어 임마. 나중에 진통제 먹어가면서 뛰고 싶어?”
그 말에, 난 단호하게 답했다.
“진통제요? 뭐, 먹을 수도 있죠.”
“뭐? 너 미쳤어?”
순간적으로, 격한 반응이 터져나왔다.
“야, 우리는 몸이 재산이야! 그런데 왜 몸을 굳이 버릴 수도 있는 짓을 골라서 하려는 건데?”
그런 선배님들의 반응 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말했다.
“선배님, 전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은퇴를 고민하던 미드필더였습니다. 그것도 하위권 팀에서요.”
그래, 진짜로 난 은퇴 직전까지 갔었다. 프로 인생에서. 생존을 걱정하던 사람이었단 말이다. 그리고 전역하게 되면, FA 신분이다. 다시 팀을 찾아 헤메야 하는 무직자.
“그런데 지금 와서 나중을 생각하고 싶진 않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그런 내 말에, 선배님들 중 한 명이 나와서 말했다.
“야, 임마, 정신 차려. 이거 경기 뛴다고 달라지는 거 하나도 없어. 경기는 또 뛸 수 있고. 니 실력이면 나가서 충분히 재취직 가능해. 뭔 이게 인생의 마지막 경기처럼 굴고 있어?”
“······”
“지더라도, 다음 기회 있어. 그냥 평범하게 수원전 정도만 뛰자고 하자. 너 K리그에서 뛰고 싶다며? 그니깐 리그에나 집중하자고.”
그래, 분명 재취직 걱정은 안 해도 될 거다. 하지만-
“···다음 기회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뭐?”
“저희가 FA컵 우승을 노릴 수 있는 팀에서 뛸 기회가 또 있을까요?”
그 말엔, 선배님들이 대답을 못 했다.
“선배님들도 아시겠지만, 저희들이 프로 인생에서 강팀에서 뛸 수 있는 때가 그리 흔한 게 아니고, 저 같이 애매한 놈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운 좋게 K리그에서 뛰더라도, 하위권 팀이겠죠. 우승은 정말로 꿈도 못 꿉니다.”
“······”
그래, 프로의 세계 중에서도, 우승은 정말 꿈과도 같은 영역이다.
평생 우승 못 하고 끝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프로 세계에 와서 우승을 할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데.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리그 경기는 왜 집어넣은 건데? 그거라도 쉬지.”
그 말에는. 나는 씩 웃었다.
“K리그에서 뛰는 꿈도 아직 전 꾸고 있으니까요.”
“···욕심쟁이 새끼 같으니.”
“예, 저는 욕심쟁이입니다. 그러니까-”
-쑥.
“두 개, 모두 집어넣었습니다.”
“···”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내고, 나는 강당을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들 일어나 조용히 색종이를 두 개씩 넣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