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연전, 초입 (2)
[침착하게 활로를 찾고 있습니다. 선제골을 먹힌 후에 계속 매서운 공격을 시도하고 있는 상주 상무, 왼쪽에서 중앙으로, 중앙에서-좋은 패스! 그대로 슈팅]
[들어갔어요! 들어갑니다! 상주의 만회골!]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만회골을 간신히 집어넣습니다!]
***
<2015 K리그 챌린지 17Round>
서울 이브랜드 1 : 1 상주 상무
[골]
서울 이브랜드 : 주민구 - 13
상주 상무 : 이기승 - 45
***
[이기승 선수가 지금 굉장히 좋은 움직임을 가져가면서 동점골에 성공합니다.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상주 입장에서는 천금같은, 이브랜드 입장에선 악몽같은 골입니다.]
-삐이익 -삐이익-!
[예, 그리고 바로 휘슬이 울리면서 전반전이 종료됩니다! 스코어 1대 1!]
[1위와 2위의 싸움답게, 두 팀 모두 아주 멋진 경기를 보여 준 전반전이었습니다. 후반전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네요.]
[예,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반전이었습니다. 후반전이 어떻게 될지 궁금할 정도로요. 저희가 후반전에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그 말에 잠깐 머릿속을 정리한 해설위원은, 화면엔 보이지 않겠지만 손가락 세 개를 펼치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후반전 변수는 세 가지입니다. 먼저 이정현 선수가 나올지, 나오지 않을지.]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이정현 선수가 나오지 못했군요. 지난 미얀마와의 A매치 때문이었을까요?]
[예, 지난 16일, 미얀마와의 A매치가 끝난 지 4일밖에 되지 않은 지금, 상주는 이정현 선수를 아끼고 싶었을 겁니다.]
실제로 그랬다. 박 감독은 이정현을 2주간 4연전이라는 혹사를 시키기 싫어서, 웬만하면 휴식을 주고자 한운상-이기승이라는, 스피디한 투톱을 구상했다.
[하지만, 지금 이건 1위와 2위와의 싸움인 만큼, 꼭 이겨야는 경기고, 얼마든지 후반전에 투입할 수 있죠.]
그리고 손가락을 접은 해설위원은 다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는, 이브랜드가 후반전도 김재성 선수를 좌측 풀백에 가까운 자리에 놔둘까, 하는 겁니다.]
그 말에, 캐스터가 의문을 표했다.
[음? 그건 조금 더 효율적인 역습을 위해 한 전략적인 선택 아니였나요? 실제로 골도 넣었고요. 굳이 바꿀 이유가 있을까요?]
[물론 효과가 있긴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어시스트 1위를 저렇게 내려앉게 하는 건 좀 손해거든요. 실제로 그 이후로는 딱히 큰 재미를 보지 못하기도 했고요.]
그건 능력 낭비라며 해설자가 덧붙였다.
[음 그렇군요. 그럼 마지막 변수는 뭘까요?]
해설위원은 마지막 말은 짧게 대답했다.
[전반전 30분 정도부터 내리던, 비입니다.]
-*-*-*-
-퍽퍽퍽.
“아 씨, 다 젖었네.”
혹시 몰라서 양말이랑 축구화 여분 준비하길 잘 했다.
“오, 우리 준혁이, 준비성 철저한데? 축구화 여분까지 챙겨둔 거냐?”
“예, 영 불안해서요.”
“이야- 대단하네, 대부분 그냥 깔창이랑 양말만 챙기는데.”
“오늘 아침에 비가 내렸는데도 어두컴컴해서 혹시나 했죠.”
덕분에, 뽀송뽀송한 운동화로 후반전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뭐든지 준비해야 하는 법이다.
그렇게 다들 바쁘게 양말을 갈아신거나, 운동화 깔창을 바꿔 끼우고, 신문지를 찾아서 전반전에 뛴 축구화에 끼워넣는 사이. 감독님이
짝짝-!
박수를 치시면서, 우리를 불렀다.
“자, 자, 방금 알아본 결과, 후반전은 우리 완전히 수중전에서 뛰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우리들은 얼굴을 찌푸렸고, 미리 준비를 해둔 나 역시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오려면 4일 이후에나 올 것이지. 젠장.’
그렇다. 수중전은, 모두에게 괴롭지만, 그래도 덜 괴로운 팀을 꼽자면, 약팀에 더 유리하다.
왜냐하면 수중전의 축구는 일단 공중볼 바운드가 평상시보다 한 3배? 정도는 공이 낮게 튀기 시작하고. 볼 컨트롤이 평소의 느낌과 다르게 미끌미끌거리는 등, 일반적으로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볼의 느낌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잘 하던 선수라고 하더라도 실수를 많이 하게 되고, 그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팀이 강팀을 잡기가 용이해진다.
그래서인지, 감독님은 전술 변화를 명령했다.
“그러니 후반전에 전술적인 수정이 필요할 것 같군, 최태현, 수고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예.”
“그리고 교체선수로 정현이가 들어간다.”
하, 결국 정현이가 투입되는군. 이러면 또 단순한 빅 앤 스몰 4-4-2지만···
‘뭐 지금은 이게 맞겠네.’
자고로 수중전에서 복잡한 전술 시도했다가는, 개털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원래부터기 4-4-2를 자주 써 오던 우리 입장이라면 따로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들, 잘 들었나?”
“예!”
“좋아. 다음은 이브랜드 쪽에 대한 대응이다. 아마도, 이브랜드는 후반전이 시작될 경우, 4-2-3-1로의 변화를 시도할 확률이 높다.”
그 말에, 나를 포함한 몇몇 선수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말해서, 모든 포백 전술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낮은 게 4-4-2이다. 그런데 상대팀이 왜 4-4-2를 버릴거라고 생각하시는지 이해가 안 됐던 것이었다.
이런 우리의 표정을 보고, 감독님의 끝에 한 마디를 더 덧붙이셨다.
“그게 그 친구들에게 더 익숙하니까.”
아, 그렇군. 4-3-3과 4-2-3-1을 즐겨쓰던 놈들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하긴 난이도가 어려웠던 것에 익숙해졌던 사람이 쉬운 걸 한다고 해서 실수가 적어지는 건 아니다. 당장 대학교에서 전공 문제들 잘 푸는 녀석들이, 초등학교나 중학교 문제들을 풀라고 하면 막상 끙끙대지 않는가.
“다만, 그 쪽도 약간 역습형을 띠도록, 수비시엔 4-4-1-1 형식으로 변경될 꺼다. 김재성이가 중앙으로 변경될 테지.”
저 소리는, 수비수 정면으로 어시스트 1위와 득점 1위가 쳐들어오기 시작한다는 소리였다.
“······”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난 너희들이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수비 라이너들? 너희 스스로를 믿고, 자신있게 뛰어라.”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센터백에게 짧게 말한 뒤, 박 감독님은.
“그리고 이준혁, 이형.”
나와 이형 선배를 불렀다.
““예!””
“수중전이고, 4-4-2인 만큼 세밀한 패스를 기대할 수 없다. 때문에 너희 둘의 크로스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
“후반전의 전개는, 너희들이 핵심이 될 거다. 명심하도록.”
““예!””
-*-*-*-
젠장, 핵심은 무슨.
-삐익-!
[아, 막아냅니다! 이준혁 선수의 슈퍼 세이브!]
[정말 좋은 태클이었습니다. 저거 잘못했으면 바로 1대 1이었어요.]
“허억- 허억-”
수비하기에도 바쁘다. 시발.
‘진짜 장난이 아니네. 라인에서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인다 싶으면 귀신같이 패스를 찔러넣는다.’
저게 국가대표 클라스구만. 하.
그나마 아직 실점을 하지 않았던 건.
“아, 형님, 습관 몇 개 바꿨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잘 막으시는 거예요?”
민구 녀석이 아직 버릇 몇 개는 남아있어서, 간신히 간신히 실점까지 이어지진 않고 있었다는 것.
“하하. 다 방법이 있다.”
그래서 이렇게 여유로운 척 하고는 있었지만.
‘젠장. 큰일이다.’
솔직히, 슬슬 버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비 때문에 체력을 너무 많이 빼앗기고 있어.’
이렇게 되면, 막판엔 내가 의도하고 막기보다는, 그냥 내가 실수해도 골 먹히지 말라며 운빨이 따라주길 바래야 한다.
그렇다고 공격을 나가는 것도 좀 힘들었던 것이. 전반전에 꽤나 날뒤었던 탓일까. 후반전에는 윙어가 내가 오버래핑을 할라치면 거의 무조건 바싹 달려들었다. 거의 집중마크 하는 수준으로 말이다.
‘게다가 오버래핑을 하기엔··· 비도 내리고 있고.’
비 내리는 타이밍에 실수 안하고 드리블 잘 한다고? 그건 메시도 솔직히 힘들 거라고 자부한다.
다만, 그 쪽도 나한테 민구가 자꾸 막히는 탓에 확실한 공격루트가 보이지 않아서일까?
[아, 이브랜드, 중거리 슛-! 그러나 막힙니다!]
[확실이 이브랜드의 주포인 주민구 선수가 막히기 시작하자, 이브랜드 쪽도 다급해진 모습입니다.]
여러가지 패턴 다양화를 시도하긴 했지만, 다행히 헤메고 있었다.
‘문제는, 이대로 가면 내 쪽이 불리해···’
공격수와 수비수 중, 실수하면 더 치명적인 자리는 수비수다.
수비는 한 번만 실수해도 욕을 쳐먹지만.
공격수는 100번을 실수해도 힌 번만 뚫어내면 찬사받는다.
마치 수비수의 수비가 한 문제라도 틀리면 떨어지거나 할 수 있는 물수능 문제를 풀고 있다면, 공격수들은 한 문제만 맞춰도 칭찬을 받는 영재 문제를 푸는 거라고 하면 적당한 비유일 거다.
그렇게에, 나는 골대 주변에 모인 우리 수비수들이 흩어지기 전에.
“이형 선배.”
오른쪽 측면으로 돌아가려던 선배를 불렀다.
“응? 왜?”
“혹시, 저희 이브랜드랑 평가전 끝난 지 얼마 안 되서 했던 연습들, 기억 나세요?”
내가 그 말을 하자, 이형 선배는 잠시 기억을 떠올리더니 기억해 냈다.
“아, 그거? 서로 측면에서 롱 크로스 찌르기?”
한창 오프사이드 트랩으로 고생하던 때, 그래도 나름 내가 크로스는 나쁘지 않다는 것을 어필하고, 저 녀석을 보고 자극받아서 했던 연습이었다.
“예, 그거 해 보죠.”
물론, 정확도는 그 때보다 떨어질 확률이 높았다. 연습한 지 꽤 오래 전이기도 했고.
“흐음- 성공할 수 있을까? 지금 이렇게 비가 오는데.”
무엇보다 비가 내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차피 지금은 뭔 공격을 해도 성공확률이 높진 않잖아요.”
짧은 패스? 그건 어차피 모두 다 공평하게 부정확해졌다.
적극적으로 오버래핑을 시도한다? 그러다가 볼 컨트롤 실수라도 하면?
그러니, 그나마 가장 리스크를 지지 않으면서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거였다.
“감독님도 롱 볼 위주로 공격을 풀라고 하셨으니까.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고요, 한 번 해 보죠.”
“음··· 오케이. 알겠다. 내가 신호 보낼테니까 그 때 뛰어라.”
그렇게 상의한 후, 나는 왼쪽으로, 이형 선배는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우리가 훈련 때 했던 연습처럼,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형, 천천히 볼을 몰고 나갑니다.]
[아마도 오른쪽에서 뭔가를 만들어 내려는 거겠죠?]
그렇게 오른쪽으로 시선이 끌리며, 천천히 이형 선배가 나가는 동안,
나는 슬금- 슬금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달릴 필요는 없지.’
굳이 지금부터 달려서 ‘나 뭔가 준비하고 있어요~’ 라고 동네방네 광고하고 다닐 필요 있나.
‘어차피, 5초 안에 모든 게 결판나는 거니까.’
그리고 이형 선배가 센터 서클로 오면서, 윙어가 조금씩 달려붙으려고 하자.
드디어. 손을 들었다.
‘간다. 5초, 5초동안 최대한 빠르게!’
그 생각과 함께, 나는 힘차게 땅을 박차기 시작했다.
1초.
가속도가 붙어야 하니, 아직은 무작정 달리고 있었다.
[아, 이형 선수, 길게 걷어찹니다. 실수한 걸까요?]
2초.
그리고, 오른쪽을 쳐다보니, 내 옆으로 공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 아닙니다. 왼쪽에서 뛰고 있던 선수가 있었군요, 예측된 플레이었습니다!]
3초.
그리고, 그걸 보면서, 공이 땅바닥에 닿기 전, 가볍게 왼 다리를 뻗었다.
[부드러운 볼 터치! 받는 데 성공했습니다!]
[비가 올 때는 저렇게 받아야 뒤로 안 빠뜨리죠! 아주 정석적인 터치입니다!]
그리고. 4초.
원래라면 공격수가 있는지 없는지를 봐야 하지만.
뻐엉-!
‘그런 것까지 확인하려다간, 늦어.’
지금은 팀원들을, 동료들이 놓치지 않을 거라고 믿고 공을 안쪽으로 뿌려줄 때다.
[박스 안쪽으로 크로스! 그대로 슈팅-!]
그리고, 5초.
.
.
.
.
.
“으와와와-악!”
[들어갑니다! 들어갔어요! 단 세 번의 터치로 이루어진, 정말이지 아름다운 역습입니다!]
[상주 상무. 후반 33분에 경기의 결승골이 될 수도 있는 결정적인 골이 들어갔습니다! 완벽한 크로스! 완벽한 골입니다!]
그 순간, 내 귀에
- 사-랑한다 상~ 주. 사-랑한다 상~주. 내 가슴속에- 영원히남을- 사랑이 되어~라
원정팬들의 자그마한 구호가 들려오자. 나는 드디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주먹을 꽉 쥘 수가 있었다.
'3연전의 첫 단추가. 완벽하게 끼워지기 일보 직전까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