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연전, 초입 (1)
K리그는, 인기가 없다.
뭐, 이 바닥에서 밥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인정하긴 힘들지만 사실이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축구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 인기는 국가대표, 그리고 유럽축구에 대부분이 몰려있고, 우리에게 쏟는 관심은 솔직히 말해서 별로 없다.
그런데 우리가 뛰는 K리그 챌린지, 그러니까 2부 리그는 어떻겠는가. 당연히 더 인기가 없다.
우리에게 있어서, 카메라란 경기를 찍는 카메라가 다고.
하이라이트 영상이란, 가끔씩 특별한 날에나 만드는 것이었으며.
기자란, 라운드 기록이라도 잘 써주고 정리해주면 그걸로 감사해야 하는 멀디 먼 존재였다.
그런데. 올해만큼은 챌린지 구단임에도 그 모든 것에서 예외가 된 구단이 있었는데. 바로 올해 창단하게 된 이브랜드였다.
-아시아 최고의 인기구단을 만들 겁니다.
뭐, 처음에는 이런 말을 해도 다들 별 생각 없었다. 수많은 팀들이 그랬듯이, 처음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다가 나중에 가면 모든 창단팀이 그렇듯이 팀이 하위권에 머무르고, 대충대충 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고양이라는 선례도 있지 않나.
그러나. 그들은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고, 왕년의 국가대표들을 영입하는 등 스케일을 좀 키우면서 창단 이후에도 계속 어그로를 끌었고.
그렇게 끌린 관심이 지속될 수 있도록 페이스북과 유튜브 계정에 보통 일주일에 2개 이상의 게시물을 꼬박꼬박 올림으로서, 어그로로 몰린 팬들 중 상당수를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보통은 만들어놓기만 하고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는데 말이지.’
우리 팀만 하더라도, 새 시즌 시작되니까 유튜브 계정으로 영상 올리는 거 같다가도 그냥 시즌 좀 진행되자 방치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하여튼, 그래서일까? 여기 이브랜드 홈 구장에 와 보니, 국가대표 관련한 기사를 쓰려던 기자들이 왔었던 우리만큼이나 기자들이 많이 보였다.
“햐, 기자들 봐라. 원정 와서 이렇게 많이 보이는 건 또 처음이네.”
물론 서울이라는 점도 한 몫 했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많은 편처럼 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정현이에만 쏠려있던 우리와는 달리, 선수들의 인터뷰 집중도가 고루 퍼져있는 느낌이었다.
-예, 예, 이브랜드는 저를 축구 선수로만 대하지 않고, 함께 비전을 이뤄줄 동반자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서울 팀의 일원이라서 정말이지 만족하고···
A매치 36경기의, 프리미어리그 찍먹을 해봤던 선수부터
-비록 울산에서 이곳으로 오느라, 제 연봉에서 이적료를 조금 내야 했지만 정말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의 소원이 있다면, 승격해서 저희를 찾아주시는 팬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이운재 이후의 국가대표 골키퍼 자리를 두고 기대받았지만, 정성룡 선수에게 밀린 비운의 선수를 인터뷰하기도 했고.
-하하, 사실 포항에서 여기로 올 때 고민 많이 했죠, 하지만 선수단도 그렇고, 코칭스태프들 역시 실력이 좋은 만큼. 저희는 빠른 시간 내에 클래식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3경기를 뛰고, 바로 작년의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 참가하기도 했던 선수에게 가기도 하는 등, 고루 분산되어 있었다.
‘이걸 보면 국대가 역시 짱이야. 국가대표 은퇴한지 좀 됐는데도 저렇게 기자들이 찾아오다니.’
하지만, 그래도 예외는 있는 법. 딱 한 명, 국가대표에 승선하지 못했음에도 기자들이 몰린 선수가 이브랜드 선수가 한 명 있었다.
지난 6월 초에서부터. 무명 골잡이, 연습생 신화를 썼다며 MBC, YTN, 연합뉴스 등에서 TV에서 뉴스 기사를 내보낸.
현 K리그 챌린지의 득점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는.
“오랜만이다. 민구야, 거의 딱 두달만이네?”
“아,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옛날, 나의 백업이던 그 친구가 있었다.
-*-*-*-
“저기, 형, 저 이런 것까진 필요 없어요. 그냥 밥이나 한 끼 사 주시면···”
그런 녀석의 손사레에, 나는 그냥 피식 웃었다.
“야, 니가 준 축구화들 잘 써먹고 있는데, 이 정도는 해 줘야지.”
군대 와서 먹고 자는 데에 돈을 거의 쓰지 않으니, 크게 돈 쓸 곳이라곤 축구화 뿐이었는데, 저 녀석이 선물해준 축구화 덕분에 그 비용도 많이 아낄 수 있었으니 이 정도는 충분히 선물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너, 이대로라면 분명히 정장 입을 일이 생길 테니까. 미리 준비한다고 생각해. 자, 받아.”
“···감사합니다. 구두 잘 신을께요. 혹시라도 구단에 굴러다니는 축구화 아직 남아 있으면, 또 보내드리겠습니다.”
“옹야.”
뭐, 더 준다는데 굳이 말릴 생각은 없었기에, 그렇게 가볍게 대답한 후, 나는 민구의 모습을 보고 가장 궁금했던 점 하나를 물어봤다.
“야, 기자들 많이 오니까 어떠냐? 좋았냐?”
“좋긴 좋은데, 막 정신없기도 해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주메스라는 별명도 붙고, 제 선수 카드도 팔고, 이렇게 인터뷰도 받고···”
그렇게 여러 가지, 정말 두 달 만에 벌어진 인생역전에 대해 말하던 민구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참, 뭔가 좋기도 하고, 정신없기도 하고,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이네요.”
이런 느낌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러냐. 그렇구만.”
그저 고개를 끄덕여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이것은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니 말이다.
‘경험할 수 있을 리도 없고 말이지.’
내가 수비수이자, 미드필더인 이상 저렇게 득점왕을 경쟁하고, 저렇게 기자들이 찾아오는 건. 내가 절대로 알지 못할 일이니까.
“아, 그건 그렇고, 형도 축하드립니다. 이젠 완전히 자리 잡으셨던데요.”
그런 민구의 말을 듣고, 나는 그냥 싱긋 웃었다.
물론 나도, 이제 리그 8경기 출전에 1골 2어시스트로, 아주 좋은 기록으로 상무 팀에 완전히 자리잡으며, 꽤나 좋은 성적을 거둔 편이지만.
14경기 12득점 2도움으로 경기당 공격포인트 1에 달하는 성적을 뽐내고 있는 녀석에 비하면, 빛이 바랜 게 사실이니 말이다.
뭐, 그래도.
“그래, 알아줘서 고맙다. 그럼 너도 이만 들어가봐라.”
“예. 선배님, 좀 있다가 경기장에서 뵙죠.”
“···그래.”
그렇게 민구와 경기 전에 선물을 가져다준 후 원정 라커룸으로 걸어오면서 나는.
“휴우-”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럽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부러운 건. 사실이기도 하고, 가지고 싶었던 거기도 하니 말이다.
‘내가 유럽진출이나 국가대표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저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일이 있을 리가. 보통 국대는 내 나이 정도까지 한 번도 안 불렸다가 발탁되는 선수는 없다. 아무리 무명이었다고 해도 하다못해 U-20, U-23 대회 경력이라도 있는 선수가 불려온단 말이다.
그리고, 유럽은··· 뭐, 말해 봤자 입만 아프-
“에잇, 됐어. 이거 그만 생각하자.”
그래, 너무 부러워하지 말자. 나 역시 분명히 발전하고 있었다. K리그 선수들로 가득한 여기 안에서 어느새 나름 주전급까지 올라오지 않았나. 게다가.
-우리가 이기기 위해서는 주민구 저 녀석을 잘 막아야 한다. 그러니 저번에 주민구를 잘 막았던 준혁이 너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준혁.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기도 했는데.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에 잡혀있을 수는 없었다.
“좋아. 오늘, 잘 해보자고.”
내 앞에서 득점을 절대 못 하도록 만들어주지.
***
<2015 K리그 챌린지 17Round>
서울 이브랜드 1 : 0 상주 상무
[골]
서울 이브랜드 : 주민구 -13
***
이런 젠장.
[골-! 주민구, 골입니다-!]
[김재성 선수의 멋진 어시스트! 어시스트 1위와 골 1위의 멋진 합작품입니다!]
‘하아- 이거 내 실수는 아니긴 한데···’
그렇게 다짐했는데, 전반 13분만에 골을 먹혀 버렸다. 이러면 좀 쪽팔리지.
‘그렇다고 뭐라고 하기도 힘든 게···’
“하아, 미안, 내 실수였다. 재성이 녀석이 크로스하기 너무 편하게 놔둬 버렸네.”
“아니다. 형아. 니 실수보단 내 실수지. 미안하다. 야. 니가 선방하고 나서 막았다고 방심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실수의 근원지가 우리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좋은 선수인 두 선배였기 때문에. 뭐라고 하기도··· 참 뭐 했다.
‘젠장, 이거 이러면 안 좋은데.’
오늘 저놈들은, 원래 쓰던 4-2-3-1이나 4-3-3이 아니라. 플랫 4-4-2 를 들고 나왔다. 여차하면 잠궈버리겠다는 기세가 펄펄 풍기는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단 말이다. 그런데 선제골을 먹혀버렸으니···
‘잘못하면, 이거 더럽게 꼬인다.’
그렇게 생각하며 우리는 공격에 박차를 가했지만.
[아, 이브랜드, 실컷 웅크리고 있습니다.]
[한 골 먹었으니, 급할 게 없다는 거죠?]
영 성과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방심하기도 힘들었던 게 우리가 볼을 빼앗기는 순간
[아, 이브랜드, 공 뺏었습니다. 빠르게 전진하는 김재성! 김재성. 크로스-!]
[아, 이형, 몸으로 막아냅니다!]
[이야, 김재성 선수, 오늘 원래 자리가 아니라 풀백으로 나와서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아주 완벽합니다! 이브랜드 역습의 시발점이 돼 주고 있어요!]
어시스트 1위에 달하는 미드필더가 풀백 자리에서, 역습의 첨병이 되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이대로 가다간 전반전 동안 무기력하게 끌려다닐 수도 있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필드의 빈틈을 찾으려던 순간. 이브랜드 팬들의 응원이 들려왔다.
-사랑한다 서~울, 사랑한다 이~랜, 내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사랑이 되어라↗
‘하, 기세 좋구만.’
초반부터 골 넣고, 위협적인 역습도 계속 하하고 있으니 팬들이 아주 신이 나셨다.
‘진짜로 팬인 사람들로만 2천 명이 넘게 와서 목소리도 크고.’
이게 뭔 소리냐면, 시청 산하의 구단들은 일단 윗사람에게
-우리 구단이 이렇게 인기 많습니다!
라고 보고하기 위해 티켓을 공무원들에게 막 뿌리고 다니고 강매하거나, 무료 티켓을 막 뿌리고 다닌다.
그리고,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오게 된 사람들은, 당연히 원하지도 않았는데 오게 되었으니 경기에 관심 따윈 없고. 핸드폰이나 하게 되는데.
지금 이브랜드는, 그런 사람들이 굉장히 적어 보였다.
‘하, 좀 마음에 안 드네. 우리 팬들 목소리가 안 들리잖아.’
물론 이브랜드 홈구장이니만큼, 그게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팬들의 함성은 완전히 묻히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나는.
[왼쪽의 이준혁 선수, 적극적으로 올라갑니다.]
[지금은 라인을 깨서라도, 공격적으로 나가겠다는 생각인 거겠죠?]
지금까지 잘 지키던 수비 간격을 깨고, 서서히 공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어차피, 저 놈들 최소한 내가 있는 쪽에선 나올 생각이 별로 없을 거야.’
역습을 해도 김재성 선수가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중앙과 오른쪽 위주로 하지, 내 쪽에서 하진 않을 거다. 그러니 여기 왼쪽을 과감하게 노리자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이 통했는지. 내가 공을 잡고 측면을 따라 달리자, 상대편 수비수는 적극적으로 압박을 오기보단, 조금 물러나면서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겠다는 태도로 나왔다.
‘하. 역시나구만.’
이 놈들, 좌측면을 적극적으로 막으려는 생각이 없다.
‘아마도 중앙 쪽만 막으면 실점은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그 생각을 조금 다르게 만들어줘야 하는 법.
[아, 이준혁 선수, 중앙으로 침투합니다!]
[이브랜드 선수들이 달려붙죠.]
그렇게 중앙으로 오자마자, 나에게 달려오는 수비수들을 두 눈 똑똑히 보면서 나는-
좌측으로 공을 빼버렸다.
[아, 이기승 선수! 어느새 좌측으로 빠져 있었습니다!]
[K리그 도움왕 출신답게 패스길을 잘 본 거군요!]
그래, 어디서 감히 중앙은 올라오면서, 왼쪽 수비는 그냥 내려앉는단 말인가.
‘할 꺼면 다 같이 압박하든가 다 같이 물러나든가 했어야지. 빈 틈이 생기잖아.’
[이기승 선수, 슈팅-]
[아, 아쉽게도 골키퍼가 처리합니다!]
“아! 아깝다! 미안하다. 준혁아.”
“괜찮습니다, 선배님.”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스러웠다.
왜냐하면.
-······
관중석이 좀 조용해졌으니 말이다.
‘뭐, 그래도 너무 조용한 것도 좀 그러니, 다음엔 저 사람들이 조용해지기보단 신나게 말할 수 있도록 해야겠네’
이왕이면 게임에서 많이 듣던 극찬으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