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167)

폭풍전야

사실, 헬스장에서 한 번이라도 운동한 사람은, 이런 생각 한 번쯤은 했을 거다.

-아, 이 운동 처음 해보는 건데, 그렇다고 자세 잡겠다고 무게 5kg부터 시작하기엔 좀···

그러고 그런 생각 다음엔 꼭 이런 짓을 하게 된다.

-에이 씨. 그래, 쫀심이 있지, 할 수 있는 만큼 무게 늘리고 개수도 많이 한다!

그렇게 개고생하는 시절을 겪고 나면, 자신이 얼마나 바보였는가를 깨닫고 슬슬 경험이 쌓이면서 자세도 잡히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자신이 ‘이쯤 하면 지치겠다-‘ 같은 것도 생각하면서 운동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각 잡고 운동하기 시작한 지가 벌써 10년은 넘고 넘은, 나 같은 사람은, 원래 딱 트레이닝 센터에서 운동 한다고는 해도, 적당히- 내가 좀 힘 든다. 싶은 수준까지 하는 게 현명한 거라는 거다.

그러니까.

-훙-훙

-훙-훙

이런 일은 원래 벌어져선 안 되는, 진짜 바보같은 짓, 애 같은 짓이란 거다.

‘젠장할,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하지만, 이왕 시작된 거, 지긴 죽어도 싫었다.

그러나 이 녀석 역시 종목이 다르다지만, 역시 프로였다.

“···으, 씨발. 야, 케틀벨은 내가 졌다.”

“···예, 헉- 헉.”

내가 모든 걸 다 이길 순 없었다.

순수 지구력은 내가 좀 더 나은 것 같긴 한데. 코어는 저 놈이 나보다 조금 더 나았고 상체 근력은 저 놈이 훨씬 뛰어났다.

‘으어어어··· 삭신이야···’

이거 분명 근육통 남는다. 이거 아마 근육통 생긴 채로 경기 뛰어야 할 것 같네···

“하아, 하아- 으···”

그나마 나만 생기는 게 아니라 저 놈도 근육통 생긴 것 같다는 게 위안 아닌 위안이랄까.

“휴우- 야, 너 몇 살이냐?”

“···스물 여섯입니다.”

나보다 한 살 어리네.

“에휴, 너 뭐냐? 어제도 그렇더니, 왜 이러는 거야?”

“···그게 처음엔 의도한 게 아니라. 그냥 딱 마침 제가 하려던 운동이랑 겹치다 보니 그냥 같이 한 거였는데 하다 보니 의식돼서···”

하이고, 이 놈도 나랑 똑같았구만.

“그러다가 지고 나니까. 오기 생겨서 붙은 거다 이 말이지?”

“···예.”

그 말을 듣고 난 후, 나는 오히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 녀석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이 자식, 나랑 동류네.’

사소한 거 하나에서부터 지기 싫어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것도 그렇고, 주말에 나온 것도 그렇고, 이 녀석은 나랑 동류다.

그래서일까. 이 녀석이 뭐 하는 녀석인건지 궁금해진 나는, 이번엔 악수를 건네면서 제대로 인사했다.

“야, 다시 인사하자. 이번엔 관등성명 대는 게 아니라. 진짜로 사회에서 하듯이. 난 스물일곱 살. 이준혁이다. 전공은 축구고. 형이라고 불러도 된다.”

그러자, 이 녀석도 희미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 반갑습니다. 형님, 저는 스물 여섯 살 이대상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녀석이 자기 종목을 말하려는 순간, 나는 미리 선수쳤다.

“아, 알고 있어. 농구선수지?”

“···? 어떻게 아셨습니까? 혹시 KBL 보십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방금 니 운동하는 거 보고 알았지. 일단 어깨 좋고 키 크잖아.”

이놈 나보다 한 15cm는 크다. 한 190? 그리고 어깨-등 근육도 그렇고, 서전트 점프 기록도 정말 좋다. 정말 전형적인 농구선수의 몸이다.

아, 물론 이것만 보고 농구선수인 걸 확신할 수는 없긴 하지. 배구나 핸드볼 선수일 수도 있고, 혹시나 투수일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거기에 또 가슴 근육 벌크업용 운동까지 하잖아. 그럼 딱 농구선수지.”

솔직히 몸싸움 하는 거 아니면 저기는 키울 필요가 없거든. 농구선수들도 저 근육은 슛 던질 때 방해된다고 안 키우는 사람도 있는 곳이란 말이다.

“···그런 건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기는. 나 중학교때까진 농구도 같이 했었으니까. 키에 좋다는 소리 때문에 축구하면서도 같이 했었거든. 근데 영 안 커서 그만뒀다···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그보단 앞으로 너 계속 아침 운동 올 생각이냐?”

“예? 아, 예. 앞으로 매일 나올 생각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한 가지 제안을 꺼냈다.

“잘 됐네, 그럼 서로 이 시간에 같이 모여서 운동하자.”

솔직히 말해서, 아침에 혼자서 운동하는 건 엄청 힘들다.

뭐, 일단 꾸준히 나올 수가 있느냐부터 벽이다. 혼자서 묵묵하게 아침 운동한다? 이거 1년 내내 할 수 있는 사람은 장담하건데 거의 없다. 프로 중에서도.

거의 100% 중간에 어제 원정 경기 갔다왔다면서 쉬고, 어제 경기 있었다면서 쉬고, 어제 훈련 너무 많이 했다면서 쉬고, 그런 핑계가 익숙해지면 그냥 막 흐지부지된다. 운동선수라고 해서 막 특별히 더 타고난 인내심이 있거나 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에도 같이 공부하는 스터디가 있는 것처럼, 운동도 같이 운동하는 스터디가 있는 게 훨씬 좋다. 그렇게 옆에서 도와주고 같이 운동하는 사람이 있어야 훨씬 꾸준하게, 오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었는데.

“같이 나와서 자세도 봐 주고 하면 좋잖아.”

아침에 혼자 운동하면 자세가 그리 어렵지 않은, 잘못해도 부상당하지 않을 가벼운 운동 위주로만 할 수밖에 없지만. 이렇게 같이 하면 혼자 할때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인 자세 문제가 해결된다. 서로 지적해줄 수 있으니까.

“오, 저야 좋습니다. 혼자보단 같이하는 게 낫죠.”

나의 제안에, 대상이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좋아!”

물론. 조건은 하나 붙여야 했다.

“근데, 경기 있는 날은 나 못 나온다?”

“엑.”

넌 여름이 비시즌이겠지만, 난 시즌 중이란 말이다.

-*-*-*-

그렇게 결성된 아침 운동은, 꽤나 효과가 좋았다.

그동안 나는 스프린트, 유산소 위주의 운동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서, 상체와 같은 근력 위주의 운동도 조금씩 비중을 늘려가려 했는데, 이 녀석이 봐주니까 자세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굉장히 편했다.

“아,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

“봐 봐요, 이렇게 하는 거예요, 하나- 둘-“

비록 그 과정 에서 온갖 훈수를 듣긴 했지만. 말이지.

물론 당하고만 살진 않았다.

“아, 달리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

“스텝 밟는 거 보니깐 딱 봐도 너 그동안 몸으로만 돌파했지? 안 봐도 훤하다 훤해.”

이렇게 오고가는 아름다운 훈수 속에서, 좀 야마돌면(머리에 피가 돌면)

“야, 이거 누가 더 제대로 많이 하나 내기하자.”

“오, 좋습니다. 뭐 거실 겁니까?”

“치킨, 구운 걸로, 콜라는 제로콜라로.”

“좋습니다.”

가끔씩 먹을 거 가지고 내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느끼는 게 있었는데,

“하아- 하아- 이번엔 제가 이겼습니다?”

이 놈 진짜 몸 좋았다. 민첩성이나 스프린트, 지구력 위주 운동은 내가 이기긴 하는데 솔직히 아슬아슬한 차이였고, 힘이나 점퍼 기록같은 건 내가 개발렸다.

‘솔직히 정현이나 동기 형보다 몸은 더 좋은 거 같다?’

그리고, 가끔씩 운동만 하다가 좀 지루할 때, 서로 핸디캡 주고 농구랑 축구 1대 1을 하기도 했다. 뭐 서로 다른 종목에서 골 넣으면 점수 두 배라던가 그런 식으로.

“이야- 1대 1 나한테 지는 농구선수라니, 나가 뒤져라. 임마.”

“···다시 해요.”

“응- 안해- 축구는 오늘 한 골도 못 넣었지? 치킨 두 마리 시킬 준비나 해라.”

그리고, 몇 번 해본 결과, 이 연습도 생각보다 얻는 게 굉장히 많았다. 내가 본 녀석 중에서 피지컬 끝판왕이랑 가볍게라도 몸싸움을 하는 게, 생각보다 도움이 됐던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축구에서도 꽤 발전이 있었는데.

-삐익!

“좋아, 이준혁, 잘 막았다.”

훈련할 때, 웬만한 몸싸움은 간지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솔직히 딴 건 몰라도, 170 후반 친구들은 내가 힘싸움으로도 이겨먹을 수 있게 된 느낌?

그 동안은 미리 예측하거나 스피드를 통한 수비밖에 없었는데. 조금 더 능동적인 수비도 가능해진 거였다.

물론, 얻는 것이 있으니, 잃는 것도 있었다.

-뻐엉.

[아, 이준혁 선수, 오늘따라 몸이 무거워 보입니다.]

[분석이 된 걸까요? 시원한 돌파가 나오질 않고 있네요.]

훈련 강도가 훨씬 높아지다 보니. 훈련 전날엔 휴식을 취했음에도 확실히 경기장에서 100%의 몸상태라기엔 살짝 힘들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감독님에게 큰 지적을 당하지 않았던 이유라고 한다면.

[아, 노형구 선수! 돌파를 시도하지만, 이준혁 선수가 깔끔한 태클로 빼앗습니다!]

분명히, 수비는 훨씬 더 좋아지고 있었고.

[아, 이준혁, 롱 패스! 들어갔어요! 들어갔습니다! 단 다섯 번의 터치만에 나온 그림같은 역습이었습니다!]

공격 측면에서도 정확하고 빠른 크로스라는 한 방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하위권 팀과의 일정 정도는 소화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경기 종료됩니다. 이것으로 상주 상무, 무려 5연승을 달립니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지금 순항하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

-뜨르륵.

“휴우- 수고했다.”

“수고하셨습니다. 형님.”

으어어··· 오늘자 운동도 드디어 끝났구나.

“여기 보충제요.”

“고오맙다···”

내가 신음을 흘리며 단백질 쉐이크를 먹는 동안, 대상이도 옆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앉아서 신음을 흘리던 도중, 대상이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아, 형, 5연승이랑 어시스트 축하드립니다.”

“뭐야, 너 축구 보기 시작했어?”

“예, 기사 정도는 보게 되더라고요. 궁금해서.”

“이야- 여유가 넘치는구만, 신병이 사지방도 가고 말이야. 이거, 군기가 개판이구만? 선임들한테 말해야겠어?”

물론 나도 이병 때 사지방에 스타하러 갔었지만. 원래 세상은 내로남불인 법.

“아, 형, 그건 아니죠. 진짜 그러면 절교입니다. 절교.”

“어, 그래 그래 알겠다.”

그런데, 생각보다 좀 심한 반응이 나와서 바로 그만뒀다.

‘군기 좀 빡센가 보네?’

하긴, 농구 팀은 가뜩이나 프로농구가 인기 없는데, 상무 농구단이 2군 리그에서만 뛰니까 시선이 조금 덜 쏠리니 그럴 법도 한가.

하여튼 대상이가 좀 예민하게 나오자, 조금 뻘줌해진 나는 휴식이고 뭐고, 그냥 일어났다.

“가시게요?”

“엉. 너도 끝났지? 불 끄자.”

그 말과 함께, 체단실을 정리하고 헤어지는 찰나에.

“아, 참. 야, 나 내일부터 당분간은 운동 못 하거든? 한 열흘은 못 나온다?”

한 2주간 빡세게 진행했던 스터디를 열흘동안 중단한다는, 어찌 보면 충격적일 선언을 했다.

“예? 무슨 일 있으십니까?”

“있기야 있지. 원정 경기가 3연속으로 있거든.”

중간에 홈 경기도 없어서 완전히 그냥 바깥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 체단실로 오겠는가.

“아···”

“그러니까. 당분간은 혼자 해라?”

“예, 알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고, 우리는 곧장 헤어졌다.

‘뭐, 모든 경기를 홈에서 하더라도, 며칠간은 쉬었겠지만···’

이번 3연전은, 우리 뒤에 이은 2위인 서울 이브랜드와, 4위인 수원 FC랑 하는 경기였으니, 여유롭게 운동하면서 상체 힘을 키우고 그랬다간 오히려 우리가 당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 준혁아 왔냐? 이번 원정엔 우리 전체 다 나가지?”

“···아마도. 태준이 넌 긴장 안되냐?”

“긴장? 당연하지. 그치만 그만큼 기대되는데.”

태준이의 친정 아닌 친정팀이자.

“우리가 여기에 와서 처음으로 K리그 팀이랑 싸우는 거니까.”

내가 난생 처음으로 만나보게 될 K리그 팀.

전남 메탈즈와의 FA컵 16강전이 일정에 끼어 있었으니까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