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의 결실 (2)
[어느덧 후반전 정규시간이 후반 20분을 넘어가고 있는데, 현재 스코어는 0대 0입니다. 해설위원님은 지금까지의 경기를 표현하자면 어떻게 표현하시겠습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잠깐 좋게 말할지, 그냥 팩트를 꽂아버릴지 고민하던 해설위원은, 어차피 큰 경기도 아니니만큼 그냥 속 시원하게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나사가 하나씩 빠져있는 모습이네요, 상무는 미드필더가, 강원은 공격수가 나사가 빠져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낄 수 있을까요?]
[지금 상무가, 전반과는 달리 미드필더 지역에서 공을 이제 빼앗기진 않는데, 그닥 전개를 잘 하는 모습도 아니에요. 그냥 파울만 잔뜩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경기 시간이 아직 20분이 넘게 남았는데 상무의 파울은 15개를 넘겨가고 있었다. 평균적으로 한 경기당 파울이 양팀 합쳐서 30개를 넘기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꽤 많은 편이었다.
[물론 강원이 4-3-3을 들고 나왔기 때문에 미드필더에서 숫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이해해도, 강원의 미드필더들이 저렇게 킬 패스를 찔러넣을 수 있도록 하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죠.]
[그렇군요. 그럼 강원은 공격수가 왜 문제일까요?]
[간단하죠, 그 킬패스를 다 놓쳐버리고 있으니까요. 지금도 보세요]
그 순간, 강원이 2대 3의 찬스를 만들고, 논스톱으로 과감하게 때렸지만. 이번에도 공은 골대를 벗어나 버렸다.
[1대 2, 2대 3 같은 찬스를 미드필더가 계속 만들어주고 있는데도, 골을 못 넣어주고 있어요. 공격수들이 확실히 너무 급해요. 두 팀 모두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때입니다.]
[그렇군요, 상무의 골킥입니다.]
모두가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드는, 골 아웃의 그 순간.
나는 손을 들며 움직였다.
[골키퍼, 센터백에게 패스합니다. 곽선광, 볼 끌고 나갑니다.]
좋아, 내 위치를 보셨다. 그럼 의심하지 않고 달린다.
[왼쪽으로 찔러주는 패스, 이준혁. 받고 나서-]
그리고, 지금은 선배가 위로 올라가 있으니, 굳이 드리블을 하기보다는.
[-바로 짧게 윙어에게 찔러줍니다.]
받은 볼을 수비수가 포진이 형에게 도달하기 전에 빠르게 패스를 전달해준다.
자, 이러면 포진이 형은 중앙으로 파고들겠지. 그러면 나는-
[박포진 선수, 좌측에서 중앙으로 파고듭니다. 김윤호 선수 바로 붙습니다.]
[아, 말씀드리는 순간, 박포진, 다시 사이드 쪽으로 리턴 패스!]
계속 달려나가서 다시 리턴 패스할 틈을 만들고 받는다.
‘좋아, 볼 온다. 자. 이제 선택해야 할 시간이다. 다시 리턴 패스인가, 내가 직접 볼을 몰고 가는가.’
그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본 결과, 빠르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내가 공을 잡자마자 경합할 선수가 사이드 쪽에서 달려오네. 그렇다면.’
[아! 이준혁 선수 중앙으로 파고듭니다.]
[좋은 판단입니다! 사이드 쪽에서 선수가 달려오면, 중앙으로 파고드는 게 효과적이죠.]
축구는 11명이 뛰는 만큼, 보통 한 선수가 한 선수를 마크하기 때문에 한 쪽을 방어하고 있으면, 다른 한 쪽은 보통 비어있는 법. 지금은 사이드 쪽에 선수가 있으니, 당연히 중앙으로의 돌파를 선택했다.
그렇게 상대 선수를 살짝 제친 순간, 나는 고개를 다시 들어서 주변을 확인했다.
‘오른쪽은 아직 많이 안 올라왔다. 그렇다면 왼쪽 페널티박스 안으로.’
그럼 또 이지선다다. 패스? 드리블?
일반적이라면, 찔러주는 패스를 선택했겠고, 그게 평소의 나지만.
[앞으로 전진합니다 이준혁!]
나의 이번 선택은, 볼을 한 번 더 끄는 것이었다.
‘어차피, 지금 완벽한 역습을 찌르기엔 살짝 늦었어.’
골킥에서부터 시작된 역습이기에 이미 페널티박스 안에만 강원 선수만 6명이 들어가 있었고, 이러면 애써 패스를 보내도 상대편에게 막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내 선택은 드리블이다.’
자. 원 터치.
강원의 선수들이 순간 당황하는 눈치가 보였다. 당황할 시간도 있고, 팔자 좋구나.
투 터치.
그래, 내가 드리블을 칠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겠지. 내가 저 녀석들을 분석한 만큼, 저 놈들도 나를 분석했을 테니까. 그 동안 내가 보여준 한 명 제치고, 올라가서 크로스라는 패턴을 막는 데에만 신경썼겠지.
쓰리 터치.
하지만, 이 곳은 프로다. 내가 설마 두 달 동안, 다른 패턴을 준비했으리라고 생각도 안 했다면, 그거야말로 오산이야.
‘자, 곧 페널티박스 앞이다. 어떻게 할 생각이냐. 나오지 않으면, 다음 스텝 후엔 슈팅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한 놈이 튀어나왔다. 아마도 내가 네 번째 스텝으로 공을 건드리는 순간을 노리겠지.
그러니 네 번째 스텝을 밟기 직전,
아직, 다른 수비수가 빠진 구멍을 커버하기 전인 이 타이밍에.
-툭.
[좋은 패스! 날카롭습니다, 왼발 슛-! 아 골키퍼 펀칭!]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정현! 다시 슛-!]
-철썩.
[들어갔어요! 들어갔습니다! 이정현-! 군데렐라 이정현! 오늘 경기 상주 상무의 첫 골을 신고합니다!]
[국가대표다운 집중력입니다! 골키퍼 펀칭을 놓치지 않고 마지막까지 침착했던 이정현 선수가 0대 0의 균형을 깨뜨립니다!]
아, 아깝다. 설마 저걸 막을 줄이야.
‘뭐 결국 튀어나온 볼을 정현이가 넣었으니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내 어시스트를 운상 선배가 먹었네. 하하.
어시스트 규정이 그렇다. A라는 선수가 슈팅을 해서 골대나 상대 선수를 맞고 튀어나온 후 B라는 선수가 그 볼을 받아서 골 넣으면. A선수가 어시스트가 인정된다. 그 전에 A한테 결정적인 패스를 누가 했는지는 따지지 않고 말이다.
‘에휴- 그럼 난 아직도 리그 공격 포인트가 총 1골 1어시인가.’
물론 풀백이 좀 골 기회랑 어시 기회가 적다는 건 알지만, 조금 부족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내 작년 리그 기록이 4골 7어시인데 말이지.
‘아, 암만 생각해도 아쉽-‘
-팍
‘윽?!?’
뭔가가 내 등을 세게 후려쳐서 쳐다보자. 어느새 정현이와 운상 선배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선배님, 돌파 최고였습니다! 만세! 어휴, 세 경기만에 맛보는 골이네.”
“미안하다. 준혁아. 어시스트 내가 먹은 대신, 밥 한 끼 살께!”
그 모습을 보고, 순간 멍해졌던 나는 곧.
“하하. 비싼 걸로 사주세요···”
그냥 웃었다.
뭐, 비록 공식적인 어시스트는 날려 먹긴 했지만, 동료들이 내가 만들어낸 골이라는 걸 다 알고 있으면 되는 거겠지.
게다가,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잖아.
‘나의 2개월은, 헛되지 않았어.’
그 때는 수비도 허술하고 단순한 스피드를 이용한 제치기와 크로스 옵션 정도밖에 없었다면. 오늘은 상대방에게 선택지를 여러 개 보여주면서 깔끔한 측면 돌파도 보여줬다.
[아- 이건 진짜. 이준혁 선수를 칭찬해 줘야 겠습니다. 너무나도 완벽한 측면 돌파였어요. 교과서에 나올법한, 그림같은 역습입니다.]
어시스트야 만들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거다. 우리는 지금까지 26득점을 만든, K2리그 최다 득점 팀이니까.
‘어시스트가 귀한 고양과는 다르지.’
그러니까. 지금은.
“자, 그럼, 이제 위치로 돌아가자. 골 더 넣어보자고! 운상이 형도 다음엔 꼭 넣고요.”
***
<2015 K리그 챌린지 12Round>
경기 종료
강원 FC 0 : 2 상주 상무
[골]
상주 상무 : 이정현 - 61, 한운상 - 80
***
K리그 챌린지 12Round 위클리 베스트 11
FW : 주민구(서울E), 공민현(부천)
MF : 박정훈(고양), 조원희(서울E), 주현재(안양), 진수창(고양)
DF : 이준혁(상주), 곽선광(상주), 최병도(부천), 정우재(충주)
MVP : 주민구(서울E)
***
-후후, 후후, 당직사관이 전달합니다. 모두 일어나주시기 바랍니다. 모두 일어나주시기 바랍니다.
그 방송을 듣자마자, 부대의 모든 사람들은 마음 속으로 한 가지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아··· 제발. 제발 오늘은···제발’
‘제발 실내점호, 실내점호.’
-일요일이기도 하고, 어제 경기하느라 피곤한 장병들을 배려해 금일 아침점호는 생략하오니, 모두들 오후 회복 훈련시간에만 늦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듣자, 부대의 모두 인원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어제 경기하고 바로 버스 타고 속초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당장 수요일날 바로 여기에서 경기가 있는 탓에, 급하게 돌아온 만큼 오늘 오후까진 푹 쉴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이었다.
물론 운동선수이기에 아침은 거르면 안 된다는 생각에 다들 꾸역꾸역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러 가야 하긴 했지만.
“야, 점호 하나만 없어도 이렇게 행복하네. 우리 점심 때까지 뭐 할래?”
“글쎄, 티비나 볼까? 아니면 사지방?”
그래도 점호가 없다는 게 어딘가. 그것 하나만으로도 행복한 그들이었다.
그렇게 부대 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깐이나마 그 기분에 취해 아침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관으로 돌아가는 도중.
“훅- 후욱-”
나는, 아침 운동으로 몸을 풀어주고 있었다.
분명 어제자 경기를 통해 나의 2개월이 의미가 있었고. 슬슬 K리그 챌린지에서는 쓸 만한 풀백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긴 했지만.
‘겨우 이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어.’
나의 목표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K리그에서 제대로 뛰는 거란 말이다.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후욱- 후욱···”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아침 운동이었다.
‘아무도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을 때, 반 걸음이라도 앞서나가야지.’
그리고 미리 이렇게 회복 훈련 해 둬야, 오후에 개인 훈련할 시간이 조금이라도 늘어날테니 말이다.
그렇게 가볍게 운동장을 몇 바퀴를 돌고 나자, 몸이 슬슬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휴우- 좋아, 그럼 이제 체단실에 가 보실까?”
가볍게 몸을 데웠으니, 체력단련실에 가서 컴바인드 트레이닝을 하려던 나는, 도착과 동시에 나의 눈을 의심했다.
‘뭐지? 왜 체단실 불이 켜져있는 거야? 분명히 어제는 꺼져 있었는데?’
이 시간엔 올 사람도 없을 텐데 체력단련실의 불이 켜져 있는 게 좀 의아하게 생각하던 나는 바로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뭐야? 처음 보는 놈이 들어왔네?’
보통 체단실에 자주 오는 사람은 얼굴을 외우게 되는데, 이 친구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신병인가 보구만?’
뭐 하는 녀석이길래 이렇게 주말 아침부터 열심인지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저번에 본 그 축구 신병 얼굴도 아니여서 그냥 넘어간 나는 로잉 머신을 잡고 운동을 시작했다.
‘후우- 후우-’
그런데 그렇게 내가 머신을 잡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저 신병 녀석이, 내 옆에서 다가오더니.
-휭 -휭
나랑 옆에서 나랑 똑같이 로잉 머신을 돌리기 시작했다.
‘뭐야? 이건 이 새끼. 뭐냐?’
-휭 -휭
게다가 심지어 잘 했다. 아주 안정적으로, 빠르게.
그걸 보자,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다.
‘절대 안 진다.'
-휭-휭-휭-휭
‘나도 체력은 수준급이라고!’
그렇게 내가 스피드를 올리자, 그 쪽도 스피드가 올라갔다.
-휭-휭-휭-휭
-휭-휭-휭-휭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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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지 말걸.
“···씨, 씨발···”
왠지 모르게, 경쟁심이 붙어버려서 온 힘을 쏟아버렸다···
“하아- 하아-”
지, 진짜 쓸데없는 데 목숨 걸고 했네. 하아-
그, 그래도.
“허억-허억-허억”
내가 이겼다. 이 새끼야. 하하. 진짜 뒈지는 줄 알았지만··· 이겼으니 된 거지 뭐.
그렇게 살짝 여유가 생긴 나는, 저 친구에게 처음에 물어봤어야 할 질문을 했다.
“야, 너 이름 뭐냐?”
물론 좀 꽤씸하니, 몸에 손 대서 관등성명 붙이게 한 상태로 말이다.
“크허, 추, 충성··· 이, 이병 이대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