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 받아라 (2)
상무에서 지난번에 예비 신병들을 대상으로 한 실기 테스트 결과를 확인하는 자리의 분위기는, 꽤나 화기애애했다.
“흠, 신체 성분표는 나름 나쁘지 않군요?”
“예, 다들 체지방률 11% 이하로 나왔습니다.”
“이 친구들 몸 관리 잘 하는 편이네요. 저희가 선수할 때는 시즌 중에 잘 못 나가면 스트레스 받아서 술도 마시고 그랬는데.”
과거를 추억하는 그 말에 다들 살짝 웃었다.
“하긴, 옛날에는 그랬죠. 지금 그 때 체지방률 재면,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이 막 12% 넘기고 그랬을 겁니다. 요즘엔 보기 힘들지만요.”
“에이, 아직도 많이 보입니다.”
“네? 어디에서요?”
“저기 중국에서요. 중국은 체지방 12에서 13이 평균이에요. 진짜 걔네는 돈 많은 거 빼면 저희 옛날 90년대 초반 축구 수준이에요.”
다들 그렇게 기본적인 신체 성분표를 파악하고 난 후에는, 신체 능력 평가 테스트지로 넘어갔는데, 이 결과 역시 나쁘지 않았다.
“오, 이건 기대 이상인데?”
“그러게요, 피지컬 테스트 결과가 다들 K리그 평균은 넘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K리그 평균이라는 건, K리그 챌린지에서는 상위권이란 소리였다.
“이 정도로면, 일단 모두들 뽑힐 만한 최소한의 조건은 갖추었군.”
“예, 그렇습니다. 모두 구단에서 후보로 밀려나 있었는데도 몸 관리를 잘 한 걸 보면, 꽤나 성실합니다.”
상무에서 선수를 뽑을 때 코치들은 물론 실력이 가장 중요하지만 항상 준비하고 있는 자세 역시 매우 중요하게 봤다.
그 이유는. 사회에서는 후보랍시고 실망해서 몸 관리 안 하는 녀석이면
-어, 너 방출. 수고해라.
한 다음, 다른 선수를 뽑을 수 있겠지만. 상무는 아니다. 군대란 말이다. 사회적으로 뭔 음주운전 같은 큰 사고를 터뜨리지 않는 이상은 20개월 동안은 계속 안고 가야한다.
일반 구단처럼 뽑은 선수가 불성실하다는 이유만으로 방출한다? 그랬다간 오히려 손해다.
방출했다가 현역 선수들에게 욕 죽을때까지 쳐먹을 수 있는 건 둘째 치더라도, 내쫓는다고 새로운 선수를 바로 들여올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점 때문에 감독은 선수를 뽑을 때에 성실성을 굉장히 많이 따지는 편이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는 없어서 좋군.’
그렇게 생각한 감독은 코치진들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들은 이들 중 어떤 친구들을 뽑는 게 좋다고 생각하나?”
그 말에, 코치들이 각자 다른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저는 5명 다 뽑는 게 좋다는 생각입니다. 10월을 대비해야죠.”
“아뇨, 전 그 의견엔 반대입니다. 많이 뽑아 봤자 다 못씁니다. 저는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에서 각각 한 명씩만 뽑으면 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많이 뽑을 필요가 없다는 쪽에 동의힙니다. 다만 저는 선수층이 부족한 수비수에서 2명을 뽑자는 의견입니다.”
그리고 이 의견 모두 일리가 있었기에 회의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올 해 후반기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안건이니만큼 신중을 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회의를 결정지은 것은 감독이었다.
“2명만 뽑도록 하지.”
그 말과 함께, 모든 코치진은 고개를 끄덕이긴 했으나. 일부 코치진은 살짝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10월 때 일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빡빡한데 그 정도만 뽑으면 안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었다.
“자네들의 표정이 불안하군. 하지만 나는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네. 김 수석.”
“예.”
“올해 한 경기도 못 뛴 선수들이 얼마나 되지?”
“···자세히 세보진 않았지만, 아마 열댓 명이 넘습니다.”
그 말에, 지금까지 무작정 선수들을 뽑자고 한 코치진들은 표정이 바뀌었다. 물론 지금 선수 명단이 36명 수준이라 꽤 비대한 건 맞지만. 그래도 설마 한 경기도 못 뛴 선수가 저렇게 많다는 것은 미처 깨닫지 못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많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와 동시에 부끄러웠다. 분명히 로테이션을 안 돌린 것도 아닌데 한 경기도 못 뛴 선수가 저렇게 많다는 것은, 코치로서 보기 좋은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자네들의 의견도 일리는 있어. 10월에 우리는 9경기, 혹은 10경기를 치뤄야 하니, 그 때를 대비하여 많이 뽑자는 의견도 맞아.”
보통 축구선수가 5일에 1경기씩 경기를 치루면 혹사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한달에 9경기라는 건 확실히 미친 일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때만 쓰고 더 이상 쓰지 않을 선수를 뽑는 것도 별로 좋은 일은 아니야. 그건 어린 선수들에게 있어서 굉장한 실례야.”
그 말을 끝으로, 박 감독은 코치들에게 명령했다.
“자, 그럼 2명을 신중하게 뽑는 쪽으로 하자고.”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보고서의 다음 장을 넘기려던 순간, 감독은 처음 보는 자료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뭔가?”
“아, 죄송합니다. 같이 테스트에 참가해준 기존 선수들의 기록까지 같이 뽑혀버린 모양이군요.”
코치의 말을 듣고 자세히 보니 테스트지에 적힌 이름이 모두 친숙한 이름들이었다.
“바로 빼드리겠습니다.”
“아냐, 됐어. 잘 됐네. 이왕 뽑아온 김에 이것도 한번 보도록 하지, 우리 선수들의 상태를 볼 수 있는 좋은 자료 아닌가.”
그 말과 함께 테스트지를 훑어보던 감독은,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이건..?”
조금 이상한데, 이 기록은 말이 안 되지 않나?
‘도핑 테스트를 다시 해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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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약 빨았지?”
이건 또 뭔 소리야.
“개소리 하지 마라. 진태성 훈련병.”
“아니 씹. 여기 부대 밖이거든? 그리고 나 아직 사회인이다?”
“아, 그래? 상무 오기 싫으신가 보네?”
“······”
옳지.
“그래도 시발. 너 VO2MAX 75는 말이 안 되는 수준이잖아. 대학교 졸업하고 뭐 쳐먹은 거냐?”
말이 안 되긴 왜 안돼?
“야, 같이 신체측정한 스키 크로스컨트리 선수들 봤잖아. 그 분들 기록보단 나 훨씬 덜 나왔거든?”
“···애초에 마라토너만큼 폐활량 좋아야 하는 분들이랑 비교하는 니가 이상한 거 아냐?”
뭐래. 이 자식이. 축구선수가 체력 좋다고 말하려면 마라토너랑 비교해야지. 박지성 선수도 팀 닥터한테서 심장이 마라토너 수준이라던가 한다는 소리 들었다매.
“그리고 원래 너 대학교 때도 72 수준이었잖아. 어떻게 나이 먹고 더 늘어난 거야?”
“···글쎄, 그건 나도 의문이긴 하다.”
VO2MAX. 심폐 지구력을 나타내는 수치. 이건 원래 대학교 나이 때 정점을 찍은 다음, 그 이후부턴 서서히 내려가거나 유지하는 거다.
다만, 몇 가지 짐작되는 건 있었는데.
“처음으로 안정감을 찾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응? 그건 또 뭔 소리야?”
“너도 알다시피, 나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부터 매년 단년계약 제안만 받아오면서 계속 어떻게든 아등바등 살아왔어.”
내셔널 리그 때는 반드시 위로 올라가겠다고 다짐하면서.
고양에 처음 입단했던 해에는, 반드시 이 최저연봉 신세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리고 고양에서 괜찮은 조건으로 계약했을 때에는. 어떻게든 재계약을 하려고 발버둥치면서.
그렇게 매년 몸을 갈아가며 병원비를 벌면서 3년 중 2년 반을 살아왔다.
“그런데, 여기 오니깐, 충분히 휴식 취하면서 몸 만들기가 되더라.”
물론 주전 경쟁이나 멘탈이 조금 아파지는 일이야 여기에서도 있었지만, 그거야 뭐··· 못 버틸 수준의 일은 아니었고. 어느 정도는 또 경기에 나가기도 하고.
무엇보다, 쫓겨날 위험이 없다는 게 가장 컸다.
그게 나에게 있어서 기본적인 안정감을 가져다 줬다.
“그런 상태에서 의식주까지 여기에서 다 챙겨주니깐 진짜 운동에만 집중하면 되더라고.”
“···모든 선수가 너처럼 생각하는 건 아닌 거 같던데.”
“뭐, 그렇긴 해.”
이 때가 놀 기회다 하고 신나게 담배 뻑뻑 피워대면서 놀자판을 벌이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프로에서 갈려버린 몸을 적당히 쉬게 해줄 시간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이 기회에 진득히 성장을 해내겠다고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이 차이는 아마도-
“그냥 마음가짐의 차이겠지.”
그리고, 나는 그냥 뒤쪽이었던 사람일 뿐이다.
“하, 이 자식, 군대 예찬론을 별치고 있네, 너 군대에서 광고라도 받았냐?”
“아니, 그냥 내 생각을 말하는 것 뿐인데 뭐 어쩌라고.”
이렇게 돈 주고 밥 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곳 어디 없다? 금액이 조오오금 적긴··· 하지만.
“에휴, 하여튼 커피 잘 마셨다. 곧 또 보자.”
“그래, 또 보자. 진 이병. 그 땐 꼭 부를 때마다 관등성명 대고.”
“아 씹. 꺼져 임마.”
그렇게 태성이가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읊조렸다.
“그래, 꼭 와라···”
슬슬 지금 시기를 놓치면, 우리는 군대가 큰 장벽이 되니까.
그렇게 카페에서 친구를 보내고 난 뒤, 나는 서점으로 갔다. 같이 나온 태준이가 거기에 가 있는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점으로 걸어가던 도중, 나는 태준이가 가득히 책을 들고 나오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 잘 왔다. 좀 들어줘라.”
“야, 뭐 이렇게 잡지를 많이 샀어?”
“왜, 나는 사면 안 돼?”
“아니, 굳이 이렇게 많이 살 이유는 없잖아.”
이거 나중에 다 짐인데.
“왜, 나 너 보고 아이디어 떠올린 것뿐인데?”
“뭐? 그건 또 뭔 소리야.”
“너도 이렇게 핸드폰 숨기잖아?”
응? 그건 또 뭔 소리야.
“나 핸드폰 없는데.”
“구라까지 말고, 여기에서 핸드폰 없는 놈이 어디 있다고.”
“아니 나 진짜 없다니까? 나 아직 휴가도 안 나갔다 왔는데 뭔 놈의 핸드폰은 핸드폰이야.”
그러자. 슬슬 태준이가 이상한 놈을 쳐다보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뭐, 왜, 뭐. 핸드폰 안 쓴다는 게 그렇게 이상해 보여?”
“아니 미친, 너 아직도 머리 밀고 다닐 때부터 좀 맛 간 것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였냐?”
머리 미는 건 왜 또 태클이야. 그냥 여름 다가오기도 하고 군대기도 하니깐 그냥 밀어버린 건데.
‘그리고 난 솔직히 핸드폰 가지고 들어와도 할 것도 없단 말이지.’
연아의 햅틱 가지고 뭘 하냐. 게임? 글쎄. 안 한 지 오래됐다. 인터넷? 요금 폭탄 맞을 일 있냐?
‘아니 잠깐’
근데, 중요한 건 핸드폰 숨기는 거랑 이 책들이랑 무슨 상관이냐는 거다.
“이 책으로 어떻게 핸드폰 숨기는 건데? 책에다 끼우는 식으로는 못 숨기지 않아?”
심지어 잡지들인데. 이러면 더 티나지 않나?
“책 뒤랑 책꽂이 사이에 숨기면 돼.”
오우. 그런 방법이 있었구만?
“하, 하여튼, 너, 나 거기에 숨겼다고 티내지 마라.”
“알겠어.”
뭐, 내가 핸드폰 하지는 않지만, 굳이 부대 내에서 핸드폰 하는 친구들 고발하고 싶지도 않다. 저게 뭐 나한테 피해주는 것도 아니잖아?
“아, 그러고 보니, 부대에서 너 찾는 전화 왔었다.”
“응? 왜?”
“너 오자마자 군의관한테 가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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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이발.
“아니 한 번 했던 검사를 왜 또 하는 건데요?”
그냥 기록 잘 나왔으면 기록 잘 나왔구나- 하는 게 보통인데, 여기는 왜 이렇게 도핑 테스트를 계속 하는 거야.
“그야 10월에 군인올림픽 열리니까요.”
···그건 또 뭐야?
“뭐, 솔직히 저도 당신이 도핑 했다는 생각은 아니긴 한데, 이렇게 테스트로 기록된 증거 남겨놓는 게 나중에 다른 말 안 나오는 데 도움 됩니다.”
“예예···”
하아.
“어쨌든 뭐, 여기 온다는 거에 그렇게 거부감 느끼시지 마세요. 신체능력 늘었다는 소리기도 하잖아요?”
예예, 암요, 저도 알기야 알죠. 그치만, XY 염색체를 가진 동물이 내 가운뎃다리를 만져대는 건 암만 해도 익숙하지 않은걸요.
“아 참, 그러고 보니, 준혁 선수는 이번 강원 원정에 포함되었으니까 짐 싸세요.”
“강원전에요?”
“예, 아마 선발 명단에 들은 걸로 압니다.”
그 말을 듣자, 나는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강원 FC. 개막전에 만났던 상대.
그 때는, 언제 출전하게 될 지 몰라 전전긍긍했는데.
어느새, 당연하다는 듯이 슬슬 선발로 출전하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름 나 발전하긴 했네.’
그래, 나의 지난 2개월은 헛되지 않았던 거구나.
그렇다면, 다음으로는.
“예, 그럼 이만 준비하러 가보겠습니다.”
나의 2개월이 그들의 2개월과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를 알아볼 차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