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 받아라 (1)
2015년 05월 16일.
“그럼,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짝짝짝짝짝-!
오늘, 우리는 밖에 나와 자그마한 축하 자리를 만들었다.
우리 백업 팀 멤버··· 백업이라기엔 엄청 많이 경기에 나간 편이지만. 어쨌든 백업 팀 라인에 속하는 동기 형이 어제 K리그 챌린지 9라운드 MVP로 뽑혔기 때문이었다.
“그래, 고맙다. 준혁이 너도 베스트 11에 뽑힌 거 축하한다. 풀백으로 뽑힌 건 처음이지?”
“예, 하하.”
그리고, 나 역시 저번의 드리블 돌파 덕분이었을까. 왼쪽 풀백 부문에서 베스트 11에 드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거 뽑힌다고 뭐 상금이 떨어지는 건 없지만.
‘그래도 상 받는 건 언제나 기분 좋지.’
그 왜, 별 거 없는 쪽지시험이라고 할지라도, 괜히 성적 발표할 때 1등으로 나오면 기분 좋은 거 있지 않나. 딱 그런 느낌?
“자! 그럼 오늘, 열심히 먹어 보자고.”
“예!”
그렇게 조촐하게 열린 축하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내일 경기 명단이 어떻게 되는지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내일 동기 선배님은 선발출전하나요?”
“아니, 환일이가 선발이고, 나는 명단제외야.”
그 말에, 나를 포함한 몇몇 후배들이 깜짝 놀랐다.
“와, 아직도 형 로테에요? 최다득점자면서.”
지금 동기 형의 득점은 5골로. 상무의 최대 득점자이자 리그 2위의 득점자다. 그런데도 로테이션이라니.
그렇지만, 동기 형은 그런 우리의 반응에 덤덤한 표정이었다.
“정현이가 있잖아.”
그 말에, 우리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국가대표, 이정현.
국가대표인 그 친구가 떡 버티고 있는 한,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동기 형님이 부동의 주전을 먹기가 힘들다.
그 친구가 비록 동기 형에 비하면 조금 손색이 있긴 해도 8경기 선발출전에 2골 2도움 이면 나쁜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물론, 둘의 스타일이 조금 다르기라도 하면 공존이 가능하겠지만, 둘 모두 전형적인 원톱형 스트라이커다.
둘 모두 스피드보다는 활동량, 수비가담, 위치 선정, 공중볼 경합, 연계 플레이 같은게 장점인 공격수란 말이다.
물론, 몇 번 두 명을 투톱으로 내세워서 잘 풀리긴 했는데, 이건 우리 팀이 크로스가 좋아서 이런 뚝배기 전술이 잘 통한 거지 솔직히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정상적인 4-4-2라면 한 명이 등딱해주면, 한 쪽은 스피디한 게 정석이지.’
그러니 감독님 입장에서도, 이정현-박동기 조합이 결과적으로 나쁜 건 아니었지만, 다른 조합들을 계속해서 실험해보고 계시면서 다변화를 시도하고 계시는 거였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지금, 상무의 주전 풀백 라인은 박포진-이형인데, 이 중 이형 선배는 부동의 주전이다. 국대 클라스가 있으니···
그러니 주전 경쟁은 포진 선배와 하게 되는데, 내가 공격력은 포진 선배보다 조금 낫지만, 수비적인 측면에선 살짝 차이가 나다보니 리그 경기에서 처음부터 내려앉는 약팀이 아니면 굳이 나를 선발기용하려고 하진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신다.
그렇게 합쳐진 결과가.
“그럼 준혁이, 너도 명단 제외냐?”
“그렇죠- 뭐.”
고양전에서 활약했음에도 우리가 아직 후보에 머무르는 결과를 낳았다.
“와아. 진짜 여기가 어떻게 보면 경쟁 가장 빡세다. 너희들만큼 했는데도 명단 제외라니.”
“그러게, 너희 멘탈 괜찮냐?”
그러나, 나와 동기 형은, 서로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고말고.”
“전 만족해요.”
내일자로, 상무가 뛴 경기 수가 12경기가 되는데, 우리는 그 중 벌써 5경기에 출전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주전까진 아니어도, 핵심 로테이션 멤버정도로는 대우받고 있는 거지.’
벌써부터 이 정도 대우면, 아주 훌륭하다. 아직 선임 분들이 전역한 것도 아닌데 이 정도라면, 선임분들이 전역하고 난 후에는 명단엔 무조건 들고, 실컷 뛸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니까. 우리들 걱정하지 마. 특히 태준이 너는 너나 걱정해라.”
“아, 임마, 나도 슬슬 올라오고 있거든? 두고 봐라.”
“그래, 제발 두고 보자, 잘 좀 해서 내가 출전하면 내 어시스트도 팍팍 늘려줘.”
그래, 리그도 순항중이고, 이대로라면 걱정할 게 없다.
선임들이 전역하기만 하면 주전은 내 꺼다.
.
.
.
.
.
그렇게 생각했는데···
“신병을 뽑는다고?”
젠장할, 세상은 역시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는구나.
“그래, 오늘 테스트 본단다.”
“하, 미치겠네.”
하- 하긴. 시즌 중반에 선수가 그렇게 반타작이 되어버리는데, 인력을 어느 정도 뽑아둬야 25명을 채우겠지.’
‘에휴, 그래도 좀 그렇네. 거 참, 참 쉬운 게 없어.”
어떻게 이렇게 조금 살 만 해졌다 싶더니만, 주전 경쟁할 보충병이 들어오냐.
“그래서, 굳이 오늘 그걸 말하는 이유는 뭐, 뻔하겠지?”
“응, 실기 테스트에서 같이 뛰라는데.”
이게 뭔 소리냐면, 상무의 선수 선발은, 총 2단계에 걸쳐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서류 평가, 두 번째는 실기 평가.
첫 번째인 서류 평가는 K리그에서 주전, 혹은 후보 선수로 뛰고 있거나, 아니면 K리그 2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거나 하는 선수가 상무 입대를 신청하면 감독과 부대의 입맛에 맞추어 선수를 1차적으로 선별한다.
그리고, 두 번째인 실기 평가는 말 그대로 실기 평가다. 개인기, 신체능력, 경기 운영 능력 등을 테스트해보는 거다.
당연히 이러한 실기 테스트를 하는 데는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래서 지금 어제 경기 안 뛴 백업들 중에서 아무나 골라서 테스트를 같이 진행하라고 한 거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오늘 할 일은 뭐다?
-저기, 골대 제대로 세워라!
-음, 라인이 좀 예쁘게 안 그려졌다. 다시!
-자, 이 측정기, 이렇게 쓰는 거다. 한번 해 봐라.
시다바리(일꾼) 역할이다. 왜 우리가 뽑혔냐고?
가장 짬 덜 먹은 친구들이 우리니까!
“아, 망할, 이런 건 또 칼같이 군대같네 진짜. 후배들 안 시키고.”
“그러게나 말이다.”
뭐, 그래도 모두 이미 운동부에서 이미 저학년 때 수없이 해본 동작이니만큼, 투덜거리면서도 나름 여유롭게 대화할 시간이 나왔다.
“태준아, 혹시 오늘 누구누구 오는지 너 들었냐?
“글쎄, 나도 자세히는 못 들었는데.”
“그래도, 조금이라도 알지 않아?”
너는 나에 비하면 훨씬 마당발이잖냐.
“음··· 오늘 5명 온다는 소리는 들었어.”
“오, 그건 그나마 다행인 소식이네.”
경쟁자가 많이 안 늘어난다는 소리니까.
“근데 그 중에 윙어랑 풀백은 있다는 소식도 들었어.”
···아이씨. 다행인 소식이 아니구만.
“어디 쪽 전문이래? 라이트? 레프트?
“라이트.”
하, 그나마 오른쪽 선수들이라는 걸 보면 최악의 상황은 피하긴 했네.
‘근데 아직은 안심하기는 좀 이르긴 해···’
여기가 유럽이라면 좀 안심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선수들은 전부 양발을 어느 정도는 쓸 줄 알기에 오른쪽 측면 선수더라도 왼쪽으로 옮겨서 뛰는 일이 빈번하다.
당장 우리 팀의 박포진 선배부터가 원래 성남에서 라이트백인데 지금 나랑 레프트백 주전 경쟁하고 있고, 태준이도 원래 오른쪽 측면 선수지만 상무에선 계속 왼쪽 측면에서 뛰고 있지 않나.
‘에휴, 진짜 신병 들어오는 게 스트레스구나, 우리한테 좋은 게 하나도 없···’
응?
“아,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니 선수들 더 들어오면 좋은 점 하나 있긴 하네.”
“뭐가 좋은데?”
“후임 들어온다는 거잖아. 앞으로 이런 일에선 졸업하겠다.”
그 말에, 태준이는 눈을 반짝였다.
“그럼 우리가 훈련장 정리할 필요 없는 건가?”
하지만, 나는 태준이의 그 기대를 무참히 부숴줬다.
“어림없는 소리, 경쟁자들 들어왔으니 다시 또 너는 나랑 가장 늦게까지 훈련한다.”
“으··· 알겠어.”
그렇게 준비를 거의 끝마치자.
“오, 저기 온 거 같은데?”
슬슬 오늘의 테스트를 볼 친구들이 도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디?”
“저기, 사복 입고 온 친구들 말이야.”
오, 그렇군.
‘내가 아는 얼굴은 뭐, 없겠지?’
상무에 2부리거가 뽑혔다면, 주전이여야 하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구단이 시즌 중반에 주전 선수가 강력한 상대 팀으로 가는 걸 허락해줄 리는 없으니까.
‘1부 리그엔 뭐 아는 얼굴 거의 없고.’
기껏 해봐야 그 녀석 한 명 뿐인데 그 녀석이 지금 올 리가-
“어?”
있네?
“진태성? 태성이냐?”
정말이지 놀랍게도.
“어, 준혁이? 맞냐?”
우연이 일어났다. 지금 온 선수들 중에 한 명이, 나와 함께 4학년 때 전주대학교의 핵심이었던 태성이었다.
“와, 준혁아 너, 오랜만이다. 군대 갔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진짜 상무로 왔네?”
“그래, 오랜만이다. 태성아. 분명 작년 여름 때 본 게 마지막이었지?”
“그래, 그 때 네 어머니··· 아, 미안.”
태성이의 그 미안하다는 말에, 나는 희미하게 웃음지었다.
“아냐, 니가 미안할 게 뭐 있어. 니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래, 잘못이 있다면 나한테 있었지. 우리 아버지랑.
‘오히려 연락을 뿌린 것도 아니었는데 와 줬던 것만으로도 고맙지.’
나는 그렇게 뒷말은 삼키고 일부러 더 장난스럽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보단, 너도 상무 입대하기로 한 거야?”
“그래, 출전했다 하면 교체여서. 선발 기회가 별로 없었거든.”
그 말에, 나는 솔직히 깜짝 놀랐다.
“응? 니가? 왜? 너 작년에 괜찮았잖아?”
작년에 선발은 한 경기도 없이 교체로만 400분 정도 뛰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정도 뛰고 3골이면 양호한 편이잖아? 그런데도 선발 기회를 안 줬다고?
“그래도 부족했나봐. 올해 한 경기만 선발이었고, 나머지는 교체더라고. 그래서 입대 신청했어.”
“허어.”
참 무섭다. 무서워. K리그.
“하여튼, 니가 오늘 우리 훈련할 때 봐 주는 거야? 잘 부탁한다.”
“그래, 잘 봐주-”
마. 라고 하려던 순간, 뇌리에 스치는 한 구절이 있었다.
-저를 아십니까?
-팀에서 태성이가 자네를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어서 말일세. 싸이-
그래, 기억났다. 박경운 교수님께서, 날 처음 봤을 때 싸이코로 알고 계셨지?
그 기억이 떠오른 나는. 활짝 웃으며 친구놈에게 다가갔다.
“주, 준혁아 갑자기 왜 그래?”
“응? 내가 뭘?”
나는 그냥 활짝 웃고 있을 뿐인데 말이야.
“니 그 표정! 그 표정 왜 짓냐고! 내가 뭐 잘못했어?”
허어, 우리 태성이는 눈치가 꽤나 빠른 프렌즈구나?
“하하, 별 거 아니야. 저번에 내가 박경운 교수님이랑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분께서 나를 싸이코로 알고 계셔가지고. 고생 좀 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그 말에, 태성이가 얼음이 되어 버렸다.
저런, 왜 이리 얼어버린 건지 모르겠구나? 친구야. 난 그저 질문에 대답을 했을 뿐이라고.
“무슨 말을 했길래 박경운 교수님께서 나를 싸이코라고 알고 계셨던 거냐?”
“···어, 그건.”
자, 눈동자 몇 초 굴리나 보자. 1초. 2초···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음, 3초를 넘기지는 않았구나?
“좋아. 그럼 여기에서 넘어갈께.”
나는 관대하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고쳐야겠구나.
“아, 태성아, 그 전에 말이야 조금 불편한 게 있거든?”
“뭐, 뭔데?”
여기는 군대다.
그리고 니가 지금 입대할 경우에, 나는 너보다 짬밥을 6개월이나 더 많이 먹은 선임이고.
그러니까.
“선배님. 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어?”
어디서 훈련병 (진) 주제에.어디서 감히 하늘같은 일병한테 말을 놓는단 말인가.
“자, 진태성 씨? 빨리. 따라해보세요. 이준혁 선, 배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