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사랑 나라사랑 (1)
상주 상무는 K리그 챌린지의 최강팀이다.
이 명제는 2부리그의 모든 감독이 공유하고 있는 명제다. 당연한 것이, 경찰청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팀도 2부의 상주 상무보다 더 좋은 스쿼드를 가질 수는 없다. 군경팀의 최대 장점이다.
그러나, 상주 상무라고 해도 당연히 무적은 아니고, 약점이 존재한다. 그 중 가장 큰 약점을 꼽자면 군경팀이기에 일반적인 클럽 팀들과는 달리,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수 없다는 거다.
지난 5년간 K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토종 선수가 2010년의 유병수 선수 단 한 명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건 생각보다 매우 큰 문제다.
그리고 당연히, K리그에서도 그러는데 그 하부 리그인 K2는 어떻겠는가.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바로 작년의 K2리그 최다 득점자가 1위부터 3위까지 모두 외국인 선수였다. 그리고 그 중 득점왕을 가진 대전은, 2위랑 승점 19점 차이를 내며 우승했고 말이다.
그러니까.
[조나탄! 일대일 찬스! 걷어냈고요! 슛! 들어갑니다!]
[골! 골! 골입니다! 조나탄의 멀티골! 두 번 모두 개인능력으로 만들어낸 골입니다!]
···저렇게, 미꾸라지, 아니 외국인 선수니까 배스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거다.
“썩을. 엿 됐네.”
***
2015 K리그 챌린지 8Round
경기 결과
상주 상무 0 : 2 대구 FC
[골]
대구 FC : 조나탄 - 22, 77
***
“으아- 집이다. 집.”
휴, 그래 지-ㅂ···
“이 아니지! 야, 여기 우리 집 아니야. 생활관이라고.”
“···아 미친 그렇네?”
젠장, 어느새 군대 온 지 반년 정도 됐다고 이곳을 진짜 집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안돼. 이래선 안 된다고. 나에겐 돌아갈 집이···
생각해 보니 없구나.
'젠장. 하긴 지금까지 월세로 살았으니···'
잠시 내가 돌아갈 내 집도 없다는 깨닫고 잠시 머릿속이 정지모드가 되어버린 순간, 태준이가 나름 변명을 했다.
“···뭐 그 싸한 분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니까 긴장이 풀려서 그랬던 거 아닐까?”
“...그렇겠지?”
그래 그럴꺼다. 물론, 승패는 병가지상사라지만, 오늘의 패배는 특히 더 뼈아프긴 했으니.
“1위 싸움을 두고 붙는 상대한테서 져버렸잖아. 솔직히 우리가 못 나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도.”
이 경기를 하기 전까지, 우리는 2위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구와 승점이 1점밖에 차이 안 나는 2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 경기를 져버림으로서 3위로 내려앉았고, 1위 대구와는 승점 4점 차이가 나게 되어버렸다.
‘심지어 만회골도 못 넣어서 골 득실도 박살난 걸 생각하면···’
사실상 승점 5점 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시즌 초반인데 괜찮지 않나?”
그래, 이 태준이 녀석처럼. 하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야, 우리 시즌 후반에 로스터 반토막되거든?”
우리는 군경팀이다. 시즌 중반에 선수들이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이제 자유를 찾아 떠납니다!
를 외치는 팀이라는 거다. 그래, 시즌 중반에 선수들이 전역한다고! 로스터가 반토만난단 말이야.
물론 이건 내가 10월달에 주전을 날먹할 수 있다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내 목표가 K리그 한 경기라도 뛰는 건데 K리그 못 가면 무슨 소용이야···’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윗 기수 선임분들은 10월 12일에 전역하시기 때문에 한 7~8? 경기 정도만 버티면 된다는 거겠지만.
그 한 달 동안, 우리는 로테이션을 전혀 못 돌리는 상황에서 경기를 치루어야 한다. 이 때 성적이 꼬라박을 걸 생각하면, 시즌 초에 이 성적은 조금, 아니 꽤 안 좋은 상황이다.
그런 내 반응에 태준이도 조금 심각해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우리 다음 9R 경기는 어떻게 되는 거야? 나흘 뒤에 또 경기라서 우리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계속 풀주전 돌리시는 건가?”
“···글쎄, 잘 모르겠다.”
우리가 경기일정이 5일에 경찰청이었고, 오늘 9일에 대구, 그리고 13일에 다음 경기니까··· 솔직히 로테 돌리는 게 맞기는 한데.
“잘 모르겠네.”
지금 승점 안 쌓아두면 나중에 더 힘들어질 수도 있으니 주전들을 살짝 혹사시키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까진 아니다. 아직 시즌 초반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선임 분들은 전역하니까. 뽑아먹을 수 있을 때 뽑아먹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뭐, 감독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내가 그런 의연한 반응을 보이자,
“야, 너 지금 도 닦는 도사 흉내 내냐?”
태준이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음 경기, 가장 나가고 싶은 게 너잖아. 안 그래? 전 직장인데.”
“······”
그래, 다음 우리의 경기 상대는 고양 FC. 내 전 직장이다.
그리고, 솔직히 누구나 이직하고 나면 전 직장을 까는 게 국룰이듯이, 나도 전 직장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나의 전 직장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이 뭐였냐고? 프로 구단이면서 정말 관중수를 늘리려고 노력을 하질 않았다는 거다.
물론 순위도 낮으면서 관중수 높길 바라는 게 더 양심없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작년, 우리 고양- 아니 이젠 그냥 고양이지. 하여튼 고양의 리그 순위는 6위였다.
그렇지만, 관중 순위는 9등, 그것도 8등보단 10등에 훨씬 가까운 구단이었다.
평관 600, 보통은 한 3~400명 관중을 찍는 팀이라서 대전같이 인기팀이나 부천, 안산처럼 가까운 팀이랑 경기하면 원정 팬이 더 많아보일 지경이었다고.
그래서 솔직히, 난 여기 상무 와서 감동받았다. 왜냐고? 사람들이 보통 천 명씩 와! 천 명씩은 온다고! FA컵 경기도 오백명은 넘게 오고! 그 정도면 팬 많은 거지!
하여튼, 그래서 그렇게 불만이 많았던 전 직장과의 대결인데, 나가고 싶냐고?
“그래, 씨발 당연히 존나 나가고 싶지! 나가서 걔네들이 나 놓친 거 질질 짜게 해주고싶지 당연히.”
그렇지만.
“리그 출전은 감독님이 정하는 거잖아. 내가 뛰고 싶다고 해서 뛸 수 있는게 아니라.”
“그래? 너 거기서 주전 미드필더였잖아, 그래서 딴 건 몰라도 그 경기에는 선발 명단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기 팀 약점이랑 정보 다 알지 않아?”
어림없는 소리.
“야, 챌린지 리그는 매년 선수 한번씩 갈아엎거든? 고양이 내 전 직장이긴 한데, 내가 제대로 아는 선수는 한 대여섯명밖에 안 남아 있어.”
게다가. 그 쪽이 오히려 내 약점 파고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다. 나만 그 팀을 아는 게 아니라, 그 쪽도 나를 잘 알고 있단 말이다.
“그러니까, 그냥 코치들이 회의할 일이야.”
그러니깐,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그게 맞다. 기대를 하지 않아야 실망도 하지 않는 법 아니겠는가.
비록 생각해 둔 건 있지만!
그 작전 짜느라 며칠간 끄적대긴 했지만!
기대하지··· 말자. 그래,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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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하아, 돌아버리겠군.”
시즌 초입기의 가장 중요한 경기라고 할 수 있는 경기에서 져버린 탓일까. 박 감독은 고양전을 준비하면서도 영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리고, 그를 눈치챈 김 코치가 박 감독을 위로했다.
“기운 내십시오, 감독님 전술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저희는 대구한테 진 게 아니라 저 조나탄이란 친구한테 져 버린 겁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박 감독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도 결국 진 건 우리고, 이번 시즌에 저 조나탄이 다른 팀으로 이적할 가능성도 없어. 결국 우리는 저 친구들을 꺾어야 한다는 소리지.”
그 말과 함께, 한숨을 내뱉은 감독은,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오늘 회의 안건으로 돌아왔다.
“휴, 됐네, 이에 대한 대비는 다음에 해야지. 지금은 고양전에 집중할 때니까. 일단 박 닥터, 선수들의 몸상태는 어떤가?”
“아직은 괜찮습니다.”
박 감독은, 괜찮다는 말보다는 앞의 말에 주목했다.
“아직은?”
“예, 지금 당장은 괜찮지만, 이번에 혹사시키고 나면 회복력이 조금 느려지기 시작할 징조가 보입니다. 팀 닥터로서, 지금은 주전 선수들을 쉬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듣자, 박 감독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예상은 했지만, 역시 그런가?”
“예, 그렇습니다. 감독님도 5월 일정을 짤 때 미리 동의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그 때는 고양이 이렇게 골치아픈 상대일 줄은 몰랐지.”
그랬다. 지금 고양의 순위는, 무려 시즌 4위였다. 물론 아직 시즌 초반이라곤 하지만, 이 상무보다 승점이 고작 1점 아래인 4위란 말이다.
자칫하면, 2연패를 각오해야 한다. 그리고 그랬다가는, 고양과 이브랜드에 이어 5위로 추락해 버릴 수도 있다. 2부리그의 유일무이한 최강팀 상주로서는 엄청난 굴욕이다.
하지만, 시즌은 길게 봐야 하는 법.
“이번엔 FA컵에서 좋은 성적을 냈던 친구들과 지금까지 후보로 있었던 친구들을 적당히 섞어서 내보내도록 하지.”
박 감독은 패배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눈물을 머금고 후보 선수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감독을 보며 김 코치는 웃으며 말했다.
“기운 내십시오, 감독님, 그래도 고양은 고양입니다. 시즌 초반이라 괜찮아 보이는 거지. 이길 수 있을 겁니다. 후보들로만 싸워도 저번에 FA컵에서 충주도 이기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박 감독의 기준은 엄격했다.
‘그건 충주니까 그렇겠지.’
고양이 약팀이라고는 해도 꼴찌 경쟁을 하는 충주랑은 결이 다르다. 그래도 고양은 플레이오프를 노린다고 말은 할 수 있을 정도고, 충주는 꼴찌를 다투는 팀 아닌가.
그렇게 김 코치의 말을 넘기려고 했지만, 이어지는 말에는 잠깐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맞습니다. 그리고 우리 쪽에는 저기 팀에서 뛰던 이준혁이가 있지 않습니까. 그 친구한테서 팀 정보도 좀 알아오면 더 승률이 높아지지 않을까요?”
"!"
그래, 맞다. 그 친구가 있었다.
‘나도 나이가 먹었군, 이런 걸 까먹다니.’
아직 환갑도 안 됐는데 말이지. 군대 와서 그런가.
“지금 당장 그 친구를 불러오게, 최소한 작전 수립에는 도움이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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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제 의견을 한 번 말씀해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이건 또 뭔 소리야. 작전 짜는 데 선수 의견을 이렇게 물어본다고?
‘보통은 그냥 이렇게저렇게 짤 테니 여기에 맞춰서 뛰라고 하는 게 일반적인데. 아니면 알아서 뛰라고 하던가.’
확실히, 조금 다르다.
“자네는 전에 고양에서 뛴 적도 있고 B급 라이센스를 딴 친구인 만큼, 자네의 의견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네, 자네의 의견이 반영할 만하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가 볼 생각도 있어. 그러니 말해보게나.”
그 말을 듣고 나는.
‘흐, 흐흐흐.’
간신히 씰룩거리는 웃음을 참아냈다.
‘드디어, 드디어 모든 직장인들의 로망 중 하나를 실현해 볼 수 있겠구나.’
모든 직장인들의 로망이 무엇인가.
바로, 퇴사, 그리고 다니고 있던 직장을 시원하게 불태워 버리기 아니던가.
비록 퇴사는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짤렸던 직장을 불태우는 것도, 충분히 로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생각해둔 작전이 있긴 합니다.”
“좋아, 말해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