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원정 (2)
후루룩-
“오, 진짜네, 여기 순대 진짜 특이하다. 맛있는데? 이 순대 뭐냐?”
“괜찮죠? 막창 순대입니다. 안산 원정오면 제 최고 맛집이 여기에요.”
“음, 난 엄청 맛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고기 많아서 여기 자주 오는 거 아냐?”
“불만이 많구나 태준아. 그냥 대충 쳐먹으렴.”
이 정도면 맛있는 국밥이지, 밑반찬도 무료로 리필되는데.
“하여튼, 축하한다 준혁아, 원정 경기에 선발이라니. 엄청 빠르네.”
“감사합니다 형님.”
그래, 어느새 5월만에 여기까지 왔다.
‘이렇게 선발출전 하는 건 가을에나 가능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이 정도면 아주, 아주 빠르다.
문제가 있다면, 내일 상대는 내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놈들과는 차원이 다른 놈들이라는 거다.
‘첫 선발 상대가 경찰청이라니.’
경찰청 축구단.
상무처럼 2부리그와 1부리그를 왔다갔다 하는 편이 아니라서 사람들에게는 상무보다 더 약하다고 평가받기도 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전력만 따지면 오히려 상무보다도 막강하다고도 볼 수 있는 팀이 경찰청이다.
왜냐하면, 선수들을 영입할 수 있는 범위가 상무는 27세 이하이지만, 경찰청은 30세 이하라서 국가대표에서 계속 메달 군면제만 노리다가 상무 기간 놓치고 나서야 포기하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느끼기엔 오히려 경찰청이 더 강팀이었다. 상무와 경찰청 둘 다 챌린지에 있던 2013년 땐 경찰청이 9월까지 1위 달리기도 했고.
단지 저 놈들 윗대가리가 시즌 말에 공격수가 골키퍼 보는 웃긴 일도 벌어지고 그럴 정도로 선수들 전역러쉬를 생각 안 하는 미친놈들이라서 맨날 시즌 막판에 순위가 추락하니까 그렇지···
하여튼, 그런 디버프가 없는 시즌 초의 경찰청은 확실하게 강팀이라는 거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선발 출전이 기대되면서도 불안했다.
‘최근 두 경기 모두 미드필더로 뛰다가 풀백으로 다시 돌아온 건데 잘 할 수 있을까?’
그게 계속 걱정이었던 나는, 불안감에 선배한테 정보를 캐묻기 시작했지만.
“글쎄, 솔직히 네가 상대하게 될 종진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겟는데. 걔가 K리그에서 완전 주전이던 애는 아니라서.”
선배님도 별로 아는 게 없었다.
‘하긴, 오히려 내가 더 잘 알지도 모르겠다.’
작년의 주축 선수들이 아직 그대로 뛰고 있고, 용인시청 때 같은 팀이었던 경인이가 1순위 공격수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더 잘 알아서 문제다. 하.
‘내가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질 않아···’
그렇게 내가 어두워진 티를 내서일까, 이형 선배가 나한테 말을 걸어왔다.
“야, 준혁아, 너무 걱정하지 마.”
“예?”
“중요한 건, 네가 감독님께 인정을 받았다는 거야. 봐봐, 지금 우리가 저번 리그 경기에서 6일이 지나고 하는 경기거든? 이럴 땐 그냥 주전 돌리는 게 일반적이잖아.”
“······”
하긴 그렇긴 했다.
“그런데도 여기에 너를 쓴 건, 감독님이 니가 뛸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뛰어.”
“하하, 알아요. 저도 알죠.”
그래, 나도 알고는 있다. 쓸 만하다고 생각하니까 감독님이 넣었겠지.
“그런데, 그래도 되게 긴장되고, 떨리네요.”
그런 내 반응에, 이형 선배는 픽 웃었다.
“하긴 그래, 알아도 그걸 실천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긴 해.”
“진짜 그렇죠. 하하.”
분명 머리로는 이 선발 출전이 별 게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긴장하게 된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 분명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고. 생각 너무 많이 하면 될 것도 안 돼.”
“하하, 예 알겠습니다. 형님.”
그래, 다 잘 될꺼야. 그렇게 믿자.
-*-*-*-
빌어먹을.
삐이익-!
“우와와와아-!”
[아- 이런,이런 실수를 하다니요. 너무 안일한 패스였습니다. 이거 왠지 데자뷰가 느껴지는데요?]
[그렇죠? 상주가 1라운드 때 보여주던 바로 그 실수였습니다. 적 공격수가 눈을 훤히 뜨고 있는데, 저런 안일한 백패스라뇨! 경찰청 선수들이 바보가 아니거든요.]
전반전이 채 1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뼈저린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 그것도 개막전에서, 감독님이 불호령을 내렸던 그런 실수를 말이다.
그걸 떠올린 나는, 그냥 웃음밖에 안 나왔다.
‘하, 씨발. 끝났네.’
첫 선발에서, 그냥 포지셔닝 실수도 아니고, 이런 패스 미스를 해 버리다니, 이건 내가 감독이라도 얄짤 없이 교체다.
그렇게 전반전을 마치고 터덜터덜 걸어 나오던 나는 온갖 자괴감이 들었다.
‘조금만 더 집중할껄. 하하.’
그 실수만 아니였으면- 아니다.
‘실수도 실력이지.’
어디 시험에서, 실수했다고 해서 그 실수한 거에 대해서 봐 주는 시험이 있던가?천만의 말씀. 실수는 결국 아무리 포장을 해 봐야 실수다. 그리고 시험은 우리를 절대 봐 주지 않는다.
그리고, 한 번 저지른 실수는, 보통 다음 기회의 벽까지 좁혀버린다.
‘씨발,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했으니 10월달에 다시 올라올 때도 영향 오겠네···’
물론 기회가 아예 안 오진 않겠지만··· 아니다. 감독님이 10월 되기 전에 신병을 날 대체할 놈으로 뽑을수도 있겠구나? 하하.
‘그래. 내 주제에 씨발 무슨··· 경찰청 선수들을 잘 막아보겠다고···’
그렇게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으로, 후반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감독님의 말을 거의 흘려들으며 멍 하니 몇 분이 지났을까.
딱! 딱!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아 뭐야.'
그렇게 소리에 반응해 눈앞을 쳐다보자, 내 앞에 감독님이 서 계셨다.
“이준혁, 왜 안 나가고 서 있는 거지?”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너 안 들어가?”
“예?”
뭔 소리야. 나 빠지는 거 아니였어?
“하- 이건 또 뭔··· 너 뛰기 싫냐?”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닙니다!!!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왜 교체를 안 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더 기회가 왔다!
‘후- 마지막 기회다. 정말로 마지막 기회다.’
그렇게 다시 찾아온 기회에서, 나는 최대한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감독님이 무슨 말을 하신 거지?’
이렇게 다시 나올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설명을 자세히 들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버스는 떠나버렸고. 지금 있는 상황으로 최대한 추리를 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후반이 시작된지 5분쯤 지났을까. 다행히 감독님이 어떤 전술을 선택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또 롱볼축구네.’
또 동기 형님 투입하고 오른쪽에서 패스플레이 한 다음 이형 선배가 크로스 계속 올리는 걸 생각하면 확실하다.
‘쯥, 그런데 저 쪽이 너무 잘 막고 있네.’
그러나 경찰청 선수들은, 수비 숫자를 늘리고 오른쪽에 선수들을 집중하면서 나름 그 공세를 튼튼하게 잘 막아내고, 오히려 틈틈히 역습까지 가하고 있었다.
- 삐익-!
[아, 골라인 아웃!]
‘휴. 이대로 가면 내 실수로 지는 건데 무슨 방법이··· 가만.’
오른쪽으로 쏠린 상황, 텅텅 빈 왼쪽.
딱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위로 올라가면서 손을 들고 외쳤다.
“패-쓰!”
그 말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공이 날라왔고. 그 공을 받은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보니, 왼쪽 측면을 파고 달리기에 너무나도 좋은 상황이던 것이었다.
물론, 바로 내 앞을 가로막는 선수가 나타났다.
‘예전대로라면 여기에서 그냥 패스를 날렸겠지만···’
오늘만큼은, 그리고 지금만큼은, 이게 더 나은 선택이다.
-뻥
[아! 이준혁 선수! 돌파를 시도합니다!]
-뻥
‘달린다. 달린다. 달린다. 달린다.’
[빨라요! 빠릅니다! 이준혁 선수 빠릅니다!]
[아! 박종진 선수, 따라잡지 못합니다!]
‘제껴졌나? 제껴졌으면-’
[중앙으로 파고듭니다. 중앙에 골키퍼 나옵니다 왼발 슈팅-]
[이 아니죠! 패스였습니다. 한 선수, 오른발 슈팅- 골! 골! 골입니다! 이준혁 선수의 멋진 돌파였습니다!]
됐다!
“이야야야야-!”
됐다. 됐다고! 됐어!
순간적으로, 온 몸이 짜릿해지는 기분이 들면서 내가 처음으로 풀백으로 전향 제안을 받았을 때가 떠올랐다.
-저 말고도 다른 풀백도 있는데, 왜 저를 풀백으로 쓰시려는 거죠?
-그 친구들 중에서 ‘진짜’ 공격적인 풀백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
그 말이 떠오르면서 감독님이 있던 쪽을 바라보자, 감독님은 아주 환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래, 이거였구나, 이거였어. 감독님이 나한테 바란 건 이런 거였어.’
나는 빠르다. 농담이 아니라. 나는 정말로 나보다 빠른 선수는 거의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는 이러한 빠름을 별로 강력하게 이용하진 못했었다.
볼 터치가 둔탁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이동하다가 볼을 잡으면 튕겨버리기가 일쑤였고, 그렇다고 빠른 것 하나만 보고 윙어로 쓰기엔 골 결정력도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시야가 좋다는 다른 장점을 활용해 미드필더로 뛴 거였다.
그런데 이런 단점들이, 풀백으로 내려오면서 많이 사라졌다.
그리 빠르게 이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볼을 받으니 덜 튕겨나가고, 가속도가 붙을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니 그야말로 완벽했다.
“형님! 골 축하드립니다!
“야! 준혁아! 너도 돌파 좋았다. 완전 미쳤는데?”
“감사합니다 선배님!”
물론 이런 축하 상황 속에서 태클을 거는 놈도 있긴 했다.
“축하한다. 그래도 니가 싼 똥 니가 치우긴 했구나?”
“···그래, 참 고오맙다 태준아.”
젠장,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니 봐준다.
그렇게 세레모니를 하던 도중. 이형 선배가 나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쟤네들 아직 깜짝 놀란 것 같은데. 어쩔래, 한번 더 해볼래?”
그 말에 나는 씩 웃었다. 한번 더 해 볼 거냐고?
“당연하죠. 형, 왼쪽에 공간 난다 싶으면, 바로 주세요.”
당연히, 더 해야지. 원래 같은 전술을 계속 반복하는건 금기라고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저렇게 상대방이 온몸으로
-저 놈 미쳤나? 저런 놈 아니라고 들었는데?
뒤통수 쳐맞은 표정을 짓고 있을 때는 말이 좀 달라진다. 비록 축구는 아니지만, 한 10년 전에 이미 같은 전술만 세 번 반복해서 다 이겨서 전설이 된 케이스도 있지 않은가.
내가 그런 반응을 보이자, 이형 선배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좋은 표정이야. 이제 나도 좀 편해지겠네.”
“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야, 나 지금 7라운든데, 7경기 전부 풀타임 출전하고 있다. 솔직히 군대 와서 이게 뭔 고생이냐? 나도 좀 쉬어야지.”
“······”
“그러니까, 얼른 커라. 얼른 커서 감독님이 나도 한번 빼게 만들어 줘.”
그 말을 끝으로 이형 선배가 슬슬 라인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조금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출전 기회 줄어드시는데 저런 반응은 좀 신기하네.’
그런 생각과 함께 라인으로 돌아가던 도중.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 나나 포진 선배가 경쟁 상대라기보단, 그냥 백업 요원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
···그러진 않겠지. 그러진 않을꺼다.
그래도 혹시나. 혹시나 만일, 정말로 내가 자리를 빼앗는 것에 대해 저렇게 별 일 아닌 것처럼 생각하신다면.
‘그 생각, 후회하게 만들어 줄 겁니다. 형님.’
···아무리, 국대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
2015 K리그 챌린지 7Round
경기 종료
안산 경찰청 1 : 3 상주 상무
[골]
안산 경찰청 : 고경인 - 44
상주 상무 : 한운상 - 49, 박동기 - 69, 김도협 - 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