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8/167)

첫 원정 (1)

식단 조절은 운동선수에게 제일 중요한 덕목 중 하나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에 운동선수들이 식단 조절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때도 있다.

바로 경기 한 3~4시간 전,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나서 음식을 먹는 걸 볼 때다. 이 때 우리는, 사람들이 몸에 안 좋다는 걸 엄청나게 먹어댄다. 바로-

-후루루루룩

면류다. 시합 전, 후에 가장 필요한 게 탄수화물이라서, 우리는 탄수화물 덩어리인 이 녀석을 이 때 타이밍에 엄청 먹어야 한다. 안 그러면 배고파서 못 뛰거나 몸 회복이 늦어진다.

그래서 4라운드 경기가 시작되기 전 지금, 허가받고 외출 나온 나는 전 내 백업이자 현 이브랜드 공격수인 민구 녀석과 함께 짜장면집에 와 있었다.

“와, 선배, 여기 진짜 간짜장 맛집이네요.”

“그렇지? 간판이 엄청 허름해서 그렇지, 맛이랑 가격은 이보다 더 좋은 집 없다.”

“확실히 그렇네요. 이런 데는 어떻게 아신 거에요?”

몰라. 임마. 나도 선배한테 알아봐서 처음 와 본 거라고. 외출 자체가 이번이 첨인데 내가 어떻게 알았겠냐.

하지만, 이걸 굳이 말해서 추해질 필요는 없는 법.

“다 아는 수가 있지. 하여튼 마음껏 먹어라. 탕수육도 부족하면 말하고.”

그런 내 말에, 후배 녀석이 잠깐 멈칫거렸다.

“···진짜로요? 선배 돈 없지 않아요? 선배 소속팀도 없어서 보조금도 안 나오잖아요.”

민구 녀석이 말하는 보조금은. 2012년부터 프로축구연맹에서 제작한 제도였는데, 바로 나 같은 군 입대 선수에게는 원 소속팀이 월 50만~100만원의 생활지원금을 지급하도록 되어있다.

다만. 여기에는 조건이 붙었는데 저 보조금의 대상은 원 소속구단에서 계약기간이 1년 이상 남아있는 선수들이다.

FA 신분인, 그리고 매년 단년계약만 해 왔던 나한테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거다.

그럼에도 내가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이유는.

“야, 그래도 출전명단에 들어서 너 밥 사줄 수당은 나와.”

상주 상무가, 의외로 지난 3월에 이기니까 거기에 대한 승리수당을 줬다! 그것도 고양 시절보다 훨씬 더 많이!

‘명단에만 들면 승리시 100만원에 무승부는 50만이라니. 고양에 있을 땐 출전해야만 출전수당 40만 줬는데.’

뭐, 기본급이 병사 월급인 14만원이라 그 때보다 더 벌거나- 하는 건 아니였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당장은 충분히 먹고살 만한 정도는 되는지라, 시내에서 만난 김에 저번에 질투심 가진 게 미안하기도 해서 이렇게 점심 한번 사 준 거였다.

내가 그렇게 나오자, 민구 녀석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냥 고개를 숙였다.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형님.”

“오냐.”

그래, 너도 지금 주머니 사정이 참 걱정 많을 때지, 4라운드인데 아직까지 출전 한 번도 없어서 기본급만 받는 신세일 테니까 말이다.

“오늘 제가 골 넣으면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

그 말에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몰라서 머뭇거렸다.

‘아니, 골 넣고 보답하겠다는 건 기특하긴 한데, 오늘 우리랑 경기하면서 골 넣겠다고 하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냐.’

다행히 민구 녀석도 바로 그걸 눈치챘는지 그 말을 꺼내고 살짝 당황하더니, 다른 말을 꺼냈다.

“아, 생각해 보니 제가 골 넣어서 보답하겠다는 건 조금 애매하네요. 그럼 혹시 형님, 잠깐 저희 쪽에 와 주실 수 있어요?”

.

.

.

.

.

“이준혁? 점심 먹으러 외출 갔다 온다더니, 그건 웬 신발들이냐?”

“···”

-*-*-*-

-형님, 아직도 키카 쓰고 계시죠? 이번에 저희 이브랜드 쪽에서 신상 축구화라고 엄청 뿌렸거든요? 나름 괜찮아서 전 신발 갈아탔어요. 이거 몇 개 드릴테니까 이 김에 형님도 한번 신발 좀 바꾸세요.

처음엔 그냥 굴러다니는 거 넘기는 약팔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이 녀석, 오늘 경기에서 이거 신더니 골까지 넣었다.

‘그걸 생각하면 이 녀석은 진짜 이게 좋다고 생각한다는 건데.’

흐음-

사실, 축구화를 바꿀까- 하는 생각은 종종 해 오긴 했다. 프로씬에서 나 같이 키카를 신는 사람들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하니까.

문제는, 나는 축구화의 제 1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나이키, 제 2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아디다스를 신지 못한다는 거다. 내가 축구화 매장에 가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아저씨, 이거보다 발볼 큰 거 없어요?

그랬다. 이 두 브랜드는 서양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거라 그런지, 기본적으로 한국인의 발 체형에 맞게 만들어져 있지가 않았다.

내가 발 너비, 그러니까 발볼이 엄청 넓은 편이라서 한국 운동화도 거의 10mm 가까이 크게 신는 편인데. 나이키는 정말 하나도 발에 맞는게 없었고, 아디다스는? 가~끔 내 발 사이즈까지 있는 것도 보이긴 했는데, 내 발에 맞는 재고가 없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

그 순간부터 나는 그 두 브랜드는 포기했었다. 한달에 적어도 2켤레에서 4켤레는 갈아끼워야 하는데, 재고가 안정적으로 공급 안 되기라도 하면? 진짜 큰일나는 거다.

그러니 나에게 최선은 미즈노였는데··· 이건 좋긴 좋은데 몇 번 써 봤더니 박살나서, 이거 쓰다간 내 지갑이 탈탈 털리겠더라. 한 번 쓰고 버린 적도 있을 정도로 내구성이 안 좋더라고.

그래서, 어차피 경기에서 개인기 쓸 일이 많지 않았던 나는 그냥 학창시절에 싼 맛에 쓰던 키카를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었던 건데.

“오, 이건 내 발에 맞네?”

민구가 가져다 준 이 비자로라는 축구화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일단 흔치 않는 내 발볼에 맞는 축구화라는 데에서 합격. 그리고.

“이 정도면 메이저급으로 가벼운 편인데?”

물론 메이저 회사의 경량화 축구화만큼 좋은 건 아니었지만. 키카에 비해서는 확실히 훨씬 편하고 가벼웠다. 게다가 알아보니 가격도 착했다. 10만원대라니, 최소한 선수용은 20만은 넘어가는 게 보통인데.

‘이 정도면 내구도가 별로더라도 써 볼 만한 수준인데. 분명 다음 FA컵 경기가 29일이었지?’

흠, 시간도 2주나 남았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다음 경기에서 써 볼까?

***

2015 KEB하나은행 FA CUP 32강전

전반 20분

상주 상무 1 : 0 충주 FC

[골]

상주 상무 : 박태준 - 15 .

충주 FC : 없음.

***

전반에 빠르게 한 골을 넣고 여유를 가지게 되자, 나는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이··· 왼쪽, 오른쪽 모두 달려들 기세 없고, 수비수랑 등진 상황이네.’

그 순간. 난 지금까지 실전에선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플레이를 시도해 봤다.

오른발로 공을 띄워 인스텝, 그러니까 발등에 올린 다음 몸을 돌려버리면서 오른발을 휘두른 거다.

수비수는 순간적으로 내가 오른발 돌려차기를 하려는 줄 알고 순간 멈칫했지만, 머리 위로 공이 흘러가는 걸 보자 짧고 굵은 말을 내뱉었다.

“씨발!”

그리고 그 사이에, 나는 왼쪽으로 돌아 나가 신나게 공을 쫓기 시작했다.

‘미친, 이게 되네.’

그래, 방금 난 사포에 성공한 거다. 그 네이마르나 하는, 수비수가 가장 열받는 개인기 1위를 다투는 그 미친 드리블을 성공시킨 거란 말이다.

그리고, 그 개인기를 성공시킨 네이마르가 보통 그렇듯이.

“우왁-!”

삐-익-!

뒤에서 태클을 당해버렸다. 아오.

“와 미친, 야, 준혁아 괜찮냐?”

“···”

그러나, 그 질문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들려오지도 않았고, 그저 한 가지 사실만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게 되네?’

솔직히, 이 사포라는 거, 실전에서 사용하려면 엄청 어렵다. 그런데 성공했다는 건···

“저기, 선배님.”

“응? 오, 목소리 보니 괜찮나보네? 왜?”

“오늘 저한테 볼 좀 몰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나서 볼을 몰아받기 시작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흐, 흐흐. 씨발. 미쳤다. 볼 컨트롤이 이 정도로 차이날 줄이야.’

이 정도면, 나에게 패스와 치달만으로 먹고살던 나에게 제대로 된 개인기를 펼칠 수 있는 옵션이 새로 추가된 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팀은 충주 FC.

비록 작년에 9위를 한, 꼴찌에서 두 번째 가는 팀이라지만, 챌린지 리그 팀이다.

당연히 저번의 내셔널리그 팀보다 훨씬 잘 하는 선수들인데도, 이 선수들한테서 볼을 빼앗길 것 같다는 압박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슬슬 수비수가 공을 잡지 않았을 때에도 나한테 달라붙고, 심지어 이런 말까지 했다.

“씨발, 야 이새끼야. 그딴 식으로 한번만 더 축구하면 내가 너 죽여버린다.”

그리고 그런 말을 들은 나는 정말이지···

너무 감명받았다. 저 말을 해석하면

-당신의 드리블은 흠잡을데 없이 완벽하고 치명적이군요. 저로서는 대응하기가 어려우니 제발 드리블 치지 말아주세요.

이런 말 아닌가. 대한민국에서 스타와 롤을 해본 사람이라면 너무나도 번역하기 쉬운 말이었다. 내 드리블이 저런 극찬을 듣다니.

‘그럼 한 번 더 해줘야겠지.’

마친 오른쪽에서 패스가 오자. 이번에 나는 오른쪽에서 오는 공을 논스톱으로 슈팅하려는 척 하다가, 왼발로 수비수 가랑이 사이를 노려 알까기를 해 주었다.

“야 이 씨-”

극찬과 함께 텅 비어버린 중앙에서 나는 가볍게 슈팅을-

-뻥!

‘는 안되는군.’

젠장.

그래, 망할, 개인기가 좋아졌다고 슈팅까지 좋아지는 건 아니지.

얌전히 패스나 해야겠다.

***

2015 KEB하나은행 FA CUP 32강전

경기 결과

상주 상무 4 : 1 충주 FC

[골]

상주 상무 : 박태준 - 15 , 한경인 - 30, 서민상 - 44, 박일승 - 88

충주 FC : 마르싱유 -86(PK)

***

박 감독은, 오늘 FA컵에서 대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을 보고받고 조금 놀랐다.

‘그 정도로 대승리를 했다고?’

충주가 비록 강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팀의 백업들이 나가서 저렇게 탈탈 털어버릴 수 있는 수준은 또 아니었다.

제대로 상황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한 감독은 구단 내부에서 찍은 경기 영상을 달라고 했고, 그것을 찾아본 결과 어떤 점이 그 차이를 만들었는가를 파악했다.

‘이준혁. 이 친구가 핵심이군’

전반전에 초반에 보여 준 드리블 돌파를 통해 자신에게 수비를 집중시킨 후, 패스를 통해 여러 곳에 영향력을 흩뿌리면서 순식간에 전반전에만 3대 0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친구, 원래 드리블은 잘 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빠르긴 하지만, 볼 터치가 살짝 둔탁한 편이어서 드리블 실력은 크게 기대 안 했었는데, 다시 생각해야할지도 모르겠다.

‘흐음- 그 외에도 저기 태준이란 녀석이, 측면에서 1대 1은 거의 계속 돌파에 성공하는 것도 보이고···’

그렇게 계속 영상을 보다 보니,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백업들의 실력이 꽤나 올라왔군.”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라면 챌린지의 어떤 팀과 겨뤄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할 만한 모습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감독의 눈빛에 이채가 떠올랐고, 그는 컴퓨터로 가서 내일까지 제출할 리그 명단 파일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FW : 이정현 - 이기승

MF : 김환성 - 임협상 - 권형순 - 황수일

DF : 박포진 - 여해성 - 곽선광 - 이형

“나쁘진 않아, 나쁘진 않지···”

이름값만으로 보면, 다음 리그 경기에서 압승을 거두어야만 하는 명단이었다.

하지만, 감독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도 그럴 게. 최근 3경기 동안, 상주 상무는 리그 경기에서 1승 1무 1패를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실력의 문제는 아니었다.

‘망할 놈들, 고작 3라운드만에 헤이해지다니. 내가 생각을 잘못했었지.’

경기 일정이 길었기 때문에 주전과 백업을 확실히 구분지어서 경기를 뛰었더니, 이것들이 벌써부터 주전 경쟁이 끝난 줄 알고 슬슬 헤이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 친구들이 백업 선수들보다야 나을 거라는 생각에 계속 출전을 시켰지만···

‘지금은, 경쟁이 필요할 때인 듯 하군.’

그 생각과 함께, 감독은 선발 명단을 고치기 시작했다.

FW : 이정현 - 이기승

MF : 김환성 - 임협상 - 권형순 - 황수일

DF : 이준혁 - 여해성 - 곽선광 - 이형

‘생각보다 빠르지만, 어디 한번 네가 내 기대를 채울 수 있는지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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