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167)

기록되지 않을 경기 (4)

2015년 04월 11일. 상주시민운동장.

경기장에 들어와 몸을 풀고 있던 나는, 의외의 사실 하나를 깨닫고 깜짝 놀랐다.

“이야- 오늘 사람 엄청 많네?”

그 말에 같이 몸을 풀던 태준이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이게 사람 많다고? 한 오백 명도 안 되는 것 같아 보이는데?”

“야, 수요일 평일 경기에 이 정도면 사람 엄청 많은 거지.”

평일 저녁도 아니고. 오후 4시에 열리는 경기가 이 정도면 진짜 많이 온 거다.

“이게? 이게 평균이라고? 그럼 넌 도대체 평균의 기준이 얼마냐?”

“음··· 평일 경기면 한 400명? 그 정도면 평균보다는 조금 더 많이 온 편이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태준이는 조금 이상한 눈으로 날 쳐다보기 시작했다.

뭐야, 뭔데?

“저기, 태열 선배님, K리그 2는 진짜로 관중수 400명이면 꽤 많이 온 편인가요?”

“···아니, 저건 쟤네가 좀 이상한 거야. 우리는 적어도 리그 경기에 600명 정도는 오는 편이거든.”

그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진짜요? 대구는 사람들 그렇게 많이 와요?”

“그래, 느네가 좀 이상한 거야.”

오, 그렇구나. 솔직히 대전 빼곤 평일엔 다 비슷비슷하다고 느꼈었는데.

내가 꽤 색다른 사실을 깨달으며 놀라던 도중, 태준은 코웃음쳤다.

“와, 이게 K리그 챌린지구나. 우리 전남이 인기있는 팀은 아니었어도, 평관 3천은 찍었는데.”

그 말을 들은 나와 태열 선배는 왠지 기분이 나빠져서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한 마디씩 툭툭 던졌다.

“그래, 인기 없긴 인기 없는 모양이네, 대전은 2부인데도 평관 3천이거든.”

“맞아. 내가 작년에 대전 갔을 때 한 5천은 왔었거든. 전남 참 인기없구나.”

그렇게 2부리그를 무시하는 못된 1부리거 자식의 콧대를 눌러 준 나와 태열 선배는 관중석을 다시 한 번 살펴봤는데. 다시 보자 조금 이상한 점이 보였다.

“저거, 비디오 캠코더죠?”

“···그러네.”

그걸 보는 순간, 우리는 짜기라도 한 듯 관중들을 다시 한 번 스캔했고.

“전 확실한 사람 일고여덟 명 찾았네요. 형은요?”

“···난 애매한 사람까지 다 세봤는데, 거의 스무 명은 되는 거 같은데.”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 경기에, 스카우터가 그야말로 대량으로 몰려왔다는 것을 말이다.

-*-*-*-

사실 대학교 때까지 축구를 했다면, 스카우터 한 번도 못 보는 사람은 없다. 고등학교 때랑 대학교 때는 사실상 관중의 숫자가 학부모 아니면 스카우터일 정도로 스카우터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러나, 막상 프로에 오게 되면, 경기장에서 스카우터를 보게 되는 경우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관중의 파도에 쏠려 눈에 잘 안 띄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리그 경기영상이 남기 때문에 직접 와서 경기를 볼 필요성이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거기에 프로 선수를 영입하려면 돈도 들기도 하니, 더욱 더 스카우터 파견보다는 그냥 경기 보고 계약 상황만 살펴보다가 계약이 해지되면 잽싸게 비공개 테스트 보고 영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일까. 스카우터가 대량으로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갑자기 선수들은 열의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합! 으아!

-헛! 둘!

이 기회를 살려 전역 후 저들의 팀에 한 줄이라도 자신에게 더 긍정적인 글귀를 남기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일찍부터 몸을 풀고 저들을 볼 기회가 있었던 나는. 스카우터들의 눈빛이 우리가 아니라, 상대편에, 그것도 한 선수의 몸풀기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는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다들 저 김민제란 놈 보러 온 거구만.’

그리고, 이렇게까지 몰려온 걸 보면···

‘하, 저 녀석 프로필에 적힌 나이가 진짜였구나. 진짜로 20살이었다니.’

보통 우리나라에서 20살 축구선수면 이 둘 중 하나다.

첫째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프로 팀에서 좋은 계약을 제시받고 바로 프로팀으로 가는 유형.

둘째는, 프로 팀에게 지명받지 못하거나, 지명은 받았으나 계약 조건이 영 별로여서 대학에서 자신을 조금 더 가다듬고 프로에 도전해보겠다는 유형.

어려서부터 유럽 축구 유학을 간 예외적인 케이스가 아니라면, 솔직히 이 두 가지 유형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저 놈은 둘 다 아니였다.

‘도대체 저 미친 놈은 어떻게, 아니 왜 저 나이에 임대도 아닌데 내셔널리그에서 뛰는 거야?’

저 나이에 내셔널리그에서 뛰는 경우는, 거의 100% 프로팀에서 ‘분명 가능성은 보여서 2군에 썩히기엔 아깝지만 현재 K리그에서 1군 멤버로 합류하긴 애매한’ 선수를 임대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저 녀석은 아예 그냥 프로필에서부터 딱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 소속’ 이라고 딱 이름붙여져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다 뭔 소리냐면.

저 놈은, 분명 약 4개월 전까지만 해도 높게 평가된 선수도 아니고, 드래프트에서 뽑힌 선수가 아닐 텐데.

“준혁아, 저기 봐라. 저 분 우리 전남구단에 있던 분이다. 인천에서 봤던 분도 있네.”

지금은 저렇게 K리그 팀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선수가 된 놈이라는 거다.

하, 인생 정말 불공평하네. 진짜.

‘어떻게 된 게, 요즘 만나는 얘가 한 놈은 내 백업이었다가 공격수로 포변하고, 한 놈은 4개월 전엔 재능 없어보여서 드래프트도 안 된 놈이 갑자기 저렇게 K리그 팀들이 주목하는 놈이 되고 그러는 건데?’

진짜. 개 같은 기분이다.

-다핫!

그리고, 저 오버하는 놈들도 불안하다.

‘젠장, 이대로 가다간 다들 자기가 가장 돋보이길 원할 것 같은데 ···설마 그렇다고 지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불안한 예측은 언제나 맞아떨어지는 법이라는 법칙이 있듯이.

삐이익-!

-우와아아아아! 민제야! 네가 최고다!

-김민제! 김민제! 김민제!

결국, 팀이 선제골을 먹혀버렸다.

***

FA컵 3라운드

상주 상무 0 : 1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골]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 김민제 -33

***

다들 개인 플레이를 위주로 하다 보니 수비가 헐거워지면서, 그걸 메꾸기 위해 우리 팀의 수비수가 반칙을 저질렀고 그 파울에서 나온 간접 프리킥을, 김민제 저 녀석이 깔끔하게 헤딩으로 골대에 넣어버렸다.

그 골과 동시에, 우리의 위-대하신 1부리그에 계신다고 껍신대고, 스카우터들이 온다는 소리에 희희낙락하던 우리 선임 센터백 분들은

-씨발, 저 놈 뭐야?

-완전 사기잖아. 저 키에 저 스피드가 말이 돼?

온갖 불평을 털어놓기 바빴다.

물론, 저런 소리가 나올 법도 했다. 189cm에, 점프력도 좋고, 엄청나게 빨랐으니까. K리그 팀들이 앞다퉈서 스카우터를 보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아, 씨발, 우린 들러리였네.

스카우터들이 자신을 보러 온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진실을 깨닫고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파이팅이 넘치던 사람에서 그냥 의무적으로 뛰는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그런 몇몇 선배들을 보고, 나는 솔직히 짜증났다.

‘그래, 실망할 수는 있겠지. 자기가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조연이었다는 생각이 들면 누구나 그러는 법이니까.’

하지만.

지금 골 먹히고, 지고 있는 상황인데 공을 들고 저렇게 천천히 걷고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한 나는, 느릭느릿 공을 들고 가던 선배에게서

-탁

공을 뺏어버렸다.

“제가 가져다 놓겠습니다.”

“···뭐? 어 그래라.”

나는 공을 받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중앙선으로 냅다 뛰면서 손짓으로 공격진 모두를 불러모았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공격수들은, 전부 상황이 심각해졌다는 걸 깨닫고는 얼굴이 다들 굳어 있었다.

그 중 공격진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한경인 선배가 대표로 나와서 말하기 시작했다.

“야, 이거 우리 망한 거 아니냐? 쟤네들 저 수비수 끼고 영혼의 텐 백 하면 솔직히 뚫을 수 없을 것 같은데. 태준이 너 크로스 날릴 줄 아냐?”

“···아뇨, 솔직히 크로스는 자신 없습니다.”

“미치겠네. 나도 크로스 그닥 자신있는 건 아닌데. 그럼 우리 이거 어떻게 하지? 크로스 잘 날리는 사람? 없어? 텐백은 그걸로 뚫어야되는데.”

그러나,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내가 크로스를 날릴 줄은 알지만 지금 크로스 날려 봤자, 김민제 저 놈한테 다 막혀버릴 것 같은데.’

그 정도로 저 녀석은 압도적이었다. 크로스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했다.

‘자 일단 상황을 성리해보자, 지금 우리 팀에서, 가장 효율적인 득점 루트가 뭐가 있을까.’

일단, 아무리 상황이 심각해도 지금 개인 플레이를 하지 말라는 건 절대 들을 리가 없다.

태준이를 빼고는 나보다 모두 선배일뿐더러, 스카우트까지 와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상 이건 공격수들이 후배라고 해도 개인플레이 한다.

‘그렇다면 개인 플레이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건데.’

문제는 상대 팀이 절대 그런 공간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약팀이 강팀한테 선제골을 넣었는데, 당연히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수비 벽을 세울 게 뻔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개인 플레이의 효율도 급감한다. 한 선수한테 두세명씩 달려들 수가 있게 되는데 공격수가 그걸 뚫기란 당연히 쉽지 않기 때문이다.

즉,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결국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씨발, 이대로 내셔널리그 팀한테 질 수는 없는데, 다들 의견 없어? 빨리 아무나 좀 말해봐.”

그리고,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아주 명확했다.

“선배님, 의견이 있습니다.”

“준혁이? 그래, 말해봐. 뭔 방법인데?”

“당분간 오른쪽 위주로만 패스할 생각인데, 잠시만 어울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

축구를 알긴 아는데, 잘은 모르는, 그러니까 가족과 함께 티비로 경기 한두 번 본 사람들에게 축구 경기가 어떤 건지 물어보면, 보통 이렇게 답한다.

-공 쫓아다니다가 상대편 그 네모난 골대? 에 공 넣으면 되는 경기 아냐?

비록 많은 비약과 생략이 있지만, 솔직히 맞는 말이기도 하다. 결국 축구는 이 공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스포츠다.

수비수는 공이 골대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존재하는 놈들이고.

공격수는 공을 골대에 들어가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놈들이다.

그렇기에, 선수들의 움직임은 기본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공을 따라가게 된다.

그것이 바로 내가 오른쪽으로 공을 몰아준 이유였다.

‘좋아, 이제 슬슬 오른쪽으로 공이 가기만 하면, 기본적으로 세 명이 저 쪽으로 쏠리네.’

상대방이 사람인 이상, 아무리 전술적으로 움직임을 지시받았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볼이 노골적으로 오른쪽 위주로 전개되면 당연히 오른쪽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저 수비수들이 오른쪽으로 오는 볼에 달라붙는 속도도 엄청 빨라졌어.’

그리고 사람이기에, 같은 행동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사람이 그 행동에 익숙해지면서 속도가 빨라지는 것도 같은 현상이다.

‘전반도 끝나가는 타이밍이라 딱 방심할 때고··· 그럼, 작전대로다.’

그 생각과 동시에, 나는 큰 소리로 작전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현태 선배-!”

그 말을 듣고, 오른쪽에서 포위되어 도저히 뚫고 들어갈 틈을 찾지 못한 현태 선배가 나에게 다시 백 패스를 보냄과 동시에.

나는 엄지 손가락을 든 상태로 왼손을 치켜세워 2차 신호를 보내고. 바로 중앙 지역으로 드리블을 시도했다.

-···? 야-! 중앙! 저 자식 막아-!

지금까지 드리블을 한 번도 하지 않고 패스 전개에만 열중했던 내가 헐거워진 중앙으로 드리블을 시도하자, 당연하다는 듯이 골키퍼는 수비수들에게 막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골키퍼의 말에 계속 오른쪽으로 시선을 주긴 했지만, 왼쪽에 남아있던 마지막 한 명의 수비수마저 달려와서 자연스레 내 앞을 가로막는 순간.

‘빙고.’

뻥-!!

나는 미련 없이, 왼쪽에서 신호를 보고 달리던 태준이에게 패스를 보내줬다.

오른쪽에 세 명의 수비수가 중앙으로 막 돌아오고, 왼쪽에서 마크하고 있던 수비수도 나에게 달라붙어 버린 완벽한 노 마크 찬스.

이런 상황에서 긴장해서 대기권 돌파 슛을 쏴 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투욱-

삐이익-!

태준이는, 다행히도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켰다.

“이예에에에에에-! 골이다! 골이라고! 준혁아! 나이쓰으으! 니가 말한 대로야!”

“잘 했어! 잘 했다! 태준아! 완벽했어! 소녀 슛 좋았다!”

그리고, 그렇게 기뻐하는 우리들 사이로, 선배님들도 다가와 우리를 축하해줬다.

“잘 했다. 잘 했어. 이걸로 1대 1이네.”

“휴, 이제야 한숨 돌렸네. 준혁아. 이제 공격 어떻게 할 생각이냐?”

그리고, 그 질문에, 나는 씩 웃으며 대답해줬다.

“당연히, 선배님들한테도 골 보따리 안겨드려야죠. 걱정 마십쇼.”

아직, 나는 배고프고.

이제 전반이 지났을 뿐이니까.

***

전반 종료

상주 상무 1 : 1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골]

상주 상무 : 박태준 - 44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 김민제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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