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5/167)

기록되지 않을 경기 (3)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팀 중 하나였던, 08~12년까지의 바르셀로나에서의 에이스가 리오넬 메시라는 데에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당시, 바르셀로나의 두 번째로 중요한 이를 꼽으라고 한다면, 조금 말이 나뉘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주장이자 센터백인 카를로스 푸욜을 뽑을 것이고, 또는 수비와 공격의 기점이 되는 세르히오 부스케츠를 꼽을 수도, 혹은 공격 전개의 만능 키였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를 꼽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09, 10, 11 3연속 발롱도르 3위를 기록한, 신계라 불리는 두 선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위에 있지 않던 선수인, 사비 에르난데스(Xavi Hernández)를 꼽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코치님은 그런 선수가 맡던 역할을 나에게 맡긴 것이었다.

삐익-!

“방금 판단이 조금 느렸다. 더 빠르게!”

당연히, 쉬울 리가 없었다.

애초에 그 선수가 맡던 역할이 쉬우면 그 선수가 왜 패스 마스터라고 불리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고, 골도 넣는 신과 골만 넣는 애새끼 두 선수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겠는가.

그럼에도 코치님이 나에게 이 롤을 맡긴 이유가 있었는데

-자네 B급 라이센스 코치증 뒀다가 엿 바꿔먹은 건 아닐 테지?

라는 이유에서였다.

아니, 씹. 그래. 내가 분명 코치 라이센스 딸 때엔 그게 가장 트렌디한 전술이었으니까 당연히 알고 있긴 한데. 그거랑 하는 거랑 같진 않잖습니까.

하지만, 선수는 원래 코치가 까라면 까야 하는 존재인 법.

삐익-!

“쉬지 말고 움직여라!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다! 원래 하던 대로 목 열심히 움직여!”

“예!”

삐익-!

.

.

.

삐익-!

.

.

.

삐익-!

“세션 종료, 중앙 미드필더들은 잠시 휴식한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나는 짐들 던져놓은 곳에 드러누웠다.

“흐어어-”

아, 허허, 망할. 머리도, 몸도 너무 힘들다.

‘진짜 기준이 너무 빡빡하신데. 바르셀로나식 6초 룰까지 연습시키실 줄이야.’

바르셀로나식 6초 룰,

간단하게 말하자면 빌드업하는 과정에서 볼을 빼앗길 경우 일반적으로는 수비 진형으로 변형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6초 안에 압박을 통해 볼을 빼앗아 오도록 하는 것이다.

근데 이건 진짜 제대로 쓰려면 엄청 훈련이 되어야 해서 난 이것까진 안 할거라고 봤는데. 이것까지 적용시키시다니.

진짜 아주 작정을 하시고 우리를 가르치시려고 하는 느낌이다.

‘휴우- 젠장. 엄청 지치네.’

그렇게 잠깐 앉아서 휴식을 가지는 사이.

“끄으, 준혁아. 나도 여기에 좀 앉아도 되겠냐?”

내가 여기에 오기 전부터 얼굴을 알고 있던 유일한 동기이자 나와 함께 유이한 2부리거가 말을 걸어왔다.

“아, 태열 선배님, 물론입니다.”

김태열 선배님, 2부에선 그야말로 육각형 미드필더에다. 성격도 좋다고 소문나서 칠각형 미드필더로 불리시는 분. 나도 경기에서 몇 번 만나봤는데, 정말 나같이 착한 선배님이셨다. 매너 좋고.

그런 분이 자리 좀 만들어달라는데 안 만들어주면 쓰겠나.

“에구구, 힘 들다- 시즌 중에 이게 뭔 고생이냐. 갑자기 새로운 포메이션 익히라니.”

“하하. 그런 것치곤 이니에스타 롤 잘 소화하시던데. 역시 대학리그 MVP는 다르십니다. 전 처음 배우는 거라 그런지 조금 힘들던데요.”

그 말을 듣자, 태열 선배가 이상하다는 눈빛을 보내 왔다.

“어? 너 이 전술 처음이라고?”

“네.”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우리가 막 프로로 들어올 때 가장 유행하던 게 이 전술인데. 한 번도 안 해 봤다고?”

“예, 진짜로요.”

뭐, 공부는 많이 했었다. 아니, 많이 했다를 넘어 솔직히 웬만한 선수들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내가 코치 라이센스를 딸 때, 가장 트렌디했던 전술이 바로 저 과르디올라식 4-3-3였던만큼 공부를 꽤 했었으니까.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내가 그 때 배우고 실제론 한 번도 사용할 일이 없었던 전술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과르디올라가 만든 바르셀로나식 4-3-3 전술은, 강팀의 전술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바르셀로나식 4-3-3은 수비 라인을 높게 끌어올리는 전술이다. 한 골을 집어넣기보다 한 골을 안 먹히는 데 훨씬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 약팀에서는 절대 쓰지 못할 전략이고, 모든 경기를 이기겠다는 생각을 하는 강팀이나 쓸 수 있는 전술이라는 거다.

그런데. 나는 고등학교 때도, 프로에서도 계속해서 약팀에서 뛰어왔다. 그나마 대학교 때는 우승 한번 해봤으니 약팀은 아니었냐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솔직히 그 우승은 2학년 때 영건이빨로 우승 한 거고. 그 때를 제외하면 지역 강호 수준이어서 지금까지 거의 계속 역습 위주의 플레이만 연습해왔다.

즉, 수비 라인을 높이 끌어올리고 공 점유를 중시하는 강팀의 전술을 제대로 익히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거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태열 선배님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지적 안 받냐?”

아니 뭔 소리야.

“지적 겁나게 받았는데요? 열 번 중에 한 번씩은 꼭 지적 받았는데.”

“야, 그게 지적 많이 받은 거라고? 지랄 마라.”

아니 이건 또 뭔 소리야. 이니에스타 롤 맡아놓고 가장 지적 안 받으신 분이 이런 소리를 하니까 열받네?

그렇게 내가 선배임에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싶은 기분을 느끼자.

‘아, 이래서 태준이 녀석이 내가 실수해서 19발 쐈다는 소리에 그렇게 난리쳤던 거였나?’

하는 감정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본인이 겪어봐야 진정으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법인가 보다. 음음, 입력 완료. 지식이 늘어따.

그렇게 내가 감정 하나를 머릿속에 입력하면서, 선배님의 말에 대하여 태준이 녀석을 반면교사로 삼아 아주 상식적이고 올바른 대응을 했다.

“그런 것치곤 선배님이 가장 지적 별로 안 받았잖아요. 저보다 지적 더 안 받으시고선.”

“야, 그야 당연하지, 난 대구에서 이 전술 좀 써 봤으니까.”

아. 그랬지. 맞다. 대구는 주로 4231을 쓰긴 했지만 가끔 433도 썼지··· 잠깐.

“근데 왜 저희보다 순위 낮았던 거에요?”

“와 이 새끼가 갑자기 아픈 곳 훅 들어오네, 얌마. 그런 건 좀 넘어가.”

“아니 사실을 말하는 것 뿐인데요.”

그러자 선배님은 뭔가를 말하려다. 한숨을 푹푹 쉬셨다. 마치 내가 못할 말이라도 한 것처럼.

‘아니 왜? 솔직히 내가 못할 말 한 것도 아닌데.’

우리 팀보다 순위 낮으면 그게 팀인가? 비록 고양이 내가 있던 팀이긴 했지만, 진짜 축구 더럽게 못한다는 생각이 자주 들 정도였는데. 우리보다 성적 낮으면 그런 말 들을 각오는 해야 하는 거 아냐?

···하지만 나는 선배를 존중할 줄 아는 착한 후배이기에, 이런 사소한 선배님의 허물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역시 난 너무 착한 것 같단 말이야.

“···일단 넘어가마. 하여튼, 솔직히 처음하는 거면 열 번 플레이할 때마다 다섯 번은 멈칫거려야 하는 게 정상이거든? 저기 저 니 룸메처럼.”

“저기 선배님, 쟤는 드리블 원툴 태준이잖아요. 쟤랑 비교하면 유식해 보이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 말에, 선배님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야, 쟤보고 무식하다고 말할 수 있는 놈이 여기에서 몇 명 없다? 감독님이 쟤한텐 메시 롤 맡기셨어. 그게 뭔 뜻인지 몰라?”

“···”

“ 그러니까. 너 어디 가서 이거 처음 한다는 소리 하지 마라. 듣는 사람 개빡치게 만들지 말고.”

그 사람 좋던 선배님이 그렇게 예민하게 나올 말이라는 데 살짝 놀란 사이에.

삐익-!

-휴식 끝! 미드필더는 전원 나와라!

휘슬이 울리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아오, 별로 쉬지도 못하고 바로 나가네. 같이 나갈래?”

“엡, 음료수 조금만 마시고 저도 바로 따라가겠습니다.”

그렇게 음료수를 마시던 사이 등 뒤로 희미하게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하, 이제 보니 저 자식도 재능러였네. 진짜로 이걸 처음 하는 놈이라고? 말이 안 되는 거잖아. 국대도 저런 건 못 할텐데.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나는 살짝 멈칫거렸다.

‘···내가 재능 있다는 생각은, 솔직히 한 번도 해 본적 없었는데 말이지.’

-*-*-*-

-삐이익!

“오늘 수고했다. 내일은 아침점호 끝나고 식사를 마치면 바로 여기로 모이도록.”

그리고 내일은 이런 훈련을 하루종일 한다는 소리에, 솔직히 걱정이 될 정도였다.

‘아니, 훈련도 좋지만, 이렇게까지 하면 막상 경기 때는 체력 달리는 거 아냐?’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였던 것이 바로 밝혀졌다.

“음, 좋습니다. 현재까지의 반응속도 회복을 보면, 경기 때에 큰 지장은 없겠네요.”

“······”

군의관의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뭔 반응속도까지 다 기록해놓고 선수가 얼마나 피로한지 알아보는 척도로 쓰고 있냐. 하하.’

진짜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상무가 얼마나 축복받은 시설인지를 몇 번이고 깨닫게 된다. K리그, 국가대표 선수들이나 쓸 수 있을법한 최신 훈련법과 테스트, 기구들이 정말이지 넘쳐난다.

그렇게 진료를 마친 군의관은, 나에게 왠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뭡니까? 이건.”

“FA컵 3라운드 상대인 경주 한수원 자료입니다. 전력분석관이 나중에 선수들 진료할 때 나눠주라고 하더군요.”

“···젠장, 이거 다 외우라고요?”

대충 봐도 열 장은 무조건 넘고, 거의 스무 장은 되어 보이는데?

“예, 중앙 미드필더는 특히나 더, 외우라고 하시더군요. 그거 외우고 나중에 영상 자료도 이메일로 보내드릴 테니, 그걸로 보세요.”

그 말을 듣고는, 나는 조용히 종이를 집어들어 일단 한 번 훑어보기 시작했는데, 기가 찰 지경이었다.

‘젠장, 진짜 본격적이시네 이거. 거의 고양에서 리그 상대 분석하던 수준으로 상세한 자료잖아.’

하아- 돌겠다 진짜. 그나마 풀백되면서 몇 안되는 장점이 상대방 공격수만 외워도 되서 머리가 좀 편했다는 거였는데. 막상 미드필더까지 겸업하니깐 하나도 좋은 게 없네.

그렇게 툴툴대면서 자료를 넘기던 도중. 조금 이상한 점이 하나 들어왔다.

‘어? 이 친구. 96년생이라고?’

그럼 지금 대학교 1학년이란 소리인데. 이거 오류 아냐?

“저기, 이거 자료 조금 틀린 거 같은데요?”

“네? 그럴 리가요, 저희 쪽은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리기 전에 검토를 다섯 번은 하고 보여드린다고요.”

어, 그렇게까지 저희 껄 봐주신다니 감사하긴 한데 말이죠. 그래도 이건 말이 안 되거든요.

“말이 안 되잖아요. 20살짜리가 어떻게 내셔널리그에서 뛰고 있어요.”

내셔널리그.

실업팀으로 이루어진, 승강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사실상의 한국 3부리그로. 대학리그 시절에 프로는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대학교까지 팀의 주전으로서 축구를 뛰던 선수들이 프로의 문을 두드리는, 선수들의 질이 대학리그보다 한 수 위인 리그이다.

그런데, 대학교에서도 골대 들고 주전자나 들고 있어야 할 스무 살짜리가 어떻게 내셔널리그 1위 팀에서 이번 시즌 수비진 주전이라는 건데?

“저라고 알겠습니까? 저는 그냥 분석관님 자료 갖다줬을 뿐입니다. 솔직히 저도 잘 몰라요.”

···하긴, 전력분석관도 아니고 그냥 이걸 맡았다가 나한테 줄 뿐인 군의관한테 물어봤자 뭔 소용이냐.

“예, 알겠습니다.”

-탕

그렇게 문을 닫고 집으로, 아니 생활관으로 가면서 보고서를 다시 살펴보았지만, 보면 볼수록 솔직히 나이가 안 믿겼다.

“아니. 말이 안 되잖아. 대학교 1학년이면 솔직히 아직 몸도 다 완성 안 됐을 나인데. 내셔널리그 1위 팀에서 수비진 주전이라고? 그것도 센터백으로?”

원래 감독들은, 다른 건 몰라도 센터백이랑 골키퍼는 나이를 조금 보는 경향이 있다. 신인일 경우에 어버버하다가 골 먹히는 경우가 분명히 생기는데, 그것만큼 감독 입장에서 화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암만 봐도 나이가 잘못 적힌 것 같은데 말이야.”

하지만, 아주 만약에 저 녀석이 스무 살이라면. 2학년을 마치고 J리그로 진출해서 바로 주전을 먹었던 영건이 같은 미친 재능을 가진 센터백이라면.

어쩌면 우리 팀의 큰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다시 한번 그 녀석의 프로필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김민제···”

너는, 그냥 나이가 잘못 표시된 녀석이냐.

아니면, 영건이 같은 녀석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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