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않을 경기 (2)
모두가 알고 있지만 사실 모르는 것 같은 사실 하나.
상주 상무는, 대한민국 국군 국방부 직할부대인 국군체육부대 제 1경비대 소속이다.
그러니까. 여기에 있는 놈들이 비록 호국훈련같은 대규모 훈련은 당연히 안 하고, 혹한기라던가, 유격 같은 기본적인 훈련도 안 해서 가끔씩, 아니 자주 이 놈들이 군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따지고 보면 엄연히 군인이고, 군대라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부대관리에 대한 보고가 정기적으로 상부에 들어가게 된다.
“···이상으로 부대 관리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군대라면 공익이 아닌 이상에는 무조건 하게 되는.
“좋아, 수고했네, 오늘 아침 영점 사격 준비는 잘 되어있나?”
“예, 탄약 불출 모두 완료했습니다.”
“좋아, 탄피 잘 회수하고, 영점 잘 맞추도록 옆에서 잘 도와줘서 내일 실사격 때도 좋은 사격 기록 나오도록 신경쓰게.”
“예. 알겠습니다.”
실탄 사격도 하게 된다. 자주는 아니여도 말이다.
그렇게 영점사격 및 실사격 훈련 일정, 사로 배치 같은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아침 1시간의 회의 시간 중 40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럼, 슬슬 회의 시간이 끝나가니 이제 각 경기대 이야기로 넘어가지.”
그리고, 드디어 경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먼저 제 1경기대 중 축구팀, 축구팀은 생활에 불편 있는 점 있나?”
먼저 나온 팀 이야기는 축구 팀 이야기였다.
“없습니다. 모두들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군, 그럼 자네들은 올해 10월 대회 준비 잘 해주게. 그럼, 다음 보고 받도록 하지. 농구팀은 신인 선발 어떻게 할 생각인지 보고하게.”
그리고 축구팀 이야기가 끝났다.
회의시간 60분, 총 3600초 중, 20초 만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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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참, 몇 번이나 겪는 거지만, 느낄 때마다 참 거지 같군.”
“어쩌겠습니까. 저 장교분들에게 있어서 저희는 수많은 군부대 중 하나니까요.”
그랬다. 국군체육부대에 소속된 종목은 총 33개.
물론 그 중에서 가장 큰 팀이 축구팀이긴 했으나, 그래도 결국 33개의 팀 모두를 다 다뤄야 하는 만큼 생긴 지 오래되었고 알아서 잘 굴러가는 축구 팀은 조금 대충대충 넘어가야 했던 것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에잉, 올해가 3년차인데도 이건 영 적응이 안 돼.”
그렇지만, 여기에 들어오기 전까지 완전한 축구인이었던 박 감독에게 축구팀이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은 아직도 어색했다.
“하하, 한 5년쯤 되면 적응 되실 겁니다.
“됐네, 나는 자네처럼 군대 밥 체질이 아니야. 5년 되기 전에 그만둘 거네. 쯧.”
더 이상 회의에 대해 생각하기 싫었던 박 감독은 주제를 바꾸었다.
“그보단, 리그 경기나 생각하자고. 15일에 있을 리그 4라운드 명단은 짰나?”
“예, 쉬는 기간도 꽤 있다 보니, 말씀하신 대로 주전 위주로 등록했습니다.”
“좋아, 잘 했어.”
리그 경기에 대한 말만 하고 대화가 끝나자. 김태환 수석코치는 살짝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저기, 감독님. FA컵 명단은 관심 없으십니까?”
“아, FA컵?”
FA컵.
각 나라의 축구협회(Football Association)에서 주관해서 여는 성인 축구 토너먼트 컵 대회.
일반적으로 EPL의 FA컵이 가장 유명하지만, 사실 축구협회가 주최하는 성인 대회 컵이면 전부 FA컵이라고 부르기에 당연히 한국에도 FA컵 대회가 있고, 이름이 똑같은 만큼 그 경기 진행 방식은 EPL의 FA컵과 비슷하다.
그 말인즉슨, 이 대회는 하부 리그의 성인 축구팀이 참가할 수 있는 토너먼트고. 하부리그 팀 입장에서 보면, 가장 큰 대회임이 분명한 토너먼트 컵 대회란 거다.
특히나 한국에서는, 이 FA컵의 우승자에게 최상위 대륙 컵 티켓인 아시안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주기에. 1부 리그에서도 리그 우승권이 살짝 거리가 있어보인다 싶은 모든 팀들이 리그 순위고 뭐고 무조건 이 FA컵에 전력을 다 했다.
고작 유로파 컵 같은 하부대회 진출권을 주기 때문에 리그 순위가 훨씬 중요한, EPL의 FA컵보다 구단 감독들이 훨씬 더 전력을 다하는 경기라는 거다.
그러나, 박 감독은 단정짓듯이 말했다.
“솔직히, FA컵에는 관심 없네.
그 이유는.
“FA컵, 그거 중계도 제대로 안 된다고 거기에 전력을 소모하는 걸 윗분들이 싫어하잖나.”
수요일에, 그것도 주중 경기로 열리기에 인터넷 중계도 안 되어서 관심도 적고.
“게다가 그걸 나가서 설령 우승한다 해도 우리가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수는 없고.”
그걸 우승해 봤자, 아시안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수도 없는 상무 팀인 이상.
“그러니, FA컵 명단은 자네가 알아서 백업 위주로 짜게나. 나는 주전만 소모하지 않으면 상관 없네.”
FA컵은 그저 애물단지라는 판단에서였다.
“예,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오늘 친구들 사격 훈련이나 열심히 시켜주게. 다치지 않게 잘 봐주고.”
탁탁.
그 말과 함께 담뱃재를 털며 가버린 감독을, 김 코치는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확실히, 저게 맞긴 하지···”
당장 리그 경기에 집중해서 승격을 바라봐야 하는 감독의 입장에서, FA컵은 애물단지다. 잘 해봤자 본전도 못 건질 수 있는.
그러니, 저게 현명한 방식이다. 주전을 전부 빼내고 백업만으로 경기를 치르는 것.
“하지만, 그래도 경기를 져도 된다고 생각하고 하면 안 되는 법이지.”
그건 한 경기 한 경기를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백업 선수들에게 예의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김 코치는, 전화기를 들었다.
“박 코치, 궁금해서 그러는데, 혹시 사격 뒤에 바로 훈련하면, 선수들 건강에 지장 있거나 하는 건 아니지? 어떤 훈련할 거냐고? 아, 별건 아냐. 강력한 피지컬 훈련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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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아암- 쩝.
“아, 피곤하네. 사격 갔다와서 바로 훈련이라니.”
경기 없다고 훈련으로 막 굴리는구만.
“야, 태준아, 너 사격 몇 발 맞췄냐? 난 실수 좀 했는데.”
그렇게 내가 물어보자, 태준이 녀석이 굉-장히 건방져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몇 발 맞췄는지 궁금해? 궁금하면 뭐라도 걸지 그래?”
이놈이?
“그래, 내기 하자는 거지? 뭔데?”
“음, 그냥 간단하게 더 많이 맞췄던 사람이 적당히 필요한 물품 사주기?”
“좋아.”
“후후, 놀라지 마라. 이 몸은 18발이시다. 무려 특급전사 조건을 따냈다고!”
와, 대단하네.
“난 19발.”
“···”
“미리 말해두는데, 내가 내기 먼저 안 걸었다?”
나는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서, 백지각서까지 쓰게 된 놈 더 털어먹을 생각 없었다고.
“많이 안 바란다. 나중에 보충제나 한 번 사.”
“씹. 아니, 너 실수했다며! 실수했다고 말하는 새끼가 무슨 19발이야!”
“실수했으니까 19발이지.”
실수 안 했으면 만발이라고, 훈련소 때도 나 만발이었어.
그렇게 또 지갑이 털린 태준이 녀석은, 마치 원수를 보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기 시작했다.
“씨발, 내가 니 한번 꼭 이기고 만다.”
“기대할께.”
그렇게 떠들며 사람들이 집합하기를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수석 코치님이 도착했다.
“자, 다들 모였나?”
“예!”
“좋아, 오늘 너희들을 이렇게 모은 것은, 첫째로. 이번 달 11일날 열릴 FA컵에서 너희들이 뛰게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기 위함이다.”
그 말에, 몇몇 사람들은 깜짝 놀라는 눈치였지만,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은 이미 이렇게 불러온 것에서부터 예상을 했는지, 아니면 나처럼 미리 말을 들었는지 시큰둥했다.
다만, 그 뒤에 이어진 말에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그리고, 둘째로. 지금 너희들을 이렇게 불러모은 것은, 앞으로 이렇게 종종 너희들을 위한 전술 훈련을 따로 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수석 코치님이 굳이 우리들을 위해 시간을 들여서 새로운 전술을 짜냈다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리그 경기에 집중만 해도 바쁘셨을 텐데?’
물론 1군의 4-4-2 가 아닌 다른 전술을 배우다 보면, 그 전술의 숙련도가 살짝 낮아질 수는 있었지만 어차피 4-4-2는 축구계의 기본이자 기본인만큼 우리들이 학창시절부터 마르고 닳도록 익혔던 전술. 이 전술 하나 더 익힌다고 4-4-2에서 어떻게 뛰는지를 잊어먹을 선수는 없었다.
그래서일까. 나를 포함해서 방금 전까지 시큰둥했던 몇몇도, 관심이 간다는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표정들이 아주 마음에 드는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수석 코치는 우리가 쓰게 될 전술을 말하기 시작했다.
“다들 우리 상주 상무의 별명이 뭔지 알고 있지? 상무셀로나.”
그 말을 듣자, 나를 포함한 눈치 빠른 몇몇이 설마 하는 표정이 되었고, 예상대로였다.
“그래, 지금부터 너희가 익히게 될 전술은, 21세기 가장 압도적이었던 팀. 바르셀로나가 썼던 과르디올라식 4-3-3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듣자. 전원 동작이 정지됐다.
-그거, 잘못하다간 망하는 전술 아닌가?
싶은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르셀로나. 21세기 최강의 팀이자. 현재진행형으로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는 팀.
이 팀이 최전성기에 펼친 축구는, 그야말로 하나의 예술과도 같았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말이다.
축구를 조금이라도 볼 줄 아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전술은 아름다움과 아찔함을 느끼게 만들면서 그야말로 위대한 예술로서 극찬받았지만.
반면으로는, 그 팀이 아니고서는 정말로 만들기 힘든,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축구로 평가받았기에 예술로 평가되는 전술이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2010년에서 2011년, 그들의 축구를 대표팀에서 따라하려다가
-만화에서나 나올 수 있는 축구를 하려고 하다 모든 장점을 잃어버렸다.
이렇게 평가받지 않았던가. 그만큼, 이 전술은 어렵고 또 어려운 전술이었다. 익히면 최강이지만, 익히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그렇다고 어느 정도 익히는 수준에서 그치면 그들의 위력 절반도 따라가기 힘든 전술.
그런 전술이었기에,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걱정하는 눈치를 보냈지만 김 코치님은 표정을 풀지 않으셨다.
“너희들의 걱정이 무엇인지는 안다. 이 전술은 정말이지 더럽게 어렵지. 솔직히 말해서 나 역시 너희들이 절반이나마 소화해내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김 코치는 바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코치인 만큼, 오히려 이 전술이 얼마나 더 어려운지 선수들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전술은 배울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전술을 통째로 쓰는 팀은 없겠지만, 현재 수많은 팀들이 이 전술을 조금씩 변형해서 나름대로 써먹고 있는 중이니까. 이걸 익혀두면 너희들이 밖에 나가서도 도움이 많이 될 거다.”
그럼에도, 후보 선수들이 이 기회를 통해 조금이나마 발전했으면 하는 마음에 이 전술을 가르쳐주고자 한 것이었다.
“자, 그럼 각자 위치로 가라.”
그 말을 끝으로 모두들 각자 포메이션 위치를 잡으러 가던 도중.
“이준혁, 넌 어딜 가는 거지?”
코치님이 날 불렀고, 나는 당황했다.
“네? 맞게 자리했습니다.”
나는 좌측 풀백이니까. 당연히 3번 자리, 그러니까 아비달 자리에 위치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그렇게 말하자. 코치님은 잠시 이상한 눈으로 날 쳐다보다가, 실수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 미안하군, 내가 말 안 했나? 이준혁, 넌 미드필더로 간다. 미드필더 중 6번 자리를 맡아라.”
네? 6번이요?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 말하시는 겁니까?”
“무슨 소리냐. 바르셀로나 6번이면 딱 하나밖에 없지 않느냐.”
···진짜? 진짜 사비 자리에 내가 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