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167)

개막전, 그리고 작은 만족.

[임협상, 크로스 올라왔고요, 헤딩! 하지만 수비수가 걷어냈습니다.]

[자, 여기까지네요.]

삑- 삐이익-!

***

전반 종료

상주 상무 0 : 1 강원 FC

[골]

강원 : 김동기 - 35

-*-*-*-

[전반전 경기 종료됐습니다. 강원이 선취 득점을 뽑아내면서 1대 0으로 앞서가네요.]

[공격력과 모든 경기운영에서 심플하면서도 여유를 가지면서 상대편을 압박하던 있었던 게 상주 상무였는데, 그 골 하나에 모든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예, 그럼 해설위원님께선 후반전엔 어떤 흐름이 될 거라고 보시나요?]

해설위원은 그 질문에 별로 고민도 하지 많고 바로 대답했다.

[역시, 지키는 강원과 뚫고자 하는 상주의 대결이 되겠죠.]

[그럴까요? 고작 1점 차인데, 강원도 적당히 공격을 계속 노리지 않을까요?]

[아뇨, 절대 아닙니다.]

해설위원이 이렇게 강하게 말하는 이유가 있었는데.

[상주는 강합니다. 정말 강해요. 우승후보 중의 우승후보죠. 최소한 이 챌린지리그에서는 그렇습니다. 상주는 2년 전에 여기 챌린지로 떨어졌을 때, 승점 11점 차이를 내면서 압도적으로 우승한 팀입니다.]

실제로 상주 상무는 2013년 K리그 2에서 승점 77점을 내며, 64점의 안산에 비해 압도적인 격차를 내는 데 성공했었다. 그 안산도 경찰청이라 병역을 이행하는 선수들을 뽑아 가는 팀이라는 걸 감안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격차였다.

[그렇기 때문에, 선제 골을 넣은 강원 입장에서는 무조건 잠글 겁니다. 잠그고 잠궈서, 승점 1점이라도 가져가는 게 목표에요. 상주와 붙어서 승점을 가져간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축하받을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후반의 상주가, 어떤 변화를 시도할까요?]

캐스터의 질문에, 해설위원은 이번엔 살짝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글쎄요, 애매합니다. 지금 공격 전개 자체에 문제가 생겼던 건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또 그대로 변화 없이 갔다가 저런 상황이 반복되기라도 하면, 그 땐 너무 늦습니다. 정말 애매한 상황입니다. 선수를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의 싸움이죠. 후반전에 이 점을 의식하시면서 보시면 훨씬 재미있을 겁니다.]

[예, 그렇군요. 좋은 해설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잠시 후에 다시 돌아와서 후반전을 중계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는 상주시민운동장입니다.]

-*-*-*-

-꽝

“이게 지금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감독님의 불호령에, 팀원 전체가 움찔하고, 안일한 실수를 했던 골키퍼는 특히나 더 움찔거렸다. 본인도 본인이 잘못한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특히, 양원동. 곽선광,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지?”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하다는 말은 필요없다. 나는 지금 너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냐고 물었다.”

“···”

“하- 그래, 뭔 생각이든 간에, 안일해 빠진 생각이었겠지.”

그 말과 함께, 감독님은 답답하다는 듯이 넥타이를 풀어버리며 말했다.

“무리한 패스를 하다가 빼앗길 수는 있다. 그러나 안일한 백패스를 하다가 그러는 실수가 나오는 건 용납이 되지 않는다. 오늘 한 번만 더 그런 패스가 나오면, 얄짤 없이 교체다. 알겠나!”

“예!”

그렇게 선수단의 기강을 한 번 다진 후, 감독님은 후반전의 전술 변화를 설명하기 시작하셨다.

“상황이 꼬였다. 우리는 전반전을 압도했지만,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이 꼬여버렸지. 결국 후반전에 급한 쪽은 우리가 되었다.”

“······”

먼저 현실을 일깨워준 후, 감독님은 전술 변화가 어떻게 될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우리는 상대의 수비진을 뚫는 방법에 집중할 것이다. 자, 우리가 예상한 강원의 엔트리는 김온규-이한샘이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상대팀이 김온규-박용호로 나왔다. 무엇이 다른지 아는 사람, 있나?”

그 말에 나는 공격진이 손을 들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그냥 내가 손을 들어버렸다.

‘공격수 새끼들은 도대체 왜 수비수에 대해서 알려고 들질 않는 걸까.’

손을 들자 당연히, 질문이 들어왔다.

“그래, 이준혁, 뭐가 다르지?”

“높이입니다.”

“정답이다!”

원래 전력 보고서에서 그 둘을 조합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베테랑 박용호와 피지컬이 좋은 이한샘을 조합하는 것이 가장 밸런스가 맞을 것이라 생각해서였는데. 지금 나온 강원의 센터백들은, 두 명 모두 프로필상 키가 183cm, 183cm이다.

이 수준이라면, 솔직히 중앙 수비수치고는 피지컬이 간신히 허용 범위에 있는, 영 좋지 않은 피지컬이다. 감독님은 바로 그 점을 노리라고 하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그 점을 철저히 이용하도록 한다. 후반전, 모둔 선수들은 닥치고 무조건, 무조건, 무조건 정현이에게 공을 몰아줘라. 우리 후반전의 축구는 발이 아니라, 머리로 골을 넣는 축구를 노린다.”

감독님이 일명 뚝배기 축구, 뻥축을 하겠다는 말을 하자,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럼 아마도, 박동기 선배가 투입되겠네.’

아니나 다를까.

“박동기, 후반전에 투입된다. 몸을 풀어라.”

“열, 열심히 하겠습니다!”

역시나다.

‘이런 롱 볼 전술에서 191cm의 저 좋은 뚝배기를 벤치에 썩혀두긴 아깝지.’

그리고 롱 볼에서 필요한 두 번째. 여기가 중요한데···

“기승이는 아래로 내려오고, 형순이, 너는 교체다. 수고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교체 기대를 접었다.

‘망할, 여기가 희망이었는데.’

롱 볼에서 필요한 두 번째는, 빠른 역습을 해 줄수 있는 눈이 좋은 미드필더였고, 나는 그 역할을 꽤나 잘 해줄 수 있었다. 고양에서 맡던 롤(role) 이 그거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역습을 한다면 그 쪽으로 내가 투입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은 이기승 선배를 내려버렸다. 그러면 내가 미드필더에 투입될 확률은 없다.

‘이기승 선배랑 나랑은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하니까.’

물론 기승 선배님 쪽은 조금 더 공격적으로 슈팅과 드리블을 하고, 나는 조금 더 볼 분배 쪽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건 다르지만, 어쨌든 볼 분배하는 역할이라는 건 똑같다.

그리고, 똑같은 역할을 가진 선수를 두 명씩 넣는 건 전술적으로 별로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특히 볼 배분하는 선수가 많아지면 판단하는 머리가 여러 개가 되니까 선수들의 의사결정이 늦어지거든. 그건 역습 축구에서 치명적이다.

‘사공이 많아지면 배가 산으로 가는 거지.’

하여튼. 이렇게 된 이상, 결국 오늘은 투입되는 걸 포기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에휴, 교체 나오는 줄 알고 싱글벙글했는데 아니라니’

하긴, 뭐 어쩔 수 없지. 저런 실수 한 번 했다고 무작정 다 바꾸면-

“그리고 이준혁 나와라. 교체다.”

으잉? 이건 또 뭐야?

“이준혁, 대답 안 하나?”

“네? 넵! 준비하겠습니다!”

잠시 얼떨결에 정신이 나가서 대답이 늦었던 나는, 급하게 몸을 풀기 시작하면서 머리를 굴렸다.

‘나가게 되는 건 좋은데, 이러면 조금 이해가 안 되는 교체인데?’

이러면 박포진, 이형 선배에다가 나까지 풀백만 세 명인데. 세상에 풀백을 세 명씩이나 쓰는 전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긴 한데···’

그렇게 생각에 잠기려던 나는.

“에라이, 내 알바야?”

생각을 그만뒀다. 군바리가 뭔 생각을 깊게 한단 말인가. 시키면 뛰는 거지.

‘어차피 어떻게 됐든 간에, 나한텐 좋은 거잖아? 뭐, 포메이션 변경을 하시던가 하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경기에 투입된 나는 더 없는 충격을 받았다.

“형님? 왜 여기 계세요?”

“몰라. 임마. 연습 안 한 건 아닌데 진짜 바로 투입시키실 줄은 몰랐네.”

감독님이 내놓은 방법이. 국대 풀백의 센터백 포변이었기 때문이었다.

-*-*-*-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외국인 풀백은 누구일까.

조금 이견의 여지가 있긴 하겠지만, 나는 게리 네빌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박지성 선수가 맨유로 이적해서 맨유가 한국의 최대 인기팀일 때 맨유의 주전 풀백이었고, 은퇴한 이후로도 스카이스포츠에서 EPL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게리 네빌이 방송에 나와서 들은 말이 있었는데. 내용이 이랬다.

-제가 풀백을 볼 때 항상 생각하는게, 풀백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어요. 윙어가 되는데 실패했거나 센터백이 되는 데 실패했거나. 네빌은 센터백이 되려다가 실패했죠.

그리고, 네빌은 씁쓸하게 웃으며 그 사실을 시인했다.

이 말은 무엇이냐. 전문 풀백이라고 해도, 국가대표급 풀백이라고 해도.

아무리 레전드라고 불리는 풀백이라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풀백 포지션에서부터 시작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촤아악

“나이스-! 이야, 이형 선배님, 좋은 태클입니다!”

“하하, 아냐, 아직 미숙하네.”

그리고, 이형 선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형 선배도 센터백을 아예 처음 해보는 사람은 아니었고, 감독님이 10명으로 싸울 때의 훈련에 대비하여 준비를 조금씩이나마 시켜 두셨기에 센터백으로서의 수비가 완벽하진 않았지만, 수비에 집중하는 강원의 공격을 막을 정도는 되었고.

수비진에 박포진, 이형 선배에다가 나까지 있으니, 수비진에서 앞으로 내지를 수 있는 양질의 크로스가 무제한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 크로스- 올라왔어요! 헤딩-!]

[골! 박동기- 골입니다! 이형의 멋진 크로스!]

그렇게 1대 1의 상황이 만들어지자, 슬슬 강원 쪽도 살짝살짝 공격 간을 보기 시작했다.

‘그래, 네놈들도 역시 승점 1점은 너무 적지?’

상대방이 챌린지 최강팀 상무라고 해도, 아무리 감독이 무승부를 지키는 쪽으로 가자고 했을지라도, 자신들이 엄청난 약팀도 아니고 시즌 초반에 이렇게 쫄보처럼 물러나긴 싫어하는 선수들의 감정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였다.

‘쯧쯧, 승부에서 약할수록 감정을 죽여야 하는 법인데 말이지.’

아니나 다를까. 무리수가 나왔다.

[벨루소, 오블발로 빠른 드리블, 수비수를- 제끼지 못합니다!]

어디서 건방지게 드리블을 길게 끈단 말인가. 약한 놈들이.

그리고, 축구에서 공격하다 저렇게 빼앗기면 뭐다?

“선배니임-!”

역습 쳐맞아야지. 새끼들아, 왼쪽이 텅텅 비었다.

[아, 왼쪽 사이드에서 이준혁 선수 빠른 돌파! 빠릅니다! 빨라요!]

[강원 쪽 수비수가 달려들지만, 바로 크로스- 걷어내-지만 다시 한 번어언! 이정현!]

오, 들어갔다.

[골! 골입니다! 국대 공격수 이정현의 득점! 상주가 2대 1로 역전합니다!]

[상무가 두 골을 모두 크로스에 이은 헤딩으로 넣으면서, 박흥서 감독의 용병술이 아주 기가 막히게 통했습니다!]

쳇, 아깝네. 안 놓치고 바로 들어갔으면 개막전 어시스튼데

‘휴, 물론 이미 출전한 것만으로도 만족하긴 했지만, 이왕이면 조금 더-’

그 순간, 나는 뛰는 가슴을 조금 진정시켰다.

‘아니다. 준혁아, 침착하자, 침착. 너무 욕심내지 말자.’

바로 내 눈앞에 약간, 약간 더 욕심내다가 결국 승점 3점은커녕 승점 1점도 못 챙긴 녀석들이 바로 눈 앞에 있지 않은가.

처음부터 너무 욕심 부리다간, 될 것도 안 될 거다.

그러니 지금은-

“나이스-! 정현아! 수고했다!”

지금은, 그저 팀의 승리에 조금이나마 손을 보탰다는 데에 만족하자.

천천히, 느리더라도 계속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내가 중심에 설 날도 올 테니까.

***

경기 종료

상주 상무 3 : 1 강원 FC

[골]

상주 상무 : 박동기 - 49, 이정현 - 57, 김환성 - 79

강원 FC : 김동기 -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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