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1/167)

D-1, D-0

2015년 03월 20일.

K리그 챌린지 개막전 D-1

-개막전 후보 선수는 윤국평, 이준혁, 안훈재, 최태현, 박경인, 박동기, 배환일 이 일곱 명이다.

“휴우우-”

오늘 아침 발표된 명단을 듣고 나오자, 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에 나름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행이네, 진짜 다행이다.’

내 안도의 한숨을 듣자. 같이 카페에 온 선배들은 이런 내 모습에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뭐야, 예상한 거 아니였냐? 솔직히 우리들이 후보로 뽑힐 거 예상했잖아.”

뭐, 솔직히, 후보로 뽑힐 거라곤 예상하긴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미드필더로서의 멀티 포지션 가능성을 지켜보진 않았을 테니까.

“그래도 확정과 예상은 다르지 않습니까.”

아무리 뽑힐 수밖에 없다고 해도. 100%와 99%는 다른 법 아니던가.

내가 그렇게 말하자, 후보 선수 중에서 가장 연장자인 최태현 선배가 날 쳐다보면서 말을 걸어왔다.

“이야, 이 녀석 건방지네. 건방져. 일단 자기가 뽑힐 거라고는 생각 했다는 거네?”

그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르던 도중.

“에이, 선배님, 당연하죠. 쟤는 형님처럼 무식하게 수비만 하는 게 아니라 뽈 좀 찰 줄 아는 친구 아닙니까.”

“그래요. 선배도 억울하면 패스 좀 제대로 주세요.”

박동기, 배환일 두 선배가 내 편을 들어줬다. 그런 두 선배의 반응에 최태현 선배는 어이없어했다.

“와- 이 새끼들 봐라. 이 친구가 골 맛 좀 보게 해줬다고 아주 감싸고 도네? 그렇게 골 맛이 좋더냐, 엉?”

그러나 오랜만에 골 맛을 봤던 두 공격수는

“예, 답니다.”

“당연하죠.”

꼼짝도 하지 않고 내 편을 계속 들어줬다.

‘역시···’

공격수란 놈들은 자기 골에 도움이 되면 그게 누구든 간에 참 예뻐하고 좋아하는 게 종특인가보다.

그렇게 선배 한 명을 합심하여 진압해버린 두 공격수는, 나에게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준혁..이라고 했지?”

“예, 편하게 준혁이라고 하시면 됩니다.”

“그럼 준혁아, 우리가 내일 투입되면 뭐 어떤 놈 조심해야 하냐?”

“어, 솔직히 저희 분석자료팀에서 나눠준 자료 그대로입니다. 그냥 그거 보시면-”

그러자 선배들이 내 말을 잘라버렸다.

“자료분석은 축구 제대로 할 줄도 모르는 놈들이 쓴 거잖아, 우린 2부리그에서 뛰어본 니 판단을 더 믿고 싶다.”

흠, 이거 어떻게 한담.

‘이거 잘못 대답하면 나한테 원망 들어올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자고로 아예 안 가르쳐준 사람은 전혀 뭐라고 하지 않으면서 절반이라도 가르쳐준 사람은 이거 왜 안 가르쳐줬냐며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게 사람 아니던가.

그러니, 내가 대답할 말은 뻔했다.

“어··· 글쎄요, 솔직히 저도 분석자료 이상으로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게 사실이기도 했다.

애초에, 작년 전력을 가지고 올해 전력을 판단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강원은 진짜로 내가 모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었는데.

“강원 예상 엔트리 센터백이 박용호 선수랑 이한샘 선수인데, 그 둘은 제가 상대해본 적이 없어서요.”

현재 주전 센터백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박용호 선수는 말레이시아에서, 이한샘 선수는 경남에서 뛰던 선수들이라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상대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에, 두 선배는 기운이 빠진 느낌이었다.

“에이 뭐야. 그럼 너 수비진에 대해선 진짜 아는 거 없어?”

“풀백 선수들이 어떤지는 압니다. 근데 솔직히 그건 제가 엄청 큰 도움까진 못 드릴 것 같은데요···”

두 명의 풀백 중 한 명은 다른 팀에 있다가 옮겨온 선수고. 한 명은 당장 작년까지만 해도 상무에서 뛰었던 선수이니 말이다. 오히려 전력보고서가 훨씬 더 분석 깔끔하고 잘 해 놓았을 거다.

그런 내 말에 두 공격수 선수들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야, 이거 뭐냐. 말이 돼?”

“그러게, 수비 라인이 무슨 작년하고 비교해서 하나도 안 똑같냐?”

두 선배가 그렇게 반응하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되게 흔한 일인데, K리그에서는 안 그래요?”

내 반응에, 두 선배들은 조금 웃으면서 대답했다.

“K리그에서도 뭐 백업 선수들 하루살이인 건 똑같지만, 그래도 저렇게 주전 라인이 한 해만에 싹 물갈이되는 건 보기 힘들지.”

“그렇지, 뭐 EPL처럼 이적료 주고 선수를 사오는 것도 아니고.”

흠, 그렇구만. 우리는 주전이든 후보든, 웬만하면 단년 계약인데 말이지.

그렇게 말이 나오자, 최태현 선배는 정리하듯이 말했다.

“야, 그러니까 매년 선수 절반씩 물갈이되는 상무가 우승후보인 거 아니겠냐.”

그 말에 모두 알게 모르게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팀 조직력이나 그런 것에서 모두 출발점이 같다면 선수의 질이 순위와 훨씬 더 직관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상무가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제 K리그2 개막 미디어데이에서도 모든 감독들이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상주 상무를 우승후보로 꼽았고 말이다. 그 한 명도 “지금 우승 후보를 파악하기엔 이르다.” 라며 신중론을 기한 것 뿐이었고.

그러니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팀 걱정은 안 했다. 그저.

“하아- 후보도 좋긴 한데, 경기에 좀 뛰고 싶어요 진짜.”

우리들이 경기에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물론 후보에 든 것만으로도 주전의 자리에 성큼 다가온 것이긴 하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후보였다. 후보.

경기에 나가지 못하고 그냥 이 자리에 머물다가 어느 순간 휙 사라져 버릴 수도 있을 그런 후보.

“어쭈, 윤국평, 어딜 이 중에서 가장 어린 놈이 벌써부터 선배들 놔두고 주전 욕심을 내고 있어? 건방지게 말이야.”

“아니 선배님, 스물 다섯이면 충분히 주전 먹을 나이거든요?”

“넌 골키퍼잖아 새꺄. 니가 주전 먹기에 3년은 이르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들은 오히려 명단에 뽑히지 못한 친구들보다 기분이 더 갈팡질팡했다. 마치 대학교 합격 대기번호 한 자리수에 들어버려서 재수할 생각보단 그냥 하염없이 컴퓨터와 핸드폰만 붙잡고 있는 수험생처럼 말이다.

그렇게 어수선한 가운데, 우리 중에서 가장 어린 국평이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 내일 나갈 수 있을까요?”

그 질문이 나오자, 잠시 침묵이 흐르던 우리들의 대화에

“그건 모르는 일이지.”

불쑥 한 사람이 들어왔다.

“코, 코치님?”

“뭐 이리 궁상맞게 제대로 쉬지도 않고 카페에서 꿍얼거리고 있나. 거기, 여기 아메리카노 한 잔 주게.”

그러더니 김태환 수석코치는, 털썩 의자를 빼내 앉더니 어수선해진 우리들에게 딱 한 마디를 던졌다.

“우리 후보 선수들께서 다들 걱정이 많은 모양이군 그래? 커피 나오는 동안 대화나 좀 하지.”

그 말에 오히려 다들 입을 다물었지만. 김코치는 예상했다는 듯이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뭐, 이해는 가네, 자네들 모두 여기 오기 전에 주전이었던 선수가 없을 테니. 그나마 훈재 정도가 작년에 주전급이긴 했지만, 완전한 주전급이라기엔 경기 수가 좀 적었고. 그러니 더더욱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지.”

그 말에 여기 작년에 30경기 뛴 주전도 있다는 소리를 하려다가,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그냥 넘어갔다. 난 2부기도 하고.

나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러니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겠네. 자네들 중에서 내가 전입 올 때 말했던 말을 기억하는 친구, 혹시 있나?”

기억하고 있던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래? 그럼 한 번 말해보게.”

“여기에선 2부리그에서 평범했던 놈이 갑자기 실력이 확 늘기도 하고, 국대였던 놈이 실력이 박살나기도 한다고 하셨습니다.”

나한테는 꽤 위로가 되는 말이라서 기억하고 있었다.

“오? 맞아. 그랬었지.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잘 기억하고 있구만.”

자신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는지, 김 코치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 때 말한 대로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우리는 잘 나가던 주전 선수들이 방심하는 경우가 많이 일어나네. 다른 팀보다 훨씬 더 말이야. 왠 줄 아나?”

코치님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답을 말했다.

“주전으로 좀 나간다 싶은 놈들은, 슬슬 몸을 아끼거든. 큭큭. 돈 안 된다고.”

그 말을 들은 대부분은 아연실색했다.

‘그야 맞는 말이긴 한데, 당연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프로 선수로서, 혹시라도 다치면 큰일이니 몸을 좀 아끼는 게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돈도 찔끔찔끔 주면서.

그런 우리의 속마음을 읽은 듯이, 코치님은 우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분명 이런 소리 하는 놈들도 있겠지. 그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프로 선수로서 몸 아끼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하는 놈들이 분명히 있겠지. 하지만. 나는 반문하고 싶네. 그렇다면 자네들은 돈도 안 되는 대학리그에서 왜 그리 열심히 뛰었나?”

이번엔 확실하게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었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야, 더 비싼 몸값을 받기 위해서 아닙니까?”

그러자, 김 코치는 바로 반문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여기가 대학교랑 뭐가 다르지? 오히려 더 높은 무대에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쇼케이스가 널려 있는 곳 아닌가?”

“······”

“솔직히 말해서, 여기는 난 대학교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자네들 대학교 때랑 크게 다를 것도 없어. 그런데 여기는 군대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잘 뛰던 친구들이 꼭 의욕이 절반쯤 사라지게 되지.”

거기까지 말하고 잠깐 쉬었다가, 코치님은 우리들을 한 번씩 다시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자네같은 선수들에게 기회라는 거네.”

“네?”

“자네들도 이런 생각 해 본 적 있지? 분명히 똑같이 노력한 것 같은데, 몇몇 친구들은 자네들보다 훨씬 잘 나가서, 저 친구들 언제 방심 좀 안 하나-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있을거야. 그렇지?”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조금 찔렸다.

고등학교 땐 그래도 할 만해 보이던 놈이 대학교에서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달아나 버리고. 프로에 와서도 나랑 같이 훈련하던 선수가 K리그로 진출하는 꼴을 몇 번이나 보면서, 솔직히 한두 번 해본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근데, 여기에선 진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 너희보다 천재들이 진짜로 논다고. 무조건 방심하고 늘어지는 때가 온다. 꼴에 병장 마크 달았다고 전투력이 무조건 낮아지거든.”

그 말을 나는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웃을 뻔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 좀 놀랐다. 아니? 진짜?

‘병장 마크는 무슨 특수 아이템인건가? 전투력 -200 이런?’

그렇게 내가 딴 생각에 빠질 뻔했지만,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음음, 그래. 윗사람 말에 집중하지 않는 모습 보이면 안 되지.

“그러니까. 개막전에 뛰지 못한다고 해서 너무 실망하진 말게. 알겠지? 농담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기회는 오게 되어 있어. 꾸준히 기량을 여름까지만 유지하게. 그럼 기회는 분명히 오게 되어 있네. 알겠나?”

“예!”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게. 난 커피 기다려야 되서 남아있을 테니.”

그렇게 우리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생활관에 도착하자. 나는 코치님이 하신 말씀을 곰곰이 생각했다.

‘결국, 너무 급해지지 말라는 말씀이시네.’

하긴 그렇다. 출전이 아예 멀어 보이면 모를까. 손에 잡힐 듯- 말 듯- 하면 사람이 좀 정신이 나가버리게 된다. 사람 놀리는 거냐는 반응은 덤이고. 아마 그래서 수석 코치님이 우리를 신경써주신 거겠지.

‘그러니. 경기에 나가지 말고 벤치만 지키더라도 잠시 동안은 만족하자.’

그래, 기다리다 보면 기회는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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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어어~ 들어갔어요! 야! 이게 뭔가요! 양원동 선수의 엄청난 실수! 모두의 예상을 깨고 강원이 선제골을 넣습니다!]

[프로 경기라면 나와서는 안 될 장면이 나왔어요. 너무 안일한 백패스였습니다.]

···음. 내 생각이 틀렸나 보다. 기회가 더 일찍 올지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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