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개막전 (2)
2015년 3월 16일.
허 참.
“뭔 일인지 모르겠네. 갑지기 뭔···”
내가 그렇게 꿍얼거리고 있자. 태준이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야, 뭣 때문에 그렇게 중얼거리는 거야? 경기 나가니까 좋은 거 아니냐?”
“아니, 나보고 미드필더로 나가래잖아.”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풀백으로 3개월 동안 연습해 왔는데, 지금 와서 미드필더로서의 나를 시험해 보겠다니. 좀 어이없다.
“왜? 나쁜 건 아니잖아? 솔직히 말해서, 할 수만 있으면 풀백보다야 미드필더로 뛰는 게 훨씬 낫지 않냐?”
쯥, 저 말도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중앙 미드필더는 최상위권 선수는 공격수만큼 돈을 받거나 유명해지기도 하고, 심심찮게 발롱도르를 받기도 하는 포지션이기에 공격수만큼은 아니여도 나름대로 원하는 친구들이 있는 포지션이니 말이다.
공격수 포지션을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를 들고 나오는 놈들에 비유하자면, 미드필더는 장식 예쁘고 튼튼한 쇠수저? 놋수저 정도는 된다고 해야 할까. 풀백? 풀백은 저-기 저 밑바닥 일회용 플라스틱 수저고.
그래도. 나는 별로 미드필더로 돌아가는 게 달갑지는 않았는데.
“야, 그래도 K리그에서 뛰는 풀백이 2부리그 미드필더보단 낫잖아.”
솔직히 내가 아직까진 미드필더가 더 편한 것도, 미드필더가 더 대우받는 것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나는 이미 미드필더로는 명확하게 한계가 있는 녀석이라고 판단이 나오지 않았던가.
“난 뱀의 머리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용의 꼬리가 되고 싶은 거라고.”
K2리그에서 뛰는 게 아니라. K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되고싶단 말이다.
그런 내 말에, 태준은 조금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그 반대 아니냐?”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거 아니겠어?”
솔직히 말해서, 요즘 사람들도 다 용의 꼬리가 뱀의 머리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하지 않나? 당장 요즘같이 안정성 안정성 말하면서 공무원 찾는 시대에는 특히.
“하여튼 그러니까 밥 먹고 같이 영남대 영상이나 보러 가자.”
“뭐야, 왜? 야, 우리가 짬밥이 있지, 영남대 놈들까지 공부해가면서 플레이해야 돼?”
“야, 영남대 얘들 정도면 그래도 나름 강호거든? 사실상 포항 2군 수준인데. 나름 준비를 해야지.”
그렇게 말했지만, 태준이는 영 떨떠름한 기색이었다.
“그래 봤자 대학교잖아. 주전 선수들 다- 졸업하고 아직 발 맞출 시간도 많지 않았을 봄 때의 대학교, 그런 놈들 걱정할 필요가 뭐가 있어?”
“···..”
상식적으로는 저게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난 영남대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거의 프로팀을 상대할 때와 다를 바 없이 준비해야 한다고 봤다.
“영남대의 진짜 전력은 선수가 아니야.”
영남대의 최대 전력은, 바로 김병우 감독이란 말이다.
내가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해체 위기였던 영남대에 부임해서, 내가 주전이 된 2학년 때, 고등학교 때까진 쉽다고 생각했던 녀석들을 살짝 버겁다고 느끼게 만들 정도로 만들더니. 3학년이 되니깐 우리를 압도하게 만든 팀을 만들어버린, 그 감독.
“김병우 감독이 있는 한, 절대 안심할 수 없는 팀이야.”
그러나 태준이는 거기에 동의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야, 감독이 좋아 봤자, 우리 팀 수준이면 충분히 이겨. 결국 축구는 선수빨이라고. 게다가 연습게임인데, 영남대가 준비해 봤자 얼마나 잘 준비하겠냐?”
그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속으로 설레설레 저었다.
‘이 공격수 새끼들은 참 지 좋을 대로 행복회로를 돌리는 경향이 있단 말이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래, 그럼 나 혼자 볼란다.”
모르는 너 혼자 쳐맞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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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이익-!
전반 종료
상주 상무 2 : 1 영남대학교
[골]
상주 상무 : 배환일 - 15분, 박동기 - 20분
영남대학교 : 이중서 - 43분
-*-*-*-
“준혁아.”
“왜?”
“···혹시, 쟤 버릇 같은 거 아는 거 있냐?”
나는 그 말을 듣고 아주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답해줬다.
“몰라 임마.”
어딜 어제까지만 해도 관심없다고 뻐팅기던 녀석이 이제 와서 물어보고 있어.
“야, 야, 그러지 말고. 제발, 플리즈. 이대로 가다간 나 교체당할 것 같단 말이야.”
“응, 일 없다. 모르면 맞아야지.”
입으론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머릿속으론 바쁘게 상황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흐음, 이거 어쩐다. 저 놈 도와줘야 하나?’
지금 상황을 정리해보면, 우리 쪽의 공격루트는 그냥 단순했다.
그냥 공격수인 박동기 선배와 배환일 선배의 기본적인 기량을 믿고 쭉쭉 페널티박스 안으로 볼을 투입해주는 것. 그리고 이게 꽤나 잘 통해서, 전반에 수비수들이 적응하기 전까지 아주 그냥 탈탈 털어줄 수 있었다.
그런데, 전반전이 절반 정도 지나자 문제가 생겼다.
‘너무 중앙 위주로만 볼 전개를 하니까, 슬슬 놈들도 막기 시작했단 말이지.’
물론 그래서 후반전이 가까워질수록 나도 측면을 조금 활용하려고 했는데, 이 놈이 영 뚫질 못하면서 방향이 꼬여 버렸었다. 덕분에 영남 쪽이 아예 작정하고 측면 탈탈 털어대면서 이 녀석 혼을 좀 빼놓았고.
그러니까-
“아, 제발, 플리즈 형님!”
결국 후반전에 따라잡히지 않으려면, 측면 공격 루트의 핵심인 이 녀석이 살아나야 한다는 소리다.
그렇게 계산을 끝마친 나는, 조용히 가방에 박아둔 수첩을 건네주-
려다 말았다.
“아 왜!”
“조건이 있다.”
“뭔데?”
“내가 부를 때 2번은 군말 없이 나와서 어울릴 것.”
“···콜!”
그렇게 다시 연습 노예, 아니 연습 친구를 구하는 데 성공한 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자, 그럼 첫 단추는 끼웠고. 공격 전개에 꼭 필요한 사람 두 명은 누굴 고를까.’
물론. 이 녀석이 측면 돌파 어느 정도만 늘어나도 공격 전개가 괜찮아지긴 하겠지만, 축구에서 한 선수를 잘 살려서 팀의 공격을 조립하기 위해서는, 그 선수를 포함해서 최소 3명 정도가 필요하다는 게 내 지론이라서 말이지.
‘물론 이론적으론 2명으로 될 수도 있지만, 그건 둘 다 리그 득점왕 수준으로 득점 잘하면서 플레이 스타일도 다르지 않는 이상은 무리고.’
만약에 그런 조합 있으면, 솔직히 진작에 그 조합 가진 팀한테 우승 주고 시작해야 한다. 그런 조합 가지고 있는데도 우승 못 하면 그건 범죄다.
하여튼 각설하고, 저 놈이 드리블 돌파해서 인원이 측면으로 빠지면, 자연스레 정면은 헐거워질 수밖에 없는 게 인지상정.
‘그럼 이 점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선···’
먼저, 패스를 뿌려줄 선수, 이건 내가 하면 된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필요한 건-
“박동기 선배님.”
중앙 공간을 더더욱 헐겁게 만들어줄 만한 선수와.
“환일 선배님”
그 넓어진 공간을 뻥뻥 뚫어줄 스피드스타.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조건은 갖춰졌다. 그럼 쇼 타임이다.
-*-*-*-
삐이익-!
-이예에에!
골을 알리는 호각소리를 들으며, 코칭스태프들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허, 감독님, 저 친구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데요?”
“그러게요, 전반에 사용했던 공격이 막히니까 저런 식으로 방법을 찾아내다니.”
코치들은, 준혁이 후반전에 보여주는 모습을 보고 대부분 만족했다. 그도 그럴 게. 준혁이 그들이 요구하던 능력, 정확히는 이기승의 후보로서 가장 필요하던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료를 제대로 이용할 줄 아는군요. 패스 길도 볼 줄 알고.”
“그러게요, 플레이메이커로서 완벽합니다.”
플레이메이커.
축구에서 게임을 조립할 줄 아는 유형의 선수를 뜻하는 단어.
축구를 보는 자들 중 몇몇은, 공격수보다 오히려 이 쪽이야말로 진짜 재능을 가진 자들이라며, 고평가되는 유형의 미드필더다.
당장, 역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팀 중 하나임이 분명한, 08년도에서부터 11년도까지의 바르셀로나. 그 바르셀로나의 핵심을 꼽으라면 대부분이 이렇게 답할 것이다.
-리오넬 메시!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다. 세계 최고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선수를 핵심으로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다른 의견을 내는 소수파도 있었는데. 그 일부의 소수파는 대부분 이 사람을 댄다.
-사비 에르난데스!
바르샤의 중앙 미드필더이자 플레이메이커인 이 선수를 말이다. 그만큼, 중앙 미드필더. 그것도 플레이메이킹을 할 줄 하는 선수는 귀하게 대접받는다.
그래서 몇몇은 준혁의 모습을 보고 이런 의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저런 친구가 그동안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거죠?”
그 의문엔 준혁을 유심히 지켜보던 수석코치가 대답했다.
“음, 대충 예상가는 게 있긴 한데··· 저 친구를 교체해보면 좀 더 확실해질 것 같습니다. 감독님, 중앙 미드필더 조합을 바꿔 봐도 될까요?”
“그러게.”
그리고 그 말에 따라 중앙 미드필더를 교체하자.
“아, 이래서였군요.”
다들 왜 저 친구가 그렇게까지 유명해지진 못했는지 알았다.
“공중 볼을 하나도 못 따네요.”
그랬다. 이것이 준혁의 약점이었다.
프로필 키 175cm, 실제 키 173cm라는 초라한 키 때문에 공중 볼 관련해서는 그야말로 쥐약인 준혁은, 솔직히 말해서 중원 장악이라는 측면에서는 별로 도움이 되는 미드필더는 아니었다.
그리고 약팀인 팀일수록, 그 중원을 어떻게든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1순위로 필요한데, 준혁은 그 점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고양에서 쫓겨났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래도 후보로 쓰기엔 부족함이 없군요.”
“예, 그렇습니다. 저 친구가 후보 1순위로 가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여기 상무라면 달랐다. 상무는, 그야말로 선수 풀만큼은 아주 차고 넘치는 팀.
준혁과 조합할 만한 미드필더는 차고 넘쳤다.
“그럼, 이것으로 개막전 명단이 정해졌군요.”
삐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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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종료
상주 상무 4 : 2 영남대학교
[골]
상주 상무 : 배환일 - 15, 박동기 - 20, 박태준 - 55, 조건동 - 72
영남대학교 : 이중서 43, 이기상 -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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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속이 쉬원- 하네.’
하기 전까진 불만이 좀 있었지만, 막상 해보니까 경기 조립이 꽤나 재미있었어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고양에서는 이런 플레이,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그냥 무지성 역습 전술로만 축구했으니. ’
물론 그게 약팀의 축구로서 가장 효율적인 건 알고 있지만. 솔직히 역습 전술만 쓰다 보면 좀 재미가 덜한 법이다. 일년 내내 완전히 똑같은 작업만 하면서 회사 봉급 타면 솔직히 직무 만족도가 좋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 봉급이 엄청 많으면 또 모를까.
‘하여튼 오랜만에 재미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경기장을 나가려는 순간,
“자네, 오랜만이군.”
대학교 졸업하고 들을 일이 없던 목소리가 들려와서 순간 섬찟했지만, 바로 인사부터 박았다.
“안녕하십니까. 김병우 감독님.”
“그래, 오랜만에 보는 건데도 여전하더군.”
여전히 별로라는 뜻인가.
“좀 살살 해주지 그랬나.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살살은 무슨, 더 박살내지 못한 게 한이다. 3학년 때 우리 팀 무관으로 만든 1등 공신이 누구인데.
“제 코가 석자라서요.”
“그런가? 하긴, 자네 꽤 고생 많이 했지. 내셔널 리그까지 갔었으니.”
뭐야 그건 또 어떻게 아시는 건데요.
“뭐, 그래도 결국 빛을 보긴 했구나. 상무에서 K리그 베스트와 중미 주전을 두고 경쟁하고 있는 걸 보면.”
이건 또 뭔- 아, 착각할 만하지.
“저, 감독님, 저 중미로 뽑힌 게 아닙니다.”
“응? 무슨 소리인가. 자네 최종명단에서도 MF로 뽑히고, 오늘도 중미로 뛰었으면서?”
도대체 저 분이 내가 뽑힌 최종명단을 왜, 어떻게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오해가 심해지기 전에 답해줬다.
“박흥서 감독님께서 저 풀백으로 전환시키셨습니다. 미드필더는 아마 백업 용도로 쓸만한지 지켜보신 것 같고요.”
그 말을 듣자. 김병우 감독은 꽤나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허, 참. 그런가?”
이 세 마디만 반복하다. 갑자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예상 의왼데··· 아니··· 아닌가? 이러면 주목 안 받을 테니··· 오히려 좋···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더 이상 아무 말도 안 하고 김병우 감독은 라커룸을 나갔다.
“뭐야. 저 아저씨.”
갑자기 찾아와서 뭔 소리 하는 가 했더니,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버리네.
"휴우- 그나저나, 이 정도면 개막전 명단에는 들어 갈 것 같긴 한데, 뛰기는 어렵겠지?"
미드필더로서의 가능성까지 보는 걸 보면, 아마도 당분간 내 역할은 로테이션 선수일 테니까.
하여튼, 내 상무에서의 첫 단추는 이렇게 끼워졌다.
"그래도, 2부리거 주제에 개막전 명단에 포함될 정도면 나름 잘 했네."
그리고- 나머지 단추를 끼우기 위해
"이제 돌아가면 개막전에 붙을 강원팀 영상이나 봐야겠다."
리그에서 싸울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