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개막전 (1)
2015년 03월 11일. 국군체육부대
3월.
싱그러운 꽃이 피어나는 시기이자. 우리에게는 시즌 개막을 바쁘게 준비하는 달. 어느새 시즌 개막까지 열흘 정도밖에 남지 않은 지금, 우리는 팀 합을 맞추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수비수 훈련 세션에 들어가, 팀 합을 맞추기 시작했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삐이익-!
“거기! 33번! 그렇게 하면 오프사이드 트랩 실패다! 제대로 정신 안 차리나!”
“죄송합니다!”
바로 내가 오프사이드 트랩을 만드는 데 있어서 조금 미숙했던 것이다.
그래, 오프사이드.
축구 입문자들의 영원한 적이자 난관인 축구 규칙인 이 규칙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아래와 같다. 선수가 패스를 할 때
1. 공을 받을 선수가 상대 진영(중앙선 너머)에 있다.
2. 공을 받을 선수 앞에 골키퍼를 포함한 상대 선수가 2명 미만(그러니까 1명)이다.
이 두 가지 상황에 전부 해당되면, 오프사이드가 선언되면서 공을 상대편에게 내주어야 한다.
쉽게 말해서 오프사이드란, 어릴 적 동네축구처럼 무작정 키 크고 덩치 좋은 놈 골대 앞에 대충 세워 놓고 그 놈한테만 공 몰아주는 현상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규칙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위의 규칙을 살펴본 감독들은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응? 공격수가 수비수 뒤에 있으면 반칙이라고? 그러면 수비수를 위로 올리면 공격수가 골대랑 멀어질 수밖에 없으니 오히려 수비하기 좋아지지 않을까?
수비가 골키퍼랑 가까울수록 수비하기 좋다는 상식이던 개념을, 파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수비수들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자, 공격수들이 얌체같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럼 수비수 니네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가 우리 편이 공 주는 순간에 니네 뒤로 달려가면 되는 거 아냐?
뭔가 익숙하지 않은가?
그렇다, 바로 피파 온라인을 해 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패스. 쓰루 패스다.
그렇게 꽤씸하고 무도하고 얌체같은 공격수들이 스루 패스라는 무기를 들고 나오자, 현명하고 똑똑한 수비수들은 이러한 생각을 해 냈다.
-그럼, 우리가 주도적으로 오프사이드 상황을 만들어버려서 공격수를 바보로 만들어버리면 어떨까?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수비수들의 최종병기, 오프사이드 트랩이다.
잘만 할 경우 공격수들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아주 강력한 기술.
그런데.
“33번!!”
“죄송합니다!”
이 최종병기가, 왜 이렇게 나는 잘 안 되는 거지?!?
-*-*-*-
“그야 니가 미드필더였으니까 그렇지.”
하아-
암요, 알죠, 알고 말고요. 미드필더였던 놈이 바로 수비수에 적응하면 그거야말로 말이 안 되는 거긴 하죠. 그래도.
“그렇긴 한데, 그래도 이렇게 계속 지적당할 줄은 몰랐어요··· 으윽.”
무게중심 뒤로 옮기는 것도 슬슬 익숙해져서 수비에 자신감 좀 붙는가 싶더니만, 이렇게 뒤통수를 맞을 줄이야.
그런 내 반응에, 이형 선배는 웃으면서 말했다.
“야, 너만 지적당하는 거 아니였잖아. 우리도 꽤나 지적 받았거든?”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내 실수가 가장 많지 않았던가.
그렇게 내가 의기소침해 있자. 이형 선배가 잠시 말을 고르다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음··· 이걸 어떻게 비유해야 할까. 너 스타 좀 해 봤냐?”
“예? 예.”
좀 정도가 아니라 꽤 한다고 자부합니다만?
“그럼 이야기가 쉽겠네, 이 오프사이드 트랩이란 게 있잖아. 테란같은 거야. 마스터하면 참 좋은데, 그 마스터하기가 참 어려운 그런 거.”
흠··· 이거 롤로 치면 야스오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학창시절때부터 전문적으로 수비해온 선수 중에서도 이거 못 해가지고 은퇴한 친구들 많은데, 네가 헤메는 건 당연한 거야.”
그 말에 나는 위로가 아니라, 위기감을 느꼈다.
“그치만, 결국 그 소리는 그거 못 하면 은퇴해야 한다는 소리 아니에요?”
결국 오프사이드 트랩 못 하는 선수들은 은퇴했다는 거 아닌가.
“응? 하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네가 센터백이라면 그래야 할 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린 풀백이잖아, 난 솔직히 풀백은 수비수이긴 수비수인데, 또 반은 미드필더라고 생각하거든.”
“하긴, 그렇게 말하니 또 그렇긴 하네요.”
내가 원래도 느꼈지만, 풀백을 며칠이나마 하면서 확실하게 느낀 것이 있었는데 풀백은, 엄연히 수비수의 범주에 속하긴 한다. 그런데, 솔직히 경기하다 보면, 풀백을 과연 수비수라고 불러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상대편 골대 옆까지 공을 몰고 뛰어갈 때도 있고
적절히 센터라인 쪽에서 공을 연결해주는 위치에 자리잡아 있을 때도 있으며.
우리 팀 골대에서 상대편 공격수를 집중마크하기도 한다.
그래서, 솔직히 풀백은 단순히 수비수라고 하기엔, 정말이지 너무 많은 일을 한다. 마치 군대로 따지면, 음, 정비병 보직을 받은 사람이 장갑차 운전수랑 운전병 역할까지 멀티로 맡는 듯한 느낌이랄까. 사회로 따지면 복수전공생 같은 느낌이고.
“그러니까, 솔직히 나는 네가 오프사이드 트랩 좀 못 하는 게 단점 정도는 되겠지만, 엄청 심한 단점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쪽이야, 솔직히 너도 알다시피 경기에서 우리가 일렬로 쫙- 있는 경우가 얼마나 있어?”
“그런가요?”
“그래,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렇게 급할 필요 없어.”
그 말에, 나는 움찔했다.
“···그렇게 제가 급해보였나요?”
티 안 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 왠진 모르겠는데, 너 남해 갔다온 이후로 좀 급해 보이더라고, 부대에 와서는 말도 잘 알 걸던 나한테 따로 연습 좀 같이 하자고 하고 그럴 정도였잖아?”
그 말에, 솔직히 양심이 콕콕 찔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래서야 내가 원할 때만 선배 찾는 못된 놈 아닌가.
“죄송합니다아···”
“아냐, 아냐, 개막전이 찾아오면 괜히 힘 빡 주는 건 누구나 있는 일이잖아.”
어, 음, 그 이유 때문은 아니긴 한데··· 예,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낫겠네.
“덕분에 나도 꽤 재미있었어. 왼쪽 구석탱이에서 오른쪽 구석탱이로 볼 정확하게 찌르는 건 쉬운 게 아닌데, 너 진짜 잘 주는 모습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
“아니, 선배, 그거 솔직히 미드필더 출신이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을껄요.”
내가 미드필더에서 맨날 하던 게 그건데 뭐. 아니, 미드필더에서 하던 것보다 오히려 더 쉬웠다.
‘풀백이라서 그런지 압박이 전혀 안 들어오더라. 진짜.’
미드필더에서는 다들 전투적으로 볼을 빼앗기 위해서 달려드는 게 국룰인데, 공격수란 것들은 하나같이 빠져가지고, 상대방이 볼 잡아도 압박 잘 안 온다.
-골 넣어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공격수에게 어딜 감히 천한 수비따윌 맡기느냐!
이런 태도라니까. 진짜.
“야, 미드필더 출신이라고 해서 너처럼 장거리 크로스 깔끔하게 주는 놈은 K리그에도 별로 없어.”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냥 웃었다. 괜히 위로해 주시는 것 같아서 말이다.
“에이, 설마요. 이렇게 압박이 덜한데요?”
“아니야, 진짜라니까? 풀백에 대해서 니가 더 잘 알겠냐, 내가 더 잘 알겠냐?”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별로 없긴 하네, 진짜인가?
“하여튼 그러니까 지금 너, 너무 급할 필요 없어, 충분히 풀백 자리에 익숙해지면, 너 충분히 주전 경쟁 할 만해. 지금부터 너무 긴장하면 나중에 중요할 때 힘 못 쓴다?”
“예, 형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확실히 민구, 그 놈이 잘나가는 거 보고 내가 너무 급해지긴 했어.
‘나는 뱁새다. 뱁새.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고 하다가는 다릿가랭이 찢어진다.’
천-천히 가자고, 천-천히.
느리더라도 결코 멈추지 말고. 그러면 기회는 반드시 올 테니까.
-*-*-*-
“그럼, 다들 베스트 멤버는 이렇게 짜는 것에 동의하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그 명단을 보고, 감독은 살짝 웃었다.
“이거, 이거, 신입생 친구들이 기대 이상이군, 특히 공격수 쪽은 수일이랑 정현이 빼곤 신입생 녀석들이 다 차지할 기센데?”
“그렇습니다. 감독님. 공격진의 질이 작년에 비해서 정말 너무 좋아졌습니다.”
그 말에, 회의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각자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연한 것이, K리그 베스트 11에 빛나는 이기승과 임협상이 들어왔는데 공격진의 질이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하면 수비진은 좀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K리그급 수비진은 충분히 됐고. 이 정도면 아주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전부 밀어버리는 게 가능해 보였다.
“그럼, 이제, 후보 선수들을 슬슬 정하도록 하지.”
“예, 감독님.”
그렇게 공격수, 미드필더의 후보를 뽑는 데 시간을 쓰고, 센터백까지 총 5명의 후보를 회의 끝에 뽑고 나자. 풀백 후보를 뽑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풀백 후보를 한 명 뽑아야 하는데, 좋은 의견 있나?”
그 때,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군의관 겸 트레이너가 말을 꺼냈다.
“저는 이준혁 선수를 추천합니다.”
군의관의 말에 순간적으로 모든 코칭스태프들이, 특히 수비 코치가 의아함을 표시했다.
“이준혁? 그 친구, 발이 빠르긴 해도 오프사이드 트랩도 제대로 못 맞추고 있는데, 후보로 넣어도 괜찮을까?”
“예, 물론 그런 단점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걸 한번 보시죠. 이준혁 선수가 이형 선수와 함께 연습을 한 영상입니다.”
그러면서 군의관은 태블릿을 꺼내면서 동영상을 하나 틀어줬다.
그리고 동영상을 본 코치들은, 꽤나 충격을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뭐야, 이거, 진짜인가? 러닝 크로스가 저렇게 정확하게 된다고?”
영상에서 몇 번이고 왼쪽 구석에서 러닝 크로스를 날리면서도 정확하게 이형에게 날려주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예, 이런 모습을 보면 이 친구는 공격적인 풀백으로서 활용가치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후보로서는 아주 좋은 카드인 거죠.”
군의관의 그 말에, 수석코치가 반박했다.
“하지만, 우리가 개막전에 상대할 강원과의 경기에서 필요한 건 수비를 잘 하는 풀백이지 않나. 공격적인 풀백보다는. 수비적인 풀백을 넣는 게 좋을 텐데?”
그랬다. 강원은 지난 시즌 정규시즌 3위로 시즌을 마친, 올해 K리그 승격을 노릴만한 강팀. 수석 코치가 보기엔 그런 팀에게 수비가 불안한 선수를 후보로 넣는 것은 별로 좋은 선택지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예, 물론 저도 강원전에 바로 출전시키자는 소리는 아닙니다. 다만,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이 친구, 원래 미드필더이지 않습니까.”
“아, 설마?”
“예, 급할 경우, 미드필더 백업으로도 써먹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치들이 그 말을 듣자, 왜 군의관이 그를 추천했는지를 알 것 같았다.
경기에서 후보, 즉 벤치 선수를 채워넣을 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전술을 바꾸고자 할 때, 이 선수 한 명의 교체만으로 전술을 바꿀 수 있는가.
그리고 또 하나는, 잘 뛰고 있던 선수가 부상당하거나, 체력이 떨어졌을 때, 그 선수의 자리에서 주전 선수가 맡던 역할을 그럭저럭이라도 소화해 낼 수 있는가. 소위 땜빵이 되는가다.
그런데, 지금 준혁은 그 두가지를 모두 만족했다.
“확실히··· 그 점까지 고려한다면 이 친구가 후보로는 가장 나을 것 같군요.”
“예, 미드필더까지 소화 가능하다면, 확실히 이 친구가 후보 멤버에 들어가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런 코치들의 반응에, 박 감독은 살짝 고민했다.
‘흐음- 난 그 친구가 풀백에만 집중하길 원했는데 말이지.’
이리 저리 포지션을 옮겨 다니다간, 풀백으로 정착하는 데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쓸 수 있는 자원을 쓰지 않는다는 것도 낭비이긴 해.’
잠시 고민하던 감독은, 결국 결론을 내렸다.
“지금, 우리 대학교 팀하고 연습경기 한 번 남았지?”
“예, 그렇습니다. 영남대랑 합니다.”
영남대.
작년 FA컵 8강에 올라가는 데 성공한, 현 대학축구 최강에 가까운, 개막 전 마지막 실험을 하기엔 부족함이 없는 상대.
“그럼, 이 친구, 연습경기에서 미드필더로는 어떤 모습인지 한 번 보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