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167)

로또에는 세금이 있다. (2)

사실, 축구계에서 프로까지 아래 포지션, 그러니까 수비수나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뛰었음에도 나중에 공격수로 포지션을 전환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당장 작년- 아니 이제 2015년이니까 재작년 여름에 토트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당시 약 1억 유로, 그러니까 우리나라 돈으로는 1400억의 역대 1위 이적료를 찍은 선수인 가레스 베일은 원래는 이영표 선수와 주전 경쟁하던 수비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맨날 대표팀에 가면 전봇대라 욕먹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표팀에 꾸준히 차출되는 K리그 최상급 공격수인 김신욱 선수도 프로에 드래프트 될 때는 센터백으로 입단했지만, 프로 입단 후에 공격수가 된 케이스니까.

하지만, 그러는 경우가 흔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공격수란 자리는,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고, 대부분의 축구선수가 원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당장 축구에 관심 없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안다. 호날두, 메시를 아느냐고 물으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나 사비나 알론소, 피케나 알베스를 아느냐고 물으면, 아는 사람이 정말 급격하게 줄어든다. 특히 뒤로 갈수록 말이다.

물론, 이건 호날두-메시가 역사에 남을 선수라는 것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 해 최고의 선수를 받는 발롱도르나, 역대 최고의 선수를 꼽으면 항상 공격수들만 순위권에 있는 것까지는 설명해주진 못한다.

게다가 여기에 역대 선수들 이적료라든지, 축구선수들이 받는 주급, 그러니까 연봉 같은 것까지 따져보기 시작하면, 점점 더 확실해진다.

축구는 결국, 골 잘 넣는 놈, 공격수가 왕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몇몇 별종을 제외한 대부분의 축구선수는 어릴 때부터 공격수를 꿈꾸고, 그래서 그 자리는 자연스레 그야말로 선택받은 자들만이 가게 되는 자리다.

그렇기에 프로 들어서 뒤늦게서야 공격수로 전환하는 건, 그야말로 로또 맞는 확률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선수가 도전하고 도전하다 그 공격수라는 꿈을 버리고 다른 포지션에 정착한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철썩-!

가끔 이렇게 로또가 터지는 경우가 있긴 있구나.

***

상주 상무 0 : 1 서울 이브랜드

[골]

서울 이브랜드 : 주민구 - 22분

***

“이야아아아-!”

그렇게 눈앞에서 내 전(前) 백업 미드필더가 골을 넣는 모습을 보고, 나는 참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 참, 세상 모르는 거구나.’

한 팀의 주전 미드필더는 풀백으로 내려가고.

한 팀의 백업 미드필더는 공격수, 그것도 스트라이커가 되다니.

‘게다가··· 등번호도 18번이네.’

축구에서 보통 주전 스트라이커가 9번을 달고, 그 다음가는 공격수는 보통 18번을 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보면, 저 녀석, 구단의 2순위 스트라이커라는 소리다.

그 말인즉슨, 포지션 변경 첫해임에도 구단에서 꽤 기대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흐, 분명히 후배가 잘나가게 된 일이니,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게 맞을 텐데··· 그런 감정보다는··· 솔직히. 다른 감정으로 가슴이 가득 채워지네. 하하’

축하보다는, 막 욕이 나오고, 한탄하고 싶고. 답답하다.

이 감정은··· 그래.

나, 질투나는구나. 저 녀석이.

-*-*-*-

쏴아아- 끼익-끽.

“씨발. 하하···”

찬물로 세수를 해도 진정이 되질 않네.

“하- 씨발.”

프로 생활하면서 참 이보다 더 엿 같던 상황도 많았는데, 왜 오늘따라 기분이 이리 더 더러운 건지 모르겠다. 아니, 정확히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내 백업이었던 녀석이 나보다 성공한 모습을 보는 게, 이렇게 샘나고 질투 날 줄이야.’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자.

짜악-!

나는 내 볼을 조금 세게 때렸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하아- 씨발, 이러면 안 되지··· 안 돼.’

멘탈 관리를 이렇게 못 해서야. 프로 실격이지 않은가.

그렇게 계속해서 화장실에서 열난 머리를 식히려고 했지만, 영 가라앉지 않았고, 슬슬 오만가지 생각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어쩐지 그 며칠간 교수님에게서 배웠던 풀백의 기본 지식도.

도핑테스트까지 받아서, 분명히 발전했다고 느꼈던 신체 능력도.

어제까지 열심히 연습했던 수비 자세도. 모두 쓸모없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이 부정적인 감정은 너무 강력했다.

‘하아- 젠장, 이거 참. 이러면 안 되는데··· 참 무기력해지네.’

그렇게, 내가 끝없는 자기비하와 부정으로 가득차고 있을 때.

-큭큭···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하, 씨발. 존나 추하네.”

그래도.

너무.

너무 분하다. 씨발.

나의 3개월이, 저 녀석의 3개월보다 훨씬 무의미했다는 소리 아닌가.

“흐어허··· 헝··· 크허···.어..엉···”

그런 감정과 함께, 나는 울었다. 실컷 울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확실하게.

그렇게 얼마쯤 울었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거울을 쳐다볼 정도로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내 눈은 보기 좋게 부어있었다.

“휴- 망할. 세수 다시 해야겠네. 경기 나가려면.”

그 순간,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하- 이 꼬라지가 되었음에도 경기에 나가겠다는 말이 본능적으로 나오는구나.”

그래. 아무래도 난. 이 개좆같은 상황에서도, 경기가 뛰고 싶은가 보다.

그걸 깨닫자. 이번엔 다른 소리가 나왔다.

“크하학···푸하···”

쥐어짜긴 했지만, 분명한 웃음소리가 말이다.

‘하하··· 진짜 나 축구 중독자구나, 중독자. 구제할 길 없는 중독자···’

그걸 깨닫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어차피 도망친다는 선택지를 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거부하고 있다는 게 밝혀진 지금. 내가 할 행동은 정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크크- 에라이- 씨발. 그래. 한번 해보자고.”

그래, 어디 내가 나보다 재능 있는 놈과 맞붙는 게 하루 이틀이었나? 아니다.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수없이 해왔던 짓 아니던가.

그리고 이 길을 끝내 선택한 이상.

나보다 더 몸싸움을 잘하는 놈들.

나보다 더 드리블을 잘 치는 놈들.

나보다 뭐가 되었든 축구를 더 잘하는 놈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 뭐, 인제 와서 이렇게 충격받고 지랄이란 말인가. 그냥 나보다 못났던 녀석이 나보다 잘난 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추하구나. 준혁아. 하하.

가진 거라곤 쥐뿔밖에 없는, 고작 대한민국 2부리그인 K리그 챌린지에서 50경기 남짓 뛴 선수 주제에, 내 재능이 다른 사람의 무언가보다 더 나을 거라고 섣불리 생각했다니. 너무 날로 먹으려고 드는 거 아니야?

간신히 간신히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상대방보다 조금이라도 우위를 가질 수 있을까 말까 한 재능 주제에. 그런 착각을 했다니. 어리석구나.

-벌컥

“준혁아- 화장실 얼마나 쓰는 거··· 너 울었냐?”

“울긴 누가 울어, 눈에 가시 들어가서 그래.”

“···뭐, 그런 걸로 쳐 줄게, 하여튼 전반전 끝나가거든? 아마 감독님이 모두 모이라고 할 테니까 빨리 나와라.”

그 순간. 나는 그냥 알겠다고 대답하려다가, 태준이가 가버리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몇 대 몇인데?”

“2대 0. 난 간다-”

후. 2대 0이라.

‘아직 지고 있는 중이구나.’

그 스코어를 듣자,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내 귀엔 마치 이런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기회 없을 거야.

아무리 선수들의 컨디션을 조절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이렇게 전반전에만 2대 0이라는 스코어가 나 버리면, 분명 여유 있게 선수들을 교체해가며 실험할 마음이었다고 하더라도 승리 쪽에도 약간의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그렇다는 건- 나 같은 실적도, 실력도 부족한 놈은 경기에 못 뛸 확률이 좀 높아진다는 소리 아니겠는가.

‘하아- 세상사,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풀리는 게 하나도 없구나.’

-쏴아아-촥촥.

미약하게나마 눈물 자국을 지워줄 세수를 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래, 내 기회는 내가 만들어야겠지.’

.

.

.

-삐! 삐! 삐이익-!

***

전반 종료

상주 상무 0 : 2 서울 이브랜드

[골]

서울 이브랜드 : 주민구 - 22, 44분.

***

전반전이 끝난 후 상무의 라커룸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아무리 아직 자신들의 상태가 100%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고작 후보 스트라이커한테 이렇게까지 털렸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농락당했기 때문이었다.

“자, 자, 다들 수고했다. 정신 차리고!”

그리고 박 감독 또한 예상외의 상황에 골치가 아팠다.

‘저런 새끼가 도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온 거야? 젠장, 이브랜드 비밀병기라도 되는 건가?’

부족한 점이 안 보이는 건 아니었다. 아니, 부족한 점이 엄청나게 많이 보였다. 그러니까 아직 서브 스트라이커겠지.

그런데, 보면 볼수록, 확실하게 느껴지는 점도 있었다.

저 친구에겐 스트라이커에게 가장 필요한 재능인, 골 넣는 능력이 너무나도 탁월했다. 어떻게 하면 골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본능적으로 아는 움직임이랄까.

‘조금만 더 성장하면, 상무에서 모셔와야 할 수준의 재능인 것 같은데.’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지금 당장은 저 친구를 막아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 보였다.

‘문제는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정보가 너무 없어.’

보통 공격수를 막을 때, 수비수들에게 감독이나 팀은 그 공격수에 대해서 분석한 후 저 공격수가 어떠한 습관을 가지고 있으니, 거기에 집중해서 막아라. 이런 조언을 해주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일반적일 때가 아니었다. 저 녀석이 첫 골을 넣는 것을 보고, 급하게 저 친구가 원래 뭐 하던 친구인지 영상이나 기록 같은 것을 찾아보라고 했지만. 공격수로 뛴 경기는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젠장, 정보라도 충분하면 지금은 미완의 대가이니 어떻게든 잘 막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감독이 속으로 중얼거리던 도중, 조용히,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독님, 절 내보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감독은 고개를 돌려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를 둘러보자, 꽤 의외의 사람이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흠? 준혁 군이군?’

풀백으로 전환시켜 두고, 나중에 가을 즈음 되면 쓸 생각으로 데려왔던 친구지만. 신체 테스트에서 눈에 띄는 성장을 보여서 여름 정도 되면 슬슬 몇 번 정도 투입시킬 생각이었던 선수.

하지만, 지금 당장은 수비적으로 잘못된 습관이 발견되기도 했고, 포지션적인 움직임을 하나도 받지 못한 선수.

그런 선수가 갑자기 자신 있게 날 내보내달라는 말을 하자, 박 감독은 이 친구가 어떤 생각으로 이런 말을 꺼냈는지를 알고 싶어졌다.

“무슨 뜻이지?”

그 말에, 준혁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지금 우리 팀의 문제는, 명백합니다. 주민구, 저 친구에게 너무나도 휘둘리고 있습니다. 절 내보내 주신다면, 주민구를 꽁꽁 묶어 버리겠습니다.”

“어떤 근거로?”

“저는 저 녀석과 같은 팀 멤버였습니다.”

그 말에 감독은 이 친구가 왜 나섰는지를 알 것 같았다.

‘상무 팀에서 가장 저 녀석을 잘 알고 있는 게 자신이라고 판단한 거군.’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했다. 안다고 해서 다 막을 수 있으면, 진작에 세상은 0대 0의 스코어가 넘쳐났을 것이다. 몇 년째 메시를 못 막는 수비수들이 바보라서 못 막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렇기에, 박 감독은 낮은 목소리로 눈앞의 친구에게 물었다.

“자신 있나?”

많은 의미가 함축된 말이었다.

풀백으로 전환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포지션 플레이를 어설프게나마 할 수 있는 것인지. 자네를 투입한다고 해서, 이 상황이 바뀌리라는 자신감이 있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팀이었기에 정보를 안다는 것만으로 우리의 골대를 유린하는 저 친구를 막을 자신이 있는 것인지.

그 질문에, 저 친구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조용하지만 뚜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풀백이란 포지션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했느냐고 물으신다면, 아니라고 답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투입한다고 역전이 가능하냐고 물으신다면, 그것 역시 아직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주민구, 저 친구만큼은 제가 누구보다도 더 잘 지워버릴 자신 있습니다.”

“···좋아. 후반전에 너를 투입하겠다. 한번 해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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