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에는 세금이 있다 (1)
2015년 02월 19일. 경남 남해.
“연습경기? 진짜?”
지난 3주간의 회복 훈련이 끝나자. 우리는 개인별로 코치진 분들과의 상담을 통해 개별적으로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물론 가장 좋은 훈련이라면 포지션 플레이에 익숙해지도록 훈련을 하는 것이겠지만, 우리는 20일까지만 이 시설을 빌리기로 한 상태라 그런 훈련을 하는 것보다는, 개인 훈련에 조금 더 집중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고작 시설 대여 하루를 남겨두고 갑자기 연습경기가 잡혔다는 소리를 듣자 나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디 팀인데?”
“서울 이브랜드라던데?”
뭐야. 잠만.
“이브랜드라고?”
“뭐야, 너 왜 놀라냐? 레저나 패션에 관심도 없을 것 같은 놈이”
“···야, 너 날 뭘로 보는 거냐? 나라고 패션에 관심 없는 줄 알아?”
나도 놀고 싶고, 좀 옷도 멋지게 꾸미고 싶은 평범한 사람이란 말이다.
그러나 저 녀석은 매정하게 쏘아붙였다.
“뭘로 보긴, 맛대가리 없이 식단도 매일 조절하고, 훈련하다 지치고 지쳐서 매일 일찍 잠드는 바른 생활 어린이로 보이지. 내 스물일곱 살 인생에서 너 같은 놈들이 패션이나 레저에 관심 가지는 꼬라지는 못 봤다.”
“···..”
비겁한 녀석. 반박도 못 하게 팩트로 때리다니.
“그러니까, 왜 놀란 거냐?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
“···그 기업, 우리 팀 스폰서였었거든.”
“아하.”
물론 내가 들어가고 얼마 안 되어서 스폰서가 해지되었지만 말이지.
‘아마도 아예 팀을 창단하자는 생각을 그 때부터 했던 거겠지.’
그 때를 생각 하다 보니 갑자기 출전수당 줄였던 것까지 떠올라서 잠시 슬퍼질 뻔했지만, 지난 며칠간 멘탈이 튼튼해질 수밖에 없는 일들을 겪어서 그랬을까. 놀랍게도 나는 이번엔 무표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쓸데없는 데서 발전했네. 쳇.’
이런 성장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지.
어쨌든, 잠시 삼천포로 빠진 대화를 돌리기 위해서 나는 질문을 던졌다.
“근데, 왜 그 팀이 우리랑 한다냐? 나름 올해 승격 라이벌인데?”
본디 라이벌 팀과는 웬만하면 친선경기를 가지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시즌 전부터 너무 열기가 과열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감독들이 부담을 가지기 때문이다.
팬분들이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내신이랑은 전혀 관계없는 쪽지시험 성적 가지고 부모님이 뭐라고 하는 것만큼 스트레스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서울 이브랜드와의 친선전이 더더욱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브랜드는 창단하자마자 야심차게 김재성, 김영광, 조원희라는 국대 A매치를 15회 이상 출전한 베테랑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클래식 승격을 노리는 팀이었기에, 똑같이 승격을 노리는 우리와는 완전히 상극일 수밖에 없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거기는 뭔 생각으로 우리랑 경기하자고 한 거래?”
그런 내 의문은,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내가 듣자하니, 딱 그 팀도 지금 막 남해에서 2차 전지훈련이 끝난 상태라서 그렇다는데.”
잠깐, 뭐라고?
“그 팀도 여기 남해로 전지훈련 왔었다고?”
“그래.”
“하- 이건 뭐. 어이가 없네.”
솔직히 시민구단이라면 이해 간다. 세금 부어서 팀을 운영하는 거니까 예산을 쏟아붓는 게 눈치 보일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시설 이용하는 게 훨씬 싸게 먹히니까.
그런데, 저런 성적에 목을 메야 하는, 클래식 승격을 노린다고 말하고 다니는 프로팀이 돈 아낀답시고 국내 훈련을 하다니. 아무리 봐도 프런트가 돈을 현명하게 쓰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쟤네 딱 봐도 승격 못 하겠네.’
그 돈 아끼는 고양 FC마저도 다른 건 몰라도 전지훈련만큼은 돈 안 아끼고 태국으로 갔단 말이다.
‘뭐, 상대편이 바보 같으면 우리야 좋은 일이지.’
하여튼, 그렇게 둘 다 같은 남해에서, 비슷한 시기에 2차 전지훈련을 진행했으니 전력 점검 용도로 연습경기를 한 번 잡아보자는 말이 나오면서 이렇게 급하게 잡혔다는 게 태준의 말이었다.
“정식 경기가 아니라서, 교체 횟수는 무한으로 적용한단다.”
“오 그래? 그러면 우리도 좀 기회 얻을 수 있으라나?”
“거의 100%라고 봐야지. 물론 모두 한꺼번에 투입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실전 감각 살려줄 겸 짧게라도 투입시키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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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서울 이브랜드, 연습경기 명단도 화려해··· 마지막은 상주로 장식?
“참 재밌는 제목이군. 이브랜드 그 친구들, 참 시끄럽게 구는구만?”
그 말과 함께 박 감독은 신문을 치우며 코치진들에게 눈을 돌렸다.
“뭐, 다들 들었다시피, 이브랜드 쪽에서 우리에게 경기를 요청해 왔다.”
“바보들 아닙니까? 신생구단 주제에?”
“뭐, 축구 모르는 친구들 입장에선, 전직 국대 세 명 모았으니 대충 K리그 2 정도는 간단하게 정복하리라고 생각한 모양이지.”
그 말을 듣고 나자, 모든 코치진들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당연한 것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장이 만만하게 보였다는 소리이니까 말이다. 그런 소리를 듣고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인지, 코치들의 말들이 살짝 날카로워졌다.
“이거, 그냥 거절하면 안 됩니까? 시합 이틀 전에 갑자기 잡아버린 연습경기인 만큼, 저희 측에서 거절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냥 거절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상부에서 결정이 내려왔네, 받아들이는 게 좋겠다고.”
“예? 왜 그런 거랍니까?”
“받아들이면 그 쪽에서 며칠치 대관료를 보태 준다던데 어떻게 거절하겠나.”
코치들이 그 말을 듣자, 떫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래도 이제는 왜 수락한 건지 이해는 되네- 라는 표정을 지었다. 지들이 돈 주고 우리랑 경기하고 싶다는데 뭐 어떻게 거절했겠는가.
“그럼, 스쿼드는 어떻게 짜실 생각이십니까?”
“뭘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이제 15군번 친구들이 회복훈련도 끝난 만큼, 그 친구들한테도 기회를 좀 줘 봐야지.”
그 말에, 코치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 감독님, 아직 그 친구들, 포메이션 훈련은 하지 않은 상태인데, 상대가 될까요?”
아무리 이 쪽이 선수의 질이 훨씬 좋다고 해도, 축구는 팀 게임이고, 팀으로서 합을 맞추어야만 비로소 전력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아직 팀으로서의 조직력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한 친구들이 그 연습경기에서 괜찮은 모습을 보여줄지 의문이었던 것이다.
물론, 박 감독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나도 그 친구들이 포메이션 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알고 있네. 하지만 우리는 올해 언제까지나 14군번 친구들에게만 기댈 수는 없어. 알지 않나.”
그 말에, 코치들 중 일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14군번 선수들이 10월에 전역한다고는 하지만, 이상하게도 병장만 되면 다들 전투력이 감소하는 군대의 유구한 전통이 상무에도 있는지, 상무 선수들도 병장을 다는 순간부터 굉장히 약해지는 특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감독의 15군번 친구들을 미리 키워두자는 말도 일리는 있었다.
그러나 몇몇 코치들은 여전히 반대했는데.
“하지만 그러다가 질 경우에는 저희 팀을 무시한 이 친구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지 못하지 않습니까.”
이대로 도발당하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거였다. 그 반응에 감독은 웃으며 답했다.
“물론 나도 이대로 질 생각은 없네. 그러니 포메이션이라도 우리 친구들이 익숙하디 익숙할 4-4-2로 해야겠지.”
4-4-2.
엄청나게 단순하고 익히기도 쉬운 편이라 그야말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소년 축구 시절에 무조건 한 번은 접하게 되는, 모든 팀들이 우려먹고 또 우려먹는 전통과 역사가 깊은 포메이션. 이 포메이션에서 뛸 줄 모르는 놈은 없을 테니까.
“자, 그럼, 최대한 15군번들만으로 4-4-2 포메이션을 구성해 보도록 하자고.”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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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20일. 남해공설운동장
살다보면 느끼는 건데. 세상은 생각보다 좁다.
일단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같은 반이었던 사이만 따져도 몇백명은 되고. 대학교에서는 같은 과 선-후배들 합치면 또 백 명쯤은 가볍게 묶이고. 직장에서 상사-동기-후배 관계로 묶이다 보면 또 아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기천명의 사람과 엮이게 된다.
그러니까.
“오랜만입니다 형님!”
“어? 그래, 오랜만이다.”
이렇게, 상대편 쪽에 내가 아는 사람이 나타나 인사하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익숙한 일이라는 거다. 그래도 이 녀석이 먼저 인사해올 줄은 몰랐는데?
‘우리 사이가 그렇게 친해질 수 있는 사이는 아니였는데, 신기하네.’
물론, 옛날과는 다르게 우리 사이에 친해질 점이 하나 있긴 했다.
“형님은 방출 통보 어떻게 받으셨습니까?”
“어, 나는 단장한테 전화왔었어.”
“이야- 그 정도면 나름 주전이었다고 대우해준 모양이네요. 전 문자였습니다.”
바로 같은 직장에서 같은 시기에 잘린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고로 인생에서 가장 엿같은 경험을 함께한 사람끼리는 묘한 동질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물론 그걸 감안해도 우리 사이가 이거 하나로 친해지긴 좀 어려웠던 사이였던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뭐, 악감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지금은 같은 팀도 아니라서 친해지지 않을 이유가 사라졌으니 굳이 친근하게 구는 사람을 밀어낼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나는 이 친구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넌 이브랜드에 어떻게 들어간 거냐? 계약 해지 당하고 바로 스카웃된 거야?”
자고로 동종업계의 이직 과정 내용은 참고할 게 꽤나 많은 법 아니겠는가. 특히나 나 같이 현재 공식적으론 FA, 그러니까 백수인 상태인 사람에겐 이 녀석이 어떤 과정으로 팀에 들어갔는지 더욱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하하, 아뇨, 후보 선수한테 누가 스카웃을 해요. 고양에서 계약 해지 당하고 K3 노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브랜드에서 공개테스트 해서 지원했죠.”
“이야, 잘 됐네, 주전 경쟁은 할 만 하고?”
“예, 힘들긴 하지만 할 만하네요. 형은 어쩌다가 상무로 간 거에요?”
“음-”
두어 달 전의 나라면 여기에
‘나도 모르겠어’
라는 대답을 해줬겠지만, 지금은 꽤 좋은 대답을 해줄 수 있었다.
“체력이지. 체력.”
물론 옛날에도 팀에서 체력훈련하면 항상 1등 찍어서 내가 체력 괜찮은 줄은 알았지만, 이제까지 내가 뛴 팀이 모두 강팀이 아니다 보니 그냥 2부리그에서 좋은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무에 와서도 내가 1등, 혹은 2등 찍는 걸 보자.
‘아, 나 체력으로 들어온 거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듣자. 이녀석도
“하- 역시 그렇군요? 형님 체력 수준이면 그럴 만 하죠.”
이렇게 동의하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게 옳은 것 같고 말이다.
“저도 곧 군대 들어가야 할 텐데, 체력 좀 키워야되겠네요. 상무는 어때요?”
글쎄, 어떠냐고?
“편하지.”
물론, 나보다 더 뛰어난 선수들로 가득찬 곳이기에.
가끔씩은, 아니 자주 부럽고, 시기하고, 질투나기도 하지만.
매년 말에 시작되는 연봉 협상, 구직 활동, 그런 걸로 스트레스 안 받고.
“아무 생각 안 하고 오직 축구에만 집중하면 되니까 정말 편하고 좋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다.
“에이, 그래 봤자 군대아니에요?”
“시끄러 임마.”
바로 이거, 이거 말이다. 치트키를 쓰다니, 비겁한 녀석.
“그럼 형님,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봬요. 혹시 미드필더로 저 있을 때 나오면 패스는 좀 살살 뿌려주십쇼-”
“그래, 잘 가라.”
그렇게 대화가 끝난 후,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태준이가 말을 걸어왔다.
“오올, 역시 K리그2 토박이답게 이브랜드에도 아는 사람이 있구만?”
“시끄러. 클래식 촌놈.”
“챌린지 촌놈보다야 낫지. 하여튼 쟤 뭐 하던 놈인데 너한테 형님 형님 거리냐?”
뭐긴 뭐야.
“그냥 같이 짤려서 동질감 느끼는 사이지.”
“글쎄, 그것만은 아닌 것 같던데? 그 정도 사이면 이렇게 시합 전에 굳이 찾아오진 않잖아? 끝나고 한 잔 하는거라면 몰라도, 어떤 사이였어?”
어떤 사이였냐고? 흠. 뭐라고 말해야 할까.
“백업과 주전 사이?”
“뭐? 니가 백업이었어?”
“아 씹, 내가 주전이지, 임마. 백업이었으면 내가 상무에 어떻게 뽑혀.”
하지만 그 말을 듣자, 태준은 오히려 더 아리송한 얼굴이 되었고.
“쟤 몇 살 차이야?”
“나보다 한 살 어려.”
이 말까지 듣자, 태준의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해졌다.
“그래? 그런데 왜 저리 친하게 구냐?”
“글쎄, 나도 그게 의문이다?”
나랑 한 살 차이. 그리고 같은 미드필더 포지션. 그야말로 포지션 경쟁자 중의 경쟁자였기에, 솔직히 만나더라도, 그리 친하게 웃을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렇게 친근하게 먼저 다가올 줄이야.’
이제 다른 팀이라서 그런가?
잠깐 이유가 궁금했지긴 했지만, 어차피 그렇게 신경쓸 일도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거기에 대한 생각은 그만뒀다.
“자자, 우리는 이제 우리 준비나 하자. 오늘 뛸 준비 해야지.”
“뭐, 그러자고.”
그렇게 운동장을 돌면서 몸을 가볍게 풀기 시작한 우리는 경기가 시작되자, 조금 이상한 광경을 지켜보게 되었는데.
“야, 걔 너 백업이었다고 했지?”
“···어.”
“근데 쟤 왜 저기에 있냐?”
“···모르겠다. 나도.”
전직 내 백업이었던 미드필더가
-FW, 18번, 주민구
공격수로 변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