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167)

이상한 놈 (2)

인간이 겁을 낸다면 그건 왜 그런 것일까. 바로 그것이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무런 지식이 없는 아기가 거부하는 존재라면 그것은 인류에게 매우 크나큰 위협이 되기에 피하는 것이 마땅한 것-

“어어어어, 아, 왜! 왜! 주사 맞아야 하는 건데요! 아아아아-으어어어-”

“아니 왜 이렇게 겁이 많으십니까. 애도 아니고.”

“아니 뾰족한 거에 공포증 느끼는 건 누구나 있을 수 있는 일이잖아요! 주사 공포증이라는 것도 있다는-”

그러나 나는 말을 끝까지 듣지 못 했다.

“악! 아니 이렇게 기습적으로 주사 놓는 법이 어디 있어요!”

“거 참 말 많으시네. 원래 주사는 기습적으로 놔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안 아파요. 이러신 분이 신검 때 체혈검사는 어떻게 하신 거래.”

“으, 그거야···”

남들 앞에서는 쪽팔리니까 있는 척한 거지. 자고로 20대 피 끓는 남자란 죽어도 남 앞에선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하는 법이다.

“어쨌든, 뭐, 최근 7일 이내에 복용한 약물이나, 보충제, 그리고 3개월 이내 수혈한 적 없으시죠? 특히 보충제.”

“예, 없습니다. 없어요.”

원래 나도 단백질 보충제는 꾸준히 먹는 편이지만, 지금은 훈련소에서 나온 지 2일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 먹는단 말인가.

“음음, 좋습니다. 좋아요. 샘플이 오염되지 않은 상태겠군요. 검사 한 번으로 끝나길 기대하죠.”

잠깐, 방금 그대로 넘어갈 수 없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나요?”

“당연하죠. 검사가 어떻게 될지를 제가 어떻게 압니까? 기계가 알지. 추가 검사를 위해 피를 더 뽑아갈 수도 있으니까 보충제 제가 추천해준 걸로만 먹으세요.”

“아니 씹. 의사시잖아요! 의사면 좀 한 번에 따악! 하고 이거 해결 못 해요?”

내가 그렇게 묻자. 저 의사놈이 아주 단호하게, 일말의 여지도 없다는 듯이.

“예, 해결 못합니다.”

내 말을 잘라버렸다. 단호박이시네 시발.

“아니 의사면 좀 환자에게 친절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친절이 환자 살려주진 않더라고요. 어쨌든 피 뽑았으니, 저랑 같이 종이컵에 소변이나 받으러 갑시다.”

? 뭐야, 뭔가 들어서는 안 될 말이 들렸는데?

“같이요?”

“예.”

“같이? 그러니까. 소변 볼 때 옆에 있겠다고요?”

“정확히는 바지 다 까고 제가 소변 종이컵으로 받을 겁니다.”

시발?

“아니 왜요?!?”

“원래 소변검사 시에 이게 원칙이거든요.”

“아니 뭔, 좀 대충 하세요! 제가 알아서 소변 받아가지고 올게요!”

아무리 사람의 인권이 적나라하게 무시되는 군대라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배신과 졸렬함이 넘쳐나는 무협지에서도 화장실에서는 기습을 가하지는 않는 게 국룰이거늘. 강호의 도리가 어디에 떨어졌단 말인가.

그러나, 이 의사놈은 내 말을 듣긴 하는지, 심드렁한 표정으로 장갑을 끼며 화장실로 가는 날 따라오기만 했다.

“아니 좀! 대충 좀 합시다! 거 참 진짜!”

“대충이라뇨, 그런 건 있을 수 없습니다. 그건 무엇보다 저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어긋나기 때문이죠.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알았어요 알았어! 얌전히 검사 받을 테니까 그만! 그만 하세요!”

그 말을 더 들으면 뭔가 겁나게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이라 끊었다.

‘뭐 이런 4차원이 다 있어. 젠장. 말 많은 게 딱 찬호-팩 형님 과인가 보다. 휴, 저 인간 앞에서는 조심해야겠어.’

그러나, 그 결심은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깨져버렸다.

“아 씹! 뭐 하는 짓거리야! 왜 사람 성기 만져보고 있는 건데요! 저리 안 가요?!? 이거 성추행이야 성추행! 멈춰! 멈추라고!”

“따라온다고 했잖습니까.”

“아니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해야 돼? 바지도 다 벗고! 하라는대로 다 했구만! 진짜 이렇게까지 FM으로 해야겠어요?”

“이게 대충 하는 겁니다만?”

그 말에 나는 몸을 굳혔다. 아니 진짜로?

“진짜 FM대로 하려면 원래는 저 말고 두세명씩 들어와서 생식기까지 교차 검사받아야 합니다. 매수당할 여지 있어서요. 그리고 생식기 만지는 건 외부에 가짜 생식기 달아놓고 거기에 소변 채워두는 새끼들도 있어서 그런 거고요.”

“···”

와 씨바. 말이 안 나온다. 그렇게까지 한다고?

“그러니까 서로 피곤하게 살지 말고, 그냥 얌전히 검진받으세요.”

“···최소한 빨리 끝내주세요.”

“노력하죠.”

.

.

.

.

.

“예, 좋습니다. 이제 돌아가시면 됩니다.”

“네에에···”

아, 기운 진짜 쭉 빠진다. 진짜. 몸이 힘든 건 아닌데, 진짜 정신적으로 너무 스트레스받았어.

“검사 결과는 대충 한 2~3주 안에는 나올 겁니다.”

“네? 아니 뭐 그렇게 오래 걸려요?”

“이것도 빠른 겁니다. 올림픽 위원회에서 주관하는 도핑 테스트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보통 4주에서 6주는 걸려요.”

뭐야, 아니 그럼 올림픽 출전하다가 도핑 테스트 걸리는 놈들은 뭔데?

그런 내 의문에, 군의관은 명쾌하게 답변해 줬다.

“그야 그냥 평소에도 신나게 약 빨다가 걸린 놈이죠.”

“허미.”

그런 거였구만.

“하여튼, 지금 이준혁 씨가 그나마 검사 기간이 절반으로 줄어든 이유는 체력은 정상적으로 안 좋아져서 그냥 스프린트를 비롯한 근육 폭발력과 관련된 도핑 검사만 실시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운 좋은 줄 아세요.”

“···.”

반박하고 싶었지만, 반박했다간 사실은 운 안좋을 경우 이렇게죠렇게 더 안좋아질 수도 있었습니다. 같은 소리가 나올 게 너무 뻔해 보여서 그냥 꾹 참고.

“예, 알겠습니다. 이제 그럼 들어가봐도 되나요?”

만 외쳤다. 그리고 그 방식은 역시 효과가 있었다.

“예,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아자. 좋아. 잘 참았다. 이준혁. 이제 빨리 도망-

“아, 잊을 뻔했네요”

씨발? 또 뭔데! 이 악마야! 제발, 제발 이제 좀 사람답게-

“혹시 재검해야 할 지도 모르니, 보충제 이상한 거 드시지 마시고 이걸로 드세요.”

-쿵.

그 보충제를 본 나는 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어, 이거 그 미국에서 파는 겁나 비싼 보충제 아닌가요?”

좋다고는 들었는데, 영 비싸서 그냥 포기했던 보충제였기 때문이다.

“네 맞습니다. 도핑 검사가 가장 엄격한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쓰는 보충제죠. 보충제 필요하면 이거 드세요. 엉뚱한 거 드시다가 막 이상하게 샘플 오염되지 마시고요. 그렇다고 보충제에만 의존하시면 안 됩니다. 언제까지나 보충제는 보충제니까 음식 잘 섭취하고-”

또 잔소리가 길어졌지만. 이번엔 뭐 들을 만했다. 자고로 그냥 잔소리하면 꼰대이지만 밥 사주면서 잔소리하는 분은 어르신으로 대접해주는 게 사람 아니던가. 밥보다 훨씬 비싼 프로틴을 받았는데 이 정도는 들어줄 만했다.

“아시겠죠?”

“예, 명심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나중에 2차 전지훈련에서 뵙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고 진짜로 보내주자, 나는 이 인간이 나쁜건지- 좋은건지 참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더러웠던 건 사실인데, 피 뽑고 프로틴 얻은거라고 생각하면 이득이기도 하고.

'이득이야, 손해야?'

가만히 생각해본 나는, 결론을 내렸다.

'뭐 피 뽑고 초코파이 얻는 것보단 낫지.'

이득인걸로 생각하기로 했다.

-*-*-*-

-2차 전지훈련 장소는 남해다.

이 말을 듣고, 실망, 혹은 불만을 가진 선수들이 무척 많았다.

-아니, 왜 해외에서 안 하고 그러는 거야?

물론 이 선수들이 괜히 불만을 가지는 건 아니었다. 한국에서 프로팀의 전지훈련이란, 가능한 한 해외에서 하는 것이 훨씬 좋다. 진짜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겨울 날씨의 환경에서 운동을 하게 되면, 근육이 다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부상당하기 쉽다는 거다.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많은 K리그 팀들은 보통 겨울에도 따뜻한 태국과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떠나지만.

-야! 돈도 없는데 뭔 놈의 해외는 해외야? 그냥 국내에서 해결해!

이러는 구단 역시 꽤나 많다. 수많은 시민구단과 K리그2 구단이 그러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솔직히, 남해에서 훈련한다고 했을 때 별 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하는 정도?

그런데.

삐익-!

이건 예상 못 했다. 씨발.

“뛰어!”

허, 이, 이건 또 무슨 훈련이야?

삐익-!

“11번, 실패, 넌 빠져라. 나머지는 다시 15초 휴식!”

아니, 보통은 폐활량 조지는 훈련 하는 건 삑삑이로 그냥 숨 찰 때까지 하잖아. 그렇잖아.

삐익-!

“뛰어!”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힘들잖아. 그런데. 왜. 왜.

삐익-!

“좋아! 15초 휴식!”

“으···아..”

왜 이건 씨, 씨바 다음으로 통과할 때마다 길이가 늘어나는 건데에에에에!

삐익-!

“뛰어!”

.

.

.

.

.

“2번, 3번 탈락! 빠져라. 8번 뛰어! 너만 남았다!”

헤엑, 헤엑, 헤익.

“디, 디질 거 가따···”

와 발음도 줄줄 샌다. 하.

“우, 어어..우엑. 웩.”

와 진짜 조금 먹길 잘 했다. 토 나올 것 같아.

“2번, 3번! 눕지 마라! 눕지 마! 걸어라! 걸어야 제대로 쿨 다운(Cool down) 된다!”

“끄으···”

그, 그래, 일어서서 휴식하-

“으어어···”

···음, 국가대표도 눕는데, 나도 좀 누워 있어도 되는 거 아닐까?

그렇게 바닥과 하나가 되어가는 우리를 보시는 코치님 가라사대.

“빨리 안 일어나면 한 세트 추가다. 5, 4,..”

“이, 일어났습니다.”

“저, 저도 일어났습니다.”

단 한 마디로 다리를 쓰지 못하던 두 사람을 낫게 하셨도다.

“좋아, 그럼 너희는 5분간 걸으면서 휴식을 취한 뒤. 저기 열리는 론도 훈련을 시작하도록.”

“예!”

그렇게, 유산소 훈련-테크닉 훈련을 번갈아가면서 하고 나면.

“으으으으-!”

“잘 하고 있습니다. 그 상태로 10초간 자세 유지.”

허리와 햄스트링 쪽의 스트레칭을 통해, 우리가 훈련소에서 많이 쓰지 않던 근육을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이완시키고 나면.

“코어, 하체! 원래는 이건 개인별로 해야 하는 게 맞지만, 지금 너희들은 하나같이 몸이 안 좋은 상태라서 GX로 한다. 다들 플랭크 시작! 일단 가볍게 1분부터!”

우리가 이렇게 잃어버린 코어 근육을 다시 재생시키는 훈련을 하고.

“식사도 전투다! 양껏 잘 먹어라!”

“예!”

잘 밥 먹고 푹 자고, 그렇게 3주의 시간을 거치자.

.

.

.

삐익-!

“이준혁! 수고했다. 선발 때 몸상태로 돌아왔군.”

“후욱, 후욱. 감사합니다.”

어느새 우리의 몸은, 완벽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여도 다시 정상 궤도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

2015년 02월 18일.

“좋아, 세션 종료! 그동안 고생했다. ”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지난 3주간 몸 상태를 끌어올리느라 고생 많았다. 내일은 약속한 대로 자유시간을 줄 테니, 적당히 잘 쉬고 모레부터 너희들도 전술 훈련에 참가하도록! 알겠나!”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산하고 난 후, 다들 삼삼오오 외출을 나가는 사이에.

“후우-후우”

나는 여전히 체육관에 남아 있었다.

-텅!

“허억-허억”

태준이가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질린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야, 너도 참 어지간하다. 뭔 휴식일에 또 훈련을 하고 있어?”

“그야, 우리 아직 파워 트레이닝은 거의 안 했잖아. 벌충해야지.”

그 말을 듣고 나서도 여전히 태준이는 이상하다는 목소리였다.

“그러니까, 왜 파워 트레이닝을 하냐 이 말이지, 너 볼 배급하는 중앙 미드필더잖아? 그럼 그냥 테크닉 훈련 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아?”

뭐? ···아, 그러고 보니 얘는 아직 모르겠구나?

“너 못 들었냐? 나 이제 풀백이야.”

“응? 뭐라고?”

“풀백이라고.”

순간, 태준이는 이상한 놈을 쳐다보는 눈초리로 변했다.

“이건 또 뭔··· 중앙 미드필더가 왜 풀백으로 포변하고 있어? 너 윙어나 센터백 경험도 없잖아. 잘 할 수 있겠냐?”

“뭐, 시키니깐 하는 거지.”

“···뭐 그러냐? 너도 고생하는구나. 풀백이라니. 난 그거 죽어도 못 하겠던데.”

그야 당연하지. 맨날 볼 들고 드리블이나 하던 탐욕스러운 공격수 녀석들이 풀백을 잘 할리가 있나.

“야, 그래도 나보다 볼 잘 차는 윙어 별로 없거든?”

“그래 봤자잖아, 템포 다 끊어먹기만 하는데-”

가만? 근데 이 녀석 왜 여기 있냐?

“야, 그러고 보니 너는 안 나가냐?”

“응? 어, 뭐 그렇지. 가족 면회 온다고 했는데, 너무 멀어서 솔직히 내가 먼저 거절했다. 나중에 올라가면 보자고.”

좋아. 완벽하군.

“그럼, 너 나랑 1대 1이나 하자.”

교수님께 전수 받은 레슨 효과를 제대로 실험해볼 기회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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