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놈 (1)
“와, 진짜 다행이다.”
“그러게, 진짜 다행이야···”
부대 연명부를 통해 알아본 결과.
우리의 선임 멤버 21명 중에서. 무려 5명이 우리보다 어렸고, 2명이 우리와 동갑이었다. 이 정도면 정말이지 기대 이상이다.
‘두세명만 있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배가 넘는구만. 어떻게 선임들이 우리보다 더 어리냐?’
우리 기수에서는 우리보다 어린 후배가 90년생 딱 하나뿐인데 말이지.
‘휴우- 어쨌든 살았다. 이 정도면 우리가 심하게 굴려지지는 않겠구나.’
물론 뭐 며칠간은 여기가 군대랍시고 가오를 잡겠지만, 알아서 선은 지키겠지.
그렇게 안심하던 우리는, 비록 별 거는 아니라지만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준 친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어··· 기간병님? 기간병? 뭐라고 해야 하나요?”
“그냥 편하게 아저씨라고 부르세요. 제가 더 어려요.”
“어, 그럼 기간병 아저씨, 감사합니다. 연명부 이렇게 빌려주신 거요.”
그 말에, 우리에게 연명부를 보여준 기간병은 뇌물로 받은 구름과자를 맛있게 피우며 말했다.
“걱정 많으셨나 보네요?”
“그야 걱정 많았죠. 어휴. 선배들이랍시고 무조건 떠받들듯이 모시는 건 3년 전에 졸업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전으로 다시 돌아갈 뻔 했으니까요.”
그러자 기간병은 구름과자를 다시 베어물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었는데요.”
“네? 왜죠?”
“그야 여기에 지금 국대가, 그것도 국대 공격수가 있잖아요.”
“아.”
그랬다. 지난 12월, 우리가 입대하기 직전에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 슈틸리케에게 국가대표팀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고 기회를 받은 끝에 올해 1월 아시안컵에 발탁되면서, 아시안컵 2골 1도움으로 화려하게 자신의 이름을 알린, 슈틸리케의 황태자. 이정현.
그 친구 때문에 상무가 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쏠려 있는지라. 굉장히 전 부대원들이 신경을 많이 쓰고 있기 때문에 소위 ‘얼차려’ 같은 걸 지금 엄격하게 관리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선수가, 제가 알기로··· 음, 아저씨들은 몇 살, 아니 몇년생이에요?”
“어, 89년생입니다.”
“음 그럼- 스물 일곱 살이시네요. 그 공격수보다 한 살 많은데. 그럼 괜찮지 않을까요?”
그 말을 이해한 나와 태준은, 절로 만세 소리가 나왔다.
“이예-쓰!”
그도 그럴 게, 09학번 후배를 못 갈구고 있는데 08학번인 우리들에게 얼차려를 주는 게 솔직히 가능하겠는가? 아니, 가능은 하겠지만, 그 후에 벌어질 일을 감당할 사람이 있을까?
‘없지. 그런 인간은.’
대가리에 총 맞지 않은 이상 그려려는 놈은 없다. 만약에라도 총 맞은 놈이 나타나더라도, 이런 상황인데 그런 짓 저지른다? 들이받으면 된다. 들이받으면 우리가 이긴다. 4년 전에 들이받아 본 경력직으로서 확신한다.
‘그럼 이 쪽은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겠네.’
그렇게 판단한 나는, 자연스레 목소리가 나긋나긋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담배를 다 피우고 들어가려는 기간병 친구에게 커피를 건넸다.
“자자, 현역 군 생활 하느라 힘드실 텐데. 여기 커피도 한 잔 마셔요.”
무려 레쓰비가 아니라 TOP로 말이지. 우리가 꿀 빠는 세대라는 소식에 이 어찌 아니 기쁠쏘냐.
“오, 고맙습니다. 들어가서 마실게요. 하여튼, 축구 쪽에서는 그런 일 없을테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 말을 하고 기간병이 일어나는 순간, 나는 순간적으로 웃음을 멈췄다. 멈출 수밖에 없었다.
‘뭐야, 축구에는 그런 일 없을꺼라고?’
저 말,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이상했다. 상무, 여기 국군체육부대에는 축구 팀만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야구, 농구, 배구와 같이 프로리그가 있는 인기 종목을 비롯해서 육상, 쇼트트랙 같은 올림픽 종목까지 있단 말이다.
그런데 저렇게 딱 축구만 찝어서 별일 없을 거라고 말하다니?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잠깐 생각해보자. 결론은 아주 명백했다.
‘와 씨발. 다른 종목들은 대학교 때처럼 막 지랄한단 소리네···’
와우, 진짜. 진짜 간신히 살았다. 지금 온 게 완전 행운이네.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지뢰를 잘 피해갔음에 안도하고 있었지만.
“예, 살펴가십쇼-! 아저씨.”
그 와중에 박태준 이 녀석은 깨닫지 못한 건지. 태평하게 웃으면서 작별인사나 말하고 있었다. 아마도 눈치를 채지 못한 듯했다.
‘이런 걸 보면 내가 남들에 비해서 눈치가 아예 또 없는 건 아닌데.’
왜 내가 자꾸 눈치 없다는 소리를 듣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정말이지 지극히 정상적이고 올바른 사람이거늘. 에잉.
“휴, 야. 우리도 슬슬 운동하러 단련장으로 가 보자.”
“응? 뭐야, 지금 단련장을 왜 가냐? 오늘은 적당히 여기에서 시간이나 죽이자고. 너도 그럴 생각으로 여기로 온 거 아니였어?”
본디 일반적이라면 운동선수가 운동하러 가는데 태클을 거는 녀석의 말을 5500자를 들여 반박해줄 나였지만. 오늘만큼은 녀석의 말이 더 정론이었기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오후에 테스트 측정 있는데 왜 굳이 지금 힘을 빼두려고 하냐?”
그랬다. 오후에 당장 피지컬 테스트가 있는데 아침에 굳이 왜 운동하러 가서 더 기록이 안 좋게 나오려고 애를 쓴단 말인가. 공부는 벼락치기하면 한 개라도 더 맞을 거라는 희망이 있지만 운동은 그것도 아니니 내 행동은 그야말로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래, 바보 같은 짓이지만.
“후욱-후우-”
나는 그냥 오늘부터 훈련을 강행했다.
물론, 솔직히 시험 전에 밤 새고 공부하는 것보다, 아니 밤 새고 공부 안하는 짓만큼이나 멍청한 짓이란 걸 나도 안다.
그러나, 나름 하나하나 따져보면 나 역시 곰곰히 생각하고 한 거다.
‘나는 어차피 장기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자, 생각해 보자. 나는 포지션 변경 훈련을 12월에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1월 말. 고작 두 달 정도만이 지났을 뿐이다. 그리고 그 중 5주는 훈련소에서 갇혀 지내느라 연습할 시간도 많이 없었고.
이런 선수를 당장 감독이 시즌 초에 써먹으려고 한다?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심지어 그게 팀에 들어오기 전까지 경력이 매우 적은 선수라면?
뻔하다.
-XX 감독아, 대가리에 우동사리만 들어있니?
같은 말이 나오겠지.
물론,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더욱 더 이번 테스트에서 좋은 성적 거둬서 전지훈련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눈도장 받아야 하는 거 아닐까?
사실 이 생각이 더 먼저 나왔다. 이게 맨날 단년 계약해오면서 어떻게든 프로씬에서 버텨낸 나한테는 훨씬 익숙한 방식이기도 하고, 이게 주전 경쟁의 정석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여긴 군대잖아.’
그래, 여긴 상무다. 내가 아무리 개지랄을 해도, 개같이 못 해도, 들어온 이상 방출 당하고 다른 선수 데려오면 어쩌지? 같은 걱정은 2년, 아니 정확히는 20개월 동안 전혀 할 필요 없다.
그리고, 또 군대이기에 나오는 장점이 있는데.
‘어차피 저 선임분들이 제대하고 나면, 빈 자리가 알아서 나오게 되어 있어.’
그렇다. 저 선임들, 연명부 보니까. 모두 10월 12일에 전역한다. K리그2는 시즌 종료일이 보통 11월 말인데!
이게 뭔 소리냐고? 한 달 반 동안, 선수가 무려 20명도 안 된다는 거다!
이러면 무조건, 무조건이다. 11월에는 무조건 나에게 기회가 몇 번이고 오게 되어 있고, 그 때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 저기 선임분들이 좀 이상한 눈으로 나를 좀 바라보더라도 눈치 볼 것 하나도 없다.
‘어차피 저 중에서 내가 말 섞어 본 사람들은 한 명도 없는데 뭐.’
그러니까.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그냥 지금은, 훈련이나 열심히 하는 게 맞다. 테스트 있다고 지레 겁먹고 오늘 할 일 내일로 미루지 말고 말이다. 쪽지시험들 준비 너무 열심히 했다가 본 시험에서 망하면 그거야말로 더 부끄러운 거 아니겠는가.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내 계획은 1년짜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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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여기 신체 테스트 결과표입니다.”
팔락-
“하아- 제기랄, 역시나 예상대로군.”
“뭐, 하루이틀 그러는 것도 아니고, 익숙해질 때도 되시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래도 그렇지, 난 아직도 이맘 때에 차트를 볼 때마다 놀란다네. 어떻게 고작 훈련소 5주만에 사람들이 이 지경이 되어버릴 수 있지?
수석코치는 그것을 보고 살짝 웃었다.
‘확실히 체력 기준점이 너무 높으시단 말이지.’
저 정도면 5주간 훈련 안 한 것치곤 괜찮은 건데. 상무의 감독을 맡은 지 이제 3년차에 들어서는데 아직도 기준점을 낮추지 않는 모습이 참 재미있었다.
“분명 선발 때에는 VO2MAX 기록이 아무리 못해도 50들은 넘겼는데 이걸 보면 38, 37, 39, 40··· 어휴. 너무한 수준이군.”
감독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테스트 기록지를 계속 넘긴 넘기다가,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응? 이 친구, 제대로 측정한 거 맞나?”
“예? 누구 말입니까?”
“아니, 그 내가 풀백으로 쓰겠다고 말한 친구 있잖나. 이거 기록이 좀 이상한 거 같은데? 설마 자네, 초시계로 잰 건 아니겠지?”
군의관이 그 말을 듣고 발끈했다.
“아니, 언젯적 일 가지고 그러십니까. 이젠 육상용 타임키퍼만 씁니다. 이 기록에 오차는 천분의 1도 안 됩니다.”
“그럼 이건 뭔가? 어떻게 이런 기록이 나올 수 있지?”
그 말과 함께, 박흥서 감독은 두 기록을 비교했고, 그 기록을 보자. 모두들 말도 안 된다는 눈빛으로 그 기록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준혁
2014. 11. 04 30M 달리기 기록 : 4초 31
2015. 01. 23 30M 달리기 기록 : 4초 29.
5주간 훈련소에서 있었음에도. 비록 0.02초지만, 오히려 기록이 좋아졌던 것이다.
“이건 말이 안 되네. 말이 안 되는 기록이야. 기기를 한번 점검해줄 수 있겠나?”
“저, 감독님,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모두 정상적으로 나오는데요. 이건 진짜로 그 선수가 빨라진 것 같습니다.”
“그럼 설명해 보게, 왜 이런 기록이 나온거지?”
그 말에, 코치는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선수 선발 때 정상 컨디션이 아니였던 건 아닐까요?”
코치는 그나마 그게 가장 현실적인 방식으로 보였지만. 감독은 그 소리를 일축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 상무에 지원 테스트를 보러 왔는데 자기 컨디션을 최상으로 안 만들었을 리가 있나?”
그리고 그 기록지를 보면서 말이 없어졌던 군의관은 조금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뭐, 이러면 뻔하지요. 그거 아니겠습니까?”
“뭐 말인가?”
“그거요, 그거.”
군의관이 팔에다가 검지손가락을 콕콕 찝는 손짓을 하면서 말하자. 여기에 모인 코칭스태프들은 모두 정적에 빠졌다. 단기간에 갑자기 이유 없는 신체 능력치 상승이라면, 그게 정답일 확률이 높았으니 말이다.
그 말에, 코치 중 한 명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아- 진짜 바보같은 놈이네요.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상무에 와서 도핑을 한 건지.”
순간, 감독이 눈을 번뜩였다.
“자네, 방금 한 말 다시 해 보게.”
“예? 아, 죄송합-“
“아니, 죄송할 거 없고, 방금 한 그 말 다시 해 줄 수 있겠나? 부탁이네.”
“예? 에,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상무에서 도핑을-“
“그래! 그거야!”
모두가 깜짝 놀라는 사이, 감독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선발될 때 도핑하는 거라면 이해가 되지. 좋은 기록을 남겨야 뽑힐 테니까. 하지만 지금 저 친구는 이미 뽑혔는데 도핑을 할 이유가 뭐지? 여기에서 잘 한다고 연봉을 더 많이 받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 말에, 모두는 다른 정적에 휩싸였다. 테스트 표를 보고 너무 충격받아서 도핑밖에는 생각 못했는데. 지금 보니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도 굳이 지금 도핑을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 정적 속에서, 피지컬 트레이너 겸 군의관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러면 제가 한번 검진해보겠습니다.”
“자네가 말인가? 자네 도핑 검사 할 줄 아나?”
“예, 올해에 그 행사도 있어서 저희 부대 내에 도핑 테스트 기구도 들여오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거 써서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좋아, 그럼 부탁하네.”
그렇게 검사하러 자리를 떠나자, 수석 코치는 조심스레 감독에게 말했다.
“만일 도핑이 아니라면, 그 친구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대답은 명쾌했다.
“그냥 기회를 생각보다 빨리 주게 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