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167)

상무 도착.

하아아암-

‘아, 자-알 잤다.’

역시 버스 안에서는 잠자는 게 최고다. 음.

“어, 일어났냐?”

“예, 형은 안 잤어요? 목소리에 잠기운이 하나도 없네?”

“응. 내가 쓰던 목 베개가 없어서 그런가? 잠이 잘 안 온다.”

아, 그럼 그럴 만하지.

“그럼 형은 뭐 했어요?”

“걍 티비나 봤지. 근데 좀 멀어서 잘 안 보이더라. 에휴. 그래서 솔직히 반쯤 멍 때렸어.”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이형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역시 아무리 상무가 시설 좋다고 해도 영 부족하네. 자고로 구단 버스라면 버스 안에 빵빵 잘 터지는 와이파이를 설치한다던가, 휴대전화 충전장치를 설치한다던가, 목 베개를 가져다 놓는다든가 해야 하는 법인데.”

그 말을 듣고, 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이 선배가 우리 구단 버스를 보셨어야 하는 건데 말이지.’

우린 그냥 고물 우등 버스 가져다가 끌고 다녔단 말이다. 그에 비하면 나름 이 버스는 티비는 설치되어 있는 걸 보면 아예 신경 안 쓴 건 아니다.

‘게다가 솔직히 충전기나 와이파이는 지원할 예산이 있었어도 안 놔줬을 것 같은데요.’

우리도 서류상으론 군대라서, 일단은 핸드폰 금지니까 말이다. 핸드폰을 쓸 일이 없는데 뭐하러 그런 걸 여기에 설치해 놓는단 말인가.

그렇게 일어나서 멍- 하니 딴생각을 하며 주변의 경치를 구경한 지 10분쯤 지났을까. 오늘 아침 우리를 버스로 인솔했던 교관이 큰 소리로 고함질렀다.

“자 자, 다들! 옆에 있는 사람 깨워라! 곧 국군체육부대에 도착한다!”

그 순간, 내 흐리멍텅하게 뜨고 있던 눈동자가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 왔구나.’

드디어 내가 앞으로 약 20개월 동안, 몸부림을 칠 곳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말이다.

-*-*-*-

국군체육부대.

경상북도 문경시에 있는. 대한민국 최고로 많은 선수를 보유하고 있는 구단.

이 구단에 도착한 우리가 가장 먼저 할 행동은 바로- 전입신고였다.

‘군대는 뭔 놈의 신고를 이렇게 좋아하는지 참.’

뭐 이게 군대 법칙이라니까 어쩔 수 없긴 한데, 암만 봐도 좀 허례허식이 너무 많다. 이렇게 모든 일에 절차를 따지면 참 귀찮은데···

그나마 다행인 점이 하나 있다면. 내가 대표로 뽑힐 리는 없다는 것이었다. 당연한 것이-

“이형”

“이병 이 형!”

“네가 대표로 선서한다.”

“···예! 알겠습니다!”

우리 기수의 대표로 뽑기에 가장 완벽한 사람이 있었으니 말이다.

‘이형 선배가 가장 A매치 출전 횟수가 많기도 하고, 가장 선배니까.’

둘 중 하나만 있어도 대표로 유력한 후보일 텐데, 무려 A매치 출전 18회에 86년생으로 나이도 가장 많다.

그렇게 우리는 이형 선배를 필두로 신고 연습을 몇 번 한 후에,

“대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 성!”

우리 상주 상무 6기 인원들은, 오와 열을 맞추어 전입신고를 시작했다.

“신고합니다! 이병 이 형 등 18명은! 2015년 1월 22일부로 육군 훈련소에서 국군체육부대 제1경기대로 전입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대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 성!”

“충! 성!”

“바로!”

그 우렁찬 전입신고에, 대대장은 만족했다는 듯이 가볍게 거수경례를 받아준 후, 차례로 우리들의 군복에 국군체육부대 마크를 붙여주기 시작했다.

“이병! 이 준 혁!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대장과 짧은 대면 및 신고식을 끝내고 나자, 우리가 작년에 집체교육을 받을 때 봤던 사람이 나타났다.

“어, 반갑다. 상주 상무 수석코치 김태환이다.”

그리고 그 순간, 다들 자신도 모르게 대대장 앞에 있을 때보다 더욱더 완벽한 차렷 자세를 유지했다. 그도 그럴게, 앞으로 우리들의 생활에 저 대대장보다 저 수석코치가 훨씬 큰 영향을 미칠 테니까 말이다.

“여기 안에 있는 친구들 중. 어떤 친구는 A매치를 뛰고 K리그 베스트까지 먹고 온 친구도 있고. 어떤 친구는 2부리그에서 빌빌대고 있다가 오게 된 친구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시작부터 이미 주전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놈들도 있지.”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내가 처음에 상무에 합격했음에도 망설였던 것도 그런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여기에서 14년 넘게 코치로 일하면서 느낀 게 있다. 생각보다 그 차이라는 게, 아주 아주 작다는 거다. 2부리그에서도 평범했던 놈이 갑자기 실력이 확 늘어서 국가대표로 성장하기도 하고, 국가대표였던 놈이 딴 놈들은 다 군대 빠졌는데 자기는 군대 못 빠졌다고 징징거리기만 하다 실력이 박살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 말에, 나를 포함한 선수들은 수석코치님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너희들의 커리어 따위엔 관심 없다. 너희들이 바깥에서 얼마나 잘나가는 선수였는지, 얼마나 못난 선수였는지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여기에 오게 된 이상 너희들은 모두 똑같은 지점에서 너희 스스로를 감독님에게, 나에게, 우리에게 증명해야 할 것이다.”

바로, 우리들에게 무한 경쟁을 시키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2부 리거? K리그 베스트? 국가대표? 아직도 그런 말랑말랑한 바깥에서의 신분을 들먹일 생각을 하고 있다면, 빨리 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앞으로 약 1년 반동안 너희들은 모두 똑같은 군인이고, 똑같은 사람이니까. 명심하도록, 알겠나!”

“예!! 명심하겠습니다!”

“목소리가 작다! 그리고 대답은 짧게 ‘예’ 만 한다. 알겠나!”

““예!!!!!””

“좋다. 그럼 전원 현 시간부로 모두 일단 복도에 짐을 내려놓고, 바로 날 따라온다. 실시!”

““실시!””

-*-*-*-

-털썩.

“어어- 조오-타.”

이게 얼마만의 침대냐.

‘맛있는 걸로 따땃-하게 배 채우고, 방도 주고.’

훈련소에서 먹고 나서 군대 밥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상태였는데, 그 생각이 바뀔 정도의 맛이었다. 게다가 2인 1실이라니. 세상에. 이건 고양에 있을 때보다 더 좋은 거 아닌가?

‘군대··· 나쁘지 않을지도?’

그렇게 내 머릿속에서 미래에 대한 행복회로가 윙윙 돌아가기 시작하려는 찰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와서 슬쩍 쳐다보니,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오랜만이다. 나 기억나냐?”

이 녀석은 날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뭐야, 이 녀석 누구지?’

일단 프로에서 만난 놈은 아니다. 그럼 이렇게 기억이 가물가물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

‘그럼 학창 시절에 만났다는 건데···’

솔직히 그러면 기억 안 난다.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만나 봐 온 녀석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기억하고 있냐.

“미안, 나 너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우리 어디에서 만났었지?”

“하, 기억 못 하는 거냐? 이러면 기억나려나? 2007년, 고등학교 시절, 신갈고.”

신갈고? 신갈고라면- 아. 그 매달 회비 100만원도 넘게 내던 부르주아지 새끼들!

“아, 기억난다. 미안, 백록기 예선탈락따리 허접 학교라 기억 못 했어.”

“이런 씹, 그 때 빼고는 다 우리한테 졌던 놈들이? 그리고 그때도 승부차기 승부였잖아! 승부차기는 운빨이라는 거 모르냐!”

“응, 어쨌든 마지막에 이긴 건 우리 학교였잖아. 하여튼 오랜만이다. 박태준.”

오랜만에 과거의 기억을 공유하는 녀석을 만나서 그랬을까. 우리는 그 때 당시에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까진 아니었지만, 얼마 안 되어 꽤나 많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뭐야, 너 고대 갔다고? 아니 우리한테 진 놈들이 뭔 대학교는 우리보다 더 잘 갔냐?”

“그거야, 우리가 전국체육대회 우승했으니까. 07년도 최후의 승자는 우리다! 하하.”

“하, 부르주아지 새끼들. 우리도 니들처럼 시설 좋았으면 우승 하나는 했어!”

그리고 나서는 보통, 현재의 이야기를 해야 하겠지만.

“크, 진짜 그때 짜릿했지. 여러분! 축구회비 매달 100만원 넘게 받아대는 부르주아 놈들을! 저희가 이겼습니다! 이게 축구지!”

“응~ 데미지 없어, 우리는 트로피 있어. 느그들은 트로피 없고.”

나와 녀석은 계속, 계속 무의식적으로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고등학교 시절 이야깃거리가 바닥나자. 우리 둘 다 갑자기 말하기를 머뭇거렸다.

그 이유는, 우리들의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시절과.

지금의, 찬란했던 빛을 조금 잃어버린 우리가 대비되었어서리라.

‘게다가 쟤는 더 심하겠지···’

고3 시절, 1학년 꼬꼬마로 여겼던 후배 녀석이 A매치에도 출전하고, 유럽에도 진출해서 골 넣고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응, 그래서 지금 넌, 대학교 1년만에 중퇴하고 울산에서 인천 거쳐서 전남으로 갔다는 거냐?”

“그렇지. 너는?”

“뭐, 난 별거 없어, 졸업하고 용인시청에서 괜찮게 뛰다가, 안산이 프로 전환한다는 소리에 테스트 보고 들어갔었다.”

“고생했네.”

우리는 정작 가장 궁금해야 할 최근 근황이라든지, 프로에 진출하고 난 후의 이야기는 짧게 하는 것이 명백하게 느껴졌다.

‘하긴 너도, 나도, 둘 다 정말 잘했다면 아직은 군대를 미룰 수 있는 때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상무로 오진 않았겠지.’

그리고 그 녀석도 그걸 깨달았는지, 못내 서로 쓰게 웃었다.

“야, 우리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냐. 크크.”

“그러게나 말이다. 킥킥-”

우리는, 어느새 나때는, 나때만을 외치는 과거의 영광에 취해버린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몇 번이고 이 직업을 때려치울까 고민해봤기에 이 상황을 곱씹어 봤자 별로 좋지 않음을 아는 나는, 내가 효과를 본 방법으로 친구를 치료해주기로 했다. 일단 이 치료의 첫 번째는.

“야, 그때처럼 스타 내기나 해 볼래?”

잠깐 다른 집중할 거리를 찾아내는 거였다.

“응? 여기 싸지방 스타 깔려있냐?”

“뭐 방법이야 찾으면 있겠지. 게다가 지금 보아하니 우리 선임들도 전지훈련 가고 없잖아. 이렇게 여유로운 상황 잘 안 나온다?”

“으으음··· 좋아! 신갈고 축구부 최강 테란 맛을 보여주마."

그렇게, 태준이 녀석과 3판 2선승제로 지는 녀석이 PX를 쏘기로 한 내기의 결과는.

“아 씹, 개새꺄! 좀 정정당당하게 운영 가자! 운영할 줄 모르냐! 어떻게 두 판 연속으로 4드론이야!”

나의 무참한 승리로 끝났다.

“응~ 날빌도 실력이야~ 꼬우면 막았어야지.”

“와아- 이 새끼 진짜 인성에 문제 있는 놈이야. 진짜.”

그리고 반응을 보아하니, 친구를 위한 내 2단계 치료방법이 아주 잘 먹힌 것으로 보였다.

‘역시 사람은 빡치면 저런 씁쓸한 기분은 날라가 버리는 법이지.’

그렇게 친구의 기운을 북돋아 준 나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이 부대의 PX에 도착한 나는, 깜짝 놀랐다.

“히야- 별 게 다 있네?”

그리고, 그 감탄은, 박태준 이 녀석도 마찬가지였는지 화난 기색이 다 사라지고.

“그러게나 말이다. 여기 군대 맞냐?”

이런 소리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PX나 노래방이야, 뭐 다른 일반적인 군부대에도 있다고 들었지만, 카페랑 당구장은··· 이야- 진짜 좋다. 당구공도 그렇고 다 새삥이야.”

“야, 게다가 이거 봐라. 병사 우선 사용이라고 되어 있네. 그럼 우리도 나중에 사용할 수 있다는 소리 아냐?”

“오오, 당장 사용해보자.”

그리고 그렇게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당구도 한판 친 우리는, 어느새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야- 여기 진짜 좋다. 밥맛 좋고. 웬만한 놀거리 다 있네.”

“그러게, 진짜 훈련소 때보다 훨씬 좋다. 자대 만세!”

“상무 만세!”

그렇게 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인 상태로 우리 생활관 쪽으로 돌아오고 나니, 사람들이 모두 창문에 몰려 있었다.

“뭐야, 저거 뭐냐?”

“글쎄? 뭔 일이지?”

다행히 우리의 궁금증은 얼마 안 가서 풀리게 되었다. 창문에 이미 다닥다닥 붙어 있던 선배들이 한목소리로 한탄했기 때문이다.

“야, 저 버스 봐봐. 선임들 왔다···. 전지훈련 끝났나 봐.”

“와 망할, 조졌다. 선임 없는 삶이 하루밖에 안 된다고? 저놈, 분명 나 갈구려고 들 텐데.”

그 말을 들은 우리는, 잠깐 몸이 정지되었다.

선임이라니, 선배라니! 젠장! 그걸 잊고 있었어!

저 사람들이 왔다는 건. 이제 선임 겸 선배분들을 막내 라인인 우리가 다 수발들어야 한다는 소리 아닌가.

“···여기 훈련소보다 좋은 거, 맞겠지?”

“그러길 바라자···”

하, 제발 우리보다 후배 있어라. 제발.

그렇게 우리가 창문을 보며 기도하던 찰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다들 여기에 계시네요? 무슨 일 있나요?”

“아, 누, 누구시죠?”

“아, 저는 여러분 트레이너입니다.”

트레이너라고?

‘트레이너라기엔 몸이···? 좀 그렇지 않나?’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눈치챘는지. 그 트레이너는 뒤에 말을 덧붙였다.

“예, 몸 별로죠? 저도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군의관이라서 트레이너를 겸하게 됐네요.”

...의사가 트레이너를 겸한다고? 아니 의사면 트레이너 자격이야 충분하긴 한데 이건 또 뭔···.

“음. 하나, 둘···, 마침 다 여기 계시는군요. 흠흠. 여러분, 이렇게 모인 김에 전달 사항이 있습니다. 집중해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다음에 트레이너가 말한 말은, 우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해 줬다.

“전달 사항입니다. 바로 내일, 1월 23일부로 이틀간 신체 점검 테스트가 있을 예정입니다. 이 테스트 결과에 따라 28일에 시작되는 전지훈련에서 여러분이 어떤 훈련을 할지 결정되니, 모두 열심히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상."

-이미. 시즌을 향한 우리들의 경쟁 레이스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