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67)

행운 (4)

-쩝쩝

“어때요?”

음, 일단 짭짤하고, 살짝 매콤한데 그 매콤함이 고추의 매콤함이라기보단 왠지 후추의 매운맛 같은 느낌이다.

“응, 이 슈넬 치킨이란 거. 맛 괜찮긴 하네.”

“그렇죠? 이제 제가 왜 난리 떨었는지 이해 가요?”

후배 녀석의 말에, 나는 웃으며 대답해줬다.

“아니.”

솔직히, 맛없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게 엄청 맛있다거나 하는 맛은 또 아니잖아. 그래 봤자 냉동 치킨인데.

‘사회에 나가서 먹을 맛은 아니지.’

추억보정 붙으면 몰라도 말이다.

물론, 진짜로 맛있어서 사회에 나가도 먹고 싶을만한 것도 있었다.

“그보다 난 이게 마음에 드는데. 이거 무슨 라면 섞은 거냐?”

매콤한 맛과 짜장의 맛이 이렇게 적절하게 조화되다니. 너무나도 완벽하다.

“공화춘이랑 불닭볶음면 섞은 겁니다. 형님. 여기 빅팜까지 같이 드시면 금상첨화에요.”

“뭐야, 햄까지 같이 먹어?”

“넵, 매운 걸 중화시켜줄 소시지죠.”

그 햄을 한 입 베어물고 라면 볶음을 한 번 후루룩거리자.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오, 군대도 살 만 하구만? 이렇게 맛있는 레시피도 찾을 정도면 말이지.”

“와, 형님, 아무리 선배님이라고 해도 그 발언은 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전역한 사람이나 쓸 수 있는 단언데.”

“응, 나는 어차피 상무야 임마. 사실상 반쯤은 사회인이라고.”

내가 들은 상무 썰에 의하면, 물론 상무도 엄밀하게 말하면 군인 신분이긴 하지만, 솔직히 굉장히 사회인에 가깝다고 해야 한다고 들었다.

‘리그 경기 나가니까.’

당장 정식으로 프로 리그가 있는 4대 구기종목, 축구-야구-농구-배구. 이 네개종목 뿐만 아니라 핸드볼같이 실업 리그에 참가하는 종목은, 리그에 참가하는 이상 어쩔 수 없이 경기 절반은 바깥으로 나가서 경기를 해야 한다.

그러니까. 주전이기만 하면 사실상 합법적인 외출을 엄청 하게 된다는 거다.

그 설명을 들은 후배 녀석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아니, 씹, 그런 게 어디있어요! 그게 무슨 군대야!”

“그래도 두발이라던가 그런 건 조금 지킨다고 하던데?”

“아니 그건 학교에서도 했던 거잖아! 그 정도면 그냥 좀 규율 빡센 대학교지! 개꿀빨러네 이거! 완전 DP병 수준이잖아! 와 형님은 어디 가서 군 생활 했다고 하지 마십쇼 진짜.”

후배 녀석의 한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에, 나는 아주 간단하게 답해줬다.

“응 그래~”

내가 그렇게 능글맞게 말하자, 후배 녀석은 찡그리던 표정 그대로 치킨을 낼름낼름 먹으면서 말했다.

“에라이, 말해 봤자 딜교 내가 개손해보네. 하여튼 형님, 수료 축하드립니다. 뭐 힘든 거 없으셨습니까?”

그 말에 지난 몇 주간의 기억을 되살려 본 결론은.

“글쎄, 딱히 힘든 건 없었네.”

별로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다는 거였다.

“뭐 갓 대학교 올라온 애기들은 신나게 놀다가 갇혀지내니까 불만 많겠지만, 우리들이야 그럴 나이는 지났잖냐.”

게다가. 위에서 정해진 계획표대로만 행동하는 것이라던가, 군것질 통제라던가, 취침 시간 통제 같은건 솔직히 운동부 기숙사 생활을 해 봤다면 정말 익숙하디 익숙한 광경이다.

“크, 역시 형님은 대학교 때부터 이런 통제 같은 건 진짜 쿨하네요? 멋지십니다.”

“야, 아부 떨지 마라. 그래 봤자 그때처럼 치킨 사주거나 해 주진 않는다.”

“이런, 들켰습니까?”

그렇게 웃으며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다, 내가 슬쩍 질문 하나를 던졌다.

“이제 넌 슬슬 전역 생각이 날 것 같은데, 너 앞으로 뭐 할 생각이냐?”

“글쎄요? 1년 깨지고 계속 고민해봤는데, 군대에 말뚝 박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름 적응 되니까 여기도 살 만 하더라고요. 행보관님이 절 예쁘게 봐 주시기도 하고.”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안심했다.

‘다행이네.’

물론 일반적인 친구들이라면, 군대에 말뚝 박는다는 소리 듣고 미쳤냐는 반응을 보이겠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후배를 응원했다.

‘최소한 깨끗하게 돈 벌겠다는 거니까.’

솔직히, 수업 시간에 맨날 잠만 자고 운동만 했던 운동부 출신들이 운동 그만두면 무슨 선택지로 빠지겠는가. 자연스레 힘 쓰고 어깨에 힘 주고 들썩이는 그런 데로 빠지기 십상이다.

실제로, 내 고등학교 시절 친구 몇몇이 이런 쪽으로 빠졌다는 소식도 몇 번 들었고 말이다.

‘이 녀석은 그래도 그렇게 안 빠져서 다행이야.’

그렇게 내가 지긋이 후배 녀석을 바라보자. 후배 녀석이 내 눈길을 느꼈는지 라면을 흡입하다가 날 쳐다봤다.

“근데 선배님, 더 안 드십니까?”

“응.”

“아니 왜요? 대학교 때 저희 중에서 가장 맛집 잘 찾아다니셨던 분이.”

“관리해야지. 이제 곧 시즌 시작하는데 이거 먹고 빼려면 엄청 힘들다.”

순간, 후배는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 먹어도 운동으로 빼면 된다던 선배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대학교 때의 난 그랬지.’

하지만. 프로 3년차의 이준혁이란 선수는 다르다. 달라져야만 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바로 뒤쳐질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속내를 숨기고. 나는 방긋 웃었다.

“다 살다 보면 변하는 법이니라-”

그런 사정을 밖으로 보여 봤자. 뭐 떨어지는 게 하나라도 있을까?

‘기껏해야 싸구려 동정이나 받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후배와 오랜만에 이렇게 떠드는 자리였는데 그런 어두워질 수 있는 이야기나 하며 헤어지면 조금 그렇지 않은가.

그렇기에, 나는 웃었다. 웃어야 했다.

“이제 거의 다 먹어가는데, 헤어지기 전에 니 바꾼 전화번호나 좀 말해라.”

“아, 그렇네요. 병영일기 수첩 좀 주세요. 제가 적어드리겠습니다. 010-xxxx···”

그렇게 전화번호를 적고 일어서면서. 나는 웃으면서 농담을 던졌다.

“이제 남은 며칠간 너랑 아는 사이라고 니 후임 놈들에게 갈굼받는 거 아냐?”

“그런 놈 있으면 바로 말하십셔. 개박살 내줄테니까요.”

“아, 아니 그럴 필요는 없고.”

얘가 농담을 진담으로 받네.

“하여튼 선배,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리는 제가 할테니 나중에 봐요!”

“그래. 고맙다”

그렇게 PX를 떠나 훈련소 막사로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냉동을 해치운 이형 선배와 함께 전우조로 같이 이동하게 되었는데. 선배가 말을 걸어왔다.

“야, 너 저 조교랑 아는 사이었어?”

“네, 대학교 2년 후배입니다.”

그 말에, 이형은 꽤나 놀란 목소리로 반응했다.

“진짜? 2년 선배인데 뭐 저리 깍듯이 대우해? 내 앞에 지금 2년 선배 나타났으면 줘 팼을 텐데.”

그 반응을 보고 나는 희게 웃었다.

‘하긴 일반적으로는 저런 반응이 맞지.’

보통 대학교에서 2년 선배면, 군기 잡는 선배로 기억되기 때문에 별로 좋은 감정이 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대충 말로만 들었지만, 군대에서의 신병-일말 및 갓 상병 단 정도 사이? 라고 보면 딱 알맞으려나.

그럼에도 저 녀석이 저러는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뭐, 일이 좀 있었죠.”

“무슨 일인데?”

“그냥, 3학년 때 운동부에 있던 부조리 몇 개 없앴더니 저러는 거에요.”

“3학년 때?”

“예.”

내 말에 이형 선배는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3학년 때 부조리 없앴다는 게 어떤 말인지 파악하셨구만.’

하긴 최고 선임일 때 부조리 없앤 것도 아니고, 적당히 선임일 때 없앴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을 사람은 없을 거다.

“이야, 너 성깔 있구나? 너 설마 나도 날리는 거 아니겠지?”

“에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선배님. 동기사랑 나라사랑이죠.”

“와, 이놈이 운동부의 규율이 지엄하거늘. 감히 막 맞먹으려 드네?”

“에이, 곧 수료식도 같이하는 찐 동기가 왜 이러십니까.”

내 넉살에, 이형 선배는 꽤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형이라고 해라. 짜식아.”

“감사합니다. 형님.”

“자. 이제 그만 드가자- 곧 수료식인데. 부모님께 감기 걸린 모습 보여주면 안 돼지.”

“···넵.”

시간 어디에서 보내지.

-*-*-*-

My Life For Aiur!

타다다다닥. 따다닥.

-For Adun! I Love For Combat!

뜨륵!

I1II111l1 : gg

오, 이겼다.

“어으- 오랜만에 하는 거라서 못 이길 줄 알았는데. 이겼네?”

아직 내 스타 실력, 녹슬지 않았구나?

“끄으- 오랜만에 자알 놀았다.”

공방의 개초보만 들어오라고 사기치는 못된 놈들을 단죄해준 나는, 이번 판이 끝나고 PC방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확인했는데. 정말 애매했다.

‘한 20분 남았네. 이러면 진짜 애매한데?’

20분, 한 판 더 돌리기에 아주 부족한 시간은 아니지만, 장기전으로 갈 경우엔 어림도 없고, 게임 찾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짧게 끝내려고 해도 넉넉하다고 말하긴 힘든 시간이다.

'벙커링으로 한 판 돌릴까...? 에잇, 아냐, 됐어. 이 정도 즐겼으면 됐지. 노래나 듣다 가자.'

그렇게 생각한 나는, 유튜브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오, 국카스텐 2집 지난 11월에 나왔었구나? 이번엔 또 뭔 신기한 노래를 만들었니이-?”

그렇게 남은 시간동안 국카스텐 노래나 헤드셋 끼고 조용히 눈 감으며 노래를 들으며 보내려던 나는, 첫 노래가 끝나자 갑자기 이상한 노래가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위 아래 위위 아래. 위 아래 위위 아래.

‘뭐야, 이건? 그 때 그 이상했던 노래네? 어쩌다가 유튜브 다음 재생 목록에 걸그룹 노래가 튀어나온 거지?’

뭐, 엄청 나쁘거나 한 곡은 아니었지만 사이키델릭한 국카스텐 노래 잘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걸그룹 노래 듣다 보니 적응이 안 되서 바로 다른 영상을 틀려던 찰나, 내 눈에 동영상 조회수가 들어왔다.

“뭐야 이 조회수는?!?”

직캠으로 떴다더니, 조회수가 진짜 장난 아니다.

‘도대체 어떻길래?’

궁금증이 생긴 나는 홀린 듯이 그 영상을 반복재생했고, 두어 번 보니 느꼈다.

‘뭐, 뜰 만은 하네. 예쁘고, 춤 잘 추니까.’

딱 그 정도 감상이었다. 내가 뭐 그 이상으로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걸그룹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니까.

그러고 나서 내가 창을 닫고 국카스텐 노래를 듣기 시작했지만, 왠지 모르게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저 노래, 몇 위까지 올라갔었을까?’

나답지 않게 그런 궁금증이 계속되자. 결국 네이버에 검색을 쳐봤는데, 정말로, 어이없어서 웃음이 다 나왔다.

“1위. 찍었네?”

허 참, 진짜 연장전 인저리타임 골든 골이구나. 야구로 치면 9회 말 투아웃 역전 만루 홈런이고. 진짜 대단하다.

그래, 저렇게 작은, 작은 행운을 붙잡아서, 결국 1위에 오른 사람도 있구나.

후-

‘부럽네. 나한테도 저런 행운이 올까?’

그렇게 한숨을 쉬던 찰나, 문득 옆에서 절규하는 소리가 들렸다.

“으아아아아··· 씨발, 진짜 돌아가기 싫다. 씨이이이발. 내가 왜 2년을 이 군대에 붙잡혀야 하냐고오···”

“···”

딱 봐도 현역병으로 끌려가는 친구의 설움을 보고 남의 행운을 부러워하던 나는 순간적으로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도 나는 쟤보단 낫구나- 하는 감정?

‘나도 상무 못 뽑혔으면 저랬으려나?’

그런 걸 생각하면 나도 운이 나쁜 것만은 아니-

가만. 그렇네?

‘그래, 생각해 보니 나도 행운이란 게 오긴 했구나.’

현역을 각오했었는데, 상무로 오게 되었으니까.

새삼 그것을 깨닫고 보니, 저 유튜브에 나오는 친구들을 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다.

‘큭큭, 생각해 보면 내가 저 친구들보다 더 큰 행운아일지도 모르겠구나?’

상무라는, 이미 수 많은 선수들을 성장시킨 역사가 있고, 또 K리그의 모든 구단들이 주목하는 구단에 들어가는 행운을 잡았으니 말이다.

그에 비하면, 저 친구들은 전혀 지금까지 전혀, 누구도 떡상시킨 역사가 없는 직캠이라는 자그마한 행운으로 역사에 없는 일을 이루어냈지 않은가.

“그래, 해 보자 이거야.”

내 꿈이 뭐 한국 1등까지 할 필요도 없고. 한 12등만 하면 되는 일이잖아.

그렇게 생각한 나는 조금은 밝은 표정으로 PC방에서 나오며 중얼거렸다.

“뭐, 저런 소설같은 일이 자주 발생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 일어난 일인데.

저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조금은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 힘내자. 힘내자고. 준혁아.”

행운이란 놈을 잡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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