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167)

행운 (3)

그렇게 주말에 축구를 하게 된 우리였지만,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으으, 딱 봐도 너무 싸구려 축구화 같아 보이는데, 이거 신고 축구를 해야 한다고?”

“···그러게요.”

바로 우리가 신던 축구화가 아니라, 군용 축구화를 신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인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이런 말도 있지만, 전부 헛소리다. 최소한 축구에선 장인일수록 더욱 더 도구를 가린다. 나이키랑 아디다스 축구화가 비싸긴 해도 그 돈 주고 선수들이 신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란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군대 축구화는, 진짜 쓰레기 같았다.

“와 씨, 축구화 진짜 거지 같네. 너는 안 불편하냐? 너무 딴딴해서 발 하나도 안 맞아.”

“어··· 솔직히 불편하긴 하네요.”

내가 진짜 돈 아끼느라 별의별 축구화 다 써본 편인데, 이 군 보급용 축구화는 진짜 그중에서도 워스트 1에 꼽혔다.

‘이건 좀 심하잖아. 어떻게 걸을 때 발 전체가 이렇게 아파오냐.’

이건 잘못하다간 물집 정도가 아니라, 부상당할 것 같았다.

‘젠장, 하긴 군대에서 축구화를 알아봤자 얼마나 알겠어.’

그리고 이런 보급형 축구화에 돈 많이 쓰면 그것도 문제긴 하다.

‘그럴 돈 있으면 애들 수통이나 갈아주는 게 더 낫겠지. 베트남전쟁 때 쓰던 수통을 그대로 쓰고 있으니.’

뭐 하여튼 이 축구화에 대해 이형 선배와 내가 내린 결론은.

“야, 이건 이대로 쓰다가는 실력 절반도 발휘 못 하겠다.”

“그러겠네요.”

그래서 나와 이형 선배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이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좀 길들이자.”

“옙.”

보통 축구화 길들이기를 한다고 하면, 대부분이 만화 슬램덩크에서 농구화를 밟아서 길들인 것처럼 축구화 밟는 모습을 상상한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그 방법도 쓰인다. 하지만 그건 애초에 우리가 신어보고 어느 정도 발이 맞는 축구화를 선택할 수 있을 때 얘기고. 이렇게 축구화 몸통 자체가 잘 안 맞을 때는 다른 방법이 있다. 바로.

“아 씨, 따뜻한 물 왜 이렇게 안 나와? 준혁아, 그쪽은 나오냐?”

“아뇨, 안 나옵니다.”

“아씨, 야, 정수기 물 떠서 쓰자.”

“옙.”

뜨거운 물에 운동화 담궈버리기. 다.

좀 더 상세하게 말하자면 착용하기 전에 따뜻한 물에 축구화를 끈을 헐렁하게 한 상태로 한 5분 정도 넣어서 인조 가죽을 야들야들하게 만들고, 꺼낸 다음에 수건으로 안쪽을 좀 닦아준 다음, 그 축구화를 한 30분 정도 신어주는 거다.

이러면 축구화가 자신이 발에 맞게 늘어나면서, 바로 신을 수 있는 수준이 된다. 다만.

“으, 아직도 뻑뻑한데?”

“그래요? 그래도 좀 나아지긴 하지 않았어요?.”

“야, 나아지긴 했어도 아직 별로야. 아직도 좀 뻣뻣해.”

이것도 한계는 있다. 당연한 것이 이걸로 다 해결되면 사람들이 다 싸구려 축구화 신었겠지.

그렇게 영 만족스럽지 않은 축구화를 쳐다보던 선배는, 결단을 내렸다.

“야, 몇 번 더 하자.”

그리고 난 그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네? 그래도 돼요? 축구화 망가질 텐데?”

물론 이걸 더 하면 발이야 좀 더 맞을 테지만, 여러 번 할 경우엔 축구화 창, 그러니까 축구화 밑바닥에 박힌 징이 약해지기 때문에 축구화 내구성에 치명타란 말이다.

그런데, 이런 내 반응에 선배는 날 의아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뭐 어때?”

“네?”

“군대 축구화를 아낄 필요가 뭐가 있냐? 어차피 우리가 이거 계속 쓸 것도 아니잖아.”

그 말을 듣자, 나는 머리가 번쩍이는 느낌이었다.

‘어? 생각해 보니 그렇네? 왜 아껴야 한다고 생각한 거지?’

내가 왜 저 생각을 먼저 하지 못했는가를 생각하자, 답이 바로 나왔다.

‘씁, 내가 평소에 너무 축구화 아껴 쓰다 보니 본능적으로 이래 버렸구먼.’

어느새 축구화를 아껴 써야 한다는 것이 내 DNA에 본능적으로 각인이 되어버렸나 보다. 이 나쁜 DNA.

그렇게 내 못된 DNA를 나의 뛰어난 머리로 제압하고 난 후의 내 행동은.

빠악-!

축구화 박살내더라도 제대로 길들이는 거였다.

빡-!

“야, 야,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축구화 뒤꿈치까지 벽에다가 쌔릴 필요까진 없지 않냐?”

“아닙니다. 부상! 부상당하는 일은 없어야죠!”

게다가 내 인생에 언제 이렇게 축구화 험하게 다뤄보겠냐고. 이럴 때 내 몸에 깃든 축구화 너무 아끼는 DNA도 빼내야지.

빡-!

그렇게 나랑 이형 선배가 축구화를 반쯤 작살내가며 축구화를 길들이다 보니. 우리 소대 담당 조교가 들어와서 공지 사항을 하나 알렸다.

“자, 자, 다들 집중. 내일 종교행사 있는 거 알지? 모두 명단 최종적으로 확인한다. 150번, 기독교 151번 기독교··· 전부 기독교다. 이상 있는 사람?”

그 순간.

나를 포함한 몇몇 애들은 눈빛으로 대화를 나눴고, 이형 선배도 예외는 아니었다.

-준비됐지?

-아암, 준비됐고 말고. 너희도?

-흐흐흐···

그리고 그렇게 중얼거리는 우리를 지켜본 조교는, 알만하다는 표정과 함께 종교행사 참석표를 적은 종이를 접으며 말했다.

“뭐, 적당히 놀려라. 적당히. 알겠냐?”

“예!”

-*-*-*-

-왼발! 왼발! 왼발! 왼발! 왼발! 왼발! 왼발! 왼발! 왼발! 왼발!왼발! 왼발! 왼발! 왼발! 왼발!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으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우리는 모든 목소리를 쥐어짜 외쳐줬다.

““우리는! 끝났다! 각! 개! 전! 투!””

크으으, 이거, 이거 꼭 한번 불러보고 싶었어!

‘1주차 때 햄버거 준다는 소리에 여기 왔을 때 진짜 저 소리 듣고 문화 충격이었는데.’

맛있는 햄버거를 보고 눈이 돌아갔었던 우리들에게

‘우리는 갈게 너희는 각개!’

이런 말도 하고 별 지랄을 다 해서 정말이지 우리들의 표정이 햄버거를 받았음에도 영 떨떠름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여대생들이 춤추러 와주는 불교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저께 훈련에서 복귀하고 한 훈련병이 이렇게 말한 것이 우리를 움직였다.

‘야, 우리도 마지막 주찬데, 그거 한번 해보고 가야 하지 않겠냐?’

그 순간, 우리 소대는 모두가 위아더 월드를 외치며 전원 교회로 종교행사를 정했고, 1주차 녀석들에게 어떤 응원을 해 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고로 사회의 전통이자 군대의 알흠다운 전통이란 자신이 받은 것을 남에게 베푸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들은 이 전통을 철저하게 받들리라 다짐하고 몇몇 놈들은 이자까지 얹혀주겠노라고 수건을 희생하면서까지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물론, 저 짬찌놈들도 나름대로 귀엽게 반항하는 방법이 있긴 했는데. 바로 노래 중간중간에

-GOP! GOP! GOP! GOP!

이런 말을 외치는 것이었다. 이게 뭔 소리인고 하니, 바로 최전방에 쳐박혀서 20개월 동안 뺑이쳐라. 라는 의미를 담은 말이었다.

정말이지 못난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저언통에 따라 선배님들에게 받은 대로 베풀었을 뿐이거늘 어찌하여 저 못된 후임들은 선배들의 그 베풂을 깨닫지 못하고 저런 옹졸한 짓을 한단 말인가.

물론, 그 말에 나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왜냐고? 나는··· 상무 선수니까!

““우리는 갈! 게! 너희는 각! 개!””

““GOP! GOP! GOP! GOP!””

그렇게 벼르던 것을 속 쉬원하게 해치워낸 우리 소대의 훈련소의 마지막 주말 아침은, 아주 만족스럽게 시작했지만.

.

.

.

오후가 되자, 군대에서 당직사관들이 가장 우려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삐이익-!

“아아악-!”

“와 씹. 이거 괜찮으려나?”

결국 부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거였다.

‘그래, 아마추어들이 축구하면 꼭 이런 일이 발생한다니까?’

저렇게 운동화 신고 슈팅 좀 강하게 때리거나 하면 잘못했다간 바로 발톱 나간다고.

‘쩝 그렇다고 내가 이 쓰레기를 신으라고 강요하기도 뭐해서 놔뒀더니, 결국 이런 일이 발생하는구먼’

하여튼 그렇게 공격수가 교체되자. 대학교 후배 녀석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에이, 망할, 이거 졌네요, 형.”

“응? 왜?”

솔직히 말해서 저 공격수, 물론 덩치는 좀 있지만, 완전 개발이라서 별로였는데?

“그게, 저쪽 센터백이 갓 병장 된 우리 부대 실세거든요. 그래서 동기이신 저 선임분이어야만 마음껏 몸싸움 거는데 이렇게 되면 좀···”

“아.”

그런 거구먼.

“그럼 니가 드리블 치고 나가서 중거리 한 방 날리면 안 돼? 너도 미드필더였잖냐.”

“···가능은 한데 옛날에 그랬다가 근무 엿같이 짜인 적 있어서 좀 그렇습니다.”

음··· 그 친구 참 졸렬킹이구만?

“그래서 말인데, 선배, 오버래핑 좀 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후배에게 눈을 부라렸다.

“야, 내가? 저 국대를 눈앞에 두고?”

지금 진짜 수비하기에도 바쁘단 말이다.

‘원래 수비 좀 연습하겠다는 생각에 자청한 거긴 하지만, 진짜 올라가지도 못할 정돈데 무슨 놈의 오버래핑이야.’

그러나 후배는 이대로 질 수는 없다는 듯이, 의지를 불태웠다.

“제가 뒷공간 최대한 커버해보겠습니다. 이대로 질 순 없어요. 선제 골내기에 슈넬이 걸려 있다고요.”

“그놈의 슈넬이 뭔데, 이 자식아.”

“아, 모르십니까? 그럼 오늘 이기면 제가 한 번 맛보여드리겠습니다. 이게 아주 기가 막힌 냉동 치킨인데-”

그렇게 냉동 치킨을 찬양하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나는 꽤 크게 충격먹었다.

‘아니 대학교 때는 비비큐 후라이드 아니면 손도 잘 안 대던 놈이 어쩌다가···’

군대 가면 입맛 변한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실제로 입맛 개조 현장을 직접 보게 되자 놀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럼 특별히 가리는 거 없던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설마 괴식까지 잘 먹게 되려나?’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나는

삐이익-!

시합 재개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나서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오케이, 그럼, 오버래핑 좀 해볼 테니 적당히 커버 부탁한다?”

“넵.”

그렇게 말을 한 지 얼마 안 되어

-투욱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고, 내가 측면을 타고 달리기 시작하자. 이형 선배가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붙었다.

‘확실히 대단해.’

정말로, 국가대표답다. 분명히 가볍게 뛰는데도 뚫을 구석이 정말이지 영 안 보였다.

‘아마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절대로 내가 못 뚫었을 테지.’

하지만, 지금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훈련소에서 갇혀 있느라 근육이 살짝 빠지고, 축구화도 원래 쓰던 게 아니고, 유니폼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상태.

‘이럴 때는 반응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지.’

그리고 나는- 항상 이런 돌발 상황 속에서 뛰어왔다.

이형 선배가 나에게 달려드는 순간, 나는 침착하게 왼발로 패스를 보내는 척- 하다가. 곧바로 오른발 바깥쪽으로 볼을 빼서,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형 선배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살짝 반응이 늦었고, 그렇게 잠깐 자유로워진 순간. 나는 중앙 미드필더였을 때 심심찮게 보여줬던 나의 전매특허를 보여줬다. 바로.

꽈앙-!

맞고 뒈져라 슛.

오랜만에 차서 그런지 골키퍼가 펀칭으로 쳐내기 좋은 위치로 날아가긴 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철썩-!

“이예쓰!”

그래, 이런 아마추어 수준에서 펀칭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을 리가 없지.

“우오오오오오! 선배님! 선배님! 감사합니다! 일단 슈넬 확보! 이대로 필라델피아 케이크까지 갑시다!”

“그건 또 뭔데···”

그렇게 나름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는 후배 녀석을 진정시키자, 이형 선배가 웃으면서 다가왔다.

“이야- 너 대단하다? 그런 운동화 신고도 이런 움직임이 가능하다니.”

그런 이형 선배님의 칭찬에. 순간적으로 나는 당황해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말을 골라야 했다.

‘그냥 내가 싸구려 축구화에 엄청 익숙해서 그런 건데.’

하지만, 스물다섯 살의 남자라면,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놓기보단, 뭔가 있어 보이길 원하는 법.

그렇게, 나는 내가 어제까지만 해도 속으로 부정했던 말을 써먹었다.

“뭐, 장인은 붓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도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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