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167)

행운 (1)

뭐 아는 후배가 있다고 해서, 내 옆자리가 국가대표라고 해서 내가 군대 인생이 바로 달라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조교의 권한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아주 작았고, 국대 풀백은 K리그 출신이라서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말이다.

‘그나마 전화 정도가 조교가 좀 자율적으로 줄 수 있는 포상이겠지만.’

난 전화할 사람이 없으니 그것도 해당 사항이 없다. 나중에 PX 보내준다고는 하는데. 글쎄. 훈련병 때 PX 가는 게 가능한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업무? 교육? 면에서 편의를 봐준다? 글쎄. 근 5일간 하는 일이라곤.

“지금부터 보급품을 분배한다! 각자 자신의 호수에 맞춰서 나오도록 하고, 혹시라도 안 맞으면 나중에 가서 헛소리하지 말고 교관에게 바로 말해서 바꾸도록!”

유니폼 맞추듯이 자기 옷 호수 맞추고 보급품 배급받는다던가.

“지금부터 교관 인솔하에 예방 접종을 실시합니다! 안 아프니까 지레 겁먹지 않습니다!”

건강 검진하고, 예방 접종하고.

“지금부터 지급받은 보급품에 전부 주기를 실시한다!”

물건 안 섞이게 온통 물건에 이름 써낸다든가 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3일간의 동화 기간을 끝내고 나니,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냐 하면.

“우리의 주적은 북괴다! 어쩌고 어쩌고-“

나라에서 제공하는 공짜 수면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흐아아-암

‘졸려 죽겠네··· 요즘 수면제 너무 과다복용하는 것 같은데 이제 그만 끝내주면 안 될까?’

중학교 이후로 난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냈단 말이다. 고등학교 때도 그나마 자격증은 공부시키던 포철고에서 딴 학교로 전학 가 버렸는데···

‘축구도 아니고 무슨 그런 교육을 몇 시간이나 하는 건데.’

뭐 하여튼 그렇게 우리의 주적은 북괴다. 북한의 군대는 이렇다 저렇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몇 년도다 같은 정훈교육을 이틀 정도 듣다 보니.

군대에도 주말이 찾아왔다. 그리고 군대에서 주말은 뭐다?

“너희들이 앞으로 계속 쓰게 될 생활관이다! 정성을 다해서 닦는다! 실시!”

대청소의 날이다.

물론, 혈기 넘치는 20대들은 대청소하라고 한다고 해서 멋대로 듣진 않는다.

-씨발 어차피 쓰는 건 우린데 그냥 좀 덜 청소하고 더 쉬면 안 되나?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군훈련소에서는 그나마 청소할 때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한 가지 방안을 생각해냈는데. 바로.

-기억하나요 우리 함께했던 시간

““엘 오 비 이 러브!””

-설레이나요 한 땐 모든 것이었던

““엘 오 비 이 러브!””

최신 걸그룹 노래를 틀어주며 청소시키는 것이었다.

-Mr chu~

““입술 위에 츄! 달콤하게 츄! 온몸에 난 힘이 풀려!””

그리고 효과는 정말이지 뛰어났지만, 그 광기를 눈앞에서 보는 내 입장에서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도대체 이건 뭐야?’

나도 기숙사 생활할 때 후배 놈들이 걸그룹만 보면 아주 좋아 죽으려고 하는 걸 봐 왔기에 남자 놈들이 걸그룹에 얼마나 환장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그 이상이다.

‘이건 광기다. 광기.’

어떻게 저렇게 도입부만 나오면 하나같이 떼창이 나올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대청소를 하면서도 말이다.

그렇게 광기에 찬 대청소를 하던 소대의 생활관에서, 하나같이 때아닌 걸그룹 부심 배틀이 벌어졌다.

“걸그룹 최고는 에이핑크다 이 좁밥들아. 인편 봐 보라고! 저번 주도 1위 했잖아!”

“네 다음 판다쉑히들, 최고는 우리 씨스타 누님들이시다.”

“야, 걸스데이도 있다. 달링 모르냐? 너도 동의하지?”

“AOA 만세! 단발 만세!”

그 결론이 나지 않을 대화를 지켜보면서, 나는 새삼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3년 정도 노래 전혀 안 듣고 살았더니 어느새 걸그룹이 싹 물갈이되어 버렸구나.’

내가 대학 다닐 때 최상위권을 차지하던 소시나 투애니원, 카라, 티아라 같은 얘들은 어느새 좀 밀려났나 보다. 저 친구들한테 언급이 하나도 안 되다니.

‘참 세월 빨라. 어떻게 고작 3년만에 저렇게 다 물갈이되냐.’

그 순간, 나는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고. 그 사실에 놀랐다.

‘내가 왜 이 사실에 씁쓸함을 느끼는 거지?’

어차피 내가 아는 그 걸그룹들은 평생 먹고살 돈을 이미 다 벌었을 텐데, 뭐가 아쉽다고 그 사람들이 밀려났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느끼는 걸까.

그런 고민을 하던 나는, 청소를 마치고 대걸레를 짜면서 답을 깨달았다.

‘아. 같은 예체능계라서 그런가.’

예체능, 예술과 체육을 합쳐서 부르는 말.

물론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보면 참 많이 다른 두 계열이지만. 이 두 계열이 공통적으로 같은 점이 하나 있다. 10대에 두각을 나타내서, 20대 초중반에 전성기를 맞이한다는 것 말이다.

‘그래서 내 대학생 시절 걸그룹의 몰락에 좀 더 감정이입이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뭔가 모를 씁쓸함을 곱씹은 나는 조용히 대걸레를 걸어두는 곳으로 가다가, 좀 이상한 곡이 내 귀에 하나 들려왔다.

-위 아래 위위 아래

‘얘넨 또 뭐야?’

내가 비록 프로에 뛰어들고 나서부턴 걸그룹 노래를 거의 안 듣긴 했지만, 그래도 한참 듣던 가락이 있어서 들으면 보통 어떤 걸그룹인지는 아는데, 이건 진짜 처음 들어본 걸그룹이었다.

“어 이거 위아래네?”

“아 저게 그거지? 그 직캠 역주행인가 뭔가 하는 거.”

그건 또 뭐야. 직캠 역주행?

‘뭐 전혀 안 뜨고 빌빌대던 걸그룹이 직캠 찍고 음원 차트가 떡상하기라도 했나?’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세상에 그런 걸그룹이 어디 있어?

.

.

.

.

.

“있는데요.”

“뭐?”

그게 진짜라고?

“예, 데뷔 한 3년차까지 멜론 차트 하위권에서 매일 놀다가. 올해 10월인가에 직캠 하나 찍은 게 SNS랑 커뮤에서 엄청 퍼져나가면서 멜론 차트 2위까지 찍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어이가 없었다.

“말도 안 돼.”

노래든, 운동이든, 공부든 원래 될 놈들은 싹수가 진작에 보인다. 원래 잘하는 놈들이 계속 잘하는 게 일반적이란 말이다.

그런데 직캠이라는 우연한. 어찌 보면 정말이지 사소한 그런 자그마한 기회를 받아서 그렇게 떠버리다니.

“진짜 소설에서나 나올 일이 벌어졌구나?”

“그렇죠. 뭐. 그래서 이슈에요. 그쪽 소속사가 그 직캠 찍어준 사람한테 밥 한 끼 하주겠다고 찾는다나.”

그 말을 듣고 난 뒤, 나는 참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고. 그게 표정에 드러났는지 후배 녀석이 질문을 던져왔다.

“뭐에요 선배? 걸그룹에 거의 의무적인 관심만 가지시던 분이. 갑자기 웬 관심입니까?”

“아니, 참 스토리가 특이하잖아. 신기해서.”

일반적으로 걸그룹이든 뭐든 보통 될 놈은 처음부터 떡잎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능있는 몇몇은 자신을 팍팍 밀어줄 만한 곳을 본인이 직접 선택해가면서, 신인 때부터 화려한 소프트라이트를 받고 신인상 같은 걸 받으면서 쭉쭉 승승장구하지만.

고만고만한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직접 하나하나 다 테스트를 찾아보고, 통과하면서 간신히 자신에게 조그마한 관심이라도 주는, 자신을 밀어줄 둥지를 찾아 발버둥 치는, 그런 세계란 말이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저 사람들의 이야기가 참 신기했다.

‘3년 차까지 단 한 개의 히트곡도 없어서 해체 위기에 놓여있던 걸그룹이 우연한 행운을 통해 저렇게 반전하다니.’

그것도 그냥 직캠 하나로. 이게 뭐냐. 소설도 그렇게 쓰면 너무 작가 편의주의적이라고 욕먹을 것 같다.

“뭐, 갑자기 그 그룹에 관심 생기신 겁니까? 그럼 제가 싸지방에서 뭐 기사라도 뽑아서 인터넷 편지로 보내 드려요?”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어 임마. 아무리 관심 있다고 해도 인터넷 편지를 그런 걸로 채우는 놈이 어디 있어?”

조금 궁금하긴 해도 그건 뇌절이지 임마.

그런데, 대답이 내 상상 이상이었다.

“인터넷 편지는 원래 그런 용도로 쓰이는 겁니다. 선배. 연예인 기사나 바깥 걸그룹 차트 적어서 보내주는 녀석들 많아요.”

“··· 뭐야 그건?”

아니 보통 편지라고 하면 부모님들이 보내주는 가슴 절절한 편지라던가. 애인들이 보내주는 편지라던가 그런 거 아냐? 그런 용도로 인터넷 편지를 쓰는 게 아니라 그냥 바깥소식 듣는 데 쓴다고?

“음, 솔직히 훈련소 시절에 가장 궁금해지는 게 바깥소식이거든요.”

“난 안 그런데?”

내 훈련 하기 바쁜데 뭔 그런 데에 신경을 써.

내가 그렇게 말하자 후배 녀석이 헛웃음 짓더니 자기 말을 수정했다.

“···예 그런 예외도 있긴 하죠. 그러니까. 제가 본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렇다- 이 말입니다. 스마트폰 마음껏 쓰던 친구들이 인터넷이고 뭐고 싹 끊겨서 갇혀있다 보면 가장 궁금해지는 게 바깥소식이라고요.”

음. 그런가?

“형님도 이런 건 아실 거 아니에요. 스마트폰으로 딱 밥 먹으면서도 세상 모든 궁금한 것을 다 구글에 알아볼 수 있는데 그게 막혔을 때의 허탈함 같은 건.”

글쎄다.

“난 스마트폰 안 써서 잘 모르겠다.”

그 말에, 후배 녀석이 설마 하더니,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아직도 연아의 햅틱 쓰시는 거예요?”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요놈이? 어디서 감히 하늘 같은 선배에게 저런 표정을 짓고 그르냐. 확.

“아니 좀 바꾸세요. 형 요즘 시대에 뭔 아직도 피처폰이야.”

“아직 잘 돌아간다.”

“그래도 무슨 형이 고3이에요? 아니면 30대야? 20대면서 아직도 피처폰 사용하는 사람은 형밖에 없을걸요. 진짜.”

“그게 나랑 뭔 상관이냐.”

다른 사람이 다 스마트폰 쓴다고 해서 나도 스마트폰 쓰라는 법은 없다.

“애초에 전화라는 건 자고로. 고장 안 나고 전화 잘 터지면 충분하단 말이다. 그 이상은 불필요해.”

“와. 진짜. 쉰세대.”

“···우리 후배님께서 나이 들더니 대가리가 많이 굵어졌구나?”

“워워. 으딜 감히 작대기도 못 단 훈련병이 상병 단 본 조교에게 손을 대려 하십니까. 명령하시려면 작대기 네 개는 달고 오십쇼”

그렇게 후배가 앙탈을 부렸지만. 자고로 운동부의 지엄하고 끈끈한 선후배 관계란 군대의 얄팍한 계급 따위로는 끊을 수 없는 법 아니겠는가.

“아, 아, 선배, 불침번 시간입니다. 시끄럽게 하면, 커. 탭! 탭!”

그렇게 조금 굵어진 머리를 작게 만들어주는, 선배로서 매우 지당하고 마땅한 헤드락이란 작업을 해 준 후에야, 후배 녀석과 조금 건설적인 대화를 할 수가 있었다.

“그런 쓰잘데기 없는 것보단 훈련소 꿀팁이나 좀 말해. 저번처럼 교회 종교행사에서 햄버거 준다던가. 하는 정보 같은 거.”

“아오, 예예. 일단 내일 빵식 나오거든요? 이 빵식 먹을 때 그냥 햄버거 만들어서 먹지 말고 국 넣는 데에다 우유 풀고 잼이랑 빵 넣어서-”

저건 또 뭔 개소리야. 말만 들으면 겁나 맛없을 것 같은데?

“나 속이는 거 아니지?”

“아니 진짜입니다. 형, 아니 선배님. 속는 셈 치고 한 번만 먹어 보세요. 이거 자대에서는 상병 되기 전까진 못 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렇게 의심스러운 소리도 있었지만, 각개 전투할 때 양말 뚫어서 무릎이랑 팔꿈치 보호대로 쓰라는 등의 확실히 일리가 있어 보이는 조언까지 듣고 나서 제 자리로 돌아온 나는, 내 옆에서 쿨쿨 자고 있는 국가대표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신기하네. 그래도 누군가는 알아볼 줄 알았는데.’

국가대표를 아직도 못 알아본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이 노하우들 저 선배님은 알려나?’

나중에 알려 줘야겠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무릎 보호는 그야말로 생명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침낭에 누운 나는 문득, 한숨을 쉬며 아무에게도 들리지는 않을 크기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 생각해 보니 진짜 부럽네.”

아무리 생각해도 부럽다. 진짜. 데뷔 3년 차에 갑자기 인생 역주행이라니. 비록 1위는 아니라지만 말이다.

‘나도 3년 찬데, 내 인생에도 그런 날이 올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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