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 직전의 나날 (3)
12월.
유럽에서는 리그의 전반기를 마무리짓고, 부족한 점들을 파악하여 전력을 보충하기 위해 활발하게 새로운 팀원을 탐색하는 시기이지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는 리그 일정이 끝나, 대부분의 선수가 휴식을 취하고. 특히 대학교 팀들은 입학이 확정된 신입생들을 데려와 실력을 확인하게 되는 시기다.
그런 시기이기에, 다행히 나의 연습상대가 되어 줄 친구들은 넘쳐났다.
그리고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양학은 참 즐겁단 말이지.’
신입생 녀석들이라 그런지 저 놈들이 어떻게 페인트를 주는지가 너무 훤히 보이고, 참 느긋- 해 보인다. 참 날 잡아먹어주세요- 하는 것 같단 말이지.
마음만 같아서는 당장 저 어설픈 드리블에 몸빵해서 순식간에 균형을 무너뜨리고 볼을 빼앗고 싶지만.
‘끄응, 안돼, 참아야, 참아야 하느니라...’
삑-!
“좋아, 성공이다. 그럼 처음부터 다시!”
휴우-
‘이거 참 아직도 힘드네.’
훈련 자체의 난이도가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정신이 굉장히 괴로워지는 훈련이었다.
‘저렇게 약점이 훤히 보이는데도 볼을 빼앗지 않아야 한다니.’
그랬다. 지금 나는 볼을 뺏지 않고 수비하는 방법을 교수님에게 배우고 있었다. 내가 신입생들과 연습경기를 반복하고 비디오를 돌려보면서 분석한 결과. 가장 부족한 것이 그 점이라는 교수님의 판단 때문이었다.
“자네는 확실히 미드필더의 습관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수비할 때 달려들고 압박해서 볼을 빼앗으려고 드는 습관이 있더군.”
그런 교수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드필더에서는 몸싸움을 하든, 뭘 하든 해서 상대방에게서 볼의 소유권을 빼앗는 것이 수비의 모든 것이었다. 공을 뺏어야 수비에서 공격으로 바꿀 수가 있으니까.
“그러니 아무래도 자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풀백으로서의 포지셔닝(Positioning)인 것 같네, 일주일 동안 이것만 어느 정도 익히고 들어가도 큰 도움이 될거야. 일단은 공을 빼앗지 않고 하는 수비부터 시작일세.”
그 말을 듣고, 나는 의아해하며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현대 축구의 흐름은 볼을 빼앗는 것 아닌가요?”
최대한 높은 위치에서 공을 빼앗기 위하여, 수비할 때 상대편 선수와의 간격을 좁히고 한 선수에 여러 명의 선수가 달려드는 것이 요즘 축구의 트렌드였기 때문이었다.
그 말을 들은 교수님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분데스리가에서 돌풍을 일으킨 위르겐 클롭 감독의 게겐프레싱도 그렇고, 세계 축구의 트렌드는 확실히 자네가 말한 대로가 맞아. 하지만, 그건 일단 기본이 된 다음이여야 하네.”
막 수비수로 변경한 친구가 그런 것까지 하려다가는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다릿가랑이 찢어질 수 있다는 게 교수님의 말씀이었다.
“물론 지금 영상에서야 자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잘 되긴 했지. 하지만 챌린저 리그 정도만 되어도 자네의 어설픈 수비는 찢겨버릴 가능성이 높네.”
쩝, 하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연습상대가 되어주고 있는 녀석들은 막 대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다. 그런 얘들 상대로 잘 해 봤자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자네가 당장 리그에 들어가서도 최대한 수비 면에서 큰 구멍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걸세. 자네가 말한 볼까지 빼앗는 완벽한 수비는 그게 된 다음이야.”
그 때문에, 플레이하면서 처음에는 참 머리가 아팠다.
‘상대 선수와 무조건 2m 내지 3m의 간격을 두라니...’
세상에나. 중앙 미드필더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자고로 중앙에서 볼을 잡았다 싶으면 개처럼 서로 달려든 다음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서 서로 일단 한 번 걷어차주는 게 일상이란 말이다. 그런데 2미터나 간격을 두라고? 젠장.
하지만, 그런 나의 의문점들을, 교수님은 정말 착실하게, 현실적으로 가르쳐주셨다.
“현대 축구에서 풀백은 위치상 보통 드리블러와 자주 마주치게 될 수밖에 없네. 그렇기 때문에 수비 시에 자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돌파 저지야, 공을 빼앗는 것은 그 다음일세.”
내가 그러면 크로스는 어떻게 막냐고 물으니까. 하는 말이 어찌 보면 어이없으면서도, 참 현실적이었다.
“그 때 크로스 날리면 어쩌냐고? 그냥 센터백들을 믿고 잘 막아주길 기도하게.”
“...그래도 됩니까?”
“우리 솔직해지자고, 제대로 러닝 크로스를 날릴 줄 아는 친구가 K리그 2에 어디 흔하던가?”
그 말을 듣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러닝 크로스를 제대로 날릴 줄 아는 팀은 K리그 2에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으니.
“게다가, 자네가 뛰는 팀은 상무라네, K리그 수위권 센터백이 계속 공급되는 상무. 그런 동료들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는단 말인가.”
“...믿는다는 소리를 그럴 때 쓰는 거였나요?”
“그야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지. 하여튼 자네 입장에서 보면 그게 맞아.”
확실히 제주 FC의 돌풍을 이끌었던 감독님답게, 정말로 가르쳐주는 느낌이 그동안 내가 만나봤던 감독과는 차원이 달랐다.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내가 습득하도록 훈련 세션을 짜는 능력이 정말이지 대단하셨다.
그리고, 그 덕분일까.
삐익-!
“공격 쪽 공격 실패!”
물론 원래도 수준 차이가 났기에 잘 당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이 훈련을 하면서 내 수비 능력이 상승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오늘은 돌파를 한 번도 안 당할 정도였다.
‘고작 5일만에 이 정도가 가능해지다니.’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였다. 지금 나는 그야말로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수비의 기본적인 철칙들을 흡수하고 있었다.
“뭐 하나! 빨리 제자리로 돌아가!”
물론 아직 교수님이 만족할 수준은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
그렇게 며칠 지나다 보니, 한 녀석이 우물쭈물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저, 선배님.”
“왜?”
“호, 혹시 상무 합격 비결 같은 거 있습니까?”
하.
“왜? 상무 가고 싶어?”
“당연하잖습니까.”
녀석의 그 말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긴 국가대표와는 관련이 없는 우리같은 대부분의 선수들에게 상무란 그야말로 드림 클럽이지.
“너 여기로 오기 전에 고등학교 어디 나왔냐?”
“옙! 전주 영생고입니다.”
“우선지명은 받았었어?”
“...아뇨!”
그 말을 듣고. 나는 단박에 말허리를 잘랐다.
“야, 그럼 그냥 K3(4부리그) 노려라.”
그 말에 이름도 모를 후배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선배님, K3라뇨. 저 영생고 출신입니다. K리그 최강 팀 전북 현태 유스 출신이라고요.”
그 말을 듣고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나라면 저걸 자랑이라고 떠들진 않을 텐데.
“후배님, 영생고인데 우선지명도 못 받고 여기 온 게 더 부끄러운 일일 텐데?”
우선지명.
누가 보면 엄청 잘 하는 선수들만이 받는 지명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K리그는 드래프트를 하기 전에 클럽 유스 우선지명이라는 게 있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기 팀 산하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졸업하는 학생들은 무제한으로 지명할 수 있게 만든 제도다.
그렇다. 무제한이다.
이 소리는 프로팀에서 판단하기에 싹수가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그냥 무지성으로 우선 지명을 하고 본다는 거다.
혹시나 선수가 설령 그 지명을 거부하고 대학으로 온다고 할지라도 상관 없다. 지명 자체에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지명 후 3년동안은 그 지명이 유효하기에 나중에라도 데려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래서, 솔직히 클럽 팀 산하 고등학교 소속이면 우선지명은 개나 소나 다 받는다. 그런데 그 지명도 받지 못하고 대학에 온 녀석이 무슨 K3를 무시하는 소리를 한단 말인가.
“그, 그래도 서, 선배님도 고등학교 때 클럽 유스 지명을 받으신 분은 아니시지 않습니까!”
“...야, 난 학원 축구 출신이거든? 우선 지명 불가능한 녀석이었다?”
하여튼,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내 의견은 이랬다.
“그냥 공익 노려. 대학교 졸업하고 바로 가기엔 K3도 나쁘진 않아. 대학리그 수준보단 살짝 위니까"
그렇게 내가 결정짓듯이 말해주자. 후배 녀석이 얼굴을 영 피질 않다가.
“...예, 조언 감사합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어영부영 도망갔고,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교수님이 나에게 한 마디를 하셨다.
“굳이 그렇게 말해줄 필요 있었나? 아직 신입생이고 앞일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일인데 말이야.”
그리고, 나는 그 말에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현실이니까요.”
당장 고등학교에서 4강에 들었던 우리 팀에서 살아남은 선수는 나뿐이고, 여기 대학교에서도 우리 08학번 세대에서 현재 프로라고 할 만한 녀석은 나 포함해서 단 세 명이다. 나머지는 다 K3, 혹은 내셔널리그(3부리그)에서 뛰거나, 은퇴했고.
‘우리 세대 때 한 번은 우승, 한 번은 4강에 들었는데도 말이지.’
그러니, 우선지명도 받지 못하고 계속 애매한 들러리를 설 바에는 차라리 일찌감치 포기하고, 제대로 공부해서 체육교사 선생님을 노리거나, 아니면 딴 길 찾는 게 현명한 길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이 바닥은, 정말이지 상위 10%가 아닐 경우에는 너무나도 잔인한 현실이 기다리는 곳이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교수님은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사람 앞일은 모르는 거라네. 당장 자네만 봐도 그렇지, 풀백 포지션 훈련을 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꽤나 적응하지 않았나.”
“뭐, 미드필더랑 많이 비슷하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풀백의 역할 자체는 그렇게 어렵거나 하진 않았다. 내가 느끼기엔 수비에 조금 더 치중하는 것 정도를 빼고는 별로 달라질 것이 없었으니.
‘오히려 측면 포지션이라는 점 때문에 적응하는 게 힘들었다.’
그 점 때문에 아직 수비에서 큰 실수가 나오긴 하지만. 이는 시간밖에는 답이 없으리라.
‘그래도 줄이는 방법 같은 게 있을 텐데, 조금 더 괜찮은 노하우는 없나···’
그렇게 내가 속으로 이런저런 꼼수를 생각하던 그 순간, 교수님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자네, 내일 입대한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그럼 훈련은 이 정도로 마치고, 샤워한 다음에, 옷 좀 갈아입게.”
“예?”
웬일이지?
“뭐긴, 입대 전인데 한 잔 해야지.”
네?
“아니, 교수님, 저 운동선수인데 그래도 됩니까? 물론 한두잔의 술, 그러니까 약간의 알코올은 건강에 오히려 좋다는 이야기가 꽤 있지만. 그건 아직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진 것도 아니고 엄밀한 이론적 검증을 거친 것이 아닌 통계적으로 그런 경우도 있다는 별로 믿을만하지 않은 자료-”
“잔말 말고 따라오게.”
음, 옙.
“물론 많이 마신다면 문제겠지만, 적당한 음주는 삶의 활력소라네, 자고로 술은 신이 내린 음료라고도 신화에서도 말하는데. 이 신이 내린 음료를 즐기지 않는다는 건 인생의 절반을 손해보는 거야.”
음, 저기, 근데. 교수님, 윗사람하고 마시는 술이 맛있을 리는-
“자, 그럼 내가 잘 아는 고깃집으로 가지. 여기 한우가 아주 질이 좋아.”
“감사합니다.”
있지, 암 있고말고. 한우를 사주는데 뭐가 문제리.
교수님이 아니라 직장 상사나 구단주여도 환영이다.
-*-*-*-
치이이익-
“천천히 먹게, 좀 덜 익었어.”
“한우는 덜 익어도 괜찮-”
“모자라면 더 시킬 테니 좀 천천히 먹게, 여러 명이 먹는 자리도 아니니 누가 안 뺏어먹네.”
그렇게 급하게 먹던 나를 제지시킨 교수님은, 술을 한 잔 들이킨 이후 계속 밑장빼기를 시도하는 나를 보며 한 마디 했다.
“자네, 테스트할 때도 그렇고, 방금 한 말에서도 느낀 거지만 몸 관리가 참 철저한 편이군. 언제부터 그랬나?”
“음-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부턴 계속 이래왔던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교수는 헛웃음지었다.
“운동도 좋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을 재미없게 사는 거 아닌가?”
교수님의 말에 나는 헛웃음지은 후. 조금 허탈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글쎄요. 전 그냥 살아남기를 원했고, 발버둥쳤을 뿐입니다.”
나라고 왜 재미없게 살고 싶었을까.
사실, 지금 당장 돈이 없는 것은 아니니, 좀 놀려면 놀 수야 있겠지.
하지만 그러는 순간.
저 위에 있는 녀석들을 따라잡기가 힘들 것 같으니까.
저 위에 있는 놈들을 따라잡길 포기한 것 같으니까.
그래서 어떻게든 참아왔던 거다.
그런 나를 교수님을 물끄러이 보더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말인데, 자네 훈련소에서 뭐 할 계획 있나?.”
“···글쎄요? 자유 시간이 넘친다고 하니, 맨몸 운동이나 좀 할 생각입니다.”
물론 운동할 기구를 주지는 않겠지만. 플랭크라던지, 팔굽혀펴기라던지 같은 좁은 공간만 있어도 되는 운동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말을 하자, 교수님은 나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흠, 이건 내 생각인데, 자네는 훈련소에 있는 4주 동안은 좀 쉬는 게 어떤가? 자네의 파워를 위해서라도 말이지.”
...네?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