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167)

입대 직전의 나날 (2)

“자네에게 축구란 뭔가?”

축구가 뭐냐고?

글쎄. 참 어려운 질문이다. 한 10년, 아니 15년 전 중학생 때라면 이렇게 대답했겠지.

-재미있는 거요!

모두가 그렇듯이 처음에는 재미있기도 했고, 내가 잘 하기도 해서 더 재미있었다.

-준혁이라고 했지? 너 진짜 잘하는구나, 축구부 해보지 않을래?

-만세세세! 4강이다! 4강! 준혁아 고맙다! 너 덕분에 고등학교도 축구 할 수 있게 됐다! 진짜 고마워!

그래, 이 때까지만 해도 정말 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 하는줄만 알았다.

티브이로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보면서, 내가 막 한국 국가대표팀의 일원이 되어서 4강 신화가 아니라 결승 신화를 쓰고 싶다는 꿈을 품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느꼈다. ‘진짜’ 들의 벽을

나보다 더 몸싸움을 잘하는 놈들.

나보다 더 드리블을 잘 치는 놈들.

나보다 뭐가 되었든... 축구를 더 잘하는 놈들이 수두룩했다.

그래서, 도망치듯이 그 고등학교를 나와 다른 학교로 옮겼고, 다행히 거기에서 좋은 성적을 낸 덕에 대학교를 갈 때 뒷돈을 찔러주지 않고서도 장학금을 받으면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 나는 슬슬 나에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나보다 더 잘하는 놈들이 이렇게 수두룩한데, 이 경쟁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래서 대학교 2학년 때, 드래프트 지명 약속이 들어왔을 때, 많은 고민끝에 거절했었다. 내가 프로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에 선생님이라는 도피처를 미리 하나 만들어 놨던 것이다.

그러니까, 15년 전의 나라면 모를까.

스물여섯, 아니 한 달만 더 지나는 스물일곱이라는 나이를 먹으면서 내가 아예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엄청 대단한 재능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매일같이 경쟁하고 또 경쟁하면서 더 이상 마냥 어릴적처럼 축구가 재미있지만은 않은 지금의 나에게 축구란.

“일입니다.”

그래, 일이다.

할 때마다 이젠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도 좀 받고, 원하는 만큼 잘하질 못해서 순간순간 짜증나기도 하지만.

“그래서 잘 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가끔 실력이 늘 때는 쾌감이 들기도 하고, 나름 내 돈벌이라서 조금 더 잘하고 싶고, 잘 해서 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그리고, 같은 돈을 받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높은 위치에서 일해보고 싶은.

그런 일이다.

그 말에, 박경운 교수는 조금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흠? 꽤나 담백한 답변이군 그래? 보통은 이렇게 찾아오는 경우엔 어떻게든 나한테서 하나라도 더 얻어내려고 미사여구를 붙이는데 말이야.”

“.....”

음, 그래. 그게 일반적인 반응이긴 하지.

하다못해 알바를 할 때도 모두가 거짓말인 걸 알면서도 귀사의 발전 가능성에 혹했습니다, 열정 넘치는 자세로 배우겠습니다. 뭐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꼬시고 또 현혹해야 한다.

왜냐하면, 거짓말인 걸 알아도 솔직히 그렇게라도 써 붙여는 게 훨씬 낫거든. 아주 좋은 예시가 있다.

-가족같은 분위기의 회사.

꽤나 이젠 유명해져서, 인터넷상에서 보통 이런 곳은 가X같은 분위기의 회사, 집처럼 24시간 365일 내내 지내야 한다며 절대 피하라고들 하는 하나의 유머 코드로 쓰일 정도로 유명한 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그렇다고

-여러분들을 가족 부려먹듯이 막 굴리고 싼값에 부려먹을 회사.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훨씬 낫지 않은가, 솔직히.

똑같은 물건이더라도 명품이라는 상표가 붙거나 가게 인테리어가 좋으면 비싸게 받아도 사람들이 군말 없이 그 가격을 내듯이 무엇이 되었던 포장지는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난 위로나 아부를 정말 못 한다.

대표적인 게 내가 대학교 때 벌어진 일이었는데.

-아 씨발... 준혁아, 나 머리 많이 빠졌지?

-응.

-...나 어떡하냐. 씨발, 탈모는 약도 없다던데.

-음, 야, 좋게 생각하자. 탈모도 좋은 점 있어. 귀찮게 매번 미용실 갈 필요도 없고 머리 자르는 값도 굳- 악!

-이 씨발놈이 죽고싶어?!?

‘그 때 자칫하면 정말 크게 싸움날 뻔했지.’

난 분명히 위로해주려고 말을 꺼낸 거였는데 왜 그렇게 나온건지 이해가 아직도 안 됐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는데. 샴푸값도 아낄 수 있다는 소리를 빠뜨려서 그런 거였나?

뭐, 어쨌든 그런 사건이 몇 번 벌어지자 난 내가 그런 아부를 잘 못한다는 사실만큼은 아주 잘 깨닫고 있다.

그러니. 솔직하게 말하는 게, 차라리 낫다.

“제가 아부를 잘 하는 편은 아니라서 그냥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박경운 교수는 순간적으로 멍한 얼굴이 되었다가.

“푸하하하-!”

큰 웃음을 터트렸다.

아, 젠장. 교수님, 그렇게 웃으시면 좀 뻘쭘합니다.

“재미있구만, 내 앞에서 이러는 놈들은 드물었는데. 이준혁이, 자네 참 재밌는 친구군.”

그야 그럴 만하지. 감독이자, 교수이자, 대한민국 축구협회에서 자리도 차지하고 있잖아. 아부가 지겨울 정도인데 나 같은 놈은 처음 봤겠지...

“뭐, 하여튼 방금 그 말, 아주 재미있었어, 따라오게. 실력 좀 보지.”

-*-*-*-

“...아웃! 테스트 종료!”

“흐아아아...”

신음을 흘리며 스트레칭을 알아서 시작하는 이준혁을 보고, 박경운 교수는 기록 차트를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

‘흐음, 저 친구가 2부리거인데도 상무에 뽑힌 이유가 있긴 하구만?’

10m 스프린트는 살짝 아쉬웠지만, 30m 스프린트, Z 테스트는 K리그에서도 통할 수준이었고.

특히 방금 마지막으로 진행한 요요 테스트는 정말이지 놀라웠다.

‘갓 시즌이 끝나서 지쳐있을 텐데 VO2MAX가 65를 찍다니.’

VO2MAX, 통칭 최대산소섭취능력으로, 지구력과 아주 직관적인 연관이 있는 지표.

보통 가장 활동량이 많은 미드필더조차도 프로에서 55 정도를 넘는다면 체력적으로 큰 문제까진 없다고 판단하는데, 이 친구는 무려 65를 찍었다.

이건, 체력만큼은 프리미어리그 수준이라는 소리다.

‘다만 저 키가 문제였겠군.’

평균 미만의 서전트 점프와 키 173cm, 신발 신고는 175cm인 저 키와 70kg이라는 몸무게는 중앙 미드필더로서 적합한 수준은 아니다. 공중볼도 못 따고, 몸싸움도 부족할 수밖에 없는 몸무게와 키다.

‘그래서 상무 쪽에서 풀백으로 전환시키려고 한 거구만?’

하긴, 저 정도 체력과 스피드를 가지고 오직 ‘피지컬’ 만이 부족한 선수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할 만했다. 풀백에게 중요한 능력치를 다 갖추고 있었으니.

물론 이건 달리 말하면 윙어의 능력이기도 했지만. 애초에 저 나이까지 저렇게 발 빠르고 체력 좋으면 일단 공격수로 써 보긴 한다. 그런데 저 나이까지 중앙 미드필더로 썼다는 건.

‘골 결정력이 부족하던가 하는 문제가 있었다는 소리겠지.’

당연한 게, 동양이고 서양이고 재능 넘치면 위로 올리는 게 현실이다. 아니 정확히는 선수들이 자청해서 위로 올라가길 원한다.

왜냐고? 골키퍼보단 수비수가, 수비수보단 미드필더가, 미드필더보단 공격수가 돈 더 많이 주니까! 사람이 더 많은 돈에 끌리는건 동서고금의 진리다.

‘그럼 머리는 어떤지 볼까.’

풀백으로서의 신체조건은 괜찮은 것 같으니 말이다.

“축구에는 네 가지 상황이 있네. 이 중 두 개는 공격과 수비지, 그럼 나머지 두 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 질문에 준혁은 조금 지쳤는지 잠깐 헉헉거린 후에 대답했다.

“공, 격에서 수비로 변화하는 상황과 수비에서 공격으로 변화하는 상황입니다.”

그 말을 들은 경운은 조금 놀랐고, 이런저런 질문을 몇 개 더 던져 본 결과 이 녀석이 상당히 축구에 대한 기본 개념을 충실히 ‘공부’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신기한 놈일세?’

운동선수의 대부분은 이런 개념에 대해 솔직히 잘 모른다.

물론, 운동선수들도 바보가 아니기에 이런 걸 알면 도움된다는 것은 안다. 단지 전술도 전술이지만 다들 내가 잘 드리블하면, 더 잘 몸싸움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더 강할 뿐이다.

그래서 다들 나이들고 운동능력을 더 기르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나 비로소 조금 더 공부하고 지능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헌데, 한창 때의, 체력도 좋은 놈이 이런 기본 개념을 다 공부하다니. 일찌감치 코치할 생각이라도 있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하진 않는다.

“혹시 자네 코치할 생각도 있었나?”

“예, 혹시 몰라서 B라이센스까진 땄습니다.”

그 말을 들은 경운은 슬슬 어이없어지는 느낌이었다.

‘혹시? 혹시 몰라서 운동하면서 B라이센스를 땄다고?’

C급은 대학까지 축구선수 생활 한 녀석이라면 교육만 받으면 딸 수 있으니 별 거 아니지만, B급부터는 꽤나 어렵다. B급을 따는 순간부터는 정식으로 U-18팀 감독을 맡을 수 있기 때문에 협회에서도 꽤나 신경써서 발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B라이센스부터는 꽤나 까다로운 시험을 보게 되는데, 그 시험을 선수생활하면서 혹시 몰라서 따뒀다니 거 참.

‘전술적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는 저놈이 알아서 잘 하겠구만.’

그렇다면, 생각보다 가르칠 게 많지 않다.

“어, 그럼 혹시 자네 측면 수비나 공격수로 뛰어 본 적은 있나?”

“중학교 때 아주 잠깐 해본 기억은 있는데 습관을 고치질 못해서 그만뒀습니다.”

“무슨 습관이었나?”

“볼을 약하게 차질 못하더라고요.”

박경운은 그 말을 듣고 단박에 이해했다.

‘골문 앞에서 힘을 뺄 줄 모르는 녀석이었군. 그래서 측면 공격수로 뛰진 못한 거고.’

공격수는, 의외로 강한 슈팅보다는 살짝 약하더라도 정확한 슈팅을 요구하는 자리다. 강력하더라도 대기권 돌파 슈팅보다는 소위 ‘소녀슛’ 이더라도 정확한 슈팅이 더욱 선호되는 것도 그런 느낌이고.

“그래서 그 스피드를 가지고도 공격수가 아니었군? 중앙 미드필더 중에서 어떤 쪽이었나?”

“뭐, 그냥 다 해봤습니다. 굳이 가장 많이 맡은 롤(role)을 따지자면 볼 배급하는 박투박 쪽이고요.”

그 소리는 박경운 교수에겐 이렇게 들렸다.

-몸싸움은 별로였지만 체력이 좋으니까 삘삘 돌아다니면서 뽈 받고 뽈 배급에 관여했다.

‘풀백에게 필요한 기본요건은 갖추고 있군.’

저 친구는 날렵하고 좋은 체력. 그리고, 상당히 괜찮은 축구 지능. 이 두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측면에서 공을 전개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건 흠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일주일 정도면 가장 중요한 기본기 몇 개는 때려박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풀백의 기본기를 가르쳐주는 덴, 사실 박경운 자신이 최고의 전문가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선수 시절 K리그 유일무이한 풀백 MVP가 바로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꽤 옛날이라 저 친구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끌끌. 슬슬 은퇴하고 대학교 친구들이나 가르치면서 살려고 했는데 재미있는 놈이 나왔군?’

어차피 복귀한 지도 얼마 안 돼서 이번 계절학기까지는 아직 정식으로 수업을 맡진 않고 여유도 넘치니, 한번 굴려보면 꽤 괜찮은 물건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박경운 교수에게 들었다.

“자, 그럼 좀 쉬었으니, 바로 운동장으로 가지.”

그 말과 함께, 박경운 교수는 바로 뒤를 돌아 운동장으로 향했다.

“예? 체력 테스트를 풀코스로 돈 지 5분도 안 되었습니다! 최소한 1시간 정도라도 좀 여유를-”

뒤에서 뭔가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지만, 별로 신경쓰진 않았다. 설마 배움을 원하는 학생이 감히 교수의 가르침을 거부할 리가 있겠는가.

거부할 리가 없다.

아마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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