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 직전의 나날 (1)
입대가 얼마 안 남은 사람은 무엇을 하게 될까?
대부분은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야 닥치고 술이나 마셔!
그도 그럴 것이, 앞으로 20개월이라는 시간을 꼼짝없이 외딴 부대에 갇혀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슬슬 다가오면, 누구나 평소에 욕이 늘어나다가 점점 만사가 귀찮아지면서 결국 수능 끝난 고3과는 살짝 다른 마인드로 술을 들이키게 된다.
그러나, 그건 나에겐 전혀 해당사항이 없었다.
“으아아아-!”
“8, 9, 10! 세션 종료!”
꽈앙-!
“수고했다. 여기 물.”
“하아- 하아, 고맙다.”
상무의 선수들은 전부 나보다 한 단계는 높은 클래스의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그 선수들과의 주전 싸움에서 이겨내려면 이 짧은 시간에도 뭔가는 하긴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렇게 비시즌 기간임에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결국 다시 하기로 한 거냐?”
“엉, 풀백으로.”
“잘 됐네. 하하.”
글쎄다.
‘잘 된 건지는 아직 모르는 거지.’
냉정하게 나를 평가하자면, 나는 모든 능력치가 딱 고만고만하지만 피지컬이 살짝 떨어지는. 나름 현재 2부리거 구단에서라면 어디든 2년동안 로테이션 수준의 계약은 받을 수 있을 만한 중앙 미드필더다.
하지만, 풀백으로 전환한다면, 이런 건 다 필요없다. 완전 처음에서부터 다시 쌓아올려야 한단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구구절절히 친구에게 말하지는 않았는데.
‘어차피 하기로 했다면, 궁시럴거릴 시간에 하나라도 더 실력을 늘릴 방법이나 궁리해야 하니까.’
그래서 굳이 이런 사정을 말하지 않고, 나는 짧게 답했다.
“뭐, 하여튼 운동 봐줘서 고맙다.”
지금 팀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양질의 운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녀석 덕분이었으니까.
“야, 야, 뭘 새삼스럽게 그러냐. 공짜로 도와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더 고맙지. 그런데, 진짜 축구공은 많이 만질 생각 없어?”
그 말을 듣고는 나는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야, 나 팀이랑 계약 해지된 거 몰라?”
계약 연장이 안 되니 은퇴하겠다고 말한 게 며칠이나 되었다고 저런 소리를 하는 거냐.
그러나, 친구 녀석은 말을 멈추지 않았는데.
“아니 그래도 우리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연락해서 도움 좀 달라고 할 수 있지 않아? 볼 좀 만져야 발 끝 감각이 유지되지.”
친구의 걱정은 어찌 보면 타당했다. 2주나 볼을 만지지 못한다는 건 상당히 큰 페널티이긴 했다.
당장 아무리 초일류로 평가받는 선수라 할지라도,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이 시작하기 전까지 운동을 완전히 쉰다면, 바로 잘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야, 나 어차피 지금 연습해도 몇 주간 볼 못 만지거든?”
“...아, 맞다. 상무도 훈련소는 들어가지?”
“그래- 15일 입대다.”
내일부터 12월이 되니, 앞으로 내가 입대하기 전까지 정확히 2주 남았다. 그리고 들은 바로는, 훈련소에서 공 만질 수가 없다고 하던데. 그러면 모두가 공평하게 몇 주간 공 못 만진다는 소리다.
“그래서 니가 요즘 하루종일 몸 만드는 데만 집중하는 거구나?”
“그래, 그나마 몇몇 운동은 여기에서 좀 배워두면 군대에서도 유지가 되니까.”
“하긴, 너 이제 상체 근육은 좀 빼야지?”
근육을 뺀다는 소리에 놀라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현대 축구에서 가장 몸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곳을 꼽으라면 어디일까. 바로 중앙이다.
솔직히, 축구 단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알 거다. 패스나 슈팅 하기가 쉬운 위치가 중앙일까? 측면일까?
당연히 중앙이고, 그에 따라 최근 10년간의 축구 전술사에 한 획을 그은 감독들의 전술도 모두 중앙에 핵심을 두고 있다.
조제 무리뉴가 유행시킨, 처음에는 이게 4-5-1이지 무슨 4-3-3이냐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정석이 되어버린 무리뉴식 4-3-3.
과르디올라가 선보이고, 스페인이 활용하면서 꽤 유행이 되었던 펄스 나인을 이용하여 소위 4-6-0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일명 ‘제로톱’ 전술.
그리고 최근에는 디에고 시메오네가 새롭게 탄생시킨, 공격수를 중앙 미드필더의 주도권 싸움에 참여시키는 사실상 어찌보면 또 다른 4-6-0 이라 할 수 있는 4-4-2까지.
이 세 개의 전술 모두 중앙 미드필더의 지역에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선수를 배치하는 데 안달이 난 전술들이다.
그렇기에 현대 축구에서 중앙 지역은 선수들이 팔로는 상대방을 꼬집고, 때리고, 어깨빵하면서 발로는 다리를 후려치고, 발을 밟아대는 몸싸움이 난무하는 전쟁터다.
때문에 대부분의 중앙 미드필더는 상대방의 압박과 몸싸움을 견디기 위해서라도 몸에 근육과 몸무게를 늘리고 또 늘려야만 한다.
그러나 풀백은 그 정반대다.
저기 저 구석탱이 측면에 위치한 포지션인 만큼, 패스하기에도, 슈팅하기에도 좋지 않은 구역인 그 곳을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이 격렬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풀백은 누가 봐도 근육질인 몸보다는, 측면의 공격수에게 털리지 않게 하기 위해, 그리고 공격-수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중앙 미드필더와는 다르게 몸을 만든다.
스피드를 빠르게 내고, 방향전환에 용이하도록 우락부락한 몸보다는 근육을 빼서라도 몸무게를 줄이고, 스프린트에 적합한 근육만을 남기는 거다.
그렇기에 지금 난 온 몸을 개조하다시피 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야, 이 차트 봐봐라. 벌써 효과가 확실한데?”
뭐라고?
“진짜? 고작 1주일 지났는데?”
고작 1주일만에 풀백에 적합한 몸으로 바로 변하고 있다니, 이게 말이 되냐?
“응, 물론 더 이상적인 몸을 만들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금의 측정 기록을 보면 놀랄 만큼 변화가 빨라. 스킨폴드 캘리퍼 측정으로도, 인바디로도 이 정도면 됐어.”
“...솔직히 안 믿겨지는데? 좀 더 해야 하는 거 아냐?”
하지만.
“야, 이거 봐봐.”
눈앞에 보이는 인바디 수치는 명확했다.
“...이 인바디 믿을 만한 거야?”
“최신 기기야. 인바디 770이라고. 그리고 눈으로 봐도 대충 맞아, 원래부터 니 몸 자체가 원래 중앙 미드필더에 적합한 몸은 아니었잖아.”
그 말에, 인정하긴 싫지만 나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니...’
나는 중앙 미드필더에서 패스의 질은 꽤 괜찮은 편이었지만, 탈압박 능력과 공중 볼 다툼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으니까. 그 때문에 팀에서 방출당한 거기도 하고 말이다.
그 떨어지는 능력을 볼 배급 능력과 빠른 스피드로 커버하는 편이었는데. 지금 보니 그게 풀백에 가장 적합한 능력치였던 것이기도 했다.
“야, 왜 그 감독님이 널 원했는지 알 것 같은데? 이렇게 빨리 몸이 만들어지다니 진짜 대단하다. 넌 풀백이 천직이었나보네.”
“야, 저주걸지 마라. 풀백이 천직이라니.”
풀백이 천직이라는 소리는 축구 선수에겐 저주다. 평생 공격수 절반 정도의 봉급만 받고 살아가야 하는데 그게 어찌 저주가 아니겠는가.
“야, 시꺼. 풀백 무시하지 마라. 현대 축구에서 가장 중요해진-”
“응 그건 니가 고딩 때 풀백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고.”
“이 씹새끼가? 너 자꾸 이러면 나도 쪼잔하게 나오는 수가 있어?”
앗 죄송. 그건 안되지.
“미안, 하하. 그건 좀 봐줘. 내가 성공하면 진짜 갚을께.”
“응 안믿어, 고갱님, 내일부터 정상적으로 PT비 내시고 수업 받으시죠.”
이런, 저 놈이 삐졌군 그래.
흠, 이렇게 된 이상-
“야, 야, 알았어, 알았어, 내가 내년 리그 출전하면 첫 출전 수당 줄게.”
“....? 진짜?”
그 말에 저 놈이 놀라는 분위기였다. 그래, 출장 수당이 내가 40만 넘게 받아먹었었다는 걸 아니까 저러는구만?
“진짜지, 그러니까 훈련소 짬밥 어떻게 먹어야 할지나 좀 가르쳐줘.”
“알겠습니다. 고갱님, 확실하게 서비스해 드리겠습니다- 가 아니라.”
앗 젠장, 들킨 건가 제길. 그래 사실 너무 뻔하긴 했-
“야, 근데 너, 올해 바로 뛸 수 있겠냐? 너 내년 아예 출전 못 할 수도 있으니까 너 이런 내기 걸었던 거지?”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다행이다.
“야, 그래도 나 2부에서는 나름 경쟁력 있던 선수야. 한 번도 못 뛸거라는 건 좀 심하지 않냐?”
“아니, 근데 너 그래도 포지션 변경 첫 해잖아.”
“야, 감독이 포지션 변경해놓고 한 경기도 안 쓰면 누가 따르겠냐.”
축구 팀을 이끄는 데 있어서 감독에게 가장 필요한 건 실력도 실력인데, 신뢰다.
우리가 이 사람을 믿고 따르면 그래도 승리에 가까워 질 수 있다는 신뢰. 우리가 노력하고 기량이 좋아진다면 주전으로 내보내준다는 신뢰.
그렇기 때문에 긴 세월 동안 코치나 감독생활 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이렇게 공정하게 보이는 ‘척’ 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자신의 말에 따랐는데 한 번도 기회를 안 준다? 그러면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말이 나오고, 길게 감독질 못한다. 선수들이 말을 안 듣거든.
‘하지만 박흥서 감독은 충분히 오래 코칭스태프 생활을 한 감독이다. 이미 검증이 된 감독이라는 거지.’
그래서 내가 승격하면 한 경기라도 뛰게 해달라는 그런 약속을 과감하게 걸었던 거기도 하고.
하지만, 친구는 그 말만으로는 믿음이 가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도 거기에서 뛰려면 좀 풀백에 대해서도 조금이라도 배우고 가는 게 맞지 않아?”
음...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솔직히 제대로 가르쳐 줄 사람이 없어.”
이 대한민국에 풀백에 대하여 잘 아는 감독이나 코치가 진짜 얼마 없다는 게 문제다.
‘어설프게 가르침받고 이상한 습관 생기느니 차라리 아싸리 머리 비운 상태로 가는 게 낫지’
그 말을 듣자, 친구 녀석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너도 전주대 나왔잖아.”
“응? 그렇지.”
“그럼 너 박경운 교수님 수업 안 들어봤어? 축구 교양?”
잠깐, 뭐라고? 박경운 교수님?
“그거, 내가 아는 그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님 맞아?”
K리그 꼴찌 수준이던 제주에 부임하고 나서 2년만에 2위까지 끌어올리고, 핵심 선수가 팔려나간 후에도 팀을 견실한 중위권 수준으로 만들어낸 그 감독님?
“그래, 그 감독님이 제주 가기 전에 우리 학교 교수님이었잖아. 우리 1학년 시절에. 그리고 이번 시즌 끝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셨고.”
와 미친. 씨발 1학년때 그 수업 들을걸...
“너 그럼 그 감독님 연락처 알아?”
“당연하지. 아직도 연락 가끔 한다.”
“...그, 그럼 혹시-”
“야, 당연히 불러주마.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대신 제대로 갚아. 임마.”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양심이 많이 찔리는 느낌이 들었다.
‘음. 이렇게 되면 좀 미안한데. 도훈아, 나 내년 출전수당 없어...’
난 내년은 상무라서 출전수당이 외출권이나 외박권일 거란 말이다.
‘쓰읍.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군. 통 크게, 내 내년 월급이라도 줘야겠네.’
비록 14만원 정도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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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들어오게.”
-벌컥.
“아, 반갑네,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군 그래. 자네가 이준혁 군이로군?”
어라. 이 반응은 뭐지? 분명 사람이 찾아간다곤 했지만, 이 반응은 뭐라고 해야하나...
“저를 아십니까?”
그래, 이건 날 이전부터 조금이라도 알던 사람이거나 할 경우에만 나올 수 있는 반응이다.
“팀에서 태성이가 자네를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어서 말일세. 싸이- 크흠, 아니 이건 넘어가지.”
싸이? 설마 싸이코?
...진태성. 나중에 보자 이 새끼야. 주전 경쟁하느라고 힘들다고 매일같이 한탄해서 일부러 전화도 자제했건만, 감독님에게 날 음해할 시간도 있었구나?
그렇게 내가 속으로 그 녀석을 손봐주리라 다짐한 사이, 교수님은 나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뭐, 이야기는 들었네, 풀백으로 포지션 변경을 원한다고?”
“예, 그렇습니다.”
“어째서지?”
어라. 이 반응은 조금 의왼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솔직히 말해주겠네, 자네는 안타깝지만... 나이가 있어. 이제 자네는 유망주가 아니라 실적을 내야 하는 나이인데, 포지션을 지금 와서 변경한다는 선택지는 실패할 확률이 꽤 높은 선택이네.”
“.....”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많이 고민했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결심했습니다.”
나는, K리그에서 단 한 경기라도 뛸 수 있다면.
그 작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런 건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다.
“아, 오해하지 말게, 자네가 배우고 싶어서 찾아온 이상 가르쳐 줄 거야. 배움을 원하는 학생에게 도움을 주는 건 교수의 책임이니까.”
그 순간, 박경운 교수는 자세를 고쳐앉고 진중한 목소리로.
“하지만 내 일주일을 자네에게 온전히 투자해야 하니, 딱 하나만 내가 말하는 것에 대답해 주게.”
눈을 반짝이며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자네에게, 축구란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