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67)

도전

“어... 그러니까. 지금 저보고 풀백으로 포지션 변경을 권유하시는 겁니까?”

“정확하네.”

그 순간, 나는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왜 날?’

나는 이제까지 미드필더 외길인생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대학생 때는 중앙 미드필더로, 그리고 프로에 와서도 중앙 미드필더 겸 수비형 미드필더로 계속 뛰었다.

수비수와는 전혀, 그것도 측면 포지션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단 말이다.

그랬기에, 지금 나에게 이 포지션 변경 제안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감독님, 전 지금까지 수비수로 뛴 적이 전혀 없습니다.”

“알고 있네.”

“...그걸 아시는 분이 왜 저에게 풀백으로의 포지션 변경을 제안하신 겁니까?”

“이해하네, 자네로선 그런 반응을 보일 만하겠지.”

그러더니, 박흥서 감독은 나를 쳐다보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자, 자네는 내년 시즌, 우리 상무 팀이 K리그 챌린지(2부리그)에서 어느 정도의 전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나는 거기에 한 순간의 고민도 없이 즉답이 나왔다.

“최상위권...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상무 팀은 팀의 특성상 선수의 질이 매우 높다.

K리그 주전급이지만 유럽에서 뛰는 스타플레이어들에게는 살짝 밀려 국가대표에 못 나온 선수의 1번 선택지이자. 심심찮게 국가대표에 불려나가지만 운 나쁘게 메달 따는 대회에만 출전 못한 선수들이 최우선으로 오는 곳이 바로 이 상무 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무는 팀 특성상 27세 이하의 선수만 받는다.

즉, 상무 팀은 나이 젊어서 전성기를 맞이한 K리그 주전급 선수들로 이루어진 팀이란 거다.

그런데, 이런 팀이 2부리그에 온다? 솔직히 반칙 수준의 스쿼드다. 무조건 승격 1순위라는 거다.

“그래, 그러면 우리 팀에게 상대방들은 기본적으로 어떤 전략을 들고 나올까? 공격적으로 나올까? 수비적으로 나올까?”

이것 역시 쉬웠다.

“당연히 수비적으로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래서라네.”

아.

“이해한 표정이구만?”

“...저를 공격적인 풀백으로 사용하실 생각이십니까?”

“정확하네.”

그렇다. 수비적인 전술이 수비적인 전술인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수비에 많은 인원을 배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비적인 팀을 공격 측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수비랑 똑같다. 공격할 때 많은 인원을 배치하는 거다.

그리고, 보통 현대 축구에서 그 공격의 인원배치를 늘리는 방법은 바로 풀백을 공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좋아. 일단 저 감독님이 ‘왜’ 공격적인 풀백을 원하는지는 알겠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아 있다.

“그런데... 그렇다면 차라리 전문 풀백 선수를 데려와서 공격적으로 써먹으시는 게 낫지 않습니까?”

그래. 내가 드는 의문은 이거다.

‘왜 굳이 날 포지션 변경시키면서까지 풀백으로 쓰려는 건진 모르겠다는 거지.’

당장 생각해 봐라. 우리나라에 K리그 팀만 12팀이다. 그리고 해외에 나간 풀백 선수도 있고.

여기에서 국대에서 면제받은 사람, 또 경찰청으로 빠지는 사람, 또 그 중에서 이미 군대 갔다온 사람들을 뺀다고 해도... 전문적으로 이미 풀백을 하는 선수들이 두세명은 남을텐데.

“그래, 하지만 그 친구들 중에서 ‘진짜’ 공격적인 풀백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자네도 알고 있을 텐데?‘

그 말에, 나는 드디어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상무 팀에서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데도,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아직 대한민국 축구에서 풀백을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팀은 거의 없었다. 포백 정도만 사용해도 트렌디한 편이었고.

뭐 이걸 가지고 우리 지도자가 무능했네 그런 소리를 하는 건 아니고, 세계 축구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유럽에서도 그 시기가 되어서야 풀백의 공격적인 요소가 프로에서 필수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니 그 때는 그게 당연한 거였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내 또래 대부분의 풀백이 선 수비, 후 공격 마인드를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감독님은 그게 불만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저 감독님은 내가 저런 공격적인 풀백 역할을 잘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수비적인 게 아니라 공격적인 측면, 그리고 빌드-업에만 충신한 수비수를 원하는 거라면 나도 한 사람 몫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지금 당장 정하기는 망설여졌는데.

“...생각할 시간을 조금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말하기엔 포지션 변경은 너무나도 중대한 문제니까 말이다.

“얼마든지.”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나가려는 순간 감독은 이렇게 덧붙였다.

“다만 기억해 두게, 나는 그곳에 자네를 쓸 생각으로 자네를 뽑았다는 것을.”

-*-*-*-

“감독님, 면담 끝났습니다.”

“수고했네.”

“어때요, 그 친구, 안 받아들이지 않던가요?”

그 친구라고 하자, 박흥서 감독은 바로 알아들었다.

“그래, 자네 말이 맞더군,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던데?”

“당연하지 않습니까. 2부리거라곤 해도 중앙 미드필더에서 그럭저럭 뛰는 녀석이, 감독님 말만 듣고 바로 풀백으로 포지션 변경을 하려 하겠습니까.”

풀백.

수비수로 분류되는 포지션이지만. 현대 축구가 점점 측면을 파고드는 전통적인 윙어가 사라지고, 안으로 파고드는 인사이드 포워드가 많아지자. 전통적인 측면의 공격을 풀백한테 맡기기 시작하는 것이 정석이 되기 시작한 현대 축구에서.

이제 풀백이란. 수비도 잘 해야하고. 옛날 윙어와 같은 공격 가담도 잘 해야 하는 포지션인, 사실상 가장 요구되는 사항이 많은 포지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포지션이다.

하지만, 선수들이 처음부터 하겠다고 하는 포지션은 아닌데.

-그래서, 그 포지션이 돈 많이 줘?

하는 질문을 한다면, 다들 대답을 회피하기에 바쁜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1부 리그의 풀백이, 2부 리그의 공격수와 비슷한 연봉을 받는데 왜 선수가 굳이 하려고 들겠는가.

“에잉, 확실히 시대가 변하긴 변했어. 나 때는 감독님이 뭘 하겠다고 하면 넙죽 받아들이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그렇게 감독이 투덜거리는 사이, 코치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 친구 진짜로 풀백으로 전환하면 쓰실 겁니까?”

“응? 자네는 지금까지 뭘 들은 겐가.”

“아니, 아니, 감독님의 의견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 역시 동의한 거고요.”

이미 선수 뽑는 회의를 할 때 코치 자신도 있었으니 공격적인 풀백이 필요하다는 것에 태클 걸 생각은 더 이상 없었다.

“다만, 그 녀석이 풀백으로 포지션 변경하면, 감독님이 기대한만큼의 능력을 보여줄지 걱정이어서 말입니다.”

현대 축구에서, 풀백은 중앙 미드필더와 함께 전술적으로 가장 난이도가 높은 자리다.

언제 나아가야 할지. 언제 물러나야 할지를 알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지금이 급해야 할 타이밍인지, 느긋해야 할 타이밍인지를 그때그때마다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풀백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안 해본 녀석한테, 이런 자리를 맡기다니. 코치가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키라도 크면 망해도 어떻게든 수비진에 전봇대로라도 써먹으면 되는데, 피지컬을 보니 그건 택도 없고 말이지..’

신검 결과 173cm, 72kg

대한민국 성인 남성의 평균 키에, 평균 몸무게.

이 빈약한 피지컬에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그러나, 그런 코치의 걱정을 박흥서 감독은 일축시켰다.

“아니, 나는 확신이 있다네.”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툭툭

“축구 선수가 포지션을 변경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거야.”

그 손가락으로 머리를 두들기는 모습을 보고,코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야, 원래 중앙 미드필더를 보던 녀석이니 축구 머리가 없을 리는 없겠지만, 뛰어나다는 표현을 할 정도입니까?”

“그래. 내가 본 녀석들 중에서 손꼽힐 정도야.”

그 말에, 코치는 깜짝 놀랐다.

‘02년 월드컵 멤버를 보신 분이 저런 말을 할 정도라고?’

02년 월드컵 멤버가 어떤 세대인가, 대한민국의 ’리즈 시절‘ 을 상징하는. 최고의 세대들 아닌가.

그런데 저 녀석이 그 친구들보다도 머리가 좋다니. 코치 입장에선 쉽사리 믿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감독이 그런 코치의 모습을 눈치채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KFA B급 라이센스 이론시험 만점을 딱지치기로 받아낼 수는 없는 법 아닌가.”

-*-*-*-

“풀백, 풀백으로 포지션 변경이라...”

하.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해야 하나?”

일단, 연봉이 공격수의 반타작 수준밖에 못 받는 건 둘째치더라도.

아니, 이미 이걸 둘째로 친다는 것에서부터 글러먹은 포지션이지만 어쨌든 풀백은 정말 선수 입장에선 하나도 좋을 게 없는 포지션이다.

원래 기본적으로 가장 운동량이 많은 포지션은 미드필더였고, 나머지 포지션은 조금 적게 뛰더라도 골 잘 넣고, 수비 잘 하면 조금 덜 뛰어도 용서되었다.

하지만, 현대 축구가 점점 체력을 중요시하게 되면서 서서히 어떤 포지션이든 간에 운동량을 중요시하는 현상이 나타났고, 이 중에서 가장 운동량이 늘어난 건, 풀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비도 공격도 둘 다 해야하니까.

심지어, 절대적인 뛰는 양도 엄청 늘어났는데, 그 늘어난 양이 대부분 빠른 스프린터, 그러니까 슬렁슬렁 뛰는 게 아니라 빠르게 전력질주할 때가 꽤나 많다는것까지 합쳐져서.

풀백은. 현대 축구에서 부상을 당하는 경우도 많아졌고, 그만큼 평균적인 은퇴 시기도 무척이나 빨라졌다.

’내가 운 좋게 풀백이란 포지션이 나에게 맞는다고 해도. 여기에서 더 발전해 봐야... 당장 한 번 더 계약하고 끝나는 걸로 끝날 수도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풀백은 축구계의 3D 업종이라는 거다.

더럽고(Dirty)

어렵고(Difficult)

위험한(Dangerous)

그런 포지션.

그러니.

이 제안은, 솔직히 엄청나게 별로다.

너무, 너무 별로다.

그냥, 조금 감독님과의 사이가 불편해지더라도, 단호히 거절한 다음 상무의 2군 멤버로서 적당히 뛰면서 임용고시 준비하는 게 훨씬 더 현명한 행동이다.

“감독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난.

“만일 포지션 변경을 한다면, 저는 조금 더 나은 선수가 될 수 있는 겁니까?”

이 전화를 걸고 있는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다.

솔직히, 저 말을 들었음에도 아직도 불안하다.

아무리 저 감독님이, 나름 커리어를 잘 쌓은 감독님이라지만 저 감독님의 말만 믿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취준생 시기에. 2년이라는 시간을 축구에 다시 매달리는 모험을 해도 되는 걸까?

저걸 믿느니, 차라리 축구계를 완전히 떠날 각오하고 어떻게든 상무 팀에서 빠진 다음 현역 입대해서 군대 가고, 1년 6개월 정도 빡세게 공부해서 임용고시 합격을 노리는 게 낫지 않을까?

정말로, 정말로 저 말 한마디에 그냥 2년을 이렇게 또 허비해 버릴 수도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 걸까,

그냥. 그냥 지금이라도-

‘아냐.’

이준혁, 솔직해지자.

지금, 이런 고민을 하고, 이런 전화를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굉장히 흔들리고 있다는 게 이미 명백하지 않은가.

그래.

나는, 아직 충분히 만족하지 못했다.

나는, 아직 선수에 미련이 남아 있다.

나는.

“감독님, 한 가지만 약조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뭐지?”

“만일 K리그로 승격한다면, 저에게 딱 한 경기라도 뛰게 해주시는 걸 약속해주실 수 있습니까? 15분 정도만이라도....”

나는... 그런 자리에서 뛰더라도.

평범한 사람들은 관심도 없는 리그라고 하는.

그 K리그에서 단 한 경기라도 뛰어 보고 싶다.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90분도 아니고. 체력 안배용 교체로 충분히 가능하네.”

그러니, 내 인생의 마지막 축구를

“그렇다면 포지션 변경, 하겠습니다.”

2년만 더 늦춰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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