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167)

은...퇴?

“씨발 무조건 가야지 임마! 뭔 개소리야!”

어휴, 귀청이야.

“아니 내가 못할 말-”

“못할 말이지 미친놈아! 상무잖아 상무! 그게 뭔 뜻인지 몰라?”

“.....”

뭐, 저 놈들의 반응이 정상이긴 하다.

상무 팀.

우스갯소리로 국대 선수들보고 좋은 모습 보이면 상무탈출 드리블, 상무안가 패스나 슛이라고 말하고, 못하면 상무나 가라고 말하는 게 일상인, 듣기만 하면 굉장히 쓰레기 팀처럼 보이지만.

대다수의 프로들에게 있어서는 경찰청과 함께 병역기간 동안 운동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팀이기에 호시탐탐 입단을 노리는 팀이란 말이다.

하지만-

“야, 임마들아, 난 어제부로 축구 포기했다니까?”

그건 프로를 계속할 사람들이나 메리트가 있는 거다.

“거기가서 계속 훈련하면 임용고시 공부할 시간도 절대 안 나올텐데 내가 왜 가야하냐.”

일반적인 군대라면, 그래도 짬 좀 먹은 후반기 한 몇 개월 정도는 공부할 틈이 생긴다고 들었다.

하지만, 상무를 갈 경우, 내가 출전할 가능성이 없더라도 연습 상대는 되주어야 하니깐 계속 프로의 몸을 유지-관리하면서 전술 훈련도 해야 하는데. 그럼 절대 공부할 시간 안 나온다.

“야! 그래도 미래는 모르는 거잖아. 너 임용고시 통과할 자신 있어? 나 같으면 이 김에 많이 배워서 축구지도자 쪽으로 빠지겠다! 심지어 넌 자격증도 있잖아!”

“아니, 야 그거야 혹시나 해서 따 둔 거지 이왕이면 선생님 되는 게 훨 낫거든?”

분명 내가 임용고시를 통과 못 할까봐 대학교랑 프로 생활하는 내내 틈틈히 지도자 자격증을 B급까지 따 두긴 했지만, 그거야 혹시나 하는 생각에 따 둔거고. 할 수만 있으면 선생님이 훨씬 낫다.

‘월 200 정도 받아가면서 정년보장도 안되는 직종을 우선순위로 잡을 이유가 뭐야.’

그리고, 나는 축구지도자를 하기엔 결정적인 결함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나 운전 잘 못하는 거 다들 알잖아.”

“.....”

그래, 우스갯소리로 유소년 축구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격증은 축구지도자 자격증이 아니라, 운전면허 자격증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 이건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정말 담백한 사실이다.

당장 채용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유소년 축구지도자 뽑는 공고에 1종 보통은 필수고, 1종 대형 면허증을 가지고 있다면 우선채용 대상이라는 말이 떡하니 붙어있을 정도니까.

왜냐고? 얘들 원정경기 때마다 봉고차나 버스 몰아야 하거든. 근데 그 때마다 외주 맡기거나 사람 써야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돈이 아주 그냥 살살 녹는다.

근데, 난 운전을 잘 못한다. 1종 대형 면허를 따긴 했는데, 솔직히 잘은 못한단 말이다. 장롱면허 수준은 아니지만, 운전할 때마다 아슬아슬한 수준. 그런 내가 만약에 운전대 잡았다가 사고라도 나면? 하하.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난 지도자를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그, 그래도 너 요리는 잘하지 않냐? 우리 간식은 니가 만드는 게 제일 맛있었는데.”

하이고, 그래 내가 요리는 그럭저럭 하긴 하지. 근데 말이야.

“자격증이 없잖아 얌마...”

그리고 그게 운전만큼 필수는 아니잖아. 초-중은 몰라도, 고등학교는 야자 때문에 저녁까지 급식을 운영하는 곳도 많아서 조리사 자격증이 굳이 안 필요한 곳도 많단 말이다.

“야, 그래도 너 운전을 아예 못하는 정도까진 아니잖아. 운전만 조금 나아지면 지도자 노릴 수 있지 않아?”

“그래서 이왕이면 연습도 할 겸 현역 운전병으로 가려고 했던 거였는데 지금 상무 뽑혀버렸잖아...”

휴우-

그렇게 내가 한숨을 푹푹 쉬자, 드디어 이놈들은 상황이 파악된 모양이었다.

그래, 난 정말 상무 입대가 아무짝에도 쓸데없을 수도 있단 말이다.... 1옵션이었던 임용고시 대비해서 공부할 환경 얻는 것도, 2옵션이었던 운전 배워서 축구 지도자 준비하는 것도 다 망해버렸다고...

그 순간, 한 놈이 반박을 해왔다.

“야, 그래도 상무잖아 상무. 니가 꿈꾸던 K리그에서 뛸 수도 있는 기회라고!”

글쎄.

‘그게 가능할까?’

상무 팀의 선수들은, 대부분이 국대에서 아깝게 밀려나거나 현 폼은 국대인데 U-23 시절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서 군면제는 받지 못한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거의 준-국대 수준이라는 거다.

그런데, 내가 그 선수들을 뚫고 뛰는 게 가능할까?

글쎄, 나는 아니라고 본다.

‘아마도 리저브(2군) 팀에서 썩다가 조용히 전역하겠지.’

그래서인지 더더욱 의욕이 안 난다.

‘휴우- 젠장할, 모르겠다.’

그래, 이미 뽑혔는데 어쩌겠냐.

이제 와서 무르기도 뭐하니 그냥 가야지 뭐.

-*-*-*-

2014년 11월 28일.

“흐으으, 춥다. 추워.”

11월 말이라 그런가, 아침은 쌀쌀하네.

“행정안내실이... 여기구나.”

돌아서 돌아서 행정안내실로 간 나는, 들어가자마자 여기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낯선 선수들이란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저 사람들이 거의 다 대한민국 1부리그, 즉 K리그 클래식 멤버라는 소리였다. K리그 챌린지 선수라면 내가 모를 리가 없으니까.

‘뭐, 조용히 저 구석에 찌끄러져 있-기도 뭐 하네, 대부분 내 선배들이니깐.’

발표자 명단 때 보니 나하고 동갑이 한 명, 나보다 어린 놈은 딱 한 놈이다. 그러니깐 무조건 인사를 박아야지.

“선배님 여러분! 고양 FC 미드필더 이준혁 인사드립니다!”

그 순간, 모두가 의아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젠장, 역시나구만. 다들 말은 없지만, 표정으로 보인다.’

-고양? 거기 2부 팀 아니야? 2부 팀 미드필더가 상무를 왔다고?

나 같은 놈이 왜 뽑힌거냐는 궁금증을 품은 게 말이지.

‘아, 근데 그건 나도 궁금하다고. 진짜로. 도대체 내가 왜 뽑힌 거지?’

다른 선수들은 전부 기업팀에서 드래프트되어 고등학교 졸업, 혹은 대학교 중퇴하면서 프로 선수로서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들이지만

난 그냥 대학교 졸업하고 프로로 뛰어든 2부리그의 평범하디 평범한 중앙 미드필더란 말이다. 그런데 나 같은 놈이 여기에 오다니. 세상 말세다.

“뭐, 어쨌든 환영한다, 그리고 말 놔라. 동기인데.”

“아닙니다!”

뭐, 군대라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고 계급이 중요하다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긴 좀 그렇다. 체육계에서 선배 대우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데.

“그래? 그럼 그냥 그렇게 하고.”

휴, 역시나네.

그렇게 내가 조용히 축구선수들 모인 쪽 구석탱이에 앉아 있는 동안, K리그 선수들이 떠드는 목소리를 들었다.

“야, 나 너희 구단에 좀 추천해줄 수 없냐?”

“어, 왜요?”

“왜긴 왜야, 연봉 때문이지, 이번에 상무 갔다오고 나면 슬슬 재계약 해야하는데, 기본급 8천 수준으로 날 묶으려고 들었다니까?”

“와, 엄청 짜게 주네요?”

허어, 기본급 8천이 짜다니...

“그래, 그러니까 나 너희 구단에 추천 좀 해줘라. 너희 미드필더 부족하잖냐. 나도 억대 연봉 받아보자.”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올라오는 쓴웃음을 간신히 감췄다.

‘솔직히 난 기본급 6천만 줘도 감지덕지일 거 같은데.’

이게 프로로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사람과.

프로로서 정착한 사람의 격차구나.

“에휴, 아니에요, 저희 구단이 기업구단이긴 해도 모기업이 별로 사정이 안 좋다고 연봉 규모도 하나도 안 늘리고 있는 짠돌이 구단이라니까요?”

그러나 이번에는 쓴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는데.

‘얼씨구, 놀구들 있네.’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저 선배가 말하는 부산 아이콘스 모기업이 오늘내일한다는 소리가 하루이틀 된 것도 아니고, 그걸 감안하면 그 쪽도 결코 좋은 상황까진 아니겠지만, 내 입장에선 배부른 소리일 뿐이다.

‘구단 엠블럼 박힌 패딩까지 입고 온 주제에.’

당연히 뭐 유니폼, 축구공 이런 거 부족한 팀은 솔직히 프로팀이면 없지만, 팀 패딩, 팀 트레이닝 복 같은 없으면 죽는 것까진 아닌 이런 물품들을 지급 안하거나 대충 지급하는 곳은 꽤 보인다. 그것도 다 돈이거든.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팀 패딩을 저렇게 입고 올 정도면 꽤나 품질 좋은 거라는 거다. 저렇게 좋은 패딩 줄 정도의 구단이면서 뭔 불만이 많아?

‘그리고 시발, 저거 봐라. 저저, 오늘 그냥 신체 측정만 있는데 무슨 나이키 축구화를 신고 있어?’

자고로 돈 없는 사람한텐 축구화란 건 돈이 무진장 깨지는 나가는 거기에.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 써야 하는 건데, 저놈은 후원이라도 받았는지 그 비싼 나이키 축구화를 신고 있었다.

‘하, 부르주아 자식 같으니. 나는 그냥 키카 축구화 쓰는데.’

그마저도 훈련용으로 키카 K777R를 쓰고, 선수용으론 제브라 뽕갈이 창갈이 해가면서 고쳐쓰고...

난 그렇게 아껴쓰는데 저놈은 뭔 막 20만원이 넘는 축구화를 저렇게 그냥 신고 다니는구나. 아마도 스폰서 받은거겠지?

‘에휴, 됐다. 시기해 봤자 뭐 해.’

그래. 어차피 나는 앞으로 연습경기 때 빼곤 나갈 일도 없을 텐데 그냥 조용히, 조용-히 살자.

-*-*-*-

“에- 그럼 다음은-”

흐아아아아-품.

‘겁나 졸리네 진짜.’

역시 교육이란 말이 붙은 것 치고, 수면제가 아닌 건 없다. 다들 하품하거나 꾸벅꾸벅 졸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그리고 왜 연설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지막이란 말을 연설 중간에 저리 많이 쓰는건지 모르겠다.

‘저 인간들은 마지막이란 단어의 뜻을 모르나?’

그렇게 마지막이란 말이 그 이후로 3번 더 들리고 나서야 간신히 연설이 끝났다- 싶었더니.

“그럼, 마지막으로 박흥서 감독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아 망할. 아직 더 있었어?

‘으으, 더 이상 버티기 힘든데....’

그렇다고 지금 졸 수도 없는게, 저 분은 2002년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님의 코칭스태프로 있던, 잔뼈가 굵은 감독이다. 조는 순간 축구계 대선배님한테 큰 실례인 거다.

‘차라리 나도 미리 졸아둘걸.’

젠장. 5분 이상은 못 버틸 것 같은데. 제발 짧게-

“자, 짧게 하겠습니다, 다들 상무 팀에 오게 된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에서 다들 선수로서 발전할 수 있기를 바라고, 몸 다치지 않고 무사히 들어와서 무사히 전역하길 바랍니다. 이상.”

그 말이 끝나고, 박흥서 감독은 투욱. 하고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끝이야? 끝이라고? 와우! 사랑합니다! 박흥서 감독님!’

여윽시 2002년 월드컵 멤버는 뭔가 다르다. 꼰대가 아니라 이 시대의 진정한, 깨어 있는 기성세대이심이 분명하다. 그럼 이제 빨리-

“아, 죄송합니다. 전달사항 하나만 추가하겠습니다. 축구단 인원들은 짧게 면담이 있을 예정이니 교육이 끝나고 난 후 잠시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음, 왠일로 짧게 끝난다 싶더니만, 여윽시, 세상에 깨어 있는 기성세대 따윈 없다.

-*-*-*-

-흐어어어어 헙.

“아, 춥다 추워...”

빈 방? 강의실? 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려니 죽겠네.

-벌컥

“다음 분 들어오시랍니다.”

“옙.”

어휴, 그래도 감독이 있는 안쪽은 꽤나 따뜻하구만.

“어, 왔나. 이준혁. 맞지?”

“예! 그렇습니다!”

“하하, 젊어서 그런지 목소리 한 번 우렁차구만, 일단 차 한 잔 하게.”

“감사합니다!”

오, 땃땃-한 보리차다.

-후루룹

‘휴, 몸이 녹는 느낌이네.’

좋아. 긴장이 풀린다. 한 모금 더-

“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자네, 풀백으로 포지션 변경해볼 생각 없나?”

“푸흐흐흡-!”

잠깐,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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