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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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2014년 11월 18일

하. 이 소리는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저랑 더 이상 계약 연장할 마음이 없다 이 말이시죠?”

[그렇다네. 그럼 이만 끊지.]

-뚝.

“...씨발.”

그래, 낌새가 보이긴 했어. 올해 드래프트 자유계약 때 고등학생 미드필더를 뽑았었으니...

그렇긴 한데.

“하, 허탈하네.”

그래도 한 번쯤은 잡으려 들 줄 알았는데.

“이거, 어쩐다.... 다른 팀 알아볼까?”

다른 팀을 알아보려면 알아볼 순 있을 것 같긴 했다. 그래도 이번 시즌 나름 이 팀에서 주전으로 자리 잡았지만, 팀이 짠돌이 중의 짠돌이라서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적당한 신인으로 때우려고 한 거니까.

‘뭐라더라, 들리는 소문으로는 감독한테 적당히 꼴찌 안 하는 수준으로만 유지하면 족하다고 했었다지?’

K리그로 승격한다고 수입이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선수들 연봉만 올라가니 그럴 필요 없다고 말이다.

뭐, 그런 소문과는 별개로, 다들 열심히 하긴 했다. 당연한 게, 잘해야 연봉이 올라가니까. 딴 팀으로 이적하든, 계약을 갱신하든.

그리고, 나름 난 괜찮게 했다고 자부했다. 이 짠돌이 구단에서 나름 괜찮은 계약을 제시받고 올 해 팀에서 핵심 멤버로 대우받았으니까.

그렇지만.

‘하... 근데 6위라니.’

축구팬들에게 익숙한 EPL이라면 6위가 잘한 것처럼 보일수도 있을 거다. 20위 중에서 6위니까.

문제는 여기는 단 10팀이 뛰는 리그인, 대한민국 2부리그, K리그 챌린지라는 거다.

물론 그래도 5위와 승점 1점 차이고, 4위와는 2점 차이인, 그야말로 한 끗 차였으니까 솔직히 다른 K리그 챌린지 팀에 들어가려면 갈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그게 끝이겠지.”

승격을 노리는 팀에 현재의 연봉 수준, 아니 지금까지 드래프트 신인 수준 계약이었으니 오히려 조금 더 받는 수준으로 2년 내지 1년 계약 정도는 요구할 수도 있을 거다.

근데 그래 봤자. 나는 2부리그의 중위권, 아니 하위권 팀의 미드필더에 불과하다. 그럭저럭 2부리그에서 후보 선수나 로테이션 멤버로는 어디에서든 뛸 수 있겠지만, 다시 말하자면 주전 보장이 될 정도도 아니란 소리다.

결국 내 실력이 여기에서 좀 더 성장하지 못하면 다음 계약이 내 인생의 마지막 계약이 될 확률이 높다는 건데.

“내가 더 이상의 성장이 가능할 리가... 있나.”

내 나이가 이제 스물여섯이다. 두 달만 지나면 스물일곱이고. 만으로도 며칠만 더 있으면 곧 25세라는 나이다.

더 이상, 난 실력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유망주가 아니고, 이제는 기량을 유지해야 하는 전성기의 나이라는 거다.

그리고 내 기량의 한계는 이미 지난 3년간 나오지 않았는가. 2부 리거라고.

그렇게 결론이 나자,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크크크, 그래, 3년 뛰었으면 그래도 평균적으론 뛰었다.”

그 어디에선가, 대한민국 축구 선수 평균 선수 수명이 4년인가 정도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제 보니 아주 딱 맞는 말이었다.

프로 생활 한 10년, 15년쯤 하는 사람들이 평균 수명을 쫙 올려놓았을 텐데도 그 통계가 나왔다는 걸 보면, 3년 정도면 대부분이 은퇴한다는 소리였으니.

“하 그래, 3년 뛰었으면 나름 평균이니까 잘 뛴 거지. 음, 그래. 하하.”

하하하.

뭔가 억울한 기분은 들지만, 억울해 할 수도 없는 기분이었다. 오히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축구판에서 흔히 일어나는 부정부패, 인맥 축구, 그런 거에 희생된 것도 아니니까.

그냥,

그냥,

내 실력이 축구를 더 하기엔 살짝 부족했고. 그것뿐이니 누굴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다.

물론, 내 실력이 드래프트로 뽑힌 신인 녀석보다야 나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생각해 보자.

이미 긁어볼 대로 긁어본, 한계가 명확한 선수이지만 잡으려면 재계약 해야해서 연봉이 더 올라갈 선수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몇 번은 더 긁어볼 수도 있고 연봉도 높지 않은 신인 중 고르라면 누굴 고르겠는가.

“...그래, 나 같아도 신인 고르겠다.”

승격을 적극적으로 노리는 팀도 아니니 더더욱 말이다.

그럼 어쩐다? 어떻게든 2부리그의 다른 팀을 찾아가서 계약을 따낸 다음, 또 다시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주전을 뚫어 볼 것인가?

아니면, 확 동남아로 가서 그 곳에서는 나도 호날두, 메시만큼 할 수 있을것이라 믿고 외국인 선수로서 뛰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나?

“아니지, 흐흐. 그건 아니야. 그렇게 살기엔 난 이미 너무 긁어볼 대로 긁어본 선수라고.”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우리 고등학교 축구부 친구들에게, 하나의 짧은 단체 문자를 남겼다.

-야, 나 은퇴한다. 시간나는 놈은 여기로 와라. 술 한잔 하자.

그렇게 문자를 날리고, 여러 알림음이 왔지만 차마 그 문자를 쳐다볼 용기는 내지 못하고. 나는 쓸쓸히 라커룸에서 내 개인 물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 축구장에 다시 오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래, 인간 이준혁의 축구 인생은.

여기에서 끝이다.

.

.

.

.

.

근데, 이건 예상 못 했다 진짜.

“야, 오늘 은퇴하는 나한테 얻어먹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 니들?”

이 피도 눈물도 없는 놈들 같으니. 은퇴하는 선수한테 위로주를 사주지는 못할망정, 나보고 술값을 내라고?

그러나, 이런 내 모습을 지켜본 친구가 말했다.

“야, 이 중에서 니가 가장 잘 벌거든?”

끄응-

그 말에,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내 연봉은 세전 금액이긴 했어도 3,600만원, 즉 월 300백씩은 보장 금액으로 받았고. 올해 받은 수당이 2,400 만원 수준이었으니, 합하면 나름 연봉이 6천은 되었으니까.

그에 반해, 친구들은 아직 대부분 취업 못했거나 사회 초년생에 가까웠기에, 월 2백 언저리 봉급을 받는 신세였고.

그러니, 내가 사야 되는 게... 맞긴 맞는데...

‘하 씨, 왠지 억울하네.’

내가 꼭 니네 이직할 때 축하주 얻어먹고야 만다. 진짜.

그렇게 가슴 속 깊이 다짐한 나는, 친구 놈들의 목소리에 잡념을 깨야 했다.

“야, 그건 그렇고, 너 그냥 그대로 축구 그만두려고? 더 할려면 더 할 순 있지 않아?”

그 말에 나는 쓰게 웃었다.

그래, 내 이번 시즌 리그 성적이 총 31경기 26선발 5교체니까, 솔직히 팀을 찾아보면 분명히 오퍼 정도는 나올 확률이 높았다.

비록 하위권 팀의 핵심 멤버였다고는 해도 이 정도면 상위권 팀에서 주전 경쟁을 아예 바라보지도 못할 정도는 분명 아니었고, 최소한 벤치 선수로서는 최상급 매물이니까.

그렇지만.

“야, 내가 더 이상 축구 해 봐야 뭘 하겠냐. 우리 나이가 벌써 스물여섯이야.”

그래 봤자 2부 리거다. 내 나이가 만으로 25세. 프로 선수로서 더 이상의 기량 상승은 어렵다고 판단되는 그런 나이란 거다. 그러니 고작 1~2년 더 축구선수를 하겠다고 아등바등대느니.

“더 머리 굳기 전에 임용고시 쳐서 선생님 되는 게 나아.”

게다가 나는 그래도 대학교를 체육교육과를 나와서 교원자격증을 어떻게 어떻게 간신히 따 두긴 했으니, 이젠 공부해서 체육선생님이 되는 게 훨씬 나은 길이었다.

‘뭐, 공부 오랜만에 해야하니 머리 터지겠지만...’

선수생활 하는 동안 모아놓은 돈도 있고, 앞으로 한 2년 정도는 아무 생각도 못 하는 곳에 가 있을 테니 거기에서도 공부하고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나, 그런 내 말을 들은 친구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를 설득했다.

“야, 그래도 좀 아깝지 않냐. 프로선수 그렇게 쉽게 그만두는 게. 선생님 해 봤자 연봉 3천도 안 될텐데.”

“그래, 나 봐봐, 선생님 해 봤자 좋은 것도 없다니까? 요즘 애들 드럽게 말 안 들어 진짜. 이젠 체벌도 금지여서 뭐 때리지도 못하고....”

“야, 야, 그래도 넌 선생님 됐잖아. 난 임용고시 합격했는데도 아직 백수야. 요즘 애를 안 낳아서 학교도 자리가 없어.”

그 소리를 들은 나는, 얼굴을 찡그릴 뻔했다.

‘아니 이 새끼들이 새로운 출발에 축하를 해주진 못할망정 재를 뿌리고 앉아있어?’

아무래도 갈! 을 외쳐줘야 정신을 차리겠다 싶어서 녀석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 나는.

“.....”

막상 눈을 쳐다보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녀석들의 눈이, 입이. 표정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를. 아무리 눈치가 없는 나라고 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친구들의 기대를 저버려야 했다.

“....미안하다. 나도 여기가 한계인가 봐.”

그래. 나도 여기까지가 한계다. 우리 축구부에게 있어서 나는 그들의 유상철 선수였고, 김남일 선수였다. 중원을 그야말로 씹어먹으면서 친구들과 함께 4강 진출까지 성공했으니.

정말로 마법같은 나날이었다. 정말로 최고의 순간이었고.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었고, 나는 쓰게 웃으며 친구들에게 답해줬다.

이제.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라고.

그리고, 나의 그 확정짓는 말에. 몇몇 친구들은 간신히 눈물을 참는 분위기였다.

이건 이제 우리 고등학교에서 프로에 입단한 놈이 단 한명 도 안 남았다는 소리였고. 우리들의 어릴 적 꿈이 완전히 끝났다는 소리였으니.

“...그래, 수고했어. 수고 많았어 준혁아.”

“야, 임마. 울지 마. 울고 싶은 건 난데 왜 니가 울어.”

“그래 임마. 마셔. 마셔.”

그렇게 우리가 마시는 가운데, 가게의 TV에서 어렴풋이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아, 골대 맞고- 헤딩으로-]

[아 이거 파울 같은데요.]

그러고 보니, 오늘 국대 경기 있다고 했었나?

뭐, 굳이 경기를 쳐다볼 필요는 없었다.

‘골 먹혔나 보구나.’

국대 경기는 중계 대사만 들어도 각이 나오니까. 그리고, 은퇴하는 지금, 축구를 별로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조용히 소주를 들이키던 나는, 마시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에는 저 국가대표라는 게, 쉬워 보였는데.’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내가 알고 지낸 사람들 대부분이 결국 프로의 벽을 넘지 못했고, 축구부 에이스였던 나도 국대는커녕...

‘그 평범한 사람들은 개좁밥 리그라고들 하는 K리그에서도 한 경기도 결국 못 뛰어봤네.’

킥킥.

하, 엿 같다.

저 국가대표에서 한 경기라도.

아니, K리그에서라도 한 경기라도 제대로 뛰어볼 수 있었다면.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여한이 남지는 않았을 텐데...’

-*-*-*-

“으어어... 머리야.”

진짜 너무 달렸네, 빨리 운동-

“아, 이젠 운동할 필요 없지.”

축구 그만뒀으니까.

“하- 포기하니 편하네. 진짜. 큭큭.”

포기하니까 참- 편하긴 하다. 더 이상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가볍게 몸을 풀어둬야 할 필요도 없고, 술을 안 마신다거나 하는 식으로 식단을 관리할 필요도 없으니까.

잠깐, 식단?

“그럼...”

.

.

.

-후루룩

“음~”

이것은 진정 신의 경지에 이르린 향기.

-후루룩 후루룩 후루룩!

‘은퇴 결심하니깐 이렇게 3봉도 한 번에 먹을수 있고 좋네. 니미.’

그렇게 끓이는 데 5분, 먹는 데 3분. 총 8분만에 라면 3봉지를 먹어치운 나는 침대에 늘어지게 누우며 뒹굴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젠장. 적응이 안 된다. 하하. 원래 비시즌 시작되면 어떻게든 헬스장 찾아가서 몸 만들고 그랬는데...”

이젠 그것도 할 필요가 없으니 아침에 너무 할 일이 없어진 느낌이다.

“뭐, 군대 가기 전에 챙기는 여유라고 생각해야 하나.”

그래, 이제 군대를 미룰 수도 없으니. 최대한 빠르게 운전병으로 입대할 수 있는 조건이나 알아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내가 노트북으로 운전병 입대조건을 확인하던 도중.

-뜬, 뜨르르 뜬든, 뜬 뜨르르 뜬뜬

뭐야. 왠 전화래.

“여보세요? 이준혁 씨 맞습니까?”

“...맞는데 누구시죠?”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보이스피싱인가?

“축하드립니다. 이준혁 씨는 이번 15년도 국군대표선수 최종합격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다음주 목요일에 합격자 대상으로 교육이 있으니, 오전 9시까지 국군체육부대 상무교육관으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뭐야, 내가 아는 보이스피싱이랑은 좀 다른데?

‘보이스피싱이라고 하면 돈을 내라던가, 뭐 서울 남부지검 검사라던가, 금융사기에 당하셨습니다. 부모님이 납치당했습니다 이래야 하는 거 아냐?’

설마 내가 축구선수랍시고 맞춤으로 저런 걸 꾸며낸 건가? 와 진짜 대단하다. 요즘 세상 진짜 많이 발전했어. 보이스피싱도 맞춤형 서비스 제공이라니. 진짜 대단한 놈들이네. 하하.

‘이 정도라면 고생했다며 한 몇천 원은 줄 의향 있다.’

실소라곤 해도, 몇 년만에 날 제대로 웃게 해줬으니.

“예, 그 계좌-?”

“그럼, 그 날 뵙도록 하겠습니다.”

-뚝, 뚜뚜뚜.

뭐야?

“보이스피싱이 왜 계좌번호도 안 물어보고 끝나?”

뭐 하는 놈이래.

“괜히 헛 힘만 뺐다-아”

-털썩.

상무라니, 참나.

‘내가 붙었을 리가 없잖아.’

실기 테스트에서 만난 내 포지션 경쟁자가 모조리 K리그에서도 주전으로 뛰는 사람들 뿐이었는데 말이지.

“끄응, 뭐 보니깐 대형 면허만 따 뒀으면 그래도 입대 거의 확정이구만. 대충 월세 방 뺀다고 말하고 그동안 못 먹은 햄버거나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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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공고)15년_국군대표선수_최종합격자 명단.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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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1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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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F 이준혁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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