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과 세 번의 밤을 보내면-73화 (7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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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이 간단한 안주와 함께 럼을 가져온 후, 물러났다.

럼을 따르는 엘레나의 손이 급했다.

“건배.”

칼립소가 잔을 들어 보이며, 살짝 웃었다.

엘레나는 자신의 잔에 따른 럼을 한 번에 마셨다.

“천천히 마셔. 꽤 독해.”

“걱정 말아요.”

칼립소의 당부에도 엘레나는 잔을 또 따르고 빠르게 비웠다.

“폐하도 마셔요.”

한동안 둘은 말없이 술만 마셨다.

이상하다. 오늘 밤의 칼립소는 지나치게 신사적이었다.

빨리 취해서 밤이 지나갔으면 좋으련만.

급하게 마셨더니, 눈앞이 잠깐 휘청했다.

하지만 칼립소는 아직 멀쩡해 보였다.

할 수 없다.

칼립소를 마시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좀 더 마시는 수밖에.

칼립소가 잔을 비우자, 엘레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서둘러 럼을 따랐다.

“건배해요.”

엘레나가 잔을 부딪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취기가 올라 눈앞이 흔들리고, 웃음이 헤프게 나왔다.

덕분에 칼립소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한 번에 비우기예요.”

칼립소는 잔을 재빨리 비운 다음, 엘레나의 잔을 가져왔다. 그리고 한 번에 마셨다.

“취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취하게 만들고 싶은 거야?”

“양쪽 다요.”

칼립소의 눈에 꿰뚫어 보듯 찔러왔다.

“왜지?”

술을 한잔하자고 했을 때는 흥을 돋우는 의미였다.

하지만 지금의 엘레나는 이상했다.

“좀, 부담스러워서요.”

“부담스럽다고?”

칼립소가 뭔가 생각하는 듯 잠시 술잔을 빙 돌렸다.

“……나와 같이 자는 게 싫어?”

“꼭 그런 건 아닌데…….”

칼립소의 얼굴이 굳었다.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바라는 바야.”

“사실, 폐하와의 잠자리가 그렇게 좋았던 건 아니에요.”

칼립소의 얼굴에 충격이 스쳐 갔다.

그게 어떻게 좋지 않을 수가 있지?

“물론 처음에는 좋았어요. 그다음에도.”

엘레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그런데 마지막 보름날엔…….”

엘레나는 그 밤을 생각하면 아득했다.

몇 번을 애태워도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었던 밤. 그렇게 자신이 무력해 보일 수가 없었다.

난생처음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몇 번을 빌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끝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다.

절정을 코앞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기분.

그건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 이후, 이전만큼 칼립소와의 밤이 기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군.”

칼립소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날 밤은 그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자신을 이용했다는 생각에 그녀를 괴롭힌 것은 사실이었으니.

보름밤이 지나가는 동안, 그녀가 괴로워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그녀를 애태우기만을 반복했다. 일종의 복수심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다음 역시 엘레나의 기분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자신과의 밤이 싫어졌다면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참담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엘레나 역시 무거운 분위기를 느낀 듯 다시 술병을 잡았다.

럼을 따르는 그녀의 손을 칼립소가 잡았다.

“그럼, 이번엔 반대로 해 볼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늘 밤은 당신이 날 갖고 놀라고.”

“뭐…… 뭐라고요?”

예상치 못한 칼립소의 말에 엘레나가 당황했다.

“이리 와.”

칼립소가 엘레나의 손을 끌었다.

침실 앞에 당도할 때만 해도 엘레나는 사태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침실 문을 닫은 칼립소는 엘레나 앞에 섰다.

그리고 천천히 보여주듯 자신의 튜닉을 벗었다.

맨몸이 된 상태로 침대로 가서 벌렁 누웠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말했잖아. 마음껏 가지고 놀라고.”

칼립소는 천천히 양손을 뒷머리에 올렸다.

마치 항복하는 자세처럼.

“왜 그러고 서 있어?”

칼립소가 아래를 슬쩍 내려봤다.

“이것도 벗을까?”

“아, 아니에요.”

엘레나는 화들짝 놀랐다.

비록 황녀 수업 당시 여러 가지 성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였으나, 막상 이렇게 대놓고, 마음대로 하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 참.”

칼립소가 몸을 일으켰다.

떡 벌어진 어깨에 근육으로 뒤덮인 몸이 다가오니 엘레나는 본능적으로 살짝 물러섰다.

엘레나 앞으로 칼립소가 두 손을 쭉 내밀었다.

“묶어.”

엘레나의 보랏빛 눈동자가 확 커졌다.

“내가 날뛰지 못하게.”

“진심이에요?”

엘레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엘레나, 이 밤은 당신 거야.”

엘레나는 칼립소의 손을 내려봤다.

그날 밤, 자신을 압도했던 굵은 팔과 커다란 손이 얌전히 눈앞에 있었다.

고스란히 처분만 기다리는 손을 보니 엘레나의 마음도 동했다.

이건 기회였다.

“딴소리 하기 없기예요.”

“물론이지.”

엘레나는 작정한 듯 주변을 둘러봤다.

마침 여우 목도리에 이어진 보석이 달린 가죽끈이 보였다.

목도리를 드레스나 모자에 연결하기 위한 가죽끈이었다.

엘레나는 여우 목도리를 집어 들었다.

엘레나가 가져오는 물건을 본 칼립소가 미소를 머금었다.

“그 선물은 다행히 마음에 들었나 봐.”

다른 수많은 선물들은 집 안에 보이지 않았었는데 오직 하얀 여우 목도리만 침실에 보였다.

“뭐……. 그런 셈이죠. 무엇보다 지금은 이게 적당할 것 같아서요.”

목도리에 달린 가죽끈으로 칼립소의 손목을 야무지게 묶었다.

그리고 손목 사이에는 여우의 꼬리 부분을 넣었다.

“이러면 움직여도 아프지 않을 거예요.”

부드러운 털이 단단한 가죽끈 사이에 들어갔다.

“배려가 섬세하네.”

“그만큼 고통스러울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당신이 주는 고통이라면 기꺼이 받지.”

칼립소가 묶인 손을 위로 한 채 다시 침대에 누웠다.

얌전히 두 손이 묶인 채 반라의 몸으로 누운 칼립소를 보자 엘레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래는 당신한테 맡길게. 보다시피 지금은 내가 스스로 할 수가 없어서.”

엘레나는 칼립소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런 상황에도 여유 있는 칼립소의 얼굴이 얄미웠다.

그날 밤, 자신은 칼립소에게 완벽하게 휘둘렸지 않는가.

엘레나는 천천히 칼립소의 가슴에 손을 댔다.

‘언제까지 여유로울 수 있을까.’

엘레나는 칼립소가 한 대로 시선으로 그의 몸을 훑었다.

“기분이 어때요?”

“긴장이 돼.”

칼립소는 솔직하게 말했다.

“정말이요?”

저 거대해 보였던 남자가 긴장한다니 엘레나는 묘하게 흥분됐다.

엘레나가 천천히 칼립소의 가슴 부근을 만지니, 근육들이 그녀의 손길에 따라 춤췄다.

“읏…….”

칼립소의 입에서 저절로 신음이 새어 나갔다.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완벽하게 남에게 자신을 맡겨 본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칼립소는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 오늘 밤이 엘레나에게 즐겁길 바랐으니까. 그래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녀와 함께하길 원했으니까.

엘레나의 손가락이 가슴을 지나 점점 배 쪽으로 다가갔다.

복근을 만지자, 칼립소의 허리가 출렁거렸다.

“흣…….”

칼립소는 자신의 반응을 숨기거나 통제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게 엘레나가 원하는 것일 테니까.

비록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빠듯해진 아랫도리가 민망했지만, 칼립소는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예상이 맞았다.

엘레나는 만족한 미소를 띠며 그의 몸 이곳저곳을 탐험했다.

“여길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부풀어 오른 곳에 엘레나가 입을 맞췄다.

“좋아요?”

칼립소가 한숨 같은 신음을 내보냈다.

“제발…… 그러지 마.”

칼립소의 입에서 ‘제발’이라는 말이 나오자, 엘레나는 뭔가 희열을 느꼈다.

“여긴 하지 말까요?”

엘레나의 입술이 멀어졌다.

“젠장.”

칼립소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거 알잖아.”

“그런데 왜 하지 말라고 해요?”

“……계속 해 봐. 그럼 왜 그만두라고 했는지 보여줄 테니.”

힘줄이 돋아난 팔뚝은 금세라도 가죽끈을 끊을 것 같았다.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위협적으로 보였다.

엘레나는 잠시 칼립소의 몸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침대 옆 서랍 아래에서 손수건을 꺼내 펼쳤다.

부드럽게 펼친 얇은 비단 손수건으로 칼립소의 눈을 덮었다.

“뭐…… 하는 거야?”

시야가 가려지자, 칼립소가 움찔했다.

“엘레나?”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위기를 느낀 엘레나는 고개를 들어 칼립소의 귓가에 다가갔다.

“더 잘 느끼라고요.”

엘레나가 귓속에 속삭이자, 칼립소의 몸이 떨렸다.

그리고 칼립소가 한 대로 목덜미에 입술을 맞췄다.

“어때요?”

“……읏.”

살짝, 혀를 내미는 엘레나의 몸짓에 칼립소는 몸이 전율했다.

시야가 차단되자, 감각은 배가 되었다.

엘레나는 작정한 듯 이제 칼립소의 몸에 올라탔다.

반라의 몸을 한 칼립소와 달리 엘레나는 드레스를 입은 채였다.

화려한 레이스가 사각거리며, 칼립소의 맨살을 자극했다.

칼립소는 자신의 묶인 손을 믿을 수 없어서 이젠 침대의 머리판을 잡기 시작했고, 머리판이 부서질 듯 흔들렸다.

엘레나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질 때마다, 단단한 그의 살결도 함께 반응했다.

그때마다 솔직하게 신음을 흘리며 달뜨는 그의 표정을 보는 것은 장관이었다.

목덜미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다시 가슴에서 배로 입술을 내리던 엘레나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잠깐만요.”

엘레나는 칼립소의 몸에서 내려왔다.

“어디…… 가는 거야?”

엘레나가 나가려고 하자, 칼립소는 살짝 두려운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만 얌전히 기다려요. 잊은 게 있어서요.”

엘레나는 침실 문을 닫고 주방으로 내려갔다.

주피터 열매를 먹지 않은 것이 생각났던 것이다.

지난 보름에 먹지 않았으니, 이번엔 잊지 말고 꼭 먹어야 했다.

몸에 열이 올랐는지 덥게 느껴진 엘레나는 주방으로 들어가 얼음을 꺼냈다.

주피터 열매와 함께 얼음 물을 마시고, 컵을 놓는데 반짝이는 얼음이 시선을 끌었다.

순간 엘레나의 눈이 장난스럽게 빛났다.

‘해 볼까?’

엘레나는 컵에 얼음을 가득 넣어 침실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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